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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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반쯤 졸고 있던 남자는 황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잠깐 괜찮겠습니까?”
“헤헤, 손님이 워낙에 안 오다보니 저도 모르게 잠깐 졸아버렸군요. 어? 아까….”
“기억하시고 계시는군요. 이 두개의 물건을 사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결국 사시게요?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아까 사시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두 개 합쳐서 55억길드에 사겠습니다.”
“예. 그럼 55억에…예? 55억이요?”
써놓은 가격에서 순식간에 5억길드가 내려가자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성훈을 바라봤다. 물건 가격을 깎는거야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물건의 가격이라는게 정해지지 않다보니 엿장수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상점에서의 매입가나 수요, 그리고 공급과 선호도등을 감안해서 적당한 가격이 정해지는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한번에 5억길드를 깎는건 드문일이다.
“아니, 이게 무슨 싸구려 레어 아이템도 아닌데 한번만 5억 길드를 깎습니까?”
“두개 한꺼번에 사는데 조금만 깎아주시죠. 10%도 안되지 않습니까?”
“10%도 안되는 금액이 무려 5억 길드나 되니 그렇죠….”
‘쯧. 쓸데없이 튕기기는.’
어차피 가격 협상을 할것을 예상하고 이렇게 높은 가격을 불러놨으면서 버티는 모습에 성훈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황에 어울리는 범주내에서의 변화였다.
“뭐 그럼 됐습니다. 수고하십쇼.”
“예? 아, 안 사는 겁니까?”
“사려고 하기는 했습니다만 가격이 너무 비싸니 그냥 다른 아이템을 구해보는게 나을것 같아서 말이죠.”
“에이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원래 이런건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죠. 헤헤.”
“밀고 당겨봤자 시간 낭비밖에 더 합니까? 55억 길드도 굉장히 후하게 쳐주는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여기서 2개 한꺼번에 팔고 깔끔하게 손을 털던가, 아니면 언제 나타날지 모를 구매자를 기다리고 뭐 빠지게 가격협상을 해서 몇억길드를 더 받던가. 하나를 선택하시죠.”
“…으으음.”
잠시 고민하는듯했지만 결국 답은 정해져있었다. 능력치 상승폭도 어마어마하지만 그만큼 페널티도 너무나 뚜렷한 이 아이템을 선뜻 살만한 사람은 잘 나오지 않을것이다.
“에휴. 알았어요.”
직접 만지자 마치 얼음을 만지는것처럼 한기가 밀려들어왔다. 성훈이 그 자리에서 바로 55억길드에 당하는 길드를 거래하자 남자는 잠시 놀라더니 곧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만큼 예상외의 수입을 얻었군. 45억 길드로 뭘할까?’
성훈에게는 무명 길드의 길드장으로써, 그리고 유령으로써의 지원을 더해 상당한 양의 길드가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들어오는 돈이 많은만큼 나가는 돈도 많이 든다. 모든 종류의 스킬을 여유 자금이 생길때마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고 자신이 익힐수 있는 스킬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데로 습득한다.
게다가 조직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런곳에 쓰는 공금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연합이나 구원길드 같은곳의 주 전력집단과 대등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로 하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온 돈은 성훈에게는 메마른 대지에 쏟아지는 소나기와도 같았다.
“엘리트 급 장비 하나 정도는 바꿀수 있겠군.”
혹시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볼을 매만져 간단하게 표정관리를 한 성훈은 헛기침을 하고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완연하게 해가 저문 저녁이 되면서 이제 대부분의 장사꾼들은 빠지고 몇몇 사람들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쉽게 돌아올수 있었다.
그리고 성훈은 자신의 눈가를 한번 문질렀다.
‘어라?’
없다. 혹시 자신이 찾지 못한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능력치가 일정수치만 넘어가도 일반인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능력을 가진다. 하물며 성훈의 능력치는 가히 독보적인 수준이다. 되돌아오는동안 스치듯이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 옷차림, 장비, 간단한 버릇까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너무 늦게와서 그냥 가버린걸까?
그것도 아니다. 자신이 자리에서 떠나 판매자를 만나고 물건을 사서 다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말도 했는데 설마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떠나버릴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번이고 근처를 멤돌았지만 장사를 접고 일어나는 사람들만 있을뿐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조차 않았다.
