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8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86화(8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86화
26장. 불온
레이딘까지 하루를 남겨 놓은 지점에서 나는 라헨나와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하긴, 나와 루스도 쌓인 여독을 제대로 풀지 못해 온몸이 아우성을 질러 대는 와중이니, 그녀라고 오죽할까.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고 생각해야지.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
“이번에 받은 도움은 잊지 않겠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분과의 약조도 있었고.”
“뭐, 어쨌든 간에 말이죠.”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일단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으니.”
“무운을 비마.”
흘긋 루스를 바라봤다.
루스는 곧 레이딘에 도착할 것에 대비해서인지 짐을 정리하는 와중이었다.
“거래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슈나르의 문장 말이지.”
“예.”
“그걸 넘겨주면 훗날 드루이드의 영역을 내주겠다고 했었고.”
“그렇죠.”
“거절하긴 힘든 조건이지. 언제까지고 이방인으로만 살아갈 순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면…….”
“하지만 지금 결정을 내릴 순 없다. 나 혼자 가타부타를 논할 순 없는 일이니. 게다가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어.”
내 행보를 지켜보고 문장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겠다는 이야기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강력한 힘이니 그 힘을 내주는 건 신중해야 마땅하다.
“흐음. 그래서 그 시험은 언제쯤 통과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래서 네가 맡아 줄 일이 있다.”
“예? 일이라뇨.”
라헨나가 품속에서 밀랍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꺼냈다.
“동부에 은거하고 있는 드루이드가 하나 있다. 그 녀석에게 이것을 전해 주도록 해라.”
“무슨 내용이기에?”
“시험 문제를 먼저 알려 주면 재미없지 않겠느냐?”
“이 두루마리가 시험입니까?”
“그래.”
“일거리를 이렇게 또 주시는군요.”
“그래서 싫으냐?”
“그건 아닙니다만.”
“동북부에 고립된 산이 하나 있다. 찾기 어렵지 않을 거다. 찾는 방법이야 알아서 강구하도록 하고.”
“……쉽게 가면 좀 좋겠습니까.”
“어디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더냐?”
후후 웃음을 흘린 라헨나가 이내 몸을 돌리곤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시는 겁니까?”
“그래.”
“이 시험을 통과하면 연락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기별을 넣어 줄 테니.”
그녀는 드루이드다. 원하기만 한다면 전서구를 통해 언제든 내게 소식을 보낼 능력이 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지켜보고 있으마.”
말을 마친 라헨나의 주변으로 밝은 빛이 뿜어졌다. 그러곤 이내 거대한 하얀 늑대로 변한 라헨나가 땅을 박차 산속으로 사라졌다.
“가신 겁니까?”
그 빛을 보곤 뒤늦게 뛰쳐나온 루스가 멀리 사라져 가는 흰 늑대를 바라봤다.
“그래.”
“에엑. 인사도 못 드렸는데.”
“다시 만날 운명이라고 생각했겠지.”
“다시 만난다고요?”
“그래. 다시 만나게 될 거다.”
머지않아 벌어질 일이 인간만의 문제는 아닐 테니까.
엘프와 드루이드를 포함한 모든 이종족과 몬스터, 그리고 어쩌면 초월적인 존재까지 뒤섞인 혼돈일 가능성이 컸다. 그 때문에라도 라헨나와는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그때까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고.”
“예?”
“아냐. 혼잣말이었다. 이만 가자고.”
몸을 돌려 다시 마차로 들어서자 루스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마부석에 앉았다.
“뭐 어쨌든, 이제 레이딘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긴 했습니다만, 곱씹어 보니 은근히 오랜 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단했던 여정이긴 하지.
“그러니 빨리 가자고.”
“예, 알겠습니다.”
루스의 채찍질에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흔들리는 마차를 자장가 삼아 단잠에 빠져 있던 날 깨운 건 루스의 조용한 목소리였다.
“공자님.”
기왕 쉬는 거 레이딘에서 쉬자고 생각했기에 숙영조차 거른 일정이었다. 눈을 뜨자 창밖으로 깔린 짙은 어둠이 느껴졌다.
벌떡 몸을 일으키자 루스의 말이 재차 들려왔다.
“레이딘입니다.”
“그래?”
찌뿌둥한 몸을 풀며 창문 밖을 바라보자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도시의 외견이 눈에 들어왔다.
“고생했다.”
“예. 들어가자마자 바로 숙소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러자고. 따듯한 물에 몸도 담그고 맥주도 한잔해야 하니까.”
“좋지요.”
싱긋 웃은 루스가 계속해서 마차를 이끌었고, 나는 밖으로 나와 루스 옆에 앉아 옷깃을 여미었다.
“새벽이라고 또 안 들여보내 주는 건 아니겠지.”
