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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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예상치 못한 파티.
‘깜깜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둡다는것이었다. 눈을 감아도 완벽한 어둠이라는것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성훈은 완벽한 어둠속에 있었다. 자신의 몸조차 보이지 않는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도 마치 무중력의 공간속을 유영하는듯이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 자신이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지조차 확인할수 없었다.
‘꿈? 아니면 이건….’
“적응이 빠르군.”
“뭐야. 응?”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어둠속에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의식할틈도 없이 주위의 경관이 바뀌어버렸다.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진 순백색의 공간, 그리고 자신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몸상태는 정상, 입고 있는 옷은 변함없이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맞이했을때 패닉에 빠졌을테지만 성훈은 그렇지 않았다. 굳이 성훈이 아니더라도 더 미션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을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몇번이나 겪어봤을테니 말이다. 강제 미션을 시작하기전 휴식을 취하기위해 도착하는 장소.
“제리?”
“그건 누구지?”
“응?”
자신을 향해 말을 건 사람은 제리가 아니었다. 말을 건 사람은 바로 ‘성훈;, 자기 자신이었다.
“뭐야 이건, 나?”
“겉모습만 빌려온거다. 어떻게 보이지?”
“어떻게 보이냐니, 평범하게 생겼구만 뭐. 눈색깔이 반전된것을 제외하면 특이한점도 없네.”
고대의 마법사나 입었을듯한 투박해보이는 로브와 꼬깔모자를 썼다는 점, 그리고 검은자위가 휜색으로, 흰자위가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다는것외에는 별다른 차이점도 없었다. 한편 성훈이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이자 성훈의 모습을 하고 있던 존재는 살짝 당황했다. 어디인지도 모를 공간에 떨어져 자기와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를 보면서 한다는말이 평범하게 생겼다고? 특이한점이 없다고?
‘이 인간은 뭔가 이상하군.’
그래도 걱정할건 없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더 좋았다. 그만큼 자신이 파고들어갈 구석이 많다는 점이니까 말이다.
“대단히 침착하군.”
“침착? 이게?”
“그렇다. 너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를 보고, 어디인지도 모르는곳에 떨어져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뭐 이런걸 가지고, 도플갱어만 사냥해도 자기 얼굴은 지겹게 볼테고 이런곳도 몇번이나 떨어져왔는데 이제와서 놀라는게 더 이상하지. 그래서 나를 이곳에 끌고 온 이유는 뭐지? 미션 때문인가?’
“미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너는 지금 나에게 먹히느냐 마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있는거란 말이다!”
그 말에 간신히 의식을 잃기전의 일을 떠올릴수 있었다.
“설마 그 책?”
“그렇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를 들어올리다니, 크흐흐흐흐, 용기는 가상하지만 결국 나한테 먹힐수밖에 없는것을.”
“음, 잠깐잠깐, 그러니까 일단 정리를 해보자. 네가 그 겉표지가 이상한 책이라는 말이지?”
“그렇다.”
“그리고 여기는 현실과는 다른, 환각의 일종으로 생각하면 되는건가?”
“환각 따위와는 천지차이. 이곳은 네 녀석의 의식속이자 현실과는 분류되어있는 완벽한 또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지.”
“그럼 뭘 그렇게 질질 끌어?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대충 너는 자아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고 여기서 뭔가를 테스트 한다던지 해서 성공하면 네 주인이 되는거고 실패하면 네가 내 몸을 차지한다. 뭐 이런거 아니야?”
“그, 그렇긴 한데….”
‘뭐야 이 자식?’
이런건 자기가 기세등등하게 설명하고 이곳에 끌려온 녀석은 울며불며 애원하거나 겁 먹는게 정석 아닌가?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그 몸을 차지하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인간들은 보통 2가지의 감정상태를 보였다. 첫 번째는 자신감이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망설임없이 책을 잡는 사람들.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자신을 충분히 다스릴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다. 두 번째는 공포심이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잡은 자들은 갑작스레 영혼이 빼앗긴다는 말을 듣고 공포심에 떤다.
