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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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도약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새 결전 당일이 되어버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수 있는 열흘의 시간. 평소의 성훈이라면 객관적인 전력은 아무리 앞선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이렇게 직접 나와서 싸우는것에 대해 마음 깊은곳에서 불안함을 떨쳐낼수 없었을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평소에 풍기는 거물인듯한 느낌, 여유로워보이는 태도는 전부 진짜가 아닌 거짓이었기 때문에 ‘진짜’ 강자들과 맞붙을때 도저히 안심을 할수 없었다.
능력치 상으로는 분명히 앞설터인데도 탑랭커들은 하나같이 그 정도의 격차는 뒤집을수 있는 비장의 한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성훈은 평소와는 달랐다.
“흐흐흠~.”
“…….”
“왜 그렇게 얼굴이 굳어있습니까? 웃으면 복이 찾아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두 좀 웃어보시죠?”
“그, 그렇군요. 하, 하하하.”
“크흐흐흠. 허허허.”
“미친, 아니 됐다.”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주는 유백우와 김이현은 그나마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 강무한은 그야말로 별 미친놈을 다보겠다는 의미를 담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뭔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나?’
그 자리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생각했다.
유령은 언제나 능글맞은 태도와 과장된 리액션, 작위적인 말투를 사용하는것을 즐겨했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봐도 한눈에 알수 있을정도로 ‘연기’하는 태도였다. 본인도 일부러 그것을 알아차릴수 있도록 의도하는걸 뻔히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령은 전혀 연기를 하는것같지 않았다.
“이런이런, 강무한님.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시군요. 그만큼 곧 있을 대결이 신경쓰이는겁니까?”
“그것도 신경쓰이기는 한다만 지금 더 신경쓰이는건 바로 너다.”
“제가 어째서 말입니까? 혹시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겠죠?
“…진심인데.”
“거 이해할수 없군요.”
이해할수 없다는듯이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것을 확인한 강무한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그 정도로 오늘의 유령에게는 뭔가 신경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리내. 내가 평소와 뭐 다른 점이라도 있어?”
“전혀 없습니다. 평소처럼 여유로우면서도 냉철함을 유지하고 계시죠.”
“그렇다고 합니다만.”
“…됐다. 더 말해봤자 내 입만 아파질것 같으니.”
미리내의 사심 듬뿍 섞인 평가를 들은 사람들은 애써 관심을 끊으며 곧 나타날 장안의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한편 성훈은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웃으면서 한 두마디씩 말을 거는등 도저히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건 연기가 아닌 진심이었다.
‘드디어 나도 고수의 경지에 한 발자국 내딛은건가?’
지난번의 싸움으로 미리내가 얻은 깨달음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성훈 역시 무(武), 정확하게 말하자면 몸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크나큰 진보를 이룰수 있었다. 과거에는 모든 상황을 전부 인식하고 변수들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몸을 통제해 마치 기계처럼 싸워왔다. 그만큼 사고가 가속되고 계산 능력이 상승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계산끝에 나온 답이 꼭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없었고 전투가 오래 지속되면 계산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됐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의지가 이는대로 싸우는데도 과거처럼 머리가 터져라 고심하면서 싸우던때보다 훨씬 더 강한 실력을 발휘할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근전접 실력만 향상된 일이 아니었다. 근접전과 원거리전 두 곳에 나뉘어서 사용하던 연산능력을 한곳에 집중할수 있게 되었으니 그만큼 원거리전 능력도 향상됐다고 할수 있었다.
‘정확히 측정해볼수는 없지만 적어도 1.2배, 아니 모든 능력을 전부 동원하는것까지 감안한다면 반배가량 더 강해졌다고 볼수 있겠지?’
부족한 기본 능력을 메우기 위해서 악을 쓰고 아이템, 스킬, 스탯을 올리던 자신에게 이런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 찾아올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본신의 실력이 어느정도 올라갔다는 확신이 들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던것이다.
얼마나 흥분했으면 스스로 빨리 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뭐 나라고 감정을 항상 감춰야한다는건 아니잖아? 좋은 일이 있으면 웃고 나쁜 일이 있으면 울고! 그게 사람이지. 암.’
자기 스스로 납득을 한 성훈은 실없이 미리내에게 농담을 던지는 식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물론 상대측에도 괴물이 있는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에 대한 대응은 충분히 세워놓은 상황이었다.
“저기 오는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양반은 못되는 모양이로군요.”
