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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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다.
눈을 감고 전신의 힘을 빼기 시작한다.
현재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지금까지 상대한 것들 중에서 비길데가 없이 강한 적이었다. 단순히 인간뿐만이 아니라 미션에서 만난 몬스터들, 그리고 각종 NPC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는다.
‘저 놈에게는 내가 가진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기대할수 있는건 단 하나.’
때로는 힘을 주는것보다 힘을 빼는게 더 효율적일때가 있다.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면 필연적으로 근육은 긴장하게되고 그에 따라 반응도 늦어질뿐더러 제대로 된 힘도 실을수 없다. 상황에 따라 힘을 빼거나 주는건 일류 전사들이면 본능적으로 행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고 있는것은 그런것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것이었다. 전신의 힘을 단 한점도 남기지 않고 뺀다. 긴장을 푼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 잊어버린다. 그 결과 완성된것은 바람만 불어도 금방이라도 넘어질것만같은 허술한 자세.
그 모습을 앞에서 바라보던 금발의 남자는 한손에 들고 있던 담배재를 털어내면서 비웃음을 지었다.
“뭐냐 그건? 얼마나 싸웠다고 벌써 힘이 빠진거냐?”
“…….”
“야. 지금 내 말 씹냐?”
“…….”
“하, 이 새끼. 생각보다 대담하네? 아주 대단한데? 그 용기를 봐서라도 이 싸움이 끝나고 반드시 네 놈은 특별히 내 애완동물 리스트에 넣어주지. 원래 남자 놈을 키우는건 내 취미가 아니지만 넌 특별히 나를 귀찮게 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될것 같아서 말이야.”
두 사람의 지위와 실력을 생각해보자면 어울리지 않을듯한 저열한 말이었다. 하지만 저런 저급한 말투와 행동에 넘어가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한명, 한명씩 죽어나간 결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것은 결국 자신 한명뿐.
한편 상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잭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대한 투핸드소드를 어깨위로 걸쳤다. 자신의 근력이라면 이 정도 대검이라도 이쑤시개마냥 가볍게 휘두를수있고 속도로도 적을 압도할수 있다. 그러나 왠지 모를 불길함이 정면으로 달려드는것을 막고 있었다.
‘아, 이래서 무술이니 뭐니 쓰는 녀석들은 귀찮단 말이야.’
단순히 스펙만으로만 따지자면 상대도 안되는 녀석들이 이상한 기예를 익혀서 어떻게든 발목을 잡는다. 잠깐 고민하던 잭은 곧 뭔가를 깨닫고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야, 내 말 들리냐?”
“…….”
“무시할거면 계속 무시해. 난 지금부터 네 정면으로 치고들어갈테니까.”
“…….”
남자는 잭의 말을 무시하는게 아니었다. 소리는 들었으되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압도적인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일부러 스스로의 감각을 제한했다. 쓸데없는데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반경 다섯걸음 이내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어지간한 전사는 흉내도 낼수없는 기예였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이 안으로 설레설레 들어온다면 자신과 동격의 상대라도 필사, 보다 강자라도 우위를 점할수있다.
“대충 시간을 끌면서 다른 방법으로 공략해도 상관없을것 같지만….”
콰아아앙!
포탄이 터지는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잔상을 남기며 잭이 정면을 향해서 쏘아져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마력으로 신체능력을 강화시킨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효과도 확실하다. 그리고 온갖 도발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남자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
‘온다!’
검이 떨리기 시작한다. 적의 병기는 거대한 투핸드소드. 그것을 강력한 신체능력으로 가볍게 다루고는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병장기의 장단점까지는 극복할수 없다. 그것은 바로 리치. 자신이 들고 있는 롱소드와 다르게 저 투핸드소드는 일정 범위안으로 파고들면 순간적으로 사용할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선 남자를 본 순간 잭은 한쪽 입꼬리를 들며 웃었다.
“퉷!”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포물선을 그리며 남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른 본인조차 의식하거나 멈출틈도없이 검은 이미 담배꽁초를 반토막을 내버렸다. 검끝에서 전해져오는 느낌이 이상하다는것을 알아차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팔을 틀어 옆으로 휘두른검을 다시 안으로 휘두른다. 첫 일격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죽이기에는 충분한 위력이다.
‘얕은 수작을 쓰기는!’
고작해야 하는게 담배꽁초를 뱉는게 전부인 저런 뒷골목의 시정잡배같은 놈에게 자신의 검이 꺾일리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느껴지는 상대방의 투핸드 소드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앙!
