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9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90화(90/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90화
늦은 저녁.
맥주를 하도 들이켰더니 취기가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숙소 한 층을 전부 세를 놓았고, 조용한 홀에는 나와 루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맡긴 일은?”
“대강 처리는 해 놨습니다. 돈이 조금 들긴 했지만.”
“돈이야 상관없어. 썩어 넘치게 많으니.”
토너먼트로 벌어들인 금화만 수천 닢이다.
돈 걱정은 하지 말란 말에 루스가 뒷덜미를 긁적였다.
“어쨌든, 알아본 건 어떻게 되셨습니까?”
내가 낮에 돌아다니며 얻었던 이야기를 해 주자 루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마약이요!?”
“그래. 정확히 말하면 아편.”
“그걸 조금도 아니라 마차 한 채에 꽉 채워서 말입니까?”
“그렇다던데.”
“맙소사. 그 정도면 개인의 소행이 아닌 수준인데요.”
“그러니까.”
“하지만 잡힌 놈들은…….”
“당시 그 마약들을 운반하던 상인 대여섯.”
“확실히, 조금 이상하긴 하군요. 수가 너무 적습니다.”
“그렇지?”
“게다가 공자님께서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설령 정말 밀매범이라고 해도 너무 멍청하게 잡히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내 생각도 그래.”
그렇게 많은 아편을 들이는 작자들이 태연하게 수비대장 앞에서 상자를 까뒤집는다?
“둘 중 하나겠지.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밀매범이든가.”
“아니면 내막을 모르고 있었든가.”
“맞아.”
내 대답에 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내막을 모른 채 이용을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지. 듣기론 레이딘까지 보급도 하지 않고 곧장 내달렸다고 하더라. 이유야 뭐겠어?”
“중간에 보급한답시고 이곳저곳 들르다 도둑이라도 맞으면 곤란할 테니까요.”
“그래.”
“레이딘이 최종 목적지인 이유도 분명해지는군요.”
“맞아. 직할령이라 출입이 자유롭고 레이딘은 사냥꾼의 도시라 불릴 만큼 외지인이 많이 드나드니 이런 밀수품을 유통하기엔 더없이 적합하지.”
“사냥꾼으로 위장한 운반책들이 오가기 쉽기도 하고요.”
“어찌 됐건, 그들이 이용을 당했고 배후에 누군가 있다고 가정해도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 여관 주인의 말로는 이번에 잡힌 상인들이 한두 번 그런 식으로 물건을 들여온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
“이런 일이 지금껏 더 있었다는 겁니까?”
“정황상 그래.”
“하지만 공자님…….”
말끝을 흐린 루스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파헤쳐도 되는 겁니까?”
“파헤쳐도 되냐니.”
“지금 나온 것만 까놓고 보면 린다이어 가문 내부의 누군가가 마약 밀매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가정해 본다면 그렇지.”
“만에 하나 그 가정이 맞는다면, 이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 어지간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제 말은 공론화를 시켜 놓고 결국 헛짚은 게 되면 그대로 역풍을 맞게 될 거란 뜻입니다.”
“그렇겠지.”
내 대답에 루스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아이고 공자님. 그렇겠지, 라뇨. 이건 가문 내부에서 흐지부지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직할령까지 관여되어 외교 문제로 번질 수가 있어요.”
“하지만 루스.”
내 부름에 루스가 석연찮은 얼굴로 대답했다.
“예.”
“정황이 그렇다면 대부분 맞아.”
“예?”
“그 이후엔 뒤따르는 각자의 사정이 추가될 뿐이지, 루머가 루머로 끝나는 일은 드물다고 하더라고.”
“…….”
정황이 그렇다면 대부분 맞다.
루머가 루머에서 끝나는 일은 드물다.
즐겨 봤던 오피스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였다. 그 드라마에서도 비리를 캐던 주인공이 들은 대사였고.
그 대사가 지금 강렬하게 내 머릿속을 잠식하는 기분이었다.
정황은 대부분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까지 가기 위해선 아직 찾아야 할 게 많았지만, 나는 왠지 그 노력이 빛이 바래진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루스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고하신 겁니까?”