두 집단이 만나기로 약속을 한 장소는 두 성의 사이에 있는 꽤 커다란 숲 근처였다. 단 한사람, 혹은 한 파티만을 위해서 새로운 세계 하나를 제공해주는 미션과는 다르게 도시간의 전투에서는 기본 필드를 이용할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시 바깥은 광활하고 숲이나 강, 늪지나 산도 있었으니 적어도 원하는 지형이 없어서 곤란할 일은 없었다.
단체전을 치루기로 합의하고 생긴 남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멍청하게 있지 않았다. 실무진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서로 접촉해서 어떤 방식으로 단체전을 치룰지에 대해서 조항을 추가하고 합의를 보았다.
‘전투가 치뤄지는 장소는 이 숲속. 신관의 힘으로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이 안에 있는 타인이 설치한 함정 및 마법적인 힘은 전부 무효화되는것. 외부에서 내부로의 간섭은 절대 불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안에서 살인에 대한 조항은 일절없음.’
크게 요약하자면 이 정도라고 할수 있었다. 중간중간 무슨 비겁한 수는 사용하지 말아야한다는 개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서로의 모든것을 싸우는 진검 승부에서 그런 제안이 받아들여질리가 없었다.
“이런이런, 우리가 너무 늦게 온건가?”
“그런건 아닙니다. 단지 저희가 일찍 왔을뿐.”
“그렇군. 미안하기도한데 이왕 이렇게 된거 같이 식사라도 같이 하는건 어떻겠나?”
“됐습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죽고 죽이게 될텐데 쓸데없이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군요.”
“젊은이가 참 냉정하구만.”
여천의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강무한은 무표정을 유지한채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그가 성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거나 가끔 지나치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상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말 한두마디로 강무한의 성질을 긁어대는 성훈이 대단하다고 볼수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미리내와 맞먹는다는 그 검사.’
그저 조금 근엄해보이는 중년인처럼 보였지만 미리내와 동급의 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강무한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호승심이 끓어오르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일대일로 자리를 마련해서 박터지도록 싸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우선시 할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그 마음은 애써 속으로 밀어둘뿐이었다. 한편 성훈은 여천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이내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뭐야 저건?’
당초의 예측대로 장안측의 탑랭커들은 전부 전사 계열이었다. 4명의 검사와 2명의 도객. 문제는 나머지 1명이었다.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복식은 같았으나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차이점이 있는듯한 특색있는 옷이었다. 게다가 유일하게 흰머리가 수북한 노인이었고 몸에서는 은은하게 진한 약향이 풍기고 있었다.
‘연금술사도 이런 냄새는 안풍기는데 대체 뭘하면 이런 냄새가 밸수 있는거야? 혹시 독을 쓰는 사람인가?’
“이봐 거기!”
“…….”
“거기 이상한 옷에 허여멀건한 가면을 쓰고 있는 놈! 널 말하는거다!”
“저 말입니까?”
“나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왜 아까부터 나를 힐긋힐긋 쳐다보고 있는거야?!”
아무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본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쳐다봤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대놓고 따지고 올줄 몰랐던 성훈은 약간 당황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약간’이었다.
“보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참나.”
“뭐야?! 보아하니 젊은게 윗사람에게 예의는 갖추지 못하고! 하여간 요새 사람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어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말이냐?”
“제가 버르장머리 없는거 말입니다. 첫대면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노인장이 처음입니다.”
“뭐, 뭐야?!”
아마 평범한 사람이 이런 말을 내뱉었더라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성훈의 연기에는 속된말로 하자면 뭔가 한방 때리게 만들고 싶은 그런 부분이 있었다.
예의 바르게 갖춰 입은 정장에 쌩뚱맞은 가면, 정중한 말투이지만 정작 그 내용은 하나같이 유치하거나 상대방의 신경을 살살긁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거기에 일부러 노리고 하는 어색한 감정이 가득 담긴 어조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입가. 이 모든게 어우러져 참 짜증나게 만드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냐, 안 그래도 이런 자리에 끌려온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내 친히….”
“마의! 그만하게! 어린아이도 아니고 채신머리없게 좀 굴지 말게나!”
“…흥! 운 좋은줄 알아아라 광대놈아.”
여천의 만류에 노인은 똥씹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러나 성훈은 이미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어낼수 있었다.
‘소매에서 순간적으로 보인건 분명히 ‘침’이다. 침으로 뭘한다는거지? 설마 의원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겠…아니, 가질수도 있겠군.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되니까 말이야. 능력은 아마 보조 계열에 특화되어 있겠고.’
