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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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과대평가와 과소평가.
“미안하지만 자세한 상황도 듣지 않고 함부로 약속을 할수는….”
“물론입니다! 우하하하! 뭘 하면 되죠?”
“…없는데 벌써 결정을 해버렸군.”
제 멋대로 행동하는 세르게이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한 방 꽂아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수는 없었다.
“보리스! 이런 가녀린 레이디의 부탁은 들어주는게 당연한거야!”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네 말을 거부하겠냐. 네 좋을대로 해라.”
세르게이가 정말로 앞뒤 가리지 않고 여자에게 헥헥 대는 놈이라면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렸을것이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확실히 여자만 보면 정신차리지 못하는 면이 있기는해도 선을 지킬줄 아는 남자였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계산하고 있는듯 이런식으로 막무가내로 끼어든 일은 적어도 손해를 보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제 동료가 몬스터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혼자서 튀어나갔어요! 제발 구해주시면….”
“흠, 보리스. 그 여인을 호위하면서 뒤를 따라와라.”
“자자, 제 뒤에 딱 붙어서 따라오세요.”
보리스가 은색으로 빛나는 장갑을 꺼내 착용하고 세르게이는 팔에 묻은 구울의 체액을 털어낸후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마 말릴틈도 없이 그는 정면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건 기술이나 섬세한 테크닉이 아니었다. 이런 가치도 없는 괴물들에게는 돼지목의 진주목걸이나 마찬가지다. 그저 몸으로 몰아치면 충분하다.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민 세르게이는 그대로 고깃덩어리의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콰직!
“너 정말로 단단하군.”
“흥, 같이 죽을각오까지 했는데 이제보니 그다지 대단한놈도 아니었잖아?”
“웃기지마라 애송아, 상황만 이렇지 않았다면 너 쯤이야 진작에 목을 따버릴수 있었을테니. 크큭.”
“그런 말을 한 사람치고 좋은 꼴 맞이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본적이 없지.”
“…그건 그렇군.”
반쯤 장난스런 태도로 공방을 나누고 있었지만 둘 모두 상대방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법으로 계단을 무너트려서 몬스터들의 유입은 막았지만 그 이전에 이 남자의 실력, 아니 상성이 걸렸다.
넓은 평지나 숲속에서 상대했더라면 공격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좁은 건물 안에서 저 두꺼운 방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무작정 돌격하는데 어떻게 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검기를 생성해서 찔러봐도 남자의 방패에 서린 오러 때문에 튕겨져나갈뿐,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성훈은 속절없이 뒤로 계속해서 밀릴수밖에 없었다.
‘미리내라면 바로 잘라버리고 강무한이라면 방패째로 부셔버렸을테지만 나에게 이런 상황에서 쓸만한 스킬은…아 하나 있었지?’
골렘을 쓰러트릴 때 사용했던 강제속성융합.
그것이라면 충분히 방패 너머에 있는 남자에게 충격을 줄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성훈은 여러개의 마법을 시전하면서 급하게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감히!”
허점을 잡았지만 결코 빠르지는 않게 일정한 속도로, 흥분하지 않고 다가온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숙련되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성훈은 별 상관하지 않고 검을 늘어트리고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화(火), 화(火), 화(火).”
시뻘겋게 백열하기 시작하는 룬블레이드. 조금만 기다리면 안정될것이다.
‘이 녀석을 처리하고 가급적 빨리 자리를 떠야겠군.’
주목 받아서 좋을게 없다. 그렇게 생각한 성훈의 시야에 뭔가 이상한게 잡혔다. 부서진 유리창 너머 언데드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잘못본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 균열의 선두에 있던 인물이 뛰어오르는것을 보고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보스몬스터? 이렇게 갑자기?’
“어딜 신경을 팔고 있는거냐?”
성훈을 쫒는 입장에 있는 남자는 바깥에서 일어난 소동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패를 휘두르면서 성훈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물론 발레를 추듯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동작 앞에서 전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구해 주러…들리면….”
이 시끄러운 전장 속에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성훈은 앞뒤 사정을 전부 파악할수 있었다. 아니, 파악하지 못하는게 바보다.
‘그 짧은 사이에 지원군이 왔다고? 2명인줄 알았는데 설마 다른곳에 있는 동료가 있었던건가?’
게다가 그 지원군이라는 녀석의 실력이 범상치 않아보인다. 방금전에 본 장면은 마치 강무한을 연상시키는듯한 괴력의 총화. 그런 녀석이 미처 잡지 못했던 궁수와 합류해서 자신을 적대한다면?
궁수는 대부분 추적스킬을 가지고 있다. 성훈이 아무리 귀신같이 빠져나간다고한들 바로 방금전에 도망친 장소에서 랭커급의 궁수가 자신의 흔적을 추적하는게 불가능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화(火).”
검의 진동이 멎기 시작하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검에 화속성을 부여한 성훈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속전속결? 불가능하다. 도주? 불가능하다. 싸그리 제압한다?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 하나 있긴 하다.