“내 생각?”
“예.”
“일단은.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니까. 아직은 뜬구름 단계지만.”
“그렇다면 일단은 저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약속해 주십시오.”
“약속? 뭔?”
“확실한 증거. 그게 없으면 일정 선을 넘지 않기로.”
“일정 선이라면.”
“확증도 없이 용의자를 정해 추궁한다든가,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일 말입니다. 이건 제가 아닌 공자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약속입니다.”
루스의 시선에서 나를 향한 걱정이 느껴졌다. 그에 나 또한 더는 다른 말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스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좋습니다.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요.”
패기로운 모습으로 돌변한 루스의 모습에 나는 씩 웃으며 미리 적어 두었던 종이를 내밀었다.
“시작은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인 수비대장부터다. 모든 계획은 그 사람 다음부터고.”
“수비대장 말씀입니까?”
“그래.”
“그자가 우리에게 협조하겠습니까? 수비대장 입장에선 우리는 외지인입니다.”
루스의 말에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돈 나도 알고 있어.”
* * *
레이딘은 지방 도시이긴 하지만, 중부에서 서부로 뻗어 나가는 말단에 자리한 덕택에 군사적 이점이 적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기에 일개 수비대장임에도 불구하고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가 임명된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당당한 체구의 장년인, 기사 갈란토는 나와 루스에게 못 미더운 눈길을 보내는 와중이었다.
“내가 레이딘의 수비대장, 기사 갈란토 베이너요. 그래서 이곳까지 나를 데려온 이유가 대체 무엇이오?”
꽉 다문 입술과 고집 세 보이는 강직한 눈빛이 수비대장의 성격을 대변했다.
하긴, 직할령에 소속된 기사는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자들이다. 기사를 애타게 원하는 귀족들은 널리고 널렸으며 그들이 내놓는 봉급 또한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직할령 소속에 비할 바가 아니니.
그렇다고 캐피탈을 향한 권력욕이 있냐면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이미 갈란토의 나이는 황혼에 다다른 상태이니까.
“일단 이렇게 갑작스레 모시게 되어서 사죄의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크흠.”
술에 거나하게 취한 경비병들에게 들은 대로, 그의 퇴근길을 기다리고 있다 마주쳐 신분을 밝힌 뒤, 무작정 조용한 레스토랑으로 데려온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갈란토는 경계심이 극도로 달한 상태였다. 하긴, 나라도 느닷없이 신분을 이용해 억지로 자리를 만들면 기분이 상하겠지.
그래서 나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다시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린다이어 백작가의 삼공자, 카인 린다이어입니다.”
“린다이어 백작가의 바람기사단 소속, 루스 마이어입니다.”
내 인사에 이어 루스 또한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알렸다.
직할령에 소속된 기사의 신념과 명예를 알고 있는 루스였기에 예를 감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에 갈란토의 얼굴이 제법 풀어졌다.
아마 내가 한 수 접고 들어왔음을 알게 된 탓이겠지.
게다가 갈란토의 실력은 마나 유저 중급에 불과하다. 그보다 앞선 실력의 루스가 고개를 숙였다는 건 모르긴 몰라도 꽤 큰 효과를 발휘했을 터.
“크흠.”
생각대로 다시 한번 헛기침으로 목을 푼 갈란토의 얼굴엔 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뭐, 나도 퇴근길에 술 한잔 고프던 참이었으니 너무 괘념치 마시오.”
눈치 빠른 루스가 재빨리 종업원을 불러 식사와 술을 주문했다.
“한데, 삼공자께선 레이딘에 어쩐 일이오?”
갈란토의 말에 아직 내가 이곳에 방문했다는 사실이 퍼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오늘 아침에 들어섰던 영주성이다. 그쪽에는 내가 금방 떠난다고 했으니 별다른 조치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던지.
“예. 지나가던 길에 잠시 쉬려고 레이딘에 들렀습니다.”
“그렇군. 한데 나는 어쩐 일로 보자고 한 것이오? 설마 토너먼트의 전과를 자랑하고 싶어선 아닐 테고.”
“하하. 들켰습니까?”
