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yrant’s Bastard Brother RAW novel - Chapter (427)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427화(426/501)
(427)
뎅! 뎅! 뎅!
남쪽 성벽에서 시작된 요란한 종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혈귀들이다!”
“어디서 나온 거야?”
“관측 결과 보고드립니다! 성벽으로 다가오는 놈들과 북상하는 놈들이 1대 9의 비율을 이루고 있습니다!”
도시의 수비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키에에엑!”
“쉬이이익!”
“워어어어!”
성벽 밖에서 붉은 괴물 놈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여.’
제이릴리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거울에 비친 그녀가 내 등 뒤에 업혀서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발렌 님. 제이릴리스 폐하가 수도에 누워 계세요.”
루디가 날 불러 현실로 데려왔다.
“발렌 전하. 성벽으로 가야 합니다.”
텐티아 경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외쳤다.
“동생아.”
세레라지에 누나가 복잡한 눈빛을 보냈다.
파란 눈과 노란 눈이 번뜩였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네 편은 안 들어줄 거잖니.”
그 말을 들으니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발렌 전하! 발렌시아누스 전하!”
도시 수비병 장교가 니벨룽겐 아래로 달려와 날 애타게 불렀다.
니벨룽겐의 마총 사수들은 그를 외면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 주었고, 장교는 내게 달려와 내 앞에 부복했다.
“와이번 정찰병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성벽을 둘러싼 혈귀는 그리 많지 않지만, 북상하는 혈귀가 너무 많습니다. 추정 개체가 2만 3천에 달합니다! 원정대의 후방이 위험합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2만 3천이면 세베릭이 이끌고 간 정예병들의 두 배가 훌쩍 넘는 머릿수였다.
북부군은 말단 병사 한 명도 오크 서넛쯤은 베어 넘길 수 있는 강병들로 가득 차 있으니, 지지야 않을 거다.
하지만 끝자락의 마경으로 가기도 전에 치열한 전투를 몇 번이나 걸치면 아무리 북부군이라도 지치고 다칠 테고, 그 상태로는 끝자락의 마경을 공략할 수 없으리라.
나는 다시 한번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대여.’
제이릴리스가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샛노란 눈동자가 나를 꿰뚫듯 바라보았다.
“……네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게 나였으면 했어.”
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구해주고 싶었어.”
그것도 결국 내 욕망이니까.
난 아득, 하고 이를 악물었다.
“황실의 대공으로서 신민을 지키고 폐하의 봉신을 돕는 의무를 다하겠다.”
북부 장교가 눈을 부릅떴고, 텐티아 경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으며, 루디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드워프들의 보검인 현야를 풀었다.
모든 주술과 신비와 괴이를 거부하기에, 만약 제이릴리스가 잠든 게 어떠한 주술이나 마법 때문이라면 이 검으로 풀 수 있으리라.
“누나.”
세레라지에를 향해서 그 기대를 내밀었다.
“내게 맡기는 거니? 난 검을 휘두를 줄 모른단다.”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나는 현야를 억지로 세레라지에의 손에 쥐여주었다.
“누나밖에 없어. 니벨룽겐을 타고 마커스 후작이랑 같이 수도로 돌아가서 제이릴리스 폐하를 깨워.”
“동생아.”
세레라지에가 이색의 눈동자를 똑같이 수축하며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이릴리스를 향한 내 마음을 루디나 텐티아 경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이해하고 있었다.
“누나를 여기 남길 수는 없잖아.”
“그래. 그건 그렇잖니. 하지만…….”
“난 제국의 대공이야. 북부의 최종결전이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고 폐하를 깨우려고 왔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랬다가는 깨어난 제이릴리스가 내 뺨을 칠 거야. 알아. 무서워.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서워.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짓씹듯 내뱉었다.
“난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지는 않았지만, 해야 하는 일로부터 도망쳐 본 적은 없어. 그게 폐하가 날 믿는 이유기도 해.”
그녀는 세상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지만, 세상을 사랑한다는 건 확실했다.
“텐티아 경. 루디. 둘은 나랑 같이 가자. 혹시 세레라지에 누나를 따라서 돌아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의무를 다한다고는 말했지만, 세베릭 대공을 향한 개인적인 친분으로 가는 것도 맞거든.”
텐티아 경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있을 곳은 전하의 옆입니다.”
그녀와 달리, 루디는 한층 더 오묘한 표정이었다.
“아으.”
녹색 눈동자가 경련하듯 떨렸다.
“……발렌 님은 언제나 의무를 다하시네요.”
그것도 잠시,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서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도 좋아요. 말씀드렸던 대로,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게요. 그게 시녀니까요.”
* * *
“워어어어!”
“카카카카!”
“키이이익!”
숲속에서 혈귀들이 달려 나왔다.
인간, 수인, 거인, 마수까지.