“레이딘은 왕국 직할령이지 않습니까. 왕국법에 의해 신분이 확실한 자는 새벽에도 출입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네.”
쌀쌀한 바람을 맞아 가며 그렇게 성문 앞에 도달하자, 성벽 위로 검은 형체가 하나 불쑥 솟았다.
“정지! 정지!”
루스가 마차를 멈추자 횃불이 성벽 위로 올라왔다.
“무슨 일이오!”
“레이딘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이런, 이 꼭두새벽에?”
“안 될 건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신분만 확실하다면 말이오.”
경비병의 말에 루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린다이어 백작가를 섬기는 바람기사단 소속, 기사 루스 마이어요. 증명이 필요하다면 사람을 내려 보내시오. 신분패를 보여 주지.”
화들짝 놀라는 몸짓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였다.
“바, 바람기사단! 기사님입니까?”
“그렇다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조용한 새벽이었기에 경비병들의 발 구르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을까. 성문에 달린 조그마한 창이 열렸다.
“실례지만 이곳으로 신분패를 보여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규정이 규정인지라 먼저 확인이 필요합니다.”
“까다롭기도 하군.”
마부석에서 내린 루스가 품속에서 꺼낸 패를 창 안으로 휙 던져 넣었다.
이후 절차는 간소했다. 사실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더 추궁하기는 힘들겠지.
루스의 소속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북부 최고의 기사단인 바람기사단이니까.
이후 간신히 마차 하나가 지나갈 수준으로 문이 열렸다. 그곳으로 마차를 이끈 루스에게 경비병이 다가왔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인이 끝났으니 영주성까지 안내할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사양하지. 그냥 여관에서 묵을 생각이다.”
루스의 대답에 경비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영주성엔 이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만.”
“내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사전에 성주님의 명령이 있으셨…….”
“그래서, 내가 계속 거부한다면 끌고 가기라도 한다는 건가?”
“다, 당연히 아니지요.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루스의 불호령에 경비병이 뒤로 재빨리 물러섰다.
굳이 저렇게까지 강권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영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기사라면 보통은 귀족의 신분이고, 그런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으레 영주성에 찾아가 손님으로서 대접을 받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루스나 나나 그런 대우엔 익숙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그렇게 고개를 조아리는 경비병에게 루스가 은화 한 닢을 던져 주곤 다시 마차를 몰았다.
“일전에 묵었던 곳으로 갈까요?”
“나쁘지 않지.”
일전에 세를 놓다시피 빌렸던 여관이 생각났다. 화려한 곳은 아니었지만 좋은 맥주와 깔끔한 마구간이었기에 좋은 인상이었다.
“그곳으로 몰겠습니다.”
새벽의 레이딘은 조용했다.
번화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깔끔한 풍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아담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 곳을 지나다 보니 이내 눈에 익숙한 거리가 들어왔다. 지난번 머물렀던 여관이 자리한 골목이었다.
능숙하게 마차를 몰아 여관 앞에 세운 루스가 여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대강 짐을 챙긴 뒤 마차에서 내렸다.
이 새벽에 무슨 불청객이냐는 듯, 문을 열고 나온 주인의 얼굴은 짜증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루스의 얼굴을 기억해 낸 주인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주인에게 루스가 금화 한 닢을 꺼내 가볍게 퉁겨 주었다.
“일단 목욕물부터. 그리고 간단한 씹을 거리와 맥주만 준비해 주시오. 이건 일단 선금이고 모자라면 나중에 정산하는 것으로.”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들도 오랜 여정에 지쳤을 것이오. 그러니 질 좋은 여물과 따듯한 물을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이후 루스와 함께 여관 내부에 들어서 주인이 내준 열쇠를 들고 각자 방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오랜 여정에 때가 탄 묵은 망토와 갑옷을 벗어던졌다.
그러곤 미리 챙겨 둔, 갈아입을 깨끗한 셔츠를 들고 욕탕으로 향했다.
“공자님.”
나름 빨리 움직였다고 생각했건만, 이미 루스가 한발 먼저 도착해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있던 참이었다.
“빠르기도 해라.”
“빨리 씻고 맥주 한잔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 참 민망하군요.”
“됐어. 그 생각은 나도 동감이니까. 같이 들어가자고.”
모시는 주인과 함께 욕탕에 들어가다니.
익숙지 않은 상황에 뒷덜미를 긁던 루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 제안에 악의가 없다는 것과 평소 성격에 이젠 제법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욕탕은 이미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차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금화를 내준 효과를 톡톡히 느끼며 루스와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으어…….”
“녹는다, 녹아.”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잠도 거르고 쭉 달려온 것 아니겠어.”
“맞습니다.”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에 실실 웃으며 루스가 맞장구를 쳐왔다.
