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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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이변
성훈은 그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정도로 조급해하던가 당황해서 일을 망치지 않았다. 자신이 가능한 한도내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책략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 덕분에 지금의 성훈이 있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그저 멍하니 있을수밖에 없었다.
“…으어어어어.”
미미하게 신음을 토해내며 가끔씩 몸을 떠는 성훈의 모습은 그야말로 좀비와 다를게 없었다. 겉뿐만 아니라 속 또한 굉장히 심란한 상황이었다. 방금전까지 웃으면서 대화하던 사람의 뒤통수에 칼을 꽂아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해도, 죄없는 자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리낌없이 희생양으로 사용하더라도 성훈은 단 한번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달아나려하지 않았다.
죄책감, 후회, 희열, 만족감, 성취감, 불안 등 항상 느끼는 감정은 달랐지만 언제나 그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이유없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심장은 미친듯이 두근거리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우며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제정신이 아닌것만 같았다.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다. 갑자기 하늘에서 우주선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강제 미션같은게 시작해서 알아서 죽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중국 애들을 회유시켜서 반란을 일으키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천재지변이 일어났으면 하거나 갑자기 몸이 아파와서 학교를 가지 않았으면 하는 정도의 발상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정도로 지금 성훈은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라고 할수 있었다. 자신이 할수 있는 일도 한도라는게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미리내같이 규격외의 괴물을 상대하는 방법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 애초에 미리내와 인연을 맺었으면 안됬다고!’
“…그러면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테지만 말이야. 으아아아아아!”
미리내 혼자만 착각하면 좋은데 왜 그 오해가 번져서 적에게까지 번지게 된걸까?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테지만 결정적으로 적 중에는 최소 규격외의 괴물인 미리내와 동등할정도의 강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자가 자신을 노린다는 말에 성훈은 절망할수밖에 없었다.
진짜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 없었다. 성훈이 단순히 가면을 쓰고 유령이라는 가공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서 평범하게 지내왔다면 설마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가면만 벗는다면 모든 인과관계에서 도망칠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더 높은곳에 올라가기 위해서 가면안의 정체를 알려주고 앞에 나서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여러가지 일을 처리해왔다. 지금 가면을 벗고 도망간다는건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성훈의 두 눈이 점점 빛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불평해봤자 달라질건 없어. 지금 내게 주어진것, 내가 할수 있는것, 내가 할수 없는 것. 그걸 확실하게 파악하고 그 한도내에서 최고의 선택을 끌어낼수밖에 없다.”
성훈이 쥐고 있는 카드는 총 세 장이다.
첫 번째는 미리내가 품고 있는 오해다. 두 번째는 일단 스펙과 스킬의 숫자만으로 따져보면 그 누구보다 앞선다는것이며 세 번째는 바로 시간이었다. 신시 측에서는 미션에 나선 유백우가 귀환하는 시간을 최대한 벌기위해서, 장안 측에서는 여천이 제자들을 가르칠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열흘후에 전투를 벌이기로 했다.
이 열흘이라는 시간은 성훈에게 있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수 있었다.
반대로 성훈이 할수 없는 것 역시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리내를 대신해서 그 여천이라는 자와 싸우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이 사실 허세만 잔뜩 낀 사람이었다는걸 밝히는것이다. 일단 간략하게나마 자신이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을 구분하니 조금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천을 최소 미리내급으로 잡는다고 가정하고 미리내같은 마음가짐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내가 여천과 싸워서 이길수 있는 가능성은 최대로 많이잡아봐야 3…아니, 4할 정도겠군.”
그렇게 난리를 피운것치고는 상당히 높은 승률이었다. 아마 승률이 4할정도 된다는 사실을 듣는다면 왜 성훈이 이렇게 안달복달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성훈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발휘한다는 가정하에 성립하는 수치였다.
‘보랑이와 우치다, 검술과 주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 스킬들, 함정, 독, 킷, 그 밖에 기습, 심리전, 단기전, 이런걸 전부 고려했을때 가능한 수치다. 당연히 이런걸 꺼내놓을수 없어.’
그런 치졸한 수까지 꺼내고서야 간신히 여천과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미리내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애초에 성훈이 사용하는 수법은 어디까지나 일회용이라고 할수 있었다. 처음 접할때는 당황할지몰라도 두번째 상대할때부터는 탑랭커정도 되는 강자라면 금새 그 파해법을 찾아내고 차근차근 공략해오며 결국에는 순수한 실력싸움으로 바뀌어 승률이 극도로 낮아진다. 과거 강무한과 한번 싸웠을때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강무한은 금새 파해법을 찾아내고 자신을 위협했다.
