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91)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91화(91/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91화
“분명 이런 게 있다는 걸 듣긴 했소만, 직접 본 건 지금이 처음이군.”
“저도 처음으로 내보입니다.”
“이것을 내민 자에겐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지. 하지만 좀 이상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린다이어 백작가의 삼공자가 가질 만한 것은 아닌데 말이지.”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하나만 묻지. 당신의 보스가 누구요?”
“궁내부장, 할린 이르페 후작입니다.”
갈란토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어디서 주워다가 사칭하는 건 아닌 것 같군. 좋소. 그래서, 삼공자께선 지금 진심으로 이 사건의 재수사를 원하는 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말이 나온 김에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실 협조를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수사관임을 증명하는 패를 내보인 순간 억지 생떼를 부려도 갈란토는 들어줘야 할 처지였으니.
하지만 그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 부탁이라는 표현을 썼고, 갈란토도 그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대답하기 전에 몇 가지 묻겠소. 삼공자는 지금 이번에 잡힌 이들은 가짜일 뿐이고 그 뒤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신하는 거요?”
“예.”
“그 배후 중에 고르데 성주가 끼어 있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쪽으로 마음이 기운 건 사실입니다.”
“크흠…….”
머뭇거리는 갈란토의 모습에 나는 덤덤히 그를 재촉했다.
“선택을 내리셔야 합니다, 기사 갈란토.”
갈란토는 지금 자신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듯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내 결정을 내린 갈란토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 전력을 다해 돕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움의 영역이요. 직접 나서서 무력을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물론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기사님은 협조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협조라면 정확히 어떤?”
“일단, 고르데 남작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성주의 현재 위치를 묻는 말에 갈란토가 느릿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정오를 막 지난 시점에 성문을 빠져나갔다고 들었소. 정확한 목적지는 아직 보고받지 못했고, 따라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오.”
“일단 성안에는 없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소.”
“제법 영리하군요. 자신이 자리를 피해 버리면 더는 파헤치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되었군요.”
분명 고르데 남작의 선택은 아주 현명한 처사였다. 문제의 열쇠를 가진 자신이 피해 버린다면 나는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내게 수사관의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지 못한 고르데 남작의 행동은 되레 자신에게 패착으로 다가오겠지.
“일단 세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첫째로 제가 재수사를 시작했다는 걸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성주가 자리를 비운 마당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군요.”
“알겠소.”
“두 번째로, 과거 성문의 모든 출입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보관되는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최대 1년이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오?”
“용의자로 잡혀 있는 상인들을 직접 만나 심문해 보고 싶습니다. 이 또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고요.”
“세 가지 전부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군.”
“예. 은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를 알게 된 고르데 남작이 수를 쓰면 골치 아파질 테니까요.”
“사람 하나를 붙여 주겠소.”
갈란토가 굳은 의지가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만한 기사요. 정의감 하나만큼은 대륙 제일가는 놈이지. 그자에게 안내를 받으면 될 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기사님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소의 모습대로 임무에 열중하고 있겠소. 그러니까.”
잠시 말을 흐린 갈란토가 남은 와인을 마저 들이켜곤 불타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하루라도 빨리 내게 진실을 가져오시오.”
* * *
그날 늦은 새벽.
잠도 미룬 채 숙소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짜며 쉬고 있던 나와 루스를 찾아온 건 젊은 기사였다.
조용히 나를 찾아온 강직한 눈초리의 기사는 자신을 메이르라고 소개하며 고개를 숙였다.
“갈란토 님이 저를 보내셨습니다.”
“반갑다. 네가 할 일은 알고 있겠지?”
“예. 하시고자 하는 일을 정성껏 보필하라 들었습니다.”
“꽤 늦은 시간에 찾아왔네.”
“수비대장님이 내성 근무 명단을 손보시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명단을 바꿔?”
“믿을 만한 사람으로 경비를 세우는 게 일이 수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겠죠.”
“철두철미하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메이르의 손에 들린 것을 가리켰다.
“부탁했던 건가?”
“예, 그렇습니다.”
메이르가 손에 들고 있던 보따리를 풀자 안에서 경비대의 복장이 나왔다.
“이게 좀 더 크네. 루스, 네 건가 보다.”
