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yrant’s Bastard Brother RAW novel - Chapter (493)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493화(489/501)
(493)
그 바닷가 마을은 몹시도 한적했다.
쏴아아아-.
인구는 천 명이나 간신히 넘을 것 같았고, 작은 방파제와 배 몇 척이 묶인 부두가 있었으며, 높이가 6m를 넘는 건물은 마을 중앙의 교회 하나뿐이었다.
쿠구구구-!
내가 니벨룽겐을 타고 마을 외곽의 공터에 내려서자, 촌장과 사제, 그리고 운 좋게 이 마을에 머물고 있던 순회 치안감 하나가 미친 듯 달려와 머리를 숙여댔다.
“누, 누, 누구이십니까?”
“그대가 이 마을의 사제인가? 성자님의 명령서를 받아 왔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을 촌장은 내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했고, 치안감은 니벨룽겐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 듯 벌벌 떨었으며, 내게서 마테오스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를 받아 든 사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뒤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살면서 성자님의 직인이 찍힌 공문을 받아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제는 마테오스의 명령서에 쓰인 대로 마을 사람들을 모두 교회 담 안으로 모은 다음, 그의 모든 신성력을 쥐어짜내 결계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냈다.
“광명의 주여! 당신의 이름으로 성역을 선포하나이다. 이 안에 들어선 모든 자를 지켜 주소서.”
그리 믿음직스러운 결계는 아니었지만, 사제의 눈에는 전례 없는 신앙심이 떠올라 있었다.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를 믿고 발걸음을 돌렸다.
철컥. 철컥.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허리에 찬 여섯 자루의 검이 부딪치며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냈다.
뽑히지도 않는 성검 영원을 그냥 그 사제에게 빌려주고 갔다 올까 하는 생각도 잠시.
“전하. 저쪽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군.”
텐티아 경이 날 불렀다.
우리는 바닷가 야산 너머의 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카리오사가 지도에 표시해준 동굴은 마을로부터 30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이 워낙 험해서 마을 사람들은 실수로라도 들어오지 못할 듯했다.
“여기인가?”
동굴의 입구는 몹시도 작았지만, 그 안에서는 심상찮은 찬 바람이 불어왔다.
“누나.”
“알겠잖니.”
세레라지에가 주문을 외워 빛의 구를 몇 개 띄워 올렸다.
나도 텐티아 경도 세레라지에도 루디도 어지간한 어둠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실력자들이었지만, 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과하지 않았다.
루디가 체내의 마나를 억눌러 기척을 숨기는 동시에 마총 아가테를 장전했고, 텐티아 경이 외뿔 난 투구 면갑을 내렸으며, 세레라지에는 자기 역장을 미리 캐스팅해 푸른 알갱이들을 로브 안쪽에 감춰두었다.
나는 세레라지에의 빛의 구를 따라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인족, 그린스킨, 놀, 거대한 지네나 뱀, 맹독을 가진 전갈이나 거미, 라미아나 박쥐 인간 따위의 마수가 살 법도 했지만, 동굴 안은 깔끔했다.
“깨끗하군.”
텐티아 경이 잠시동안 동굴 벽의 무늬를 확인하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아무래도 이 굴은 무언가가 뚫고 들어가며 만들어진 듯합니다.”
“아래로,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루디와 세레라지에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는 그대로 1시간을 더 걸었다.
중간중간 동굴 옆으로 난 굴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흑요석 제단과 인신 공양의 흔적이 있었다.
“발렌 님. 여기 또 있어요. 아무래도 이 굴은 예전에 침식자들이 옛것을 섬기던 곳 같아요.”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보였지. 아마도 배로 들어왔겠네. 이렇게 깊은 지하라면 침식의 기운은 확실히 숨겨졌을 테니까.”
1시간 30분째에 들어섰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해졌다.
옛것 특유의 그 진득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고, 발밑이 평평해졌으며, 우리의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주변이 캄캄해졌다.
“전하.”
“동생아.”
“그래. 슬슬 다 왔나 보네.”
보통 사람들이라면 놀랄 만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넷은 공교롭게도 모두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이건 공간을 이동할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마경과 같은 힘이네. 이제야 그놈을 만날 수 있겠어.”
“조심하세요. 발렌 님.”
