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yrant’s Bastard Brother RAW novel - Chapter (16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60화(160/501)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60화
(160)
“제 도움 말씀이십니까?”
마테오스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랑은 혼란에 차 있었다.
여전히 수백의 정예병과 수십의 기사, 전투마법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줘야 할 베네치온 후작은 없었다.
재무관장, 문장관, 행정관, 집사장, 시종장 등 궁정의 관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만 있었다.
“저는 우선 텐티아 경부터 챙겨야겠습니다. 신성력이 남아있다면, 그녀를 치료해 주시겠습니까?”
“예. 발렌 대공.”
텐티아 경은 후작가의 기사들 사이에 어색하니 끼어 앉아 있었다.
투구를 벗고 있는 걸 보니 싸움은 일단락된 거 같았다.
“전하.”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경.”
나는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텐티아 경 옆에 있던 후작가 기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텐티아 경은 제 포로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검과 갑옷을 돌려받고 싶으시면 몸값을 내십시오.”
그가 면갑을 들추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파란 눈에 애써 끌어올린 장난기와 서늘한 분노가 섞여 다채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걸 신경 쓰지도 못하고, 황당한 기분만 느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갑옷도 멀쩡한 기사가 포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을 텐데.”
복잡한 머릿속에 커다란 바윗덩이가 하나 더 내려앉은 거 같았다.
텐티아 경을 포로로 잡은 기사가 냉큼 답했다.
“그녀는 전하가 멀어질 때까지 통로를 막고 영웅적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나 뒤쪽에서 침식자들과 싸우던 정령 몇몇이 침식되어 저희의 후방을 노려 왔고, 저희는 텐티아 경에게 함께 싸워줄 것을 권유했습니다.”
“내가 후작을 베려고 갔는데, 그런 내 기사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길을 트게 한 다음 별동대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고요.”
적대하던 기사들끼리 함께 싸우기 위한 의식적인 항복 권유이자 전술적 속임수였다는 말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혼란에 한 황금 갑옷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눈빛이 흉흉하군. 나를 벨 생각은 없나?”
“베네치온 각하는 어찌 되었습니까?”
나는 숨을 들이쉬며 답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결하셨다.”
“그분은 정말 침식자였던 겁니까?”
나는 숨을 들이쉬며 답했다.
“그렇다. 성자님과 이곳 교구의 주교가 검증해주실 것이다.”
“만약 그분께 대공이 누명을 씌웠다면, 그레모리우스의 기사들은 대공에게 복수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그의 파란 눈을 바라보았다.
먼저 눈을 돌린 건 그였다.
나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금화 한 닢을 꺼내 내어주었다.
“전하의 기사가 고작 금화 한 닢 값입니까? 부끄러워하셔야 할 일입니다.”
“그건 금화 한 닢이 아니라, 한 닢을 제한 모든 재산을 주고서라도 그녀를 되찾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일세.”
말장난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내 진심을 읽은 것인지, 기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텐티아 경의 흉갑 등판을 텅, 하고 쳤다.
“그대의 주군이 값을 치렀군. 경은 석방되었소.”
텐티아 경이 다시 내 옆에 와 섰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를 포로로 잡았던 기사에게 물었다.
“경. 이름이 무엇인가?”
“비토스. 그레모리우스를 섬기는 황금기사단의 부단장이요.”
“좋네. 비토스 경. 이제 단장 대리까지 맡게 되겠군. 성자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지상의 침식자들을 일소했지만, 아직 혼란은 남은 상태네. 키멜리온을 안정시키고 도망치는 침식 교단 신도들을 잡아들여야 해.”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눈동자에는 하나같이 혼란이 깃들어 있었다.
그 정도면 다들 침식과 옛것에 대해 알 만큼 아는 자들이다.
침식이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이 세상의 멸망에 힘을 보태는 일이라는 사실도 똑똑히 알고 있을 거다.
동료가 침식자였다는 사실도 어지간히 충격일 텐데, 하물며 베네치온 후작이 침식자였다니.
아무리 강인한 기사들이라도 정신이 나갈 만도 했다.
이때 필요한 건 일이었다.
“비토스 경. 기사들과 정예병들을 내보내 키멜리온을 안정시키고, 교회의 정화병, 사제님들과 함께 갱도들을 수색하게.”
“각하의 시신을 수습하는 게 먼저입니다.”
“옛것의 기운 탓에 나도 도망쳐 왔네. 성자님이나 키멜리온의 주교님과 함께 가야 할 거야.”