평생을 서로 싸워 왔던 자들이 붉은 색채 아래 하나가 되었다.
“막아라! 방패 들어!”
“불화살 발사! 역청을 준비해라!”
“시체 폭발에 주의해라! 방심하지 말고 머리를 완전히 쪼개도록!”
북부군은 정예답게 맞섰지만, 후방을 찔린 만큼 당황하고 있었다.
“8번 중장 기병대를 동쪽으로 우회시키세요!”
“4번 중장 보병대 전진! 마수 혈귀를 압박합니다!”
“7번 궁수 부대는 거인 혈귀만 집중사격 합니다.”
르세나는 검을 뽑아 들고 달려 나간 세베릭을 대신해 장교 기사들을 지휘했고, 정찰 장교를 윽박질렀다.
“정찰조는 뭘 한 겁니까! 어떻게 이런 대병력이 접근하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전, 전멸했습니다!”
“‘문제없음’ 신호가 30분 전에도 들어왔는데 전멸이라니요? 55개 정찰조 중 단 한 곳도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겁니까?”
“……처음부터 혈귀에게 당한 상대로 보고를 올려 왔었던 것 같습니다.”
“놈들도 고위 침식자들처럼 지성이 있다는 말인가요? 저 살가죽 벗겨진 괴물들에게?”
“살가죽 벗겨진 괴물이라니요!”
정찰 장교의 눈에 붉은 핏줄이 솟았고, 얼굴과 목에도 핏줄이 솟았다.
그의 코, 귀, 눈, 입에서 피가 뚝뚝 흘렀고, 동공이 풀렸다.
“우리는 불사의 힘을 가진 진정한……!”
츠츠츠츠!
정찰 장교가 그대로 폭발하려 했다.
“꺄악!”
르세나는 기겁하며 검을 뽑아 단숨에 내리그었다.
서걱!
레이피어처럼 얇지만, 대검처럼 단단한 한손검이 정찰 장교의 정수리로 들어가 가랑이로 빠져나왔고, 정찰 장교가 그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피를 흘리며 무너져 내렸다.
치이이익!
반으로 잘린 시체는 뼈도 내장도 보이지 않고 한 줌 핏물이 되어 눈밭으로 흘러내렸다.
“헉, 헉.”
르세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검에 묻은 피를 닦았다.
‘나도 못 알아볼 정도였어.’
그녀는 오랜만에 두려움을 느끼며 혈귀들을 바라보았다.
“워어어억!”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서남쪽의 울창한 침엽수 숲에서 붉은 피부를 가진 괴물들이 끝도 없이 달려 나오고 있었다.
쿵! 쿵! 쿵!
그 침엽수보다도 거대한 거인 혈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고 기는 북부의 정예병들도 두려움으로 몸을 굳힐 정도였다.
“우워어어!”
거인 혈귀가 땅을 울리며 돌진했다.
“힘의 창!”
“전격 사슬!”
“주여-!”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주문과 기도를 날려댔지만, 생전에도 강력한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던 거인의 피부는 뚫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거인 혈귀가 살 문드러진 턱을 쩍 벌리며 웃었다.
북부 병사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흐하하하…….”
그리고 그 웃음이 끊어지기도 전에 거인 혈귀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츠카카칵!
새파란 오러 블레이드가 거인 혈귀의 가랑이부터 정수리까지 타고 올라갔다.
거대한 몸뚱이 안에 들어찬 핏물도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 쏟아지지 못했다.
“우리는 끝을 보러 갈 겁니다. 누가 우리 앞을 막아선다 한들!”
세베릭이 늑대 가죽 망토를 휘날리며 설원을 내달렸다.
츠카카칵!
거인 혈귀나 대형 마수 혈귀들이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 목을 떨어트렸다.
“세베릭 전하!”
“전하께서 납시셨다!”
“대공 전하!”
용기백배한 북부 전사들이 다시금 병장기를 휘둘렀다.
그때 르세나의 눈에 이질적인 혈귀 둘이 들어왔다.
‘저건?’
침엽수림 속에 붉은 안광을 빛내는 혈귀 둘이 서 있었다.
하나는 장검을 쥔 견인족 혈귀였고, 하나는 해골 가면을 쓰고 나무 지팡이를 든 정체 모를 혈귀였다.
“끓어오르는 피.”
해골 가면을 쓴 혈귀가 주문을 외자, 일대 혈귀들의 등 뒤로 붉은 아지랑이가 치솟았다.
‘주술사다. 축복이야! 막아야 해.’
“저 두 놈에게 주문을 날려라!”
특히 늑대나 개가 변이한 혈귀들이 주로 그 축복을 받았는데, 몇 배로 빨라지고 강인해졌다.
탁, 타악, 타탁!
늑대 혈귀 하나가 불화살과 얼음 송곳 주문을 피해 가며 미친 듯 달려왔다.