‘됐다! 아니, 잠깐 뭔가….’
이대로 힘을 흘리며 안으로 파고들어가 가슴을 베어버리면 된다. 그렇게되면 이길수있다고 생각하던 남자는 검에서 전해져오는 이상한 느낌에 이마를 찡그렸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그의 의식은 어둠에 잠길수밖에 없었다.
스윽.
남자의 안면에 깔끔하게 명중시킨 주먹을 빼내자 코뼈부터 시작해 본래 모습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안면이 으스러진 얼굴이 보였다.
“멍청한 놈. 싸우다가 눈을 감는 병신새끼가 어디있냐.”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상대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눈을 감았다는것 정도는 쉽게 알수 있었다. 이게 평범한 전사끼리의 싸움이었으면 그런 방법이 어느정도 도움이 됐을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잭 애프론은 평범한 전사가 아니다.
처음의 담배는 페이크다. 일부러 저열한 수단을 사용해서 이쪽을 얕잡아보도록 말이다. 두번째로 투핸드소드 역시 페이크였다. 근처까지 접근한 시점에서 검을 던져버린다. 당연히 이것이 진짜라고 믿게된다. 눈을 뜨고 있었다면 모르되 감고 있는 이상 순간적으로 안심할수밖에 없다.
그러면 남는것은 이제 무방비 상태의 적이다. 적당하게 타이밍을 맞춰서 급소에 한방 넣어주기만 하면 싸움은 끝난것이다. 잭이 거대한 투핸드소드를 사용하고 다닌다고해서 검사인것은 아니다. 전사, 아니 굳이 분류한다면 아마 투사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어떤 무기는 가리지 않고 사용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여인 레이첼은 미끄러지는듯한 걸음으로 다가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할줄 아는거라고는 흐느적대는것밖에 없으면서 쓸데없이 귀찮게 하는 녀석이었어.”
“죽이실겁니까?”
“그럴리가? 데리고 가서 ‘교육’시켜. 안 그래도 지난번 강제미션 때문에 애완동물 대부분이 죽어버렸으니까 이런 놈이나마 보충을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좀 떙기는데, 어때?”
잭이 다가와 레이첼의 몸을 만져대기 시작했다. 애무나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하는 자극이라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일부러 치욕감을 느끼게 만드는것이 목적인 손놀림. 그러나 그런 우악스러운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 표정을 바라보던 잭은 몸을 만지다말고 갑자기 손바닥을 들어서 그녀의 뺨을 후려쳐버렸다.
짜악!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쳇. 흥이 식었다. 꺼져!”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치욕적인 꼴을 당했음에도 레이첼은 아무런 감정도 표현해내지 않고 그저 볼을 한번 문지르고는 쓰러져있는 남자를 들고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잭은 머리를 벅벅 문지르면서 담배를 물었다.
“젠장. 처음에는 나름대로 봐줄만했는데 요새는 아주 그냥 인형이 되버렸군.”
맨 처음으로 붙었던 도시에서 유명했던 탑랭커가 바로 레이첼이었다. 처음 잡아서 능욕하거나 개인적으로 부릴때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반항하는게 참 마음에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의 무언가가 꺾여버린건지 영 재미없는 여자로 변해버린듯 싶었다.
“그때 아이들을 학살하라고 한게 문제였나? 그것도 아니면 전 동료중에서 죽일 녀석을 직접 선택하라고한건? 그것도 아니면 일부러 반역직전까지 모른척해주다가 마지막에 뒤엎어버리고 공개적으로 능욕해버린 일 때문인가? 으으으음.”
자신의 최측근이라고 할수 있는 레이첼이 지금처럼 무뚝뚝한 목석으로 변해버린 이유를 한참이나 고민했지만 결국 답을 찾아내지 못한 잭은 결국 그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바로 얼마전 자신을 재밌게 만들어줄 새로운 장난감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강무한…이라고 했던가? 동양 이름은 기억하기가 어렵단 말이야.”
사람의 이름 따위는 굳이 힘들여 기억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자신에게 죽거나 지배당할 녀석들인데 굳이 기억해서 어디에 써먹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이 기억하고 있는 두 명의 이름이 있다.
첫 번쨰는 유령. 유령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죽음이라는것을 안겨준 잊을수 없는 녀석이었다. 여러가지로 촐랑촐랑거리면서 신경을 건드리는 마치 파리와 같은 귀찮은 녀석,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잡아 죽일 녀석.