“후, 젠장. 먹힐라나 모르겠네.”
“죽어어어어! 실드 차지!”
더 이상 도망칠곳도 없이 구석에 몰려있는 성훈을 바라보면서 남자는 전력을 다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건물 밖으로 떨어트려서 추락사를 시켜줄 생각이었다. 불굴의 기세로 돌진해오는 남자를 향해서 성훈은 마치 귀찮은것을 털어내는듯한 태도로 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탄(彈).”
4번의 속성부여가 완료된 화탄!
그 자그마한 구체가 방패와 부딪힌 순간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전사는 벽을 부수며 뒤로 튕겨져나갔다. 망토를 들어서 입가를 가린 성훈은 잔해를 밟고 저 멀리 튕겨져나간 전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이상한 각도로 꺾어진 왼쪽손 대신 오른손으로 방패를 들려던 전사였지만 차마 틈을 주지 않고 이어진 성훈의 사커킥이 턱을 빗겨 스쳐지나가자 그대로 두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버렸다.
이대로 목을 베는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성훈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개의 화탄을 만들어낸다음 이곳저곳을 향해서 흩뿌리기 시작한것이다. 연신 폭음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곧 그 층은 온갖 잔해와 불길로 뒤덮였다. 그 속에서 성훈은 쓰러진 남자를 붙잡고 품에서 꺼낸 포션을 물려줬다.
그리고 내용물이 반 정도 사라졌을때 무너진 계단의 잔해를 부수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쿠우웅!
“흐압!”
근육으로 뒤덮인 그 남자를 처음 봤을때 든 생각은 태산이었다. 힘이라는 존재가 물질적인 형상을 띄고 나타난듯한 모습.
강무한과 비슷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강무한은 확실히 강력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찔러볼 구석이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저 남자는 마치 거대한 철벽을 마주한듯했다.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것만같은 초인.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남자와 그를 부축하고 있는 성훈을 바라본 거한은 양 어깨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의 이 근육을 봐줘. 어떻게 생각해?”
“크, 크고 아름답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답을 해줘야할것만 같았다. 성훈의 대답에 거한은 보기만해도 기분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자들중에서 나쁜 이들은 없는 법이지. 그건 그렇고 지금 이 상황은….”
세르게이는 주변을 둘러본후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놈이 있으면 때려잡으면되고 구할놈이 있으면 구하면 된다. 그러나 이 상황은 뭔가 종잡을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난장판이 되버린 건물과 기절한 전사, 그리고 그 남자를 부축하고 있는 남자.
“혹시 방금전 이곳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려줄수 없나?”
“글쎄요, 저도 뭔가 소란스러운걸 확인하고 뒤늦게 도착한것뿐입니다. 일단 두 명이 싸우고 있길래 전투를 중재하기 위해 끼어들었는데….”
“끼어들었는데?”
“갑자기 전투를 중단하고 도망치더군요. 저 창밖을 뛰어넘어서 사라졌습니다.”
부서진 창가를 가르키는 성훈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 사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진실성을 어필하고 있었다.
소리장도부터 허장성세, 온갖 대화계열 스킬은 성훈의 말과 행동에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아예 적대적인 관계라면 모를까 이미 세르게이는 성훈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젠장, 내가 오는걸 알아차리고 도망친건가? 그보다 그건 뭐지?”
남자의 입에 물린 앰플을 가르키자 성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병을 기울여 나머지 한방울까지 전부 부어버리며 말했다.
“포션입니다.”
“포션?”
“예, 상당히 위중한 상태입니다. 일단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사람 목숨은 살리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도와주십시오.”
“어? 그, 그래야겠지?”
“일단 연기가 없는 곳으로 가게 길을 뚫어주실수 있으십니까?”
자신을 향해서 조금의 경계도 하지 않고 의식을 잃은 남자를 등에 업기 시작한 성훈을 바라보며 세르게이는 새삼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이 도시에 떨어지고나서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전부 하나같이 과도하게 경계심을 세우거나 무작정 공격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식으로 첫 대면에서 사람을 구해야한다고, 상대를 향한 경계심조차 내보이지 않고 신뢰감을 내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뭔가 간지러운 기분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순해빠진…, 아니 이런 착한 녀석은 오랜만이군,’
“그래, 일단 죽게 놔둘수는 없지. 좋아 따라오라고!”
정면에 나서서 길을 뚫기 시작하는 세르게이를 바라보며 성훈은 몰래 인벤토리에서 꺼낸 병을 따고 다시 전사에게 흘려넣기 시작했다.
자신은 거짓말을 한적이 없다. 포션이 맞긴하다. 문제는 맹독성 마비 포션이라 그렇지. 엘더 히드라의 독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레어 최상급의 극독!
가만히 놔두면 반나절가량 가는 독을 병째로 두병이나 원샷시켰으니 아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해독시킬수 없으리라.
‘일이 뜻하지 않게 돌아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