북부의 정예병들은 거대한 방패를 성벽처럼 들어 막았지만, 늑대 혈귀는 예상과 달리 방패를 들이받는 대신 하늘로 뛰어 올랐다.
훌쩍!
늑대의 몸이 고슴도치처럼 솟은 장창들 위까지 치솟았고.
파바바박-!
피로 된 가시와 뼛조각을 날려대며 폭발했다.
“아아아악!”
“피가 묻었다! 내가 변이하기 전에 죽여!”
“놈들이 도약했을 때 방패를 들어! 놈들이 방진을 무너트리려 한다!”
하급 장교들은 정예답게 상황을 파악하고 고함을 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시체 폭발? 세레라지에 대공은 혈귀가 시체가 아니라고 했는데?’
르세나는 전황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끓어오르는 피!”
숲속에서 제사장이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고, 속도와 힘이 강해진 혈귀들이 미친 듯 달려왔다.
“힘이 너무 세졌습니다!”
“마법사들을 지켜라!”
“죽이면 폭발한다! 방패 들고 잡아!”
버티던 방진이 하나둘 무너지고, 난전이 시작되었다.
* * *
북부 전사 켈리스만은 도끼와 방패를 휘두르며 혈귀들과 싸웠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
쾅!
원방패로 혈귀의 아가리를 밀어내고, 도끼를 휘둘러 혈귀의 정강이를 찍어 넘어트린 뒤, 방패로 몸을 가리고 혈귀의 목을 쳤다.
퍽!
동시에 혈귀의 몸이 폭발했고.
파바바박!
피와 뼈로 된 가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번에도 제때 방패를 들어서 막았지만, 너무 가까이서 받아냈던 탓에 몸이 떠밀리고 말았다.
“크윽!”
뚝!
불길한 소리와 함께 방패를 팔에 고정하는 가죽끈이 끊어졌고, 저 멀리서 늑대 혈귀가 달려왔다.
타악! 타악!
켈리스만은 늑대 혈귀의 번들거리는 붉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 와라!”
그는 이를 악물며 도끼를 쳐들었고, 시체 폭발로 인한 죽음을 각오했다.
펑!
그러나 늑대 혈귀는 그의 앞까지 달려오지 못했다.
파바바박-!
동료들 사이에서 픽 쓰러지더니, 피로 된 가시와 뼛조각을 사방으로 날리며 제 동료들만 휩쓸었다.
켈리스만은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
두 마리의 와이번이 남쪽에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전하! 잡았어요!”
얼마 전 들어본 상냥한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하얀 제복을 입은 망나니 대공의 등 뒤에 타 있었다.
“잘했어. 루디.”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기사, 텐티아가 간다!”
제국의 세 번째 소드 마스터라는 적기사가 와이번에서 뛰어내려 혈귀들을 향해 달려갔다.
츠카아악!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춤추고 혈귀들의 단단한 몸이 송당송당 잘려 나갔다.
발렌시아누스는 전황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미 난전이다. 화염 파도 같은 광역기술로 싹 쓸어버리는 건 힘들어.’
북부 전사들과 혈귀들이 섞여 있었다.
‘당연히 정신 파동도 무리야. 일단 불의 창을 좀 쏴서 후방을 정리하고, 고위급 개체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게 낫겠어.’
그는 루디를 슥 돌아보며 말했다.
“루디. 몰면서 쏠 줄 알지?”
시녀 백작이 녹색 눈을 빛내며 답했다.
“네. 발렌 님.”
“그러면 부탁할게.”
“네? 네?”
발렌시아누스는 고삐를 넘겨준 다음 와이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발렌 님!”
시녀 백작이 기겁하는 가운데, 불꽃이 피어오르는 용의 날개를 단 망나니 대공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쐐애액! 쐐애액! 쐐애액!
불의 창이 하늘을 날며 숲에서 막 날려 나오는 크고 작은 혈귀들을 불태웠다.
“이 개새끼가!”
그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선회했다.
르세나가 지휘부까지 올라온 견인 전사 혈귀와 싸우고 있었다.
견인 전사는 르세나보다 키가 세 뼘은 컸고, 북부 기준으로도 양손 검인 장검을 바람개비처럼 휘둘렀다.
‘불의 창을 던졌다가는 르세나 경까지 바삭해지겠군.’
발렌시아누스는 견인 전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혈마법은 오랜만이었지만, 용언을 다루는 그는 효율만 무시하면 대부분의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수인은 생략, 주문도 생략, 시동어와 이미지만 남기자.’
캉!
견인 전사가 검을 올려 벴고, 르세나의 검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녀가 이를 악문 순간, 발렌시아누스는 시동어를 외웠다.
“대출혈!”
견인 전사 혈귀가 검을 쳐들었던 동작 그대로 멈춰 섰다.
촤악-!
그리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줄줄 쏟으며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