‘그런 수단을 전부 제외하고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일수 있는 검술, 주술, 킷 몇몇 스킬만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내 승률은 1할 이하. 일단 여천과의 정면 승부는 피한다.’
‘정면 승부는 절대 안된다. 그렇다면 내게 가능한 방법은 뭐가 있지?’
‘랭커들을 전부 동원해서 합공으로 여천을 처리한다. 매력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 녀석들도 머리에 똥만 차있는건 아닐테니 그런 방법은 불가능하다. 결국 여천을 상대할수 있는 사람은 1명, 최대한 빼내도 2명 가량.’
“역시 해답은 미리내밖에 없다.”
괴물을 상대하기위해서는 괴물을 동원할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여천을 그나마 당해낼수 있는건 미리내다. 미리내가 여천을 상대한다는걸 기본전제로 깔고 사고해야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성훈은 가장 중요한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미리내에 대해서 잊고 있었어.’
똑똑.
“누구십니까?”
“아, 미리내. 난데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
“읏?! 자, 잠깐! 잠깐만 기다리십…기다려!”
길드 내에 있는 미리내의 방에 찾아간 성훈은 그대로 문 앞에 서있는채로 기다렸다. 애초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미안할것 가지야. 그렇게 따지면 갑자기 찾아온 내가 이상한거지. 잠깐 들어가도 되지?”
“이, 이 안에 들어온다고?!”
미리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얼른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성훈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여자의 방이라고는 믿을수 없을만큼 삭막했다. 있는것이라고는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상등 기본적으로 있는 가구들뿐, 특이한점이라면 한쪽 벽에 수많은 상흔이 새겨져있다는 점이랄까?
의자에 앉을까 하던 성훈은 의자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침대에 앉았다.
“꽤 삭막하네.”
사실 꽤가 아니라 상당히 삭막하다고 할수 있었다. 성훈은 가끔 엘리의 방에 한두번 들어가본 일이 있었다. 갖가지 실험기구나 복잡한 수식이 적혀있는 책등이 대부분이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장식 한두개 정도는 있었는데 이 방안에는 책 한권도 없었다. 정말로 그저 잠을 자는것만이 목적인듯한 방이었다.
“대청소를 하다보니! 그래, 대청소를 해서 이렇게 깨끗한거야!”
“…흐음.”
‘보통 대청소를 한다고 이렇게 방이 허전해지던가?’
대청소가 아니라 그냥 이사를 간다고 짐을 싹 옮겨놨다는게 옳은 표현인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따질 시간 따위는 없었다.
“미리내 일단 여기와서 좀 앉아봐.”
“침대에?!”
“그럼 옆에 앉지 어디에 앉아? 저기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게? 아니면 의자 가지고 이리로 올려고?”
“그러네. 그렇지? 그렇…겠지?”
어째 방안에 들어올때부터 미리내의 반응이 좀 이상한것 같기는 했지만 미리내가 이상한적은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막말로 자신이 싸우다가 그냥 발이 걸려 넘어져도 거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제멋대로 상상하는데 미리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는건 자신만 피곤해지는 일이었다.
살짝 볼을 붉힌채로 살포시 옆에 앉는 미리내를 본 성훈은 쓸데없는 대화따위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리내.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뭘 물어볼거야. 그 질문에 대해서 조금의 거짓도 없이 진실을 말해줄수 있겠어?”
“그, 그건 질문에 따라 다르달까, 애초에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는겁니까!”
“아주 중요한 질문이야. 우리들의 미래에 관련된 질문이랄까.”
“미, 미래애?!”
“그래. 그러니까 진심으로 대답해줘.”
성훈의 진지한 표정을 바라본 미리내는 작게 숨을 내쉬고 볼을 문지르더니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여천과 싸워서 이길수 있겠어?”
“아, 아직 결정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예?”
“그래? 그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대란 말이지?”
“잠깐, 지금 질문을 잘못 들은거 같은데 다시 한번만 말해줄수 있을…까?”
“여천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어?”
“…….”
‘얘는 참 표정변화가 다양하네.’