우우우웅!
약간의 어지러움이 체감상 5분 정도 이어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는 한 지하 공동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천장 높이는 30m도 넘어 보였고, 공간은 연무장과 비슷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그 앞쪽에 그놈이 우리를 등지고 서 있었다.
“진짜 왔네.”
검은 꽁지머리에 호리호리한 체형.
유스티아누스였다.
* * *
세레라지에와 텐티아, 루디는 발렌시아누스가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돌진하리라고 생각했다.
‘전하는 오래전부터 그를 경계하셨다.’
‘이복동생끼리의 싸움이잖니.’
‘드디어 만나셨네요.’
텐티아는 언제든 그를 지원하려 용골 검 만하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고, 세레라지에는 전격 마법을 캐스팅했으며, 루디는 존재감을 극한까지 억누른 채로 발렌시아누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발렌시아누스는 셋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으음.”
그는 오랜 악우를 만난 듯 약간은 흥겹기까지 한 미소를 지었고, 하얀 제복의 소매와 바짓단, 넓고 화려한 띠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으며, 무도회에서 미모의 여인에게 춤을 청하려 다가가는 듯 신사적인 걸음걸이로 걸어 나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와 유스티아누스의 사이가 열 걸음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유스티아누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루디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침식당했네요. 더 이상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거예요.’
유스티아누스의 한쪽 눈동자는 여전히 노란색이었지만, 반대쪽 눈동자는 검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와 제이릴리스가 무한히 끓어오르는 옛것을 손에 넣고, 그 옛것의 파편을 모조리 저 너머로 추방한 지금, 그 파편을 억지로 가지고 있으려면 자신의 영혼과 합치는 방법뿐이었다.
“성혈의 힘을 사용한 건가?”
유스티아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가 많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기도 했고,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했고,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러기를 잠시, 유스티아누스는 솔레타라스답게 본론부터 꺼내 들이밀었다.
“내가, 왜 실패한 거지?”
발렌시아누스는 그게 이번 삶에서 있던 일들만 물어 온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글쎄.”
회귀 전에는 무수한 대귀족들과 타국의 왕들이 피의 즉위식 날 도망친 용혈 황족들을 지원하며, 제국의 황위를 노린 전쟁을 이어갔다.
유스티아누스는 그중 제일 오래 살아남은 반역 황족일 뿐이었다.
실제로 발렌시아누스가 회귀하자마자 붉은 달무리 궁 어딘가에 있을 유스티아누스를 죽여버리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대귀족들과 타국의 왕들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다른 반역 황족이 탄생할 뿐이었으니까.
그도 예상치 못했던 게 있다면, 유스티아누스도 조금씩 조금씩 기억과 힘을 되찾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대답해주면 들을 마음은 있나?”
“이제 마지막인데, 뭐.”
유스티아누스는 초연히 답했고, 발렌시아누스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태양이 꺼졌다가 타오르고, 발렌시아누스는 격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거짓말하지 마.”
유스티아누스가 고개를 저었고, 발렌시아누스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 들어 봐. 먼저 질문을 했으면 적어도 몇 마디는 들어보라고.”
“그래. 알았어.”
“난 네가 뭘 원할지, 네가 다음에 누구와 동맹을 맺을지, 네가 그 동맹을 무슨 말로 설득하려고 할지 고민했어. 왜 영주들이 제이릴리스 대신 네 편을 들었는지 고민했고, 왜 신민들이 너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울지 고민했다고.”
유스티아누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고민씩이나 해야 한다는 게 너희 쌍둥이가 글러 먹었다는 뜻이야.”
발렌시아누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네 장점을 파악하려고 애쓴 끝에, 몇 개는 어설프게나마 체화하는 데 성공했어. 대귀족들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제이릴리스 폐하는 남방대륙에도 운석을 떨어트리지 않으셨으며, 교회와 황실과 상아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
“하지만 넌 왜 4대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우리를 따르는지는 고민하지 않았어. 그래서 난 네 걸 빼앗아 갈 수 있었고, 넌 우리 걸 빼앗을 수 없었어.”
* * *
유스티아누스는 발렌시아누스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황족들을 처형했잖아. 내 형제자매들, 네 형제자매들. 전부 다.”
“그렇지.”
