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yrant’s Bastard Brother RAW novel - Chapter (50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500화(496/501)
외전 1. 피의 즉위식 (4)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치는 소리, 마법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다.
-!
미늘 갑옷을 입은 아세노르타의 백린 기사가 계승서열 35위였던 한 1 황자 파 황족 사내의 배에 검을 꽂아 넣었다.
–!
시카리우스에서 온 암살자가 계승서열 12위였던 한 황태자파 황족 여인의 목을 단숨에 쳐냈다.
—!
그레모리우스의 황금기사단이 한 무리가 되어 1 황자를 향해 돌진했고, 프로이하이트의 파괴 술사들이 힘의 창과 공허의 손아귀를 휘두르며 정면에서 충돌했다.
“어, 어?”
발렌시아누스는 비현실적인 기분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았다.
끊어질 듯한 이성과 무너질 듯한 감성으로 한 가지 알아차린 게 있다면, 이건 절대 모의전이 아니었다.
“1 황자 파벌의 황족 놈들을 다 죽여라! 황태자인 날 거역한 역당들이다!”
“황태자 파벌 황족들은 들어라! 우리 다음에는 너희 차례일 것이다! 나를 따르라!”
황태자와 1황자가 파벌 황족들과 대귀족 가문에서 보내온 기사들에 둘러싸인 채로 소리 높여 서로를 비난했다.
계승서열 두 자릿수대의 황족들이 픽픽 죽어 나갔다.
-!
황태자 파벌 소속, 8위의 황자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사방에 주문을 날려댔고, 1 황자 파벌 소속, 17위의 황녀가 불의 창을 쏴 그를 떨어트렸으며, 황태자 파벌 소속, 24위의 황자가 또 검을 들고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따위 실력으로 황위를 노렸느냐!”
지금껏 각종 마수와 이물을 토벌하며 명성과 경험을 쌓아온 황족들은 솔레타라스다운 용언과 검술, 마법을 뽐내며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상대 파벌 황족들을 도륙했다.
황태자의 최측근에 해당하던 아세노르타의 카리네르와 그레모리우스의 그레이엄, 1 황자의 최측근에 해당하던 프로이하이트의 델레로아와 시카리우스의 네브헤린이 그러했다.
“형님! 안녕히 가십시오!”
“너, 너!”
반대로 지금껏 이름 없던 무명의 황족이 계승서열 최상위권의 황족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황태자 파벌, 계승서열 135위의 황자가 검을 뽑아 1 황자 파벌, 소속 계승서열 23위 황녀의 목을 베었다.
1 황자 파벌, 계승서열 99위의 황녀가 저주 주문을 3연속 발사해 황태자 파벌, 계승서열 21위 황자를 터뜨려 죽였다. -!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던, 계승서열 200위 이하의 어리거나 약한 황족들은 사방으로 도망치다가 마법과 저주에 맞아 쓰러졌다.
동족상잔의 대살육이 일어나고, 연무장이 피와 마나 블레이드와 색색의 마법과 용언의 황금빛 고리로 물드는 가운데, 1 황자와 황태자는 황궁 본궁을 향해서 미친 듯 달려갔다.
‘내가 먼저!’
‘형님보다는 빨리!’
빨리 양위 선언을 받아야 했다.
1 황자의 최측근이었던 제이릴리스도 1 황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발렌시아누스 역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줘 그들을 따라갔다.
“어딜 가는 거야!”
“놔!”
한 황족이 그를 붙들었지만, 그는 그 손을 뿌리치고 달렸다.
* * *
1 황자는 본궁 문 안에 들어서며 투구를 벗었다.
“후아.”
긴 은발이 흘러내리고, 녹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내가 먼저 도착했네. 바로 알현실로 가겠어.”
델레로아와 네브헤린이 각자 방어 주문과 고위 저주를 준비하며 1 황자의 좌우에 섰고, 그 외 계승서열 높은 황족들과 그 황족들의 외가에서 보내온 기사, 마법사들이 그들 주변을 더더욱 두텁게 감쌌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복도를 걸어 중앙 홀까지 가는 동안, 본궁 안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늙지도 약해지지도 않는 선황에 질려 아들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건, 솔레타라스 제국에서 흔한 일이었다.
자식 중 하나가 소드 마스터나 대마법사가 되면, 적당히 양위해주는 게 관례였다.
1 황자나 황태자 중 누구 한쪽이 확실히 강했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쇠약해져 죽어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결정을 거부했고, 둘은 검을 뽑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수도의 궁정 귀족들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
“형니이이이임-!”