‘고작해야 싸구려 소모 아이템도 아니고 셋트 아이템을 100억길드라는 거금까지 제시해가면서 원하는 사람이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간다는게 말이 되나? 말이 안되잖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기다리면서 표정은 점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앉아서 턱을 쓰다듬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성훈은 곧 멍하니 한 마디를 내뱉을수밖에 없었다.
“…설마 나 사기당한건가?”
“꺄하하하하하핫!”
“…….”
“푸흐흐흐흐흡! 아, 아이고, 아이고 배야아아아아!”
“…웃지 마라.”
“이, 이게 안 웃고 넘어갈수 있는 일이에요?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성훈 오빠가 사기를 당할줄이야! 꺄하하하하!”
“…하아아아아.”
평소 상황에 어울리는 적당한 표정연기만 하던 엘리는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아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웃은적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폭소를 터트려댔다. 어찌나 심하게 웃어댔는지 눈물이 살짝 흐르고 배까지 부여잡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 진짜 오랜만에 원없이 웃었네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정도에요.”
“너무 오버하는거 아니야?”
“전 진심인데요? 성훈 오빠는 가끔씩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저를 당황하게 만든다니까요.”
“나도 당황스러워, 설마 내가 사기를 당할줄은.”
강무한의 특기가 힘이고 미리내의 특기가 검술이라면 성훈의 특기는 바로 사기라고 할수 있었다. 강력한 힘에서 나오는 여유와 천성적으로 타고난 음습함을 바탕으로 삼아 세치 혀를 놀려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뒤집는것. 그것이 바로 성훈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성훈이 사기를 당하다니!
‘미리내 언니가 왠 듣보잡 검사한테 졌다는 얘기만큼 충격적이네.’
“크흡!”
“그만해라.”
“…네에.”
성훈이 심하게 저기압이라는것을 알아차린 엘리는 금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워낙에 크게 웃어서 그런지 아직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들떠있는건 어쩔수없었다. 한바탕 신나게 웃었으니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야할때였다.
“그래서 어쩌다가 그런 사기를 당한거에요? 솔직히 저는 지금도 오빠가 웃기려고 그냥 하는 말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우우우.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둥이여서 이런 사기를 당한거지. 참 이렇게 간단한 사기도 알아보지 못하고 당하다니. 이렇게 흉흉한데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
“푸흐흐흡! 서, 설마 그것도 저 웃기려고 하는 말이에요?”
엘리가 아는것만 나열하자면 성훈은 지금까지 직, 간접적으로 수천, 수만, 혹은 그 이상도 죽음으로 몰고간 그야말로 사악(邪惡)의 화신이라고 할수 있었다. 복잡한 심리와 신뢰를 이용하고 불리한 상황마저도 장점으로 바꾸어 사람들을 농락하는 악당. 만약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이 방금전의 말을 듣는다면 성훈의 멱살을 잡기 위해서 다시 되살아날지도 모를만큼 어처구니없는 소리라고 할수 있었다.
“난 진심이야. 아니 애초에 설마 누가 그런 사기를 칠거라고 생각을 했나?”
잭 애프론 같은 녀석에 비교하자면 성훈은 자신이 삼류 악당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틀린말은 아니다. 도시를 파괴하고 단순히 만족감을 느끼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처럼 다루며 온갖 가학적인 일을 저지르는게 바로 잭 애프론이었다.
그에 비한다면 성훈은 참 온순한 편이라고 할수 있었다. 고작해야 말로써 사람들을 이간질 시키고 뒤통수를 쳐서 이득을 얻는정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성훈 역시 엄청난 악당이라고 볼수 있었다.
누가 감히 탑랭커들과 다른 도시들을 상대로 그런 짓거리를 태연하게 저지를수 있겠는가? 범위로 보자면 성훈도 훌륭한 일류 악당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래서 필연적인 상황이 찾아오고 만다. 바로 방심이라는 감정이 말이다.
“내가 평소에 상대하는 놈들이 전부 괴물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평범한 사람들을 너무나 얕잡아보고 있었어.”
“이 도시에서 ‘평범’한 사람은 더 이상 없는데요?”
“인외의 경지에 오른 괴물들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평범한 셈이지.”
“그렇긴하네요. 하긴 누가 감히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까요? 지금도 저는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상대가 아르벤같은 영웅이었으면, 강무한같은 리더였으면, 잭 애프론같은 악당이었으면 당연히 경계했을것이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것을 알아차렸을게 분명하다. 하다못해 다른 도시 사람이기만 했더라도 당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매일같이 자신이 당연한듯 장기말로 사용해온 일반인들에 너무나 특색없는 사람들이다보니 아예 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경계할 이유도없으니 무심코 방심할수밖에 없었다. 이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수있었다.