내 말에 갈란토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정도 자랑이라면 굳이 없는 사람을 불러내서 해도 모자람이 없지. 그래서 내게 자랑 한번 해 볼 셈이오?”
누가 기사 아니랄까 봐 토너먼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빙 돌려 말하는 갈란토에 나 또한 너스레를 떨었다.
“어쩔 수 없군요. 이왕 들킨 김에 자랑이나 한번 해야겠습니다.”
“하! 분명 고역스러운 시간이겠지만 내 참고 들어 드리리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술과 음식이 들어왔고, 그렇게 캐피탈에서 있었던 내 전과가 한동안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오갔고 서로 배 속에 뜨거운 기운이 들기 시작할 무렵, 갈란토가 손을 들었다.
“이야기 잘 들었소.”
“재미있으셨습니까?”
“아주 흥미진진하더군. 늦었지만 챔피언이 된 걸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앞서 기분 좋은 표정을 내보이던 갈란토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변했다.
“이젠 본론을 꺼낼 때가 되지 않았소?”
“본론이요?”
“진짜 자랑질을 하러 날 찾아온 건 아니지 않소?”
“맞습니다.”
내 말에 루스가 손가락을 튕겨 종업원을 불렀다. 삽시간에 음식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이내 빈 테이블엔 질 좋은 포도주와 치즈, 과일만이 남았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난 루스가 엿듣는 이가 있는지 문밖으로 나가 좌우를 살피며 경계를 섰다.
그 모습에 갈란토도 짐짓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탓이리라.
나 또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러곤 갈란토 앞에 놓인 잔에 와인을 따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마약 밀매범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갈란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미 끝난 일이오. 모든 정황과 증거는 완벽했고, 그들은 마땅히 저지른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오.”
“저는 기사님의 수사 방식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저 튀어나온 잎사귀만 몇 개 자르고 마는 현 사태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잎사귀만 몇 개 자르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잡초를 제거하는데 뿌리는 놔두고 겉만 자르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내 수사가 불만족스럽다는 이야기로 들리오만.”
“아닙니다. 기사님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셨습니다. 그것에 관해 가타부타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갈란토가 느릿하게 잔을 들어 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나 보군.”
“사실 기사님도 정말 모르는 사실은 아닐 겁니다.”
“내가 뭘 알고 있다는 것이오?”
“그러면 한번 여쭙겠습니다. 정말 이번에 그들을 검거하고 처리하면서 일말의 수상쩍음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
갈란토가 다시 한번 포도주를 머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소.”
“그걸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삼공자 당신 말대로 꺼림칙한 부분이 단 한 점도 없다고는 말 못 하겠소. 분명 그건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요. 어찌 됐건 흉악한 놈들을 잡아다 놓는 것까지가 내 의무란 말이오. 그놈들을 판단하는 건 다른 이란 말이지. 단지 그것뿐이오. 한데 당신은 지금 대체 내게 뭘 요구하는지 모르겠군. 어쩌면 무고한 자를 잡아들였을지도 모를 죄책감을 느끼라는 거요? 아니면 월권을 부려 레이딘을 한바탕 뒤집어 놓으라는 건가?”
갈란토의 말에서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수비대장으로 있는 갈란토도 분명 꺼림칙함을 느꼈으리라고.
“전혀요.”
“그렇다면 지금 이건 뭘 하자는 거요? 아무리 봐도 날 기만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소만?”
갈란토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때쯤, 나는 본론을 꺼냈다.
“그 판단을 제가 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갈란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명분을 드리겠단 말입니다. 기사님께선 그 명분을 가지고 가진 권한 내에서 행동하시면 될 뿐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당신이 뭐기에? 이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소! 설마 여기를 린다이어 백작령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오?”
“아니요. 이곳은 직할령이자 고르데 남작이 성주로 있는 레이딘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습니다.”
쾅!
인내심의 한계가 달한 갈란토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요?”
“그럴 리가요.”
툭.
품속에서 꺼낸 것을 테이블 위에 던져 놓은 나는 갈란토를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그저 제겐 명분을 만들 권한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검은색 베이스에 황금으로 용이 양각된, 바로 왕실 직속 비밀 수사관임을 나타내는 그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