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9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98화(9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98화
29장. 기사시험
백작과 대면한 이후, 나는 이틀 동안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반년간 누리지 못했던 휴식을 몰아서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틀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도중에 일어나면 급한 용변만 해결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머리를 베개에 댔고, 그러면 어김없이 잠이 솔솔 밀려왔다.
똑똑!
그러던 와중, 내 단잠을 깨우는 노크가 들려왔다.
“공자님!”
루스의 목소리였다.
부스스 침대에서 반쯤 일어나 들어오라 허락하자, 문을 벌컥 열어젖힌 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잠이라도 주무시는 겁니까?”
“무슨 일이야.”
“기사 시험이 앞당겨졌습니다.”
“미리 언질을 들어 알고는 있었어.”
“내일로요.”
“내일?”
생각보다 빠르게 앞당겨졌다.
빨라야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하여간 린다이어 백작, 행동력 하나만큼은 최고다.
“빨리 앞당겨지면 좋은 거지 뭐.”
“그렇긴 하죠. 공자님 실력이라면 걱정할 게 없으니.”
“그것만 알려 주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내 물음에 루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방 안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러곤 가방을 꺼내 주섬주섬 자료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당분간 글자는 꼴도 보기도 싫은데.”
레이딘에서 겪었던 서류 지옥을 떠올리자 루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공자님이 시키신 일인데 보기 싫어하시면 어찌합니까?”
“내가 시킨 일?”
아, 맞다.
백작이 데인의 일을 도우라고 해서 루스에게 간략히 조사를 부탁했었지.
내가 시킨 일이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몸을 일으켜 잠옷 바람으로 테이블 앞에 앉았다.
“공자님.”
“엉.”
“눈곱 끼었습니다.”
“내버려둬.”
털털한 내 모습에 빙긋 웃은 루스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데인 린다이어 첫째 공자님은 지금 하늘요새로 출타를 나간 상황입니다.”
“하늘요새?”
“예. 하늘요새.”
흥미가 동했다. 하늘요새라 함은 전 대륙에 위명이 널리 퍼진 요새가 아니었나.
“좀 보자고.”
루스가 가져온 지도를 펼쳐 낸 뒤, 손가락을 따라 하늘요새를 찾아나섰다.
하늘요새(Sky Fortress).
그 요새가 자리한 곳은 특별했다.
대륙 최북단에는 버려진 땅과 린다이어 백작령 사이 여러 산맥이 천혜의 장벽을 이루고 있다.
그중 하나는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케르윈이 기거하는 볼룸 산맥이고, 그와 반대인 북동부로 뻗은 산맥은 푸른 산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요새는 바로 북동부, 푸른 산맥에 자리하고 있었다.
푸른 산맥은 사시사철 만년설이 내려앉아 있으며 그나마 완만한 평지도 작물을 길러내기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사냥으로 생계를 이루겠다면 못 할 것도 없겠으나 그 사람은 아마 사냥감보다 예티를 훨씬 더 많이 만나게 되겠지.
결국, 소수라곤 해도 화전민이 군데군데 터를 이룬 채 살아가는 볼룸 산맥에 비해, 푸른 산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란 명제가 들어맞는 장소였다.
그리고 하늘요새는 그 푸른 산맥 정상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성채였고.
‘보기만 해도 춥고 고독해 보이는 곳이지.’
요새의 존재 이유야 분명하다.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되어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
그렇기에 하늘요새의 존재 의의는 좀 더 특별하다.
그 누구도 살 수 없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레인저들이야 안정된 보급로와 척박하긴 해도 사람이 살 만한 기후이기에 볼룸 산맥을 수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작령 중심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푸른 산맥에 그런 부대를 운영할 수 있을까?
늘어선 보급로만 보더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터.
‘따라서 성채에 주둔한 병력은 그야말로 충성심과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진정한 정예 중의 정예.’
농담 삼아 백작 휘하의 병력은 하늘성채로 파견 명령이 떨어지면 ‘유배 간다’라고 표현하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래서, 하늘요새로 데인이 파견 간 이유는 뭐지?”
“얼마 전, 하늘성채의 성주가 타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백작님은 일시적으로 지휘 체계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판단, 하늘요새가 임무 속행이 가능한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듯합니다.”