굳이 주교님을 더한 이유는, 내가 이미 성자와 말을 맞춰놓은 게 아니라는 사소한 어필이었다.
비토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마테오스에게 말했다.
“성자님. 이곳의 정예병, 주교와 함께 그레이스 후작의 시신을 수습하는 걸 도와주십시오. 텐티아 경. 경은 성자님을 따라가 주게.”
“알겠네. 대공.”
“예. 전하.”
나는 마지막으로 세레라지에 누나를 찾았다.
“누나. 누나도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세레라지에가 새침하니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또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구나.”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 * *
이러니저러니 해도 후작령 중심 도시 정도 되면 비상 상황에 대한 지침서 같은 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후작이 죽었다고 해서 다들 눈물만 줄줄 흘리며 후작 시혜자일지도 모를 대공이 영지를 좌지우지하게 놔두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
“혼란을 틈타 가게를 약탈하는 자는 목을 쳐라!”
“앞으로 일주일간 술집은 문을 닫는다. 집회와 모임도 금지다.”
정예로운 장교와 병사, 행정관들은 혼란에 찬 인파를 빠르게 진정시켰다.
“돌입해!”
“12번가 우측으로 놈들이 도망칩니다.”
“전투마법사단 준비 완료입니다! 화염 파도 원거리 투사. 3. 2. 1.”
기사와 전투마법사, 성기사, 사제, 이단심문관들은 갱도와 요새로 들어가 침식자들이 나왔던 장소를 수색하고, 도망치는 하급 침식자들과 침식 교단 신도들을 죄다 쳐 죽였다.
“싹 다 불태워라!”
후작령 대성당의 주교, 헤하르타는 헐레벌떡 달려와 현장을 수습했다.
그는 죽은 기사들과 병사, 마법사 사이에서 명예로운 전사자들과 침식을 택한 죄인들을 능숙하게 골라냈다.
“성자님을 뵈옵니다.”
“주교가 왔으니 이제 후작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겠군.”
“예. 성자님. 면면이 분석해 누가 진정한 죄인인지 광명신 아래 똑똑히 밝혀내겠사옵니다.”
헤하르타 주교는 키멜리온의 대성당에서 오랜 시간 살아오며 그레모리우스 가문과 깊은 연을 쌓아왔다.
그는 한 명의 성직자로서 성자에게 깊은 존경을 표했지만, 키멜리온의 거물로서는 다소 다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성자와 뒷거래를 통해서 그레모리우스 가문을 공격한다, 같은 의심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하고 있었다.
“광명이시여.”
그 의심은 후작의 시신에서 명백한 침식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사라졌다.
헤하르타는 키멜리온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교였다.
키멜리온은 광명신의 눈이 닿지 않는 수백 개의 갱도 아래서 침식 교단이 암약하는 도시였고, 헤하르타는 자발적인 침식과 타의에 의한 침식을 충분히 가려낼 수 있는 숙련된 성직자였다.
“부위 자체는 왼손에 한정되어 있으나, 침식은 뼛속까지 파고들었군요. 계약을 통해 힘을 얻었고, 침식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뜻입니다.”
타의에 의해 침식되면 육신은 제멋대로 변이하고, 상대적으로 피부의 바깥쪽부터 침식된다.
즉, 부위가 협소하고 침식이 깊을수록 치밀한 침식자라는 뜻이다.
“제가 알기로 각하는 오른손잡이였습니다. 왼손. 그것도 손목도 아니고 정말 손만 침식시킨 정도라면, 약간의 고통을 감수하면 교회에서 기도하고 저와 악수할 수도 있었겠지요.”
헤하르타는 침음성을 흘리며 성자를 바라보았다.
“성자님. 이 사실이 공표되면 키멜리온에 너무나 큰 혼란이 일 겁니다.”
그때 텐티아는 발렌시아누스가 자신을 성자 곁에 보낸 이유를 파악했다.
‘세상에. 내가 생각 같은 걸 하다니. 겁쟁이가 되어버린 모양이군.’
발렌시아누스가 멀쩡한 후작을 찢어 죽인 모양새가 되지 않으려면, 민심을 가진 교회가 후작을 비난해주어야 했다.
말을 하는 건 그녀의 특기가 아니었으나, 들이받는 건 특기였고, 그러니 말로 들이받는 건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주교님. 제가 주교님에 비교해서 신앙의 깊이는 비할 수 없이 얕으나, 가리고 감추어 봐야 결국 햇살 아래 드러나게 된다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소드 엑스퍼트 급 기사의 말에는 큰 힘이 있었다.