1 황자가 본궁 홀에 들어선 순간, 드래곤 피어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황태자다!”
“세카투스다!”
1 황자 주변의 황족들과 기사들이 기겁하는 가운데, 거대한 샹들리에 위에서 푸른 머리에 노란 눈을 가진 인영이 도약하며 1 황자를 덮쳤다.
“지금이다!”
그와 동시에 좌우 복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카리네르와 그레이엄이 각자 기사와 마법사, 황태자 파벌 황족들을 이끌고 나와 마법과 저주를 퍼부었다.
쾅-!
세간의 인식과 달리, 1 황자 루나투스 역시 빼어난 소드 엑스퍼트였다.
그러나 황태자 세카투스는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었다는 소드 엑스퍼트였다.
“으아아아!”
“젠장!”
루나투스가 재빨리 장검을 뽑으며 막아냈지만, 혜성처럼 떨어진 세카투스의 군청색 마나 블레이드는 루나투스의 녹색 마나 블레이드를 단숨에 꺾어버렸고, 루나투스를 옆 벽으로 날려버렸다.
쾅!
루나투스가 벽에 처박혔고, 세카투스는 위풍당당하게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떠십니까? 형님. 이제 절 황태자로 인정할 마음이 드십니까? 이게 제가 가진 힘입니다. 몇 살 먼저 태어난 것만 갖고는, 뛰어넘을 수 없는 힘이란 말입니다!”
루나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답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이제부터 내 힘을 보여 주마. 동생아.”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색색의 마나 블레이드와 마법이 터지고 부딪치는 가운데, 1 황자 파벌 제일 뒤쪽에서 따라오던 소녀가 전면으로 나섰다.
또각. 또각. 또각.
1 황자 파벌의 기사와 마법사, 황족들은 격전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좌우로 갈라지며 그녀가 나설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이제 고작 16살이었지만,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어린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된 만큼, 일반적으로 회춘으로 작용하는 육신의 재구성이 성장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반투명한 백발은 신이 뽑은 백금 실 같았고, 나른하고 무심한 황금빛 눈동자는 용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으며, 모두가 마도구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 전장에서 홀로 검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강자의 여유를 각인시켰다.
“……제이릴리스.”
황태자 세카투스가 제이릴리스를 노려보았다.
열여섯 살의 황녀는 그 몇 배를 살아온 황태자와 파벌원들을 향해 가학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고, 1 황자에게 선물 받은 장검을 뽑았으며, 땅을 접듯 도약했다.
타악!
다음 순간 물색 머리카락이 아름답던 황녀의 머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퍼어어억-!
검을 어떻게 휘두른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
황태자 파벌 황족들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리네르, 동부의 백상아리라 불리는 대귀족 아세노르타 가문을 외가로 둔 황녀였고, 세카투스에 맞먹는 소드 엑스퍼트였다.
그런 그녀가 단 한 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우우우웅!
어느새 제이릴리스의 반투명한 칼날은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몹시도 나른했고, 황태자 세카투스의 얼굴은 이에 대비되듯 창백하게 질렸다.
“전원, 제이릴리스를 죽여라.”
1 황자 루나투스가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보렴. 동생아.”
제이릴리스가 황태자 파벌 황족들을 죄다 도륙하고 황태자의 목을 치기까지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새파란 머리에 황금색 눈을 가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입은 쩍 벌어져 있었고, 얼굴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일그러져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제국을 양분하던 권력자, 황태자 세카투스의 머리였다.
제이릴리스는 그 머리를 향해 시선 하나 주지 않고 1 황자만 바라보았다.
“…….”
“고맙단다. 제이릴리스.”
1 황자는 언제나 그랬듯 사근사근하게 웃어 보였고, 파벌 황족과 기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제 알현실이 저 앞이었다.
그곳에 들어가 황제에게 관을 넘겨받기만 하면 그가 솔레타라스 제국의 황제였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 싸움을 관망하던 네 기사단을 움직일 수 있었고, 확실한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전에, 불안 요소는 모두 없애고 가는 게 현명할 것이다.
“제, 제이릴리스!”
때마침 마지막 말이 판에 올라왔다.
천사 같은 백발로 이마를 가린 수려한 외모의 소년 황족, 제이릴리스의 쌍둥이 오빠 발렌시아누스가 홀에 들어섰다.
그는 사방에 널린 시신을 보고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였으며, 제이릴리스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뚝.
하지만 분명, 이름을 불린 순간 몸이 굳었다.