진짜 사람을 죽여본적이 있는 살인마가 일반인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프로 격투기 선수들을 상대로 싸움은 해본적도 없는 사람이 대결을 신청하면 그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설마하니 고작해야 이런 사람이 나에게 사기를 치겠어? 라는 생각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것이다. 이런데에 비유하는것도 좀 이상한것같기도 했지만 이른바 강자의 오만이 스스로 만들어낸 약점.
“게다가 길드를 만든 이후부터는 물건의 매수나 매입은 전부 너나 부하들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니 이런 사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어찌보면 내 자업자득이지. 옛날에 온라인게임을 할때 이런 사기를 당한적은 있지만 설마 이런걸 현실에서 써먹을줄이야.”
“자주 있다면 자주 있는 사기에요. 비교적 인기가 없는 세트 아이템이나 겉보기에만 화려해보이는 아이템을 비싼 가격에 판다고하고 가죠. 그리고 얼마후에 다른 사람이 와서 그 아이템을 더 비싼 가격에 매입한다고 하는거에요.”
“그럼 호구는 귀가 솔깃해져서 물건을 사러가고….”
“팔러오면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거죠. 분명히 사기이기는 한데 딱히 연합도 끼어들명분이 없어요. 애초에 강매를 하거나 매점매석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조작을 하는것도 아니니 말이죠.”
“…발상이 너무나 소시민적이라서 차마 웃음도 안나오는군.”
엘리의 설명을 들은 성훈은 콧잔등을 매만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고작해야 20억, 아니 75억 길드 손해본것정도야 별거 아니야. 오히려 값비싼 교훈을 얻은 강습료 치고는 매우 싼값이지. 덕분에 앞으로는 어떤 놈들 대하든지 미적지근하게 상대하지 않을테니까 말이야.”
“그럼 이대로 넘어가시게요?”
“그럴수는 없지.”
탕!
가볍게 책상을 두들긴 성훈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사기를 친건 용서할수 있지만 그 대상이 나였다는게 문제야.”
정말 어쩌다보니, 소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이나 다름없었지만 사자가 승냥이, 아니 고작해야 토끼에게 당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사자는 매우매우 쪼잔한 사자라고 할수 있었다.
“짐작가는데는 있어?”
“글쎄요. 그런 사기를 치는 집단이 한두군데가 아니라서 말이죠.”
“그런 놈들을 지금까지 그만 봐두고만 있었던거야?”
“저희들도 격이라는게 있다구요. 도시의 어둠을 장악하며 모든 사람들을 입맛에 맞게 조종하는 비밀집단이 그런 애들 코묻은돈까지 손대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어쨌든 아예 알아낼 방법이 없는건 아니에요.”
만약 성훈이 사기를 당한것이 레어나 유니크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상대를 구별하는것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것도 아니고 무려 엘리트 세트 아이템을 미끼로 내걸만한 조직은 많지 않았다.
“그런 조직은 아마 쌍칼파와 평원 길드정도일거에요.”
“쌍칼파? 뭐 이름이 그래? 조폭이야?”
“연합에서 얻어온 정보에 의하면 두목은 진짜 조폭이 맞다네요. 지구에 있을떄는 꽤나 유명했다고하던데 뭐 여기에서야 그다지 대단한 놈도 아니죠. 그래서 어떻게 하시게요?”
“당연한거 아니야?”
성훈을 말릴생각이었던 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른 집단같으면 절대로 리더가 나설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성훈은 직접 나선다.
‘하긴 이런점이 성훈 오빠의 무서운 점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뭐 필요하신거라도 있으세요? 미리내 언니라도 데려가시는건?”
“걔 성격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거냐? 잠깐이라도 일이 잘못 돌아가면 제일 먼저 칼춤 출께 뻔히 보이는데 데려갈리가 있나.”
마찬가지로 사종원도 실격이다. 자신을 잘 따르는건 좋지만 그 충성심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튈 경우도 배제할수는 없다.
“그냥 밑에 애들 몇멍만 데리고 일을 처리하지.”
“적당히 하세요. 제발 적당히!”
“나도 쓸데없이 일을 키울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마.”
그렇게 말하는 것에 반해 표정은 전에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굳어져있었다. 자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소한 일로 전에 없을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성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