“타계했다고?”
“예.”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있었나?”
“아뇨. 사인은 평범한 노환입니다. 고령이기도 했을뿐더러 그쪽 환경이야 건강 챙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니 이상할 것도 없죠.”
“그렇게 고령이면 퇴역 심사를 통해 강제라도 은퇴시켰을 텐데. 아무리 백작님이 아랫사람을 쥐어짜는 스타일이라지만, 선은 지키시는 분이잖아.”
“그렇죠. 하지만 본인이 죽어도 하늘요새에서 죽겠다며 의지를 완강히 내보이신 분이라.”
“죽어도 하늘요새에서 죽겠다고?”
“기사시험을 통과해 정식기사가 된 직후 곧장 하늘요새로 자진해서 파견 요청을 넣었다고 합니다.”
“자진해서?”
“예. 본인 뜻으로.”
“외압에 의한 게 아니라?”
“예. 저도 꺼림칙해서 요 이틀간 나름 조사해 봤습니다만, 명백히 본인 의지였습니다. 딱히 가문이 빚을 진 것도 없고, 잠재력도 뛰어난 인재였기에 당시 기사단장과 가주가 윈드네스트에 남도록 설득했다고 하더군요.”
“그 설득을 물리치고 기어이 하늘요새로 향했다?”
“예.”
“그 성주의 정보는?”
“여기 있습니다.”
루스가 내민 종이를 받자마자 내용을 훑어보았다.
“성주는 콜스 나이드.”
콜스 나이드.
나이드 가문은 잘난 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없는 아주 평범한 군소 귀족가.
사망 당시 나이는 61세이며 실력은 엑스퍼트 초급.
다만 엑스퍼트에 오른 이후 십수 년이 흘렀으니 중급에 가까운 경지라고 보는 게 맞겠지.
신분에 문제도 없고, 실력도 엑스퍼트라면 능히 바람기사단의 중추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실력이다. 게다가 혹독한 하늘요새에서 수십 년을 버틴 기사이니 충성심에 관해선 티끌 한 점 의심할 게 없고.
“혹시 몰라 나름의 조사를 더 해 봤습니다만, 근 10년 내 현 린다이어 백작님이 콜스 경에게 윈드네스트로 돌아오라는 의사를 열 번도 넘게 보내셨더군요.”
“한데 그 모든 요청을 거절했다?”
“예. 정말 희생정신이 남다르신 기사분이셨죠.”
글쎄. 정말 그런 것뿐일까?
“나는 조금 이상한데.”
“예? 이상하다뇨.”
“아무리 충성심이 넘쳐도 그렇지,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한 채 일생을 하늘요새에 바쳤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
“공자님은 가끔 보면 너무 염세적이신 면이 있습니다.”
“그래?”
“제가 보기엔 그 누구도 마다하는 역경을 홀로 짊어진 숭고한 기사도의 화신으로 느껴지는데요.”
“흐음…….”
“실제로 콜스 나이드님이 하늘요새에 머문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늘요새의 환경은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하락한 부분이 없습니다. 푸른 산맥을 통해 유입되는 몬스터의 수효도 눈에 띄게 줄었고요.”
“그렇단 말이지.”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루스의 말대로 콜스 나이드가 진정 숭고한 사명으로 하늘요새에 복무한 기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좀 찜찜하다.
환갑을 넘긴 노구의 몸으로 윈드네스트에 돌아오지 않은 채 혹한의 성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이유가 뭘까.
“그래서 데인은…… 임시 성주의 자격으로 하늘요새에 간 건가? 후임을 정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
“그건 아닙니다. 단지 하늘요새의 현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위해 출타를 나간 것이니까요. 그런 상황에 지금 문제가 생긴 것이고요.”
“문제?”
“하늘요새에 복무 중인 기사와 병사들이 데인을 지나가는 개 보듯 한답니다.”
“……지나가는 개 보듯?”
“예. 지나가는 개 보듯.”
“왜?”
“글쎄요. 그 이유를 모르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작님의 명으로 감찰을 나온 일공자를 지나가는 개 보듯 무시한다? 납득하기 힘든데.”
“보통의 부대였다면 그러지 못했겠죠. 하지만 하늘요새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무슨 뜻이지?”