“예.”
그 자리에서 루스와 함께 탈의하는 모습에 메이르가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메이르라고 했나?”
“예? 예, 예. 메이르입니다.”
“너무 격식 차리지 않아도 돼. 그런 거에 얽매이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 그렇지만…….”
“토너먼트 챔피언과 바람기사단원의 알몸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고.”
내 농담에 옆에서 옷을 갈아입던 루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격의 없는 그런 모습에 제법 긴장이 풀어졌는지 메이르도 슬쩍 웃음 짓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옷을 모두 갈아입고 나자 메이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보면 여지없이 경비병으로 보일 겁니다.”
“성안에 들어가면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까?”
“날이 밝는 아침까진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작해야 서너 시간 정도겠네. 가자고, 빨리 움직여야 시간도 벌지.”
이후 숙소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혹시라도 이목을 끌까 싶어 말도 없이 두 다리로 움직였다.
다행히 달조차 뜨지 않은 새벽이라 시야가 매우 어두웠다. 사실 수사관의 권한을 지녔기에 거리낄 게 없는 건 사실이지만 기왕 움직이는 거, 은밀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내성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사전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메이르를 보곤 아무 말 없이 쪽문을 열어 주었다.
“저들도 다 이야기가 끝난 건가?”
“예. 가는 루트에 있는 경비병들은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전부 수비대장님께 목숨을 빚졌거나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죠.”
“좋은 상관인가 봐.”
“진정 기사라 부를 수 있는 분입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묻는 건데, 고르데 남작의 평판은 어떻지?”
내 물음에 메이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이딘에 아예 관심이 없으시다고 할 수 있죠.”
“그러면?”
“성주님이 관심 있는 건 오로지 권력입니다. 정치판에서 밀려 한직으로 오신 게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아직 중앙 귀족으로 복귀하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못하신 듯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군.”
“그렇겠죠. 하지만 이상한 게 그런 야망을 품고 있으면서 딱히 비리를 저지르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중앙 귀족이 되려면 정치자금이 적지 않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성주님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의중을 잘 모르겠습니다.”
“뒷구멍으로 금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니 표면적으론 책잡힐 일 없게 행동하는 걸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그런 게 있다.”
씩 웃어 보인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내성 초입을 지나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왔음을 느낀 나는 메이르를 불러 세웠다.
“그들이 갇혀 있는 곳까지 가는 길만 알려 줘.”
“예? 그럼 저는…….”
“너는 루스를 성문의 출입 기록부가 보관된 곳으로 안내해 주고 일을 도와주면 된다.”
루스에게 맡길 일은 이미 사전에 설명해 놓은 뒤였다.
“알겠습니다.”
이후 메이르에게 감옥까지 가는 길을 들은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곤 그대로 행동에 나섰다.
감옥은 내성 지하에 자리해 있었다. 나선형 계단을 발견하곤 그곳을 통해 내려가던 와중, 앞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흘긋 고개를 내밀어 보자 하품을 쩍쩍 해 대는 경비병 둘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을 살펴보았지만, 표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수비대장에게 포섭된 경비병들은 가슴팍에 표식을 새겼다고 들었다.’
말인즉, 저들은 수비대장의 안배 밖의 경비병들이란 소리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다시 올라가서 저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다시 올라간 채 저들의 느린 발걸음을 기다리기엔 주어진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무력을 사용하자니 뒤에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무력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 두고.’
어차피 지금의 내 복장은 경비병의 모습이다. 일단 강행하고 만약 들통이 난다면 그 뒤에 다른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후드를 푹 눌러쓴 채 계단을 걸어 내려가자 곧 두 명의 경비병과 마주했다.
그들의 얼굴은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하루빨리 교대를 마치고 푹 쉬고 싶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게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그 둘은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그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이봐.”
한 경비병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몸을 돌렸다. 한 경비병이 피곤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거긴 왜 내려가는 거야?”
“투입한 선배님들에게 전달 사항이 있어서 전하러 가는 중입니다.”
“신참인가?”
“예.”
“뭘 전달한다는 거야??”
“바뀐 근무 명단에 수정 사안이 생겼습니다.”
