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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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네?
‘무인의 자존심.’
얼마전의 자신이라면, 정확히 말하자면 성훈에게 가르침을 받기 전의 자신이라면 자존심을 들먹이고 일대일로 싸워보겠다는 여천의 제안에 홀라당 넘어갔을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과는 다르다. 이제는 지금까지 세워오고 무의식적으로 지켜오던 규칙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것인지를 깨닫게 된것이다.
파각(破却).
성훈이 가르쳐준것은 심오한 무리의 세계도 아니고 효율적인 내공의 운용도, 절대적인 진리가 담겨있는 어구도 아니었다. 그저 틀을 깨라는 단 한 마디의 간단한 충고였을뿐이다. 그러나 그 충고야말로 앞서 열거한 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더 빠르게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버리는게 아니다. 그렇게까지 급격하게 바꾸는건 오히려 화야.’
그렇다고 처음부터 성훈처럼 너무나 계책에 의존하려 하거나 주제에도 맞지 않는 독을 사용하려 하는것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거창하게 갈 필요는 없다. 아주 작은 한 걸음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면 된다. 지금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왜 굳이 여천과 일대일로 붙어야하는건가? 지금 옆에는 성훈이 있음에도 굳이 그와 떨어진다는것은 혹시 모를 변수만 늘리는 행위다.
“전이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런 제안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가? 자네가 현재 올라와있는 경지는 단순히 막무가내로 검을 수련해서 도달할수 있는곳이 아닐텐데. 그만한 마음가짐은 물론이고 그 경지에 대한 자부심도 있겠지. 그런데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워보자는 제안을 거절할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없는겐가?”
다소 노골적으로 느껴질정도의 도발. 미리내라면 이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서는 배길수없을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말로 놀랍게도 미리내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자신감은 있습니다. 다만 제 실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것과 굳이 그쪽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대결을 벌이는것에 어떤 관계가 있는건지 궁금하군요.”
‘성장했구나 미리내…가 아니라!’
약간 분노한 기색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런 도발을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오히려 조소를 보내는 시점에서 굉장히 발전했다고 할수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미리내가 원하는대로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이 되버릴테니 말이다. 대견함과 초조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성훈은 더 이상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갔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정말인가?”
“예?!”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려했지만 감추지 못한 미미한 기쁨을 드러내는 여천과 이해할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리내였다. 분명히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성훈이 저 요구를 수락한건지 미리내는 이해할수 없었다.
“서…아니, 유령님. 대체 왜 저런 제안을 받아들이는겁니까?”
‘평소에는 말려도 그렇게 싸우려고 하더니 왜 오늘은 이러는거니!’
물론 불만은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삭여야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지. 첫 번째는 네 실력을 가다듬으라는 의미다. 네가 항상 싸우는 상대라고는 자기보다 훨씬 하수거나 나밖에 존재하지 않지. 자신과 비슷한 상대와 직접 싸울수있는 기회는 흔치 않지. 그리고 두번째 이유. 재밌을거 같지 않아?”
“재미…입니까?”
“그래. 녀석들이 미리 세워놓은 계획대로 움직여서 그것을 정면으로 박살낸다. 그 떄 저 녀석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굉장히 궁금해서 말이야.”
원래 성훈은 미리내를 설득하기위해서 여천이 말한것과 같은 무인의 자존심, 정정당당, 예의 등의 키워드를 끼워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만으로 미리내의 가치관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어차피 이미 엎질러져버린 물이었다. 아예 대놓고 여천을 동급의 상대라고 운운하며 자신을 은근슬쩍 둘보다 더 압도적인 고수로 각인시키고 평소라면 꽤 자제했을 노골적인 도발까지 했다. 여천도 미미하게 분노하고 있는것이 훤히 보였고 뒤에 도열하고 있는 세 명의 남자들을 아득바득 이를 갈며 성훈을 향해서 노골적인 적개심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설득은 훌륭하게 먹혀들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것같군요. 좋습니다. 한번 일대일로 붙어보죠.”
씨익.
보기만 하더라도 기분이 좋아질정도로 화사한 미소를 지은 미리내와 달리 여천의 표정은 마치 뭐 씹은 표정처럼 굳어있었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유령이 강할것이라는건 예상하고 있었고 그래서 침술로 능력을 극대화시킨 제자를 무려 3명이나 붙였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는것인가? 하지만 이 방법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길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오게.”
“얼마든지요.”