그런데 이 남자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뭐랄까.
‘귀찮음?’
영혼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사태 앞에서 느낀다는게 고작해야 귀찮음? 심지어 미미하나마 약간의 분노마저 어려있었다.
“입 아프게 뻔한 말은 하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그 시험이라는거 바로 치를수 있나?”
“후후후후, 엄청난 자신감이군. 과연 절망을 눈 앞에 두고서도 계속 그렇게 여유로울수 있을까?”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이러는 사이에도 현실에서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겠지? 시간은 금이라고.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그 시험이라는거 해주지 않을래?”
“그래. 계속 그렇게 있어봐라. 네가 과연 잠시후에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궁금하구나.”
그와 동시에 주변이 완벽하게 어둠으로 물들어버렸다. 한편 혼자남은 존재는 잠시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시험이라는것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단순히 고통을 참는것부터 반대로 고통을 주는것, 정신을 파괴하는것, 공포에 빠트리는것.
자신의 사디스트적인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시험의 내용을 고민하던 그는 잔혹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은 가진 힘도 심상치 않고 상당히 똑똑해보이는 녀석이었지. 당연히 평범히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걸로는 쉽게 굴복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당당해보이는 녀석일수록 오히려 내면적인 고통에 쉽게 무너지는 법이지. 크흐흐흐흐.”
가벼운 박수소리와 함께 다시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잠에서 막 일어난듯한 나른함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은 성훈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씨발, 뭐야 이건?”
너무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말았다. 하긴 갑자기 일어난곳이 교실안이라면 누구든지 놀라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입고 있는 옷도 고등학교 시절 지겹게 입었던 자신의 교복이었다.
엄청난 괴리감이 들었다. 뭔가 콕 집어서는 말할수 없지만 주변의 모든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런 어색함?
빡!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뒷통수를 향해 손을 날리는걸 알수 있었지만 일부러 막지 않았다. 그 정도 힘으로는 자기에게 해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하냐 임마?”
“…강창석?”
“얼레? 내 이름은 왜 불러?”
“아니, 그냥. 내 이름이 뭐지?”
“이 자식이 잠이 덜깼나. 유성훈. 자기 이름도 까먹냐?”
고등학교 시절 당시 친한 친구였던 창석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성훈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교실에서 나와 벽에 기댄채 머리를 부여잡은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뭔가가 떠오를듯 말듯한 그런 기분. 생각을 이어가는게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왠지 여기서 생각하는걸 멈추면 안될것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막힌 둑이 터지는것처럼 하나하나 기억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더 미션, 도시, 몬스터, 생존, 직업, 스킬.’
“큭, 환각인건가?”
엘리의 스킬에 수없이 당해서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결코 기억을 되찾을수 없었을것이다. 최고급의 환각 스킬은 지금까지 있었던 기억은 마치 꿈속의 일처럼 희미하게 만들고 자신이 만든 환각속의 일을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 정도가 정말로 심해서 처음 성훈도 몽상 스킬에 당했을때는 뭣도 모르고 훈련병으로써 주변의 상황에 따라 움직였다.
그것도 성훈의 저항력이 평균 사람을 훨씬 상회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키코나 ‘설득’을 마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엘리가 펼치는 환각은 현실과 전혀 다름이 없다고 한다. 희미하게나마 현실의 일을 기억해내고 있던 성훈과 달리 그들은 환각이 유지되는동안 아예 기억 자체가 바꿔져 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성훈이 이것을 환각이라는것을 인식하자마자 눈 앞에 메세지 창이 떠올랐다.
절망의 시험
-등급 : A~E(?)
-셀수도 없을만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책. 처음에는 평범한 책이었지만 수많은 어두운 기운속에 노출된 책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습니다. 이 예상밖의 존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설정한 시험을 통과해야합니다. 굳건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시험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달성조건.