메이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하자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갑자기 명단은 왜 바꾸고 지랄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네. 알았다. 고생해라.”
말을 마친 경비병은 다시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하품을 하며 몸을 돌려 위로 올라갔다.
너무 쉽게 해결되어 허탈한 생각도 잠시.
계단을 다 내려가자 음침한 지하 감옥의 전경이 드러났다.
이후엔 메이르가 알려 준 길을 떠올려 볼 필요도 없었다. 한쪽에서 시끄러운 고함이 계속 울려왔기 때문.
“야 이 개새끼들아! 이 지옥에 떨어질 새끼들! 너희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시원한 육두문자를 뒤쫓아 걸음을 옮기자 이내 가슴팍에 표식을 새긴 두 경비병이 보였다.
“누구십니까?”
“카인.”
“저쪽입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었는지 경비병이 손짓으로 감옥을 안내해 주었다.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간수들이 이용하는 의자를 하나 손에 집었다.
이후 동시에 널찍한 감옥이 나왔고.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난 아니라고! 억울하다…… 어엉?”
수염이 덥수룩한 한 사내가 쇠창살을 잡고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사내의 상태는 농담으로라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이곳저곳을 얻어맞았는지 한쪽 눈은 심하게 부어 내려앉은 상태였고, 온몸은 시퍼렇게 물든 멍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
흘긋 뒤쪽을 살펴보자 네 명의 남자가 더 보였다.
앞선 사내와 마찬가지로 온몸에 상처를 입은 그들은 고함조차 지를 기운이 없다는 듯,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넌 뭐야!”
사내의 물음에 나는 가져온 의자를 쇠창살 앞에 놓곤 묵묵히 그 위에 앉았다.
이후 재킷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곤 사내를 바라봤다.
“내가 누구냐고?”
“…….”
나를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에서 맹렬한 적개심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너흴 꺼내 줄 사람.”
“우릴 꺼내 줘? 네가 뭔데?”
“아까는 지나가는 쥐새끼라도 붙잡고 억울하다고 징징댈 기세 아니었나?”
“이 새끼가 비꼬는 거냐? 앙?”
“비꼬는 게 아니지. 대놓고 놀리는 거지.”
콰앙!
창살을 후려친 사내가 제대로 닦지 못해 누래진 이를 드러냈다.
“만약 여길 나가게 된다면 너부터 죽여 버릴 거다.”
“아아, 무서워라.”
“너 이 새끼, 얼굴 기억했어.”
“여자면 몰라도 남자가 내 얼굴을 기억하는 건 좀 그런데.”
“이 개새끼야!”
쾅! 쾅! 쾅!
분노가 극에 달한 듯, 남자가 쇠창살을 두드리며 온갖 욕설을 뱉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니, 되레 이 상황을 위해 도발을 했다.
흥분한 사람은 없던 사실도 덧붙이고, 있는 사실도 과장되게 부풀리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얻은 정보는 대개 무가치한 법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보를 얻으려면 일단 상대의 감정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수십 분간 분노를 표출하던 사내는 이후 찾아온 허탈감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
“이제 좀 대화를 할 생각이 드나?”
“……날 놀리려는 생각이면 제발 꺼져 줬으면 하는데.”
“놀린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걸 위해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그러면.”
“말했을 텐데. 너흴 꺼내 주려고 왔다고.”
내 말에 고개를 든 사내가 날 노려봤다.
“어떻게?”
“그건 내가 알아서 노력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아니었나?”
“너 간수가 맞긴 한 거냐? 아니지? 도대체 네 정체가 뭐야?”
“내 이름은 카인 린다이어.”
후드를 벗어던지며 내뱉은 말에 사내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카, 카인 린다이어? 설마 소문의 삼공자?”
“그래.”
잿빛 머리칼을 비롯한 내 생김새는 세상에 몇 없는 특징이고, 그걸 짐작한 사내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 찼다.
“그, 그런 사람이 대체 여기엔 왜? 믿기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을 텐데. 너희를 꺼내 주러 온 거라고.”
“저, 정말인가? 아니, 정말입니까?”
이제야 대화의 기미를 보이는 사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면 너도 날 도와야 한다. 낭비한 시간이 많아. 그러니 빠르게 진행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