“그곳에 주둔하는 병력은 사실상 바람기사단을 제외한다면 백작령에서 가장 강한 정신력과 실력으로 무장한 최정예이니까요.”
자기희생과 숭고함으로 똘똘 뭉친 최정예 병력이 데인을 무시했다면 분명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린다이어 백작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는 건가.
“그렇다면 이번에 나를 보내는 이유는…….”
“제가 백작님의 의중을 어찌 감히 함부로 짐작하겠습니까마는.”
잠시 말을 아꼈던 루스가 조심스럽게 재차 입을 열었다.
“내부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데인 첫째 공자님과 삼공자님을 보내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숨은 의도가 드러났다.
백작의 저울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
* * *
윈드네스트의 기사단 병영은 평소와 다르게 시끌벅적했다.
매년 있는 기사 시험 때마다 그때만큼은 내성의 문을 열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한다.
새로운 기사의 탄생을 공유하여 기사에게는 영지의 수호자로서의 명예를, 시민에게는 소속 영지에 대한 자긍심을 주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물론 기사들도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으니 좋고, 시민들도 지루한 일상을 벗어난 볼거리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삼공자님!”
정복을 차려입은 채 대기하던 내게 루스가 다가왔다.
내 주위에 있던 기사 후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쩌면 자신의 대선배가 될지도 모르는 루스의 등장 때문이었다.
“자리를 옮기자고.”
그런 후보생들이 보는 가운데 굳이 루스와의 친목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내 의도를 알아챈 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랐다.
“알아보라고 한 건?”
“예. 오늘 밤새워서 조사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죽는 줄 알았다고요.”
“어차피 따듯한 남부로 휴양을 떠날 텐데 좀 고생하면 어때?”
“아니, 그게 어떻게 휴양입니까? 고생길만 훤한 장거리 출장이지.”
오늘 루스는 남부 군도에 정보를 모으기 위해 출발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던 루스는 짐짓 헛기침한 뒤 나를 바라봤다.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공자님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혼자 하늘요새로 가게 되시지 않으셨습니까. 공자님이랑 떨어지는 게 영 불안해서 말이죠.”
“내가 갓난아이냐?”
“저번에 캐피탈에 갈 때도 사건이 터지지 않았습니까.”
플레타와 함께 습격을 받았던 사건을 말하는 루스였다.
“적어도 이 백작령에선 걱정할 건 없을 거야.”
“하긴, 적어도 북부에서는 그렇죠.”
놈들의 인상착의는 이미 널리 퍼진 후였고, 특히 직접 공격을 당한 가문인 바슈른 공작령과 린다이어 백작령엔 눈을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현상금 사냥꾼들로 그득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놈들이라 해도 사방이 감시하는 눈이니 행동에 제약이 많겠지.
“설령 급습해 온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잖아?”
“하긴, 작정하고 몸을 내빼시면 어지간해선 잡히시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나는 엑스퍼트니까.
기사들이 명예를 중요시해서 그렇지, 일정 수준에 오른 실력으로 작정하고 도망치면 실력이 몇 단계가 차이 난다 한들 잡는 건 쉽지 않다. 그것도 목숨을 살려 둬야 한다면 더더욱.
“어쨌든, 내 걱정은 말라고.”
“알겠습니다. 엇! 시험이 시작되는군요.”
“보고 갈 생각이냐?”
“그럼요. 원래라면 지루해 빠진 시험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삼공자님이 치르시지 않습니까? 제가 빠져서야 곤란하죠.”
“말은 청산유수네. 근데 너는 저쪽에 안 가도 되는 거냐?”
멀리 단상 위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중앙에 앉은 린다이어 백작의 옆에는 기사단장 길레인과 부기사단장 베일른 바랑카가 앉아 있고, 그 뒤로는 바람기사단 전원이 절도 있는 자세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수련 기사 후보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눈에 띄고 말리라는 의지가 여기까지 전해졌다.
“일단은 바람기사단원이기에 앞서 공자님의 수행 기사니까요.”
“핑계는.”
“들켰습니까?”
너스레를 떨던 루스가 이내 고개를 들며 팔짱을 꼈다.
“보십시오. 시험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