가벼운 파공성만을 남긴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숲 안으로 사라지는 여천과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그 뒤를 따라 달려나가기 시작하는 미리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여천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검사는 곧 시선을 돌려 눈 앞의 유령이라 불리는 남자에게 집중시켰다.
‘이 자가 바로 사부님보다도 더 강하다고 여겨지는 검사.’
물론 그렇다고 해서 꼬리를 말거나 지레 겁먹고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마의의 시술로 인해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극대화된 상황. 지금 세 명의 합공이라면 여천을 상대로도 어느정도 우세를 점할정도였다.
일단 먼저 통성명을 하는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에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만나서 반갑소. 이 몸은 여천 사부님의 제일제자 왕단이라 하오. 그리고 이 둘은….”
“아아, 됐습니다. 굳이 이름을 들을 필요는 없을것같군요. 기억하기 귀찮아서 말이죠. 뭐 당신이야 이미 이름을 들었으니 어쩔수 없다지만 왼쪽분은 주걱턱, 오른쪽분은 만두귀라고 부르면 될까요?”
“뭣?!”
“뭐 굳이 이것저것 이야기해서 힘을 뺄 필요는 없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어차피 결론적으로 싸울건데 뭘 그리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아까 그 여천이라는 꼰대도 그러더니만 그 쪽은 혹시 대화를 통해서 정신적으로도 피로를 주려고 하는겁니까?”
“이 놈이 감히!”
자신을 욕하는것이라면 얼마든지 참을수 있다.
하지만 감히 여천을 모욕하는 발언을 내뱉은 저 광대 녀석을 내버려둘수는 없다. 졸지에 주걱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남자는 도를 뽑아들고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돌진해나갔다.
“사제! 큿!”
감정에 휩쓸려 무작정 치고들어가는건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유령의 도발에 화가 난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사제들을 통솔하는 대사형의 입장인 왕단은 검을 뽑아들고 뒤를 따랐다.
이렇게 무작정 돌진하는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어리석은 일은 유령이 자신들을 일대일로 처리할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이 그 실수를 메꿔줄수밖에 없었다.
“죽어라아아앗!”
한줄기 빛줄기가 최고의 속도로 가속해 공간을 베어냈다. 누가보더라도 감탄이 튀어나올만큼 아름다운 일격. 그러나 도를 휘두른 주걱턱은 이마를 찌푸릴수밖에 없었다.
‘피했다?!’
모든 능력치가 올라간 자신이 비전의 절초를 완벽하게 펼쳐냈음에도 그것을 피했버렸다. 평범하게 피했더라면 놀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이런 공격에 당할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진짜 놀란것은 바로 자신의 공격을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종이 한장이 들어갈락말락한 아슬아슬한 차이로 도의 궤적에서 목을 빼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인지 알아차린 왕단은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아나는것을 느꼈다.
‘무기뿐만 아니라 거기에 깃든 강기(剛氣), 그리고 강기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류까지 완벽하게 계산하고 회피했다!’
여천도 가끔 이런 종류의 기예를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검에서 유무형의 기운을 방출하는것이 가능한 이 세계에서 저 정도로까지 아슬아슬한 회피는 여천조차도 보여준적이 없었다.
사제가 경솔하게 검을 휘두른것에 대해서는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것 이상으로 상대방의 실력에 대해 알아차릴수 있었으니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게다가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팟!
사제의 공격을 피한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대로 기세를 살려서 망설임없이 자신들에게서 물러가기 시작한것이다.
“이, 이 노오오옴! 도망가는 것이냐?!”
“어떻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중요한건 지금 당신들과 저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죠.”
“큭, 저런 비겁한 놈이! 대사형! 어서 쫒읍시다!”
‘아니, 저건 비겁한게 아니다.’
오히려 고도의 전술적인 후퇴라고 보는게 맞다. 지금 이 세 명을 정면으로 상대하는것의 위험성을 깨닫고 일부러 연기하는게 틀림없다. 만약 저 연기에 속아넘어가 돌진하다가는 앗하는 사이에 각개격파 당할게 분명했다.
“그만! 지금부터 단독행동은 철저하게 금지한다! 세 명이 철저하게 연계해서 확실하게, 그리고 빈틈없이 진법을 펼쳐서 가둔다! 잊지마라, 적은 최소 사부님과 동급의 고수다!”
탓!
살기등등한 세 명의 추적자로부터 일단 벗어난 성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심코 목 언저리를 메만졌다.
‘베이진 않았군.’