그때 루나투스는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그는 염화(念話) 마법으로 발렌시아누스의 귀에 속삭였다.
-지금이란다. 나도 더는 버티기 힘들어.
동시에 파벌 둘에게도 자연스럽게 눈짓을 보내 제이릴리스의 양옆에 서게 했다.
둘은 양손에 저주 주문과 파괴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감각은 문자 그대로 초인적이었지만, 용혈 황족들의 격돌로 황궁 일대의 마나가 요동치는 가운데, 막 전투를 마치고, 양옆에서 강력한 주문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 믿고 있을 쌍둥이 오빠의 기습을 알아채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 순간 발렌시아누스는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정말로 광증인 거야?’
사방에 피가 가득했고,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잘려 나간 시체가 굴러다녔다.
양 파벌이 고루 전사했기 때문에, 제이릴리스가 광증으로 피아 식별을 하지 않고 날뛰었으며, 1 황자가 그녀를 간신히 억눌렀다고 보기에도 충분했다.
“…….”
그러나 발렌시아누스 역시 솔레타라스 용혈 황족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완벽히는 몰랐지만, 지금 저 앞에 알현실로 들어가 병든 황제에게 제관을 넘겨받는 황족이 다음 황제가 되며, 1 황자와 황태자가 파벌과 각 파벌 외가 쪽 전력을 동원해 격돌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알현실 바로 앞 복도에 서 있었다.
‘넌 말했지. 황제가 될 거라고.’
발렌시아누스는 황금빛 눈동자를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네가 날 기억하는지도 모르겠어. 날 걱정해서 내 앞에 나서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6년 전 그 이야기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내가 어리고 순진한 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아직도 황제를 꿈꾼다며, 지금 넌 그 자리에 제일 가까이 와 있어.’
품속에서 봉마 단검을 뽑아 들었고, 큰 소리가 나도록 있는 힘껏 바닥에 집어 던졌다.
캉!
요란한 쇳소리가 울리고, 제이릴리스가 뒤를 훽, 돌아보았다.
“!”
발렌시아누스는 6년 만에 제이릴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천사처럼 아름다웠으나, 흘러넘치던 생기와 호기심은 어디 가고, 나른하고 가학적인 광기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내뱉었다.
“루나투스 형님이 널 찌르라고 했어. 그러면 너랑 같이 살게 해주신다고!”
“!”
제이릴리스, 루나투스, 델레로아, 네브헤린이 동시에 경악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외쳤다.
“하지만 넌 꿈이 있잖아! 황제가 되겠다며! 이미 널 한 번 그 지하로 보냈던 내가, 어떻게 두 번이나 네 꿈을 거스르겠어…….”
루나투스가 살기로 녹색 눈을 번뜩이며 저주 마법을 준비했다.
“네가 미쳤구나!”
흑녹색 불꽃이 손끝에서 흔들리는 걸 보며, 발렌시아누스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예감했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들려온 건 제이릴리스의 목소리뿐이었다.
“핏빛 확산.”
파바바바바바바박-!
발렌시아누스는 천천히 눈을 떴고, 믿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
델레로아, 네브헤린, 그 외 계승서열 높은 황족들, 대귀족 가문의 기사, 마법사들까지 모두 안쪽에서부터 무언가 찢고 튀어나온 듯한 상처가 가득한 채 죽어 있었다.
1 황자 루나투스는 즉사를 피했지만, 역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상처를 입은 채로 간신히 숨만 내쉬었다.
“……혈마법.”
발렌시아누스는 홀린 듯 중얼거렸고, 제이릴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피에 젖은 노란 장미꽃처럼, 나른하게 웃고 있었다.
“그대는 짐과 함께 갈 수 있겠구나.”
“제이릴리스?”
“알고 있었느니라. 이자가 짐을 두려워하는 줄.”
제이릴리스는 마법으로 1 황자의 몸을 들어 올렸고, 알현실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20m도 넘는 기둥이 길게 늘어선 알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끝에는 옥좌가 있었고, 옥좌에는 황금 가면을 쓰고 보라색 예복을 입은 황제가 앉아 있었다.
* * *
알현실은 바닥을 색색의 수정과 옥, 마노와 호박, 각종 희귀 금속으로 모자이크했고, 천장에는 별 환한 밤하늘을 묘사해 검푸른 바탕에 하얀 샹들리에를 연달아 걸어 놓았다.
또각. 또각. 또각.
제이릴리스는 그곳을 유유히 가로질렀다.
