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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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용기? 만용?
“하아아아암.”
“오래도 자는구만. 자네가 깨기를 기다리다가 잠을 다 설쳤네. 자 어서 시작하지!”
“시작하기전에 밥 먼저 먹겠습니다. 먹어야 힘을 쓸거 아닙니까?”
“허, 이 사람 참.”
“아침부터 고기는 좀 부담이 될거 같은데 특별히 드시고 싶은거라도 있으십니까?”
“난 간단한 샌드위치면 좋겠군.”
“요리도 해주는데 좀 살살 상대해주실 생각은 없습니까?”
“음식이 내 입맛에 맞다면야 손속에 사정을 둬주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성훈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작 시험을 받는 당사자인 성훈은 느긋한데 노인이 조급해져있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이긴다는건지 궁금해서 참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도 드시죠?”
“물론….”
당연하다고 대답하려던 노인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음식을 얻어먹기는했어도 차 같은 액체 종류를 직접적으로 권하거나 받은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차를 권한다?
‘어쩌면 이 차에 독을 넣었을수도.’
무작정 달려들어서 힘으로 입을 벌리고 독을 먹이거나 암습을 가하는건 지혜가 아니다. 하지만 먹는 음식에 독을 타는것정도는 충분히 지혜로운 일로 간주하는것도 가능하다.
“아니. 차는 됐네. 그냥 샌드위치만 받지.”
“여기 있습니다.”
“자네거랑 바꿔서.”
“거참 꼼꼼도 하셔라.”
성훈이 내민 샌드위치를 들고 먹기 시작한 노인은 조금도 시간을 낭비할수없다는듯 의자에 가서 바로 앉아버렸다. 얼마나 몸이 달아있는지 알수 있는 행동이었다. 더 시간을 끌 생각은 없는 성훈도 만들어놓은 샌드위치를 전부 먹어치우고 의자에 앉았다.
“자네가 원하던대로 바둑으로 승부를 보지. 과연 어떤식으로 나를 이긴다고 생각한건지 정말 궁금해서 참을수가 없어.”
그것도 24시간이라는 시간내에 반드시 이긴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그래서 노인은 잠을 설치며 성훈이 사용할법한 온갖 수에 대해서 고려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마쳐놓았다. 얼핏 보면 평소와 다를게 없어보이지만 바둑판은 강력한 속박마법으로 고정되어있다. 돌을 몰래 옮기는것까지 방지하기 위해서 한번 놓여진 바둑돌 역시 강력한 고정마법이 걸리는것은 물론이오 환각 및 정신 마법에 대한 방어 등도 충실히 해놓았다.
‘이걸로 꼼수는 부릴수 없다. 죽든 살든 바둑판 위에서만 승부를 내야한다. 자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올건가?’
“제가 흑을 잡아도 상관없겠죠?”
“그러게나. 자네는 도전자니까 그 정도야 양보해줘야지.”
양손을 가볍게 풀어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성훈은 돌을 들어 바둑판위에 내려놓았다. 노인은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10초까지 아슬아슬하게 생각하며 바둑돌을 놓았고 성훈 역시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10초간 생각하며 돌을 놓았다.
‘이 노인네. 별별 공작을 다해놨군.’
손을 뗀 돌은 무슨 접착제로 발라놓은것마냥 미동조차 없었고 마법은 사용하는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마 이 방 전체에 강력한 디스펠 마법을 발동시킨게 틀림없었다. 철저하게 바둑으로만 승부를 내겠다는 생각. 이십수정도 돌이 오고갔을때 성훈은 바깥에는 보이지 않고 속으로만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군.’
노인이 성훈을 파악하고 있던것처럼 성훈 역시 노인을 파악하고 있었다. 성훈이 알게 된거라고는 노인은 비겁한 수단은 사용하지 않는 공명정대한 성격이면서 항상 자신과 아슬아슬한 승부를 내려고 한다. 어느정도 운이 개입되는 카드 게임같은건 불가능하지만 다른 승부에서는 항상 근소한 차이로만 승부를 냈다. 단순히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좀 더 분발하라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바로 그 점에 파고들 빈틈이 있었다.
