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99)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99화(9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99화
기다리는 시간은 제법 지루했지만, 막상 시험이 시작되고 나니 분위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시험의 관리를 맡은 집행자가 말하자 모인 영지민들이 꽃잎을 흩뿌리며 환호와 손뼉을 내질렀다.
이후 성대한 환영 사이로 앳되어 보이는 십수 명의 청년들이 나타났다.
굳은 표정과 딱딱한 걸음걸이에서 그들이 긴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모인 곳에서 저리 긴장하면 제 실력을 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린다이어 백작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연극이었다.
새로운 기사들의 얼굴을 알림과 동시에 막강한 기사단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는 연극.
이후 내부적으로 엄밀한 심사가 한 번 더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찌 보면 보여주기식 연극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실력을 발휘한다면 가산점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루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연극이라 해서 마냥 설렁설렁 치르지는 않는다는 거지.
이어진 것은 수련 기사 후보생과 미리 준비된 바람기사단원과의 두 번의 대련이었다.
첫 번째는 기본적인 검술 실력을 판단하기 위한 목검 대련.
두 번째는 정신적 역량을 판단하기 위한 진검 대련.
“모르긴 몰라도, 아마 수련생들은 모두 진검 대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진검 대련을?”
“목검 대련으론 죽었다 깨도 바람기사단원을 상대로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진검 대련은 상대로선 사고를 방지해야 하니 손속에 사정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노리겠다는 건가?”
“예. 혹시라도 자그마한 상처 하나라도 입힌다면, 그 후보생은 정식 기사의 방어를 뚫었다는 타이틀을 거머쥘 테니까요.”
“그래?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나?”
내 질문에 루스가 빙긋 웃었다.
“바람기사단 역사를 통틀어 후보생에게 공격을 허용한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부심이 대단하네.”
“북부 최고의 기사단 아닙니까.”
“잘났어.”
루스와 대화를 나누던 사이 첫 번째 대련이 시작되었다.
후보생은 진지한 태도로 목검을 쥔 채 상대 바람기사단원을 노려봤다.
“상대 기사는 누구지?”
“아마 이제 막 정식 기사로 올라선 친구를 내세울 겁니다. 말단 중의 말단으로요.”
“그런 말단을 내보낼 만큼 자신이 있나 보지?”
“정식 기사와 수련 기사 사이의 간극을 보여 주려는 의도겠지요.”
먼저 나온 후보생이 목검을 들고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목검을 늘어트리듯 내리다가 한순간 힘 있게 땅을 박차며 휘두르는 모습이 꽤 절도 있어 보였다.
“발루 남작가의 자제인가 보군요.”
“어떻게 알아?”
“그쪽 가문의 검술이거든요.”
“아는 것도 많네.”
“그냥 기사단에 있다 보면 각지에서 몰려온 놈들이 자기 검술이 최고라고 으스대다 보니, 하루가 멀게 대련을 했거든요.”
“그래서 어느 검술이 최고가 됐는데?”
“적어도 그들 것은 아니었습니다.”
“린다이어 가문의 검술이 최고였다?”
“그렇죠, 뭐.”
뭐, 이러나저러나 발루 남작가 후보생의 검술을 보니 흥미가 팍 식는 기분이 들었다.
일반인들에겐 제법 멋져 보일지 모르나 검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겐 재롱을 부리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단상에 앉은 채 이를 보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는 백작과 길레인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네가 지루할 거라고 말한 이유를 이제 좀 알겠어.”
“목검이 아니라 진검 대련이면 그래도 좀 볼만해집니다만.”
“됐어. 늘어져서 낮잠이나 자련다. 정식 기사 시험이 시작되면 나 좀 데리러 와.”
내 말에 루스가 뒷덜미를 긁으며 뭐라 하려던 찰나였다.
“영주님의 명에 따라 특별히 이번 수련 기사 후보생들의 상대는 린다이어 가문의 삼공자이자 이번 정식 기사 시험에 응시한 카인 린다이어 님입니다.”