높은 체력 스탯 덕분에 성훈의 피부는 굉장히 질겨졌다. 스킬들의 힘까지 합하면 어지간한 마법이나 물리적인 공격정도는 담담하게 받아낼수있다. 하지만 그것말고도 방금전의 기습을 피할수 있었던데에는 한 가지 더 숨은 공신이 있었다.
여천과 미리내의 뒷모습을 쫒아 시선이 순간적으로 자신에게서 떨어졌을때를 이용해 성훈은 몰래 한개의 킷을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발로 밟고 있었다. 원래는 도발에 넘어온 적은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해 처리해 먼저 처리해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예상밖의 엄청난 참격에 킷을 공격에 이용하지 못하고 회피에 이용해버렸다.
‘역시 이 녀석들 이상해.’
분명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성훈은 예전처럼 허둥지둥대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전에 있던 전투에서 성장한것은 미리내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훈이 더 얻어간것이 많을 정도였다.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으니 말이다.
‘아까 잠깐 봤을때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 한 사람도 아니고 전부 다 능력치가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올라가있어. 나보다 조금 낮은 정도? 정상적인 힘이 아니야. 뭔가 특별한 스킬을 사용했거나 아니면 아까 그 침을 든 노인네가 어떤 수작을 부렸을수도 있지.’
잭도 그랬는데 이 녀석들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또는 모두가 검이나 도를 들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침을 들고 있었던 그 노인이 침술을 이용해서 특이한 버프를 걸었을수도 있었다.
‘뭐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그럼 어디 한번 공략을 시작해볼까?’
“화탄(火彈). 뇌시(雷矢).”
시작은 일단 가벼운 잽으로 시작한다.
가벼운 읆조림에 생겨난 수십개의 불꽃의 구들과 우뢰의 화살들을 바라본 왕단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상대방이 무인일꺼라고 짐작하고,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그토록 높은 무의 경지에 올라있을거라고 추측되는 사람이 설마 무(武)이외에 다른 것을 익히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랴?
아니, 익혔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심심풀이나 신변잡기 수준일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성훈의 직업은 두 가지 분야에 특화된 직업이었고 조금 부족한 위력마저도 무시무시한 능력치로 충분하게 커버할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산개해서 피하고 검강으로 소멸시켜라! 저런 허접스러운 주술따위는 검으로 벨수 있다!”
“뭐 벨수야 있겠지. 그런데 그건 내가 너희들이 치기 편하라고 정직하게 쏘아보내줄때의 이야기겠지. 그리고 말이야.”
화르르륵!
파지지직!
“아쉽게도 내가 고작해야 한두발 쏘고 말게 아니거든. 조금 기대되는데? 과연 너희들이 언제까지 버틸수 있는지 말이야?”
허공을 뒤덮으며 날아오는 형형색색의 기운들을 바라보며 왕단은 입술을 깨물고 검을 휘둘렀고 성훈은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아아앙!
주술을 소멸시키기전에 일부러 한발 앞서서 미리 터트린다. 당연히 직접 몸에 작렬시키는것보다는 그 위력이 약할수밖에 없었으나 그 숫자가 하나 둘이 아니라 수십개, 그리고 그것을 펼치는 사람이 3차 각성자에 초인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 섞일수 없는 폭염과 뇌전이 서로 반발하면서 주변을 휩쓸었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대폭발 다음에 찾아온 후폭풍은 순간적으로 꽤나 넓은 숲 전체에 영향을 끼칠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간신히 호신강기를 만들어내 피해를 막아낸 왕단은 연기를 걷어내고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미친….”
방금전에 쏟아진것과 동일한, 아니 그것보다 더 많아보이는 불과 뇌전, 그리고 각양각색의 기운들이 허공에 떠있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곳에서 부러진 나무위에 편하게 앉은 성훈은 룬 블레이드를 높이 치켜든후 마치 지휘봉처럼 아래로 내리그으며 중얼거렸다.
“더 격렬하게 가보자고.”
콰지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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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및 다음주 연재주기가 불규칙해질거라는건 미리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쓸수 있을때는 최대한 써서 올리려고 합니다.
슬럼프도 있기는 하지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몇일정도 글을 안쓰고 아예 휴식기간을 가지거나 꾹 악물고 이렇게 억지로라도 글을 쓰는게 제일 낫다는걸 깨달았거든요.
그런데 어느새 벌써 400회에 가까워지고 있네… 언제 이렇게 쓴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