“그건 그렇고 루스.”
“예.”
“시험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봐.”
“기사 시험 말씀입니까?”
“그래. 본다고 해 놓고 제대로 된 절차조차 모르고 있으니 이제라도 알아야지.”
“뭐, 보통의 수련생이라면 알아야 할 게 많습니다만, 공자님의 경우엔 별 신경 쓸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신경 쓸 게 없다니?”
“시험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바로 정식 단원이 되는 것과 수련 기사부터 시작하는 것.”
“무슨 차이지?”
“정식 기사단원이야 뭐, 모시던 주군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방랑 기사나 괴물 같은 재능을 지닌 사람이 즉시 전력감으로 뽑히는 거죠.”
“수련 기사는?”
“가진 자질을 내보여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기사단 차원으로 길러 낼 재목으로 삼아 뽑는 것이고요. 일리아가 그런 케이스였죠.”
“그런가?”
“예. 물론 앞서 말한 것들은 공자님에겐 일체 해당 사항이 없긴 하지만요.”
“그 정도인가?”
내 말에 루스가 두 손으로 세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퍼트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이미 완성된 기사임과 동시에 대륙 어디를 가도 눈독을 들이는 재능입니다. 하물며 백작님의 혈통까지 물려받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지.”
이 세계에 넘어온 지도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 1년간 이룬 경지는 역사를 들춰 봐도 전례가 없을 수준이다.
마스터의 경지인 린다이어 백작조차도 마나를 느끼는 데 반년, 엑스퍼트까지 3~4년이 걸렸을 정도니까.
‘먼치킨은 먼치킨이야.’
린다이어 가문의 혈통이 주는 재능.
그리고 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육체.
거기에 더해 벨랑카스 대제를 대륙 제일의 검사로 만들어 준 비전의 기술까지.
강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겠지.
지금 숨을 쉬는 이 순간에도 내 몸은 마나를 축적하고 발산하는 담금질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남들과 같이 휴식을 해도 나는 수련이 되는 기막힌 상황인 것이다.
“뭐 어쨌든.”
“예.”
“그래서, 기사가 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지?”
“글쎄요. 보통 봉급과 더불어 집과 토지가 주어지고 기사로서 누릴 수 있는 각종 권한이 생깁니다만, 공자님에겐 별 의미가 없는 이야기니…….”
잠시 생각을 하던 루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공자님인 데인 린다이어 님을 예로 들어 보면 강력한 추종자들이 생긴다는 것?”
“추종자?”
“예. 아시지 않습니까. 당장이야 모든 기사단원이 백작님께 충성을 바치고 있으나 개개인만 보자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아무래도 무인으로서 성공한 자가 차기 후계자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정식 기사가 된다면?”
내 말에 루스가 빙긋 웃음을 흘렸다.
“더할 나위 없죠. 이미 상당한 공로를 세우신 공자님입니다. 거기에 자격까지 완벽해지는 셈인데, 누가 다른 공자님에게 미래를 맡기려 들겠습니까. 게다가 엑스퍼트인데.”
“당장은 데인도 엑스퍼트 초급이잖아. 나와 똑같다고.”
“글쎄요. 십수 년 수련해 엑스퍼트인 사람과 고작 일이 년 만에 된 사람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겠죠.”
“그래도 티는 내지 말라고. 쓸데없이 적을 만드는 건 좋지 않으니.”
“알겠습니다.”
“이제 나가자고. 몸이 익어 버릴 것 같으니까.”
“좋습니다. 맥주나 한잔하러 가시죠.”
“좋지.”
그렇게 루스와 내가 욕탕에서 나와 몸을 닦고 깨끗한 옷을 입은 채 복도로 나온 찰나였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무장한 병사 하나가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누구신지.”
내 물음에 병사가 고개를 들곤 밀랍으로 봉인된 작은 편지를 내밀었다.
“저는 레이딘의 성주이신 고르데 남작님의 경비병입니다. 저는 그저 이 전서를 전해 드리라고만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외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가? 고맙다.”
편지를 받아 들자 다시 한번 예를 표한 경비병이 그대로 물러나 여관에서 사라졌다.
고르데 남작의 경비병?
순간 어떻게 나를 알고 찾아왔나 싶었으나 이내 성문 경비병에게 우리의 신분을 밝혔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 출입 보고가 영주성에 올라갔겠지. 그러니 이렇게 찾아온 것일 테고.
여관까지 정확히 찾아온 것이야, 성주에겐 여관을 수소문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
‘그래서, 이 밤에 무슨 일이지?’
답은 편지에 있겠지.
거칠게 봉인을 해제하고 내용이 쓰인 종이를 펼쳐 냈다.
“뭐라 적혀 있습니까?”
곁에 있던 루스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일이 생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