들려온 집행자의 말과, 이어서 터져 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
뒤이어 몸을 돌리자,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내게 쏠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재밌어 견딜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씰룩거리는 루스가 나를 바라봤다.
“공자님이 오늘 기사 시험 후보생들의 상대역이라는데요?”
“…….”
번뜩 든 생각에 고개를 돌려 멀리 단상에 앉은 린다이어 백작과 시선을 마주했다.
내 시선을 느낀 백작은 언뜻 보기엔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 아저씨가.’
어이가 없네.
지금 이런 식으로 나를 데뷔시키겠다고?
* *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연병장 한가운데.
탁, 탁, 탁.
그곳에 서서 손에 든 목검을 이리저리 돌려 잡아 본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정면에 선 발루 남작가의 후보생은 나를 보곤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름이?”
“예, 예? 예! 로스 발루입니다.”
자신을 로스라고 밝힌 후보생이 침을 꿀꺽 삼켰다.
“토너먼트의 위명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나만 만나면 토너먼트 이야기를 해 대는 통에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았다.
“그래? 고맙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심사는 내가 안 하는데.”
“그, 그래도…….”
“아, 그래.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기분이 더럽다 보니 고운 말도 나오지 않는다.
흘긋 고개를 돌려 그 원인인 백작을 보았다.
백작은 여전히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난 백작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저씨, 정말 이렇게 나올 겁니까?’
북부 칼날 노래 오크 부족을 섬멸하고.
정체불명의 암습자로부터 바슈른 공녀를 지켜 냈으며.
캐피탈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기존 챔피언을 쓰러트린 뒤 왕좌를 차지했고.
끝내 영지로 돌아와 실력을 뽐내며 기사도를 수호하고 명예를 소중히 하는 기사로 서임된 삼공자.
그리고 그런 삼공자의 영웅적인 행보에 감명을 받아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는 영지민들!
뭐 이런 시나리오인가?
일견 보기엔 내겐 나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되려 모두가 보는 아래 내 입지를 보장해 주는 도움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백작은 그런 대가 없는 호의를 보여 줄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 숨은 의도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나를 선전용으로 삼겠다는 뜻이겠지.’
내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건 간에 백작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내게 덧씌우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이용해 선전용 도구로 쓰든, 정치적으로 쓰든, 어쨌거나 자기 입맛대로 써먹겠다는 심보고.
단기적으로 보면 나쁠 게 없지만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먼 훗날 그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그래서 그 이미지에서 탈피하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날 뭐라고 부르게 될까.
‘잔인한 변절자.’
‘신의를 저버린 배신자.’
‘겉과 속이 다른 인간.’
안 봐도 뻔해. 그리고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도 없고.
내 이미지는 내 계획에 맞춰 나 스스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 가야 하는 법이다.
그저 남이 입혀 주는 옷을 입고 먹여 주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일단은 장단에 맞춰 주겠습니다. 나름 도움을 받은 것도 있으니. 하지만 내 모든 것은 내가 고르고 내가 선택합니다.’
백작에게 시선을 거둔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로스를 바라봤다.
“시작하자고.”
“예!”
기운차게 답변한 로스가 목검을 들었고.
세워진 목검은 잘려 나간 채 허공을 날았다.
“…….”
깨끗이 잘려 나가 손잡이만 남은 목검을 멀거니 바라보던 로스가 이내 나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목검으로?”
“다음.”
고개를 까딱이자 망연자실한 얼굴의 로스가 연병장을 빠져나갔다.
“오브라 남작가의 레톤 오브라입니다.”
그의 목검은 로스의 것처럼 잘려 나갔고.
“델란 남작가의 만조스 델란입니다.”
만조스의 목검 또한 같은 모습으로 잘려 나갔다.
후보생이 내 앞으로 나선 뒤 다시 물러나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갈고닦아 온 검술을 단 일격도 내보이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다.