바둑에서 항상 반집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다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일단 바둑은 초중반부터 이미 승패가 거의 가려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초보가 아닌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정도 판세가 진행된 바둑에서 역전승을 거둔다는건 바둑의 신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성훈은 그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판에 최대한 집중하면 그 정도는 가능하다.
“여전히 저에게 맞춰주시고 계시는군요.”
“음?”
“항상 근소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내시는걸보면 진심을 다하시면 끝까지 가지 않고 제가 기권패를 할수 있도록 만드실수도 있으실텐데요.”
“허허허. 그래서는 승부가 되질 않지.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내야 더 머리를 사용할수 있지 않겠는가?”
“뭐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띡!
“그렇게 여유부리실때가 아닙니다.”
“응?”
노인은 성훈이 장기전으로 끌고 들어가 승부를 볼거라고 예상했다. 성훈이 노인보다 우월한 체력과 민첩 수치를 최대한도로 활용할수 있는 방법.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성훈이 노리고 있는것은 바로 단기전이었다.
24시간내에 반드시 이기겠다고 말한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다. 단순히 바둑으로만 승부를 하곘다고 말하면 노인은 한판한판 방심하지 않고 집중을 하겠지만 24시간이라는 단어와 10초라는 제한에 정신이 팔려 거기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것이다.
‘단판으로 끝내지.’
바둑의 형세가 결정되는것은 초반, 그리고 승패를 결정짓는것은 중반이다. 후반은 그저 이미 정해진 결과를 확인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반을 넘어서 중반에 진입할무렵까지 둘의 세력은 엇비슷하거나 아직은 성훈이 부분적으로 유리한 곳이 있었다.
‘이제 반격을 해볼까?’
슬슬 추격에 나서야한다고 생각하며 바둑돌을 들어올린 순간 노인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으으음.”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흐려오기 시작한다. 체내의 마력의 흐름도 심상치 않다. 저주나 특별한 마법을 이용한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건….
‘독? 크음. 일단은 돌을….’
시간 초과에 걸릴뻔한 노인은 급하게 돌을 들어서 바둑판위에 올려놓았다. 노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것을 확인한 성훈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바둑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10초를 최대한 활용하며 돌을 놓던 성훈이 노인의 돌이 놓여지기 무섭게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정도로 다음 돌을 착수해버린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속이라도 안좋으십니까?”
“그렇것같군. 으음.”
“이런. 그러니까 낯선 상대가 주는 음식은 함부로 먹으면 안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다지 낯선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지.”
‘효과가 있군.’
한눈에 보더라도 지금까지의 냉철하고 정확한 모습과는 다르게 다소 정확하지 못한 착수를 하고 있었다. 하긴 효과가 없으면 말이 안된다. 돈 주고도 구할수 없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엘더 히드라의 독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상태이상의 독을 먹었으니 멀쩡한게 더 이상한 일일것이다.
“몇 가지 묻고 싶은게 있네만 대답해줄수 있는가?”
“얼마든지요.”
딱!
성훈에게는 1초면 생각할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사고분할뿐만 아니라 사고가속을 이용하면 됐으니 말이다. 그에 반해 노인은 그렇지 않다. 시간을 10초로 정해버림과 동시에 독에 중독되어 제정신을 유지할수 없는 상황에서는 신중한 계산이 불가능하다.
“내가 먹은 샌드위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네만 자네의 것과 내 것을 바꾸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내가 중독된거지?”
“별거 아닙니다. 두개 모두 독을 탔죠.”
“…두개 모두? 자기도 독에 중독될걸 각옥했다는 말인가?”
“아뇨. 저는 해독제를 먹었습니다. 제가 차를 권하지 않았습니까?”
노인의 이마가 살짝 일그러졌다.
“차에 해독제를 탔다고?”
“예. 평소에 권하지도 않던 차를 갑자기 권한다면, 그것도 오늘 반드시 이기겠다는 호언장담을 한 상태에서 들이민다면 백퍼센트 의심할거라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내가 샌드위치도 먹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나?”
“그 정도는 먹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요 몇일간 노인장의 성격이 그 정도로 모질지 않다는건 확인했거든요. 권하는 차를 거절하면서 음식까지 거절하지는 않을거라고 확신했죠. 물론 의심을 하셔서 서로의 것을 바꾸기는 했지만 두개 모두 독을 탔으니 결과적으로는 제 생각대로 돌아간셈이죠.”