-이 세계의 사람으로 변장한 ‘누군가’를 죽이십시오.
-그 누군가는 당신이 접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누군가는 당신이 잡을수 없을정도로 도망가거나 숨을수 없습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책’에게 영혼을 빼앗깁니다.
-제한 시간 : 24시간.
“흐음.”
“크헤헤헤헤헤! 멍청한 녀석! 네 녀석이 서서히 파멸하는 모습을 지켜봐주마!”
이 시험이라는건 사실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짜여져있는 판이었다. 이 시험을 통과하기위한 조건은 자신이 알고있는 이들 중 한명으로 의태한 ‘누군가’를 죽이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는 책을 잡고 있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믿거나 이해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애초에 지금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는것조차 힘들다. 본래의 기억은 마치 꿈속의 기억처럼 희미해질테니 기억에 확신을 내리기까지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것이다. 게다가 환각이라고는 하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과연 죽일수 있을까?
친구, 연인, 가족, 지인, 그 밖의 소중한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과연 죽이는게 가능할까?
“가능할리가 없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환각인지 사실인지 확신하지조차 못하고 죽어나간다. 그리고 남은 자들 중 대부분은 결국 그들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지 못하고 포기한다. 무기를 휘두르는 자도, 그리고 이렇게 의태하고 있는 자신을 찾아내 죽이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모든 시험에 통과하고나서 자신의 주인이 된 자들.
그러나 그들조차도 결국에는 불행한 최후를 맞을수밖에 없었다. 진짜가 아니더라 하더라도 진짜와 다름없는 현실감을 가진 이 세계에서 가족을, 친구를, 지인들을 죽이고 마침내 가장 소중한 존재까지 스스로 죽여버린 끝인 이들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고 말았고 자신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서 몸을 빼앗을수 있었다.
결국 최후에 승리하는것은 바로 자기다.
“바보 같은 놈! 거기서 질질 짜던지! 소중한 이들을 죽였다는 자괴심에 무너지던지! 어느 쪽이든 선택해봐라! 과연 네 녀석은 어떤 답을 선택할지 기대되는구나!”
“흠.”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허공을 향해서 잽도 날려봤다. 몸 상태는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야, 뭐해? 괜찮냐?”
“…….”
“얘가 갑자기 말도 없고 왜 이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냐?”
성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창석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환각같지 않다.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창석의 모습 그 자체. 더 미션의 세계에서 신명나게 활동했던게 단지 자신의 망상에 불과했다면? 그리고 눈 앞에 떠오른 메세지 창도 단지 헛것을 보는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사람을 죽이고 만다면?
‘나는 살인자가 되겠지.’
환각의 진짜 무서운 점이 이것이다. 비록 환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더라도 그 사실을 확신할수 없게 만든다. 성훈은 잠시 눈을 감고 더 미션에 떨어지기 전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지구에서의, 평범한 사람으로써 살아오던 25년간의 기억. 손에 잡힐듯이 선명한 기억. 그리고 자신이 떠올릴수 있는 기억들을 하나부터 끝까지 떠올린 성훈은 웃으면서 말했다.
“창석아. 일단 사과 먼저 할게.”
“사과? 뭔 사….”
빠각!
그는 말을 끝까지 이어나갈수 없었다. 성훈의 주먹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턱을 스치고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 눈을 까뒤집어버리고 기절하는 창석과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주목되는 시선속에서 성훈은 잽을 날린 오른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면서 중얼거렸다.
“더 미션에서의 몸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반인은 아득히 벗어났군.”
“…뭐, 뭐야?”
“싸운건가?”
“잠깐, 쟤 턱이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는데?”
“이런 상황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거나 말리지 않는다는게 대단한건지 멍청한건지 모르겠군.”
스킬창이나 인벤토리는 사용할수 없다. 그것을 확인한 성훈은 이마를 찌푸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가 책상의 다리를 잡고 그대로 힘을 주어 분질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