“대귀족들에게도 가혹하게 굴었어. 황제가 봉신들을 배신했잖아! 말 잘 듣는 봉신이 말 안 듣는 봉신을 잡아먹게 해줬어. 여러 가문이 반기를 들었다고!”
“맞아. 하지만 나라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지. 그리고 그거면 충분해. 우리는 절대적인 신의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교회의 주교가 아니야. 이 세상 하나뿐인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들의 원로도 아니지. 확인하기 전까지 무슨 선택이 옳았는지를 모르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세속의 군주니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발렌시아누스의 표정은 승리감에 찼고, 유스티아누스의 표정은 일그러져 갔다.
“너희는 잘못된 일을 했어. 넌 약자들을 불태워 죽였고, 친족들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제국의 대귀족을 척살했고-.”
“그게 잘못된 일인지 잘못되지 않은 일인지 결정하는 게 우리 일이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말 잘했어. 넌 나를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있다며? 내가 왜 이러는지, 왜 네 쌍둥이 황제가 죽어야만 하는지 생각해본 적 없어? 그녀는…… 네 아버지를 죽인 자라고.”
“선황께서는 그분의 손을 빌려 자결하셨지. 예정된 일이었어.”
“!”
유스티아누스의 얼굴이 굳고, 발렌시아누스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뭐, 널 이해? 내가 미친 척 산다고 해서 진짜로 미친 줄 아나? 내가 이해하려고 했던 건 네 전략이지, 네가 아니야. 우리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권력자고, 사람의 마음과 신념은 그 현실에 따라서 너무너무 빠르게 변해. 아침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저녁에는 죽고 싶고……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건 대국적인 결정을 내릴 때 믿을 게 못 돼.”
“예외도 있어. 세상에는-.”
“예외쯤이야.”
“!”
유스티아누스가 헛웃음을 흘렸고, 발렌시아누스는 고개를 들고 가슴을 폈다.
“우리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통인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논리와 칼과 마법으로 싸우지. 그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놀고먹으니까. 지배자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을 보아야 해. 이면이 있다는 걸 잊지만 않는다면.”
“넌 악마 같은 새끼야.”
“그래. 우리는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들을 고용했어. 그들은 시체에 남은 기억을 읽어 미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유가족의 울분을 풀어 주었지. 전장의 시신들도 좀비로 일으켜 세웠어. 덕분에 우리는 그 시신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진짜 언데드로 변하기 전에 한데 모아서 화장할 수 있었지. 시체 군마도 만들었어. 흉년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에 밤낮으로 달려 곡식을 전해줄 수 있도록.”
망나니라 불리던 대공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했다.
“우리는 선이나 악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할 뿐이야. 너와 달리. 그래서 너는 지금 쥐뿔도 없는 채로 이 볕 안 드는 지하에서 벌벌 떨고 있는 거고, 나는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놀고, 추울 때 따듯한 곳에서 노는 거야.”
“닥쳐! 학살자.”
유스티아누스가 보라색 눈을 번뜩이며 발을 굴렀다.
쾅!
검보라색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들의 주변 풍경이 일변했다.
사아아아.
어느새 그들은 동굴 안이 아니라, 끝없는 우주 속에 서 있었다.
저 멀리 아득한 별들이 소용돌이쳤고, 옛것들의 정신 파동이 작게작게 들려왔으며, 침식당해 눈동자 색이 보라색으로 변한 이종족 전사들이 달려 나왔다.
-!
발렌시아누스는 그 모습을 보며 진심 어린 조소를 지었다.
“그래. 결국 넌 이번에도 우리에게 졌어.”
둘은 체감상 수년 전, 솔레타라온의 수도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경계를 열어 옛것들을 불렀다고? 너는 민중의 영웅이 아니었나?’
‘그래. 그런데 무슨 수를 써도 못 이긴다는 걸 안 다음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더라고.’
못 이긴다는 걸 안 다음에는.
“이-.”
유스티아누스가 분노를 터뜨리며 검을 뽑아 들었고, 발렌시아누스가 손에 업마의 비늘을 둘렀다.
“망나니!”
“반역자!”
수십 년간 평행선을 달려 온 이복형제들이 마지막 충돌을 시작했다.
한쪽은 반드시 부러지게 될 충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