두번째는 강무한이었다. 강제미션 진행 도중만난 동양인. 놀랍게도 그 녀석은 힘으로 자신과 대등하게 맞붙었다. 아니, 대등하다는말은 틀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힘으로는 자신이 밀리는 부분이 있었다.
‘체력이 약해서 제 풀에 지쳐서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좀 더 재밌게 놀수 있었을텐데 말이야.’
그래도 강무한과의 대결은 오랜만에 전력을 내서 싸울수 있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할수 있었다. 한번 쌓인것을 배출해냈기 때문에 최근 자신이 이렇게 얌전하게 있는것 아닌가? 그렇게 앉아있던 자리에서 계속해서 담배 꽁초를 만들어내던 잭은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검을 잡아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이제 곧….”
남아있는 도시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한번, 또는 두번안에 반드시 그 녀석들과 다시 만날수 있을것이다. 그 때를 위해서 시간을 낭비할수는 없었다. 놈들을 이기기위해서는 귀찮지만 어느정도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조만간 보자고.’
“크흠.”
넌지시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내심을 표현해낸 김이현은 앞에 놓여있는 차를 마시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전혀 특이한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평범한 접객실이었지만 연합의 본거지안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거 지은 죄가 있으니 조금은 꺼림직할수밖에 없구만.’
천마총 미션을 클리어한것은 좋았다. 그 와중 서른아홉명이나 되는 부하들이 모두 죽어나가기는 했지만 어차피 금방 대체할수 있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것은 바로 천마총 안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주변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는 했지만 설마 그 상황에서 강무한 일당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것은 너무나 무리수라고 할수 있었다.
‘물론 그쪽이 먼저 공격했으니 반격은 당연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너무 오랫동안 갇혀있고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려있었기 때문에 성급하게 결정을 내려버린감이 있었어. 먼저 공격한것은 저쪽의 사람이니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못할테지만….’
신뢰가 상당히 내려간것만은 틀림없다. 여차한 상황에서는 자신만 살기위해 태연하게 등을 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뻔하게 드러내줬으니 말이다.
“사람을 불러놓고 좀 늦었군. 미안.”
“아닐세. 강무한군 같은 직위에 있으면 여러모로 바쁘기 마련이지. 허허허. 그래서 이렇게 따로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전히 연합이라는 거대 조직의 수장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가벼운 말투에 김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넌지시 내심을 떠보았다. 아마 천마총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따질것이다. 조금 비굴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굽혀서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강무한이 내뱉은 말은 김이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천마총 안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잠깐 보자고 했어.”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네. 너무….”
“이봐 사이비. 너는 유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뭐?”
뜬금없이 유령에 대해서 묻자 잠시 당황했지만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고 마음을 다스리며 대답했다.
“글쎄. 좋은 친구지. 실력도 출중하고 인맥도 화려하고, 여러가지 상황에서 아주 다각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네만.”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다네.”
강무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김이현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없이 힘만으로 모든것을 밀어붙인다면 조롱했지만 어째 지금은 그 단순한 노려보기에 김이현은 미미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김이현 당신을 믿지 않아. 굳이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이야 하하호호 웃으면서 손을 잡고 있지만 언제인지 모를 기회가 오면 망설임없이 내 뒤통수를 치겠지. 천마총에서 그랬던것처럼 말이야.”
“하, 하하하하.”
“그래도 괜찮아. 교활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니. 그 때의 일은 그 때가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게 있어.”
“더 중요한것?”
“바로 유령이다. 녀석은 종잡을수 없는 녀석이야. 너처럼 단순히 교활한 녀석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좀 더 자세하게 파고들어가보면 더 복잡한 녀석이라는걸 알수 있어. 물론 어디까지나 내 느낌에 불과하지만.”
강무한도 유령을 아군이라고 생각한다. 김이현도 유령을 아군이라고 생각한다.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유령을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강자와 약자를 모두 대표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명성도 높은게 바로 유령이었다. 그리고 강무한은 바로 이 사실에 주목했다.
‘모두가 유령을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일까? 그게 아니면 운이 좋은걸까? 분명히 뭔가 인위적인 수단이 가미되어있는건 분명하다.’
“동맹을 맺지.”
“어차피 지금도 연합과 구원 길드는 더할 나위없는 협력 상태. 여기서 더 무슨 동맹을 맺는단 말인가?”
“우리 개인간의 동맹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똑같이하면 문제될건 없어. 다만 더 이상 이런 관계를 지속해나갈수 없을때, 우리들이 서로 싸워야할때, 그 때 우리들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할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인 강무한은 한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