그렇게 십수 명의 후보생이 모두 탈락한 이후, 수백 명이 운집한 이곳에 남은 건 적막뿐이었다.
‘이게 내 대답입니다.’
흘긋 백작이 있는 단상을 바라봤다.
린다이어 백작과 길레인, 그리고 바랑카의 얼굴엔 변함이 없었다. 도리어 뒤에 열을 맞춰 서 있는 바람기사단원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진검 대련이 있겠…….”
집행자의 말에 백작이 손을 들었다.
“체력이 소진된 후보생은 없어 보인다. 속행하라.”
백작의 말대로였다. 목검 한번 휘둘러보지 못한 후보생들의 체력이 바닥날 일은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진행은 계속되었고, 다시 첫 번째 순서였던 로스 발루가 롱 소드를 든 채 내 앞에 섰다.
그의 표정엔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야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해서 그냥 물러났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봤다면 이내 자신이 당한 모독을 알 수 있었겠지.
“시작하자고.”
그리고 그 모독은 지금, 한층 배가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검을 뽑으시죠.”
“그냥 시작하라고 했다.”
나는 그저 삐딱하게 선 채 왼손을 검집 위에 올려 두고, 오른손은 편히 늘어뜨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로스가 이를 악물었다.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후회? 그런 건 못난이들이나 하는 거고.”
내 말에 뿌드득 이를 갈아 낸 로스가 검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허리만 약간 수그릴 뿐이었다.
하지만 내 모습을 본 로스의 몸이 멈췄다.
상체를 기울인 나와 검을 든 로스.
기묘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무언가 일이 생겼나 싶어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로스는 여전히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결국, 로스는 목검을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검 한번 휘두르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기, 기권하겠습니다.”
기권 선언을 한 로스가 고개를 숙인 채 황급히 물러섰다.
그 모습에 나머지 후보생들이 로스를 비웃으며 끌끌 혀를 차는 게 느껴졌다.
물론, 그 혀를 찼던 후보생들도 로스와 별다를 건 없었다.
“기권하겠습니다.”
“기, 기권.”
“포기하겠소.”
줄지어 포기하는 후보생들의 모습에 시험장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이게 무슨 망신인 것이냐!”
멀리 다급하게 달려온 한 귀족이 후보생으로 보이는 아들을 질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 하지만…….”
“이런 부끄러울 데가! 네놈이 뚫린 입이라고 아직도 변명할 게 있단 말이냐!”
“하, 하오나 아버님. 저도 검을 휘두를 수 있어야 휘두르지 않겠습니까.”
“그게 지금 무슨…….”
“검을 휘두를 곳이 없는데 어떻게 검을 휘두릅니까. 허공을 벨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귀족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어이없어할 뿐이었지만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취한 자세는 본디 로르다인의 것이었으니까.
그와의 첫 만남에서 내가 피부로 느꼈던 것처럼, 로르다인은 검을 섞지 않아도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자신을 내어놓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냥 빈틈을 내보여.”
“내보이라고요? 그러다 칼에 찔리면요?”
“칼침 맞으면 죽는 거지 뭐.”
“그런 당연한 답변을 바란 건 아닌데요.”
“누가 그냥 비무장 상태로 있으래? 그냥 막을 생각 말고 반격하는 것만 신경 쓰라고.”
“그건 무슨 무식한 소리입니까?”
“이런 멍청한 놈을 봤나. 생각해 봐라. 네가 그러고 있으면 그 반격을 가볍게 무시할 자신이 있는 놈만 들어오지 않겠냐?”
“…….”
“처음부터 네 반격을 신경도 안 쓰는 상대라면, 애초에 네가 뭔 짓을 해도 못 이길 상대란 뜻이다. 아직도 모르겠냐?”
그때 당시엔 알다가도 모를 로르다인의 가르침이었지만, 지금은 그 속뜻을 간단히 이해할 수 있었다.
후보생들은 공격하지 않은 게 아니다.
공격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아마 내 반격에 다시 한번 검이 잘려 나가는 결말을 보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