단조로운 걸음은 흔들림 없었고, 민소매 드레스로 드러낸 어깨와 깊게 파인 등은 신의 모습을 묘사한 듯 완벽했다.
그녀는 1 황자를 옥좌 아래 단상까지 끌고 갔고, 그곳에 집어 던지듯 내려놓았으며, 단상 계단을 올라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황제는 태양과 같은 뿔 장식이 달린 황금 가면과 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제관을 쓰고 있었다.
그는 늙고 약해졌지만, 여전히 당당했고, 떨리는 손으로 황금가면을 벗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 노인은 모든 걸 이룬 자의 표정을 지었다.
“…….”
제이릴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원망하기에는 이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그를 칭송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
그러니 그녀는 반투명한 보검에 두른 오러의 색을 황금색에서 검보라색으로 바꾸었고, 황제는 흐뭇하니 웃어 보였다.
“솔레타라스 제국, 만세다.”
푹!
제이릴리스는 단숨에 황제의 목을 쳤다.
황제의 머리와 몸이 단상 아래로 떨어졌고, 제관은 마치 벼락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발렌시아누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제이릴리스에게 내밀었고, 제이릴리스는 나른하게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그녀는 옥좌에 앉았고, 스스로 피 묻은 제관을 썼다.
너무 소중한 걸 잃었으니, 그것을 잃었다는 게 슬프지도 않은 비참한 몸이 되었으니, 이 정도는 손에 넣어야 했다.
발렌시아누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손발은 미친 듯 떨리는데, 신기하게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고, 심장은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듯 뛰었다.
“황제가, 됐구나.”
그는 홀린 듯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황제가 되면, 내가 널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그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1 황자 루나투스가 제이릴리스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거기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수인을 맺었고, 희미한 녹색광이 피어오르며, 주문이 준비되었다.
“내, 내 자리다. 내 자리야.”
제이릴리스는 붉은 입술을 끌어 올리며 하얀 이가 다 드러나도록 웃어 보였다.
나른하고도 가학적인, 절대자의 웃음이었다.
그녀의 노란 눈이 발렌시아누스와 루나투스를 번갈아 비추었고, 이내 그녀는 그녀가 쥐고 있던 유리거울 검을 발렌시아누스에게 던져 주었다.
“그대여. 그자의 목을 쳐라.”
발렌시아누스는 부들부들 떨며 검을 집어 들었다.
“저쪽이다!”
“이미 누가 제위를 차지했어!”
“화, 황태자 전하!”
알현실 문밖으로 다른 황족들이 미친 듯 달려오는 게 보였다.
“루나투스 형님을, 아니. 선황의 1 황자를 죽이면, 다른 황족들과 대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남의 입을 빌려 말하는 듯한 기분으로 간언했고, 제이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들도 다 죽여야겠구나. 그래야 짐이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예. 폐하.”
발렌시아누스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의 어조는 자연스럽게 황제를 향한 극존칭으로 변해 있었다.
너무나 많은 충격적인 일을 겪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역시 반쯤 미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제이릴리스가, 그녀의 쌍둥이가 부황을 죽였고, 황태자 형님과 1 황자 형님을 죽였다.
그가 읽은 역사서에서 그런 황제는 폭군이라고 불렸다.
제이릴리스가 폭군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폭군이 된다면, 그만은 그녀를 떠나서는 안 되었다.
이미 한번 그녀를 버렸던 그가, 두 번이나 그녀를 저버리는 게 허락될 리가 없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유리거울 검을 한껏 쳐들었고, 루나투스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얼굴에 뜨거운 핏방울이 튀기고, 제이릴리스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알현실 전체에 울렸다.
이게 지금부터 그가 살아갈 방식이었다.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이었다.
* * *
그날 제이릴리스는 피의 즉위식을 치렀으며, 네 기사단을 장악했고, 백금기사단을 동원해 살아남은 황족들을 모두 붉은 달무리 궁에 감금했다.
그중에는 그의 쌍둥이 오빠인 발렌시아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따라오기를 바라는지 아닌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지 아닌지,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째서인지 오늘을 한번 살아본 듯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날.
“그대는 왜 짐의 포도주 저장고에 있었나?”
그녀의 쌍둥이 오빠가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실은 저도 포도주 한 병 빼돌리려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는 자신의 곁에 있겠다고 다짐한 듯했다.
제이릴리스가 그를 곁에 둬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동안, 발렌시아누스는 먼저 그녀에게 다가왔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황립 마도 공방 지하에서 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의 한 조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