예상치 못한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인의 비율이 높다고 한들 그래도 이런 중요한 전투에서 전부 근접전에 특화된 직업인 무인을 전부 채워서 데려올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명정도는 충분한 예측범위내였다.
“크흠. 미안하네. 그럼 다시 본제로 돌아가도록 하지. 전투는 이 숲안에서 치러지되 외부의 개입은 절대로 불가.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것도 절대로 불가능하네. 전투 도중 일어나는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지. 승패는 한쪽 세력이 완전히 전투불능이 되거나 항복의사를 드러냈을때. 이 정도면 되겠나?”
“문제없군요. 충분합니다.”
상대측의 탑랭커를 살려서 추후의 전력으로 활용할것인지, 아니면 혹여 분쟁의 씨앗이 될수 있는 존재를 삭초제근하던지. 그건 각자의 판단 나름이었다. 그리고 신시의 결론은 후자였다.
이미 일본을 통해서 한번 데인적이 있기도했고 불확실한 변수는 최대한 줄여둘수록 좋았다. 물론 그들을 완벽하게 아군으로 끌어들일수있다면야 그것보다 좋은일은 없을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일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양측의 의견이 일치한것같군요. 여기 적힌 조건은 절대적으로 준수될것이며 이 싸움의 승패는 곧 도시의 승패로 바로 이어질것입니다.”
신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숲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호수나 벌판도 있는 꽤나 넓은 숲. 당연히 바로 코앞에서 전투를 시작할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서로 어디에서 전투를 시작할지 정했다.
신시가 정한곳은 주변의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고 장안이 선택한곳은 바로 호수 옆이었다.
‘우리측에서 마법사를 내세우리라는것을 알면서도 순순하게 고지대를 양보한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쁠건없지.’
무슨 생각으로 이 언덕을 양보한것인지는 몰랐지만 유백우에게는 그 댓가를 톡톡하게 치뤄줄 자신이 있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사람은 자신 이외에도 유령, 볼프등이 있으니 철저하게 괴롭혀줄 생각이었다.
한편 여천은 제자들을 이끌고 자리를 옮기면서 살짝 이마를 찌푸린채 말했다.
“정말로 고지대를 양보해도 되겠나? 숙련된 마법사라는 자들의 힘은 가히 포대와 맞먹을정도라던데.”
“클클클, 그래서 걱정 되시나? 지금이라도 가서 자리를 바꿔달라고 애원해는건 어떻나?”
“이놈! 이 노귀가 감히 어디서 사부님한테….”
“나와 나이도 같은데 별로 기분 나빠할것도 없지. 사실 좀 걱정되기는 한다네. 하지만 마의. 자네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히 있겠지?”
은근슬쩍 도발했지만 능글맞게 웃으며 되묻는 여천을 바라본 마의는 목표를 잃은 적의가 마음속을 맴도는 기분을 느끼며 쌀쌀맞게 대답했다.
“마법사를 두려워해서 고지대를 택하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저놈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있는곳을 훤히 알수 있을테니 앉아서 폭격당하는 처지가 됐을거야. 그럴바에는 차라리 그곳을 넘겨주고 우리는 이 숲을 전장으로 삼는게 이득이지.”
“그런거였구만! 허허허, 나이를 먹으면 죽어야한다더니…, 그런 간단한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시끄러! 네 녀석이 알면서 일부러 물어본거란걸 내가 모를것 같으냐?! 흥!”
신경질적으로 바닥의 돌부리를 걷어찬 노인은 곧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그나저나 항상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자네가 설마 먼저 굽히고 들어올줄이야. 저 녀석들이 그렇게나 강한가?”
“강하지. 최소한 나와 비견될만한 무인이 두 명이나 있다네.”
순간 노인의 눈가가 씰룩였다. 항상 고상한척하는 여천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성장한것도 바로 여천을 따라잡기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여천급의 고수가 저쪽에 두명이나 있다니.
“하늘 높은줄 모르고 설치더니 오늘에서야 임자를 만난꼴이로군.”
“그렇게 됐네. 하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목을 내밀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부탁하네.”
“…쳇!”
가볍게 콧방귀를 낀 노인은 소매에서 침을 꺼내들었다.
성훈에게 던지려고 했던 침이 아닌, 붉은색의 기운이 은은하게 어려있는 장침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어있었다. 그 침들을 사랑스럽다는듯이 바라본 노인은 곧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자, 저 녀석도 허락했으니 모두 빨리 오거라. 내 특별히 아끼던걸로 한 방씩 놓아줄테니까 말이야. 클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