성훈은 노인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머리를 써서 승부를 걸었다. 노인이 계산 및 분석적인 방법으로 지혜를 시험했다면 성훈은 심리적인 방법으로 승부를 건것이다. 비장의 절독이니 만큼 성훈도 그 효과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미리 해독제를 복용하고 높은 체력수치가 뒷받침을 해주는만큼 이 바둑 한판이 끝날때까지라면 발작을 뒤로 미룰수 있다.
딱! 딱! 딱!
10초간 장고하며 두는 노인과 1초만에 바둑돌을 내려놓는 성훈.
제대로 생각도 하지 않고 두는것 같았지만 이건 공격이었다. 노인이 독에서 회복될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공격, 생각할 틈도 없이 몰아치게 하려는 공격인 것이다. 확실히 점점 판이 진행되어 갈수록 판 위에서의 상황은 성훈에게 우세하게 기울고 있었다.
‘허허허허. 이거 큰일이군.’
이제서야 성훈이 벌인 일련의 조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10초로 제한을 둔것은 자신을 몰아붙이기위한 의미도 있었지만 반대로 독이 발작하는 정확한 타이밍을 정확하게 재기 위한 의미도 있었다. 시간제한이 없어서 독이 초반이나 후반에 발작하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초반에서는 자신의 양보로 동수를 이루었고 중반에서는 독 때문에 제대로 생각을 할수가 없어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독을 간신히 해독했을때는 이미 성훈에게 완벽하게 승기가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설사 바둑의 신이 와도 승패를 뒤집는것은 불가능하다. 성훈이 실수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바둑판을 응시하는것을 볼때 그럴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돌을 만지작 거리던 노인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돌을 놓았다.
“졌네. 이미 이 정도로 기울어진 판을 뒤집는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지.”
“뭐 생각대로군요.”
“크흠.”
독을 사용했음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훈의 뻔뻔한 얼굴을 바라본 노인은 결국 참을수 없었던지 한 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자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 비겁이요? 왜요?”
진심으로 이해할수 없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린 성훈이었다.
“제가 힘으로 독을 강제로 먹였습니까? 바둑판 위에서 비겁한 수라도 부렸습니까? 저는 머리를 써서 성격을 파악하고 제 나름대로 책략을 짜내서 승부를 건겁니다. 항상 승부를 아슬아슬하게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길수 있는 기회를 양보하지 않았습니까? 그 점을 찔릴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당당한 발언에 노인은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성훈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충분히 생각했다면 충분히 이런 사태를 막을수 있었다. 오늘은 음식을 받아먹지 않았을수도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경계심을 높였다면 같이 식사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이것도 지혜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다. 성공한 계책.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뭔가 석역찮은 느낌은 지을수 없었다.
“이런식으로 통과하라고 만들어놓은데가 아닌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것이 이 관문의 목적이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게 만들고 그 사람의 지혜를 키워준다. 통찰력, 분석력, 직관력, 계산력 그런것들을 단련하는 관문을 이런식으로 통과할줄이야.
“어쨌든 제가 이기지 않았습니까? 전 잘못한거 없습니다. 룰을 확실히 준수했고 지혜를 짜내서 훌륭하게 승리했죠.”
“지혜라고 하기보다는 꼼수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것 같군.”
“꼼수는 책략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내가 생각하는 책략이란건 신묘하거나 획기적인 면이 강조되어야한다고 생각하네.”
잠시 한숨을 내쉰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굉장히 째째하고 야비하고 비겁하고 저열한 수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머리를 쓴것은 맞지. 설마 심리전으로 나올줄이야, 합…격일세.”
“죄송하지만 한시가 바빠서 바로 나가봐야할것 같군요. 나가기전에 조언해줄것 없습니까?”
“없네. 당장 나가.”
딱!
노인이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성훈은 맨 처음에 떨어졌던 공동안에 서있었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지혜의 길은 두꺼운 석벽으로 막혀있었다는 것이다. 머리를 긁적인 성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승부를 벌이기전에 미리 정보를 얻어둘걸 그랬다.
‘어쨌든 이걸로 남은건 5개. 그럼 이제는 어디로 가야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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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참, 바둑판을 들고 뛴다니요, 성훈은 그렇게 야만스럽지 않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