얼핏보면 무표정처럼 보이지만 성훈에게는 눈과 입가가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는게 훤히 보인다. 게다가 얼굴도 순간적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가 바로 창백하게 변하고 다시 달아오르는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잠시 뭔가를 말할듯말듯 입을 움찔거리던 미리내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음 뭔가 맥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솔직하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와 나 사이잖아? 자존심을 세울것도 없고 남들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어. 그러니까 솔직하게 털어놔봐.”
그렇게 안보이지만 미리내는 은근히 자존심이 강한 타입이었다. 그러나 역시 성훈앞에서는 그 자존심을 세울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조금 불리할거라고 생각해.”
“…불리하다?”
“응. 그 여천이라는 자의 검은 오랜시간동안 쌓아올려진 정석적인 검이야. 잔재주따위는 없는 우직하게 버티고 있는 바위와 같은것이지. 거기에 수많은 경험이 녹아들어가있어서 순간의 기지만으로 쉽사리 상대할수가 없어.”
“즉 너도 이길수 없다는거군.”
“그건 아니야! 전투라는건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라고! 싸우면서 적에 대해 파악할테고 내가 꺼내지 않은 기술도 충분히 있으니 그것까지 전부 감안한다면!”
“감안한다면?”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듯한 성훈의 무심한 눈동자를 마주한 미리내는 순간적으로 기세에서 밀릴수밖에 없었다.
“…여천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도 싸우면서 성장을 할테고 숨겨놓은 기술이 있을거야. 여천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실력을 가졌다면 4 대 6…아니 3.5 대 6.5정도로 내가 불리해.”
“그렇군.”
“…….”
“…….”
성훈은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손가락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겨있을뿐이었고 미리내는 마치 큰 죄라도 저지른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성훈이 뭐라고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뿐이었다.
‘나에게 실망한걸까? 그동안 도움도 안되면서 옆에 붙어있었는데 드디어 이 일로 더 이상 내가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한걸까?’
미리내는 마치 주인에게 버려지는것 같은 애완동물처럼 잔뜩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물론 마음을 졸이고 있는건 미리내뿐만이 아니었다.
‘할까? 진짜 이걸 해야하나?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지금까지 성훈은 착각이라는 콩깍지가 씌워진 미리내를 상대로 굳이 그 착각을 풀 생각도, 심화시킬 생각도 하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고수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그 애매한 태도가 마침내 이런 비극을 찾아오게 만들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제 오해였다는것을 밝히고 최대한 상황이 악화되는것을 막으려할것이다.
그러나 성훈은 정상인과는 한참 달랐다. 그리고 짧지만 미리내에게 있어서는 영겁과도 같은 긴 시간이 지난후 성훈이 입을 열었다.
“미리내.”
“옛! 아니, 응!”
“열흘. 그 후에 장안과의 전투가 벌어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 그리고 여천과 싸우게 되겠지. 그러니 전투가 벌어지기 삼일전, 즉 앞으로 일주일후에 미리내 너와 다시 한번 만나는 자리를 가지겠어.”
“만나는 자리?”
성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었던 미리내는 고개를 갸웃거릴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성훈이 한 말은 미리내가 꿈에서도 그릴만큼, 그러나 현실에서는 절대로 들을수 없다고 생각한 그런 말이었다.
“둘만이서 따로 수련하는 자리를 가진다.”
“그 말은 즉 나, 나를 지도해주겠다는…말이야?”
“…그렇게 되겠지.”
멍하게 풀린 눈을 한채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은 미리내는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에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미리내는 성훈을 스승이라고 마음속에서 생각하며 항상 곁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이 너무 눈에 차지 않은탓일까 성훈은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반쯤 우기다시피해서 정기적으로 벌이는 대련에서 많은것들을 얻어가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성훈이 직접 가르침을 내려주겠다는 말에 미리내의 가슴속은 환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이, 일주일 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비울게! 응, 무조건!”
“그래. 그럼 먼저 일어나볼게.”
지금까지 살아오는가운데 가장 크고 빠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머리속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고 몸 깊은곳부터는 끝임없이 힘이 솟아나 무엇이든지 할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미리내는 어린아이처럼 침대위로 몸을 던져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한편 문을 닫고 나온 성훈의 눈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자의 눈빛이었다.
“이제 진짜 되돌릴수 없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브레이크를 부숴버렸다. 이제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나아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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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됐으니 쿠폰, 추천 코멘 좀 주세요 ㅜㅜ
저는 선추코, 쿠폰을 많이 재촉하는 작가가 아닌거 아시죠?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