그 기사가 같은 소드 엑스퍼트 기사 십여 명을 상대로 몇 분을 버텨냈다면 더더욱.
“부디 발렌 전하가 목숨을 걸고 달려와 밝혀낸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성자 마테오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 대공이 비록 신실하고 양순한 자는 아니나, 옛것이라 불리는 악마들과 타협할 자도 아니네. 그가 고작 다섯과 함께 이 땅에 와서 대귀족을 고변하는 용기를 내었으니, 어찌 우리 광명교가 그것을 외면하겠는가?”
“성자님.”
“이 땅에서 기어 나온 완전 변이 침식자가 1백을 헤아리더군. 이럴 때야말로 교회가 민중을 인도할 순간이 아니겠는가?”
마테오스가 아르고스에게 배운 정치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헤하르타는 베네치온 후작이 침식자로서 죽은 만큼, 교회가 새 후작에게 간섭할 거대한 명분이 생겼음을 인식했다.
주교까지 올라오려면 신성력과 정치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는 오래지 않아 결단을 내렸다.
“후작이 침식자들과 손잡고 도시를 제물로 바치려 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회귀 전 기준으로 지금부터 약 24년 뒤에는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다.
베네치온 후작이 침식자라는 사실을 밝혀서, 이름과 몸을 모두 죽인다.
모든 게 발렌시아누스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그럴 때가 있다.
모든 게 내 생각대로 잘 되고 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더러울 때.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착한 사람들을 몰락시킬 때 그랬다.
물론 회귀 전의 베네치온을 착한 사람이라도 하기는 힘들지도 몰랐다.
그는 결국 복수에 눈이 멀어 수백만 영민을 갈아 넣고 20만 시민을 제물로 바쳐버렸으니까.
……선한 의지로 거지 같은 결과를 불러온 자들을 처단하는 건 익숙했다.
그래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사람을 죽이는 건 여간 싱숭생숭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알고 있다.
한번 침식을 택할 정도의 인간이면 공존은 불가능했다.
그냥…… 안타까운 거다.
적어도 제이릴리스와 엮이기 전까지의 베네치온은 훌륭한 귀족이었다.
자기 영민들을 사랑했고, 진취적인 통치를 했고, 실제로 좋은 성과를 냈다.
그게 내 마음을 긁어내는 제일 큰 미련일 거다.
“같이 잘 갈 수 있었을 텐데.”
역시 감정에 휘둘리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그의 혜안이 그때 멀었을 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서도 목표를 이뤄야 하기에 지혜가 필요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꿈꾼 순간.
“이 요새와 광산의 도시를 나가겠다고 했잖아.”
날개를 달아준 지헤와 본래 꿨던 꿈까지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감세, 무역도시 건설, 영지 확장.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바라마지않던 것들을 모두 거절해버렸다.
나는 한숨으로 미련을 한번 밀어내고, 세레라지에를 바라보았다.
“누나. 돌입하면 바로 전격으로 지져서 제압해줘. 안에 있는 애들 최소 소드 유저야.”
그녀가 새침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가 어디고, 뭘 하려고 왔는지는 알려주는 게 먼저 아니니?”
근처에 와이번핏이 보이는 저택이었다.
담은 성처럼 높고, 어지간한 마법으로도 부수지 못할 만큼 단단해 보였다.
“후작가의 은신처. 지금 후계자들 확보하려고 왔어.”
세레라지에는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후계자들이라니?”
“최대한 황실에 협조적일 거 같은 애로 세워야지.”
세레라지에가 색이 다른 두 눈을 깜빡이며 의문을 표했다.
“프로이하이트에서는 후작이 명백한 반역자였고, 황제 폐하가 함께 있어서 우리 입맛대로 후계를 지목할 수 있었지. 여기는 다를 거 같은데, 아니니?”
“내 생각대로 된다면. 교회가 베네치온 후작의 평판을 대폭 깎아줄 거야.”
그리고, 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지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살아남은 애가 후작이 되는 방식일 거고.”
“그게 무슨 말이니?”
나는 도시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베네치온 후작의 손자들은 안타깝게도 베네치온 후작이 길러 놓은 침식자들에게 죽을 거야. 우연히 살아남은 한 명은 유성같이 달려와 자신을 구해준 세레라지에 대공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