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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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네?
너무나 허무하게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당초의 목적대로 잠시라도 성훈의 발을 묶어놓을수 있었기 때문에 왕단과 주걱턱은 근처까지 다가와 앞뒤를 가로막는데 성공할수 있었다. 퇴로가 봉인당한 상황에서도 성훈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듯이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시체의 가슴을 발로 밀어서 검을 뽑아냈다.
촤악!
“제가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것 때문이죠. 얼굴에 피가 묻는건 의외로 신경쓰이는 상황이거든요.”
“이 자식….”
“사제!”
새하얀 가면의 한쪽에는 핏방울을, 다른 한쪽에는 기하학적인 무늬를 묻힌채 성훈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뛰어들려던 주걱턱은 왕단의 외침에 잠시 몸을 떨더니 살짝 입술을 깨문후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아깝군.’
도주용으로 깔아놓은 킷을 역으로 함정으로 이용해서 손쉽게 한 명을 처리할수 있었지만 그런 기회가 몇번씩이나 찾아올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무작정 쫒아오던 사람이 땅에 깔려있는 단 하나의 킷을 정확하게 밟아서 작동시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그다지 높지는 않을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저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겠지만 성훈에게는 그 누구보다 우월한 행운 스탯이 존재한다.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도한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이 행운스탯이 어느정도 자신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줄거라는 생각도 했다.
행운 스탯이 상대를 직접적으로 약하게 만들거나 절대로 이길수없는 강적을 뜬금없이 쓰러트릴 있게 만들어주는 기적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계기정도는 만들어줄수 있다.
‘이게 진짜 행운 스탯 덕분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일인지는 판별할수 없지만 뭐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스스로가 통제할수 없는 미지의 힘에 기대는게 조금 껄끄럽기는 했지만 행운에 모든것을 맡기는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인 상황에서는 한번씩 믿어볼만했다. 검날에 맺힌 핏방울을 털어내고 어깨에 검을 얹어놓은 성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 더 술래잡기를 하고 싶었는데 벌써 잡힐줄이야.”
“…장난은 그만했으면 하는군요. 우리 따위를 상대로는 진지해질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는겁니까?”
“전 지금 진지합니다만? 제가 지금까지 장난하는것처럼 보였나요?”
도저히 진지해보이지 않는다.
장난스럽게 잡고있는 검과 능글맞은 말투,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말이다. 만약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더라면 사제와 연계해서 망설임없이 공격을 시작했을것이다. 그러나 왕단은 그러지 못했다.
여천이 한참이나 강조한것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사제의 시체가 가장 큰 이유였다. 잠깐이었다. 눈먼 공격들을 걷어내고 전력을 다해서 보법을 펼쳤던 시간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그러나 잠깐 시선을 뗀 사이에 사제는 절명하고 말았다.
‘항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얻어내는 방어의 검세만큼은 사부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정도로 성취가 높았던 사제다. 그런데….’
주술에 당한것도 아니다.
정수리 한 가운데부터 뒤통수까지 나와있는 깔끔한 단 한개의 구멍. 그 외에는 스친 상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왕단은 도저히 믿을수가 없어서 유령에게 직접 질문할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겁니까?”
“뭐 빈틈이 있어서 그곳을 향해서 검을 찔러넣었을뿐이죠. 참 쉽죠?”
어딘가의 화가가 생각나는 발언을 꺼낸 성훈은 그다지 어려운일도 아니라는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왕단과 다른 한명이 받은 충격은 남다를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발을 묶어달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부님급의 강자에게 스스로의 목숨조차 도외시하고 덤빌정도로 사제가 생각이 없지는 않았을것이다. 그저 적당히 붙어서 움직임을 방해하고 자신들이 올때까지 시간을 끌려고만 했을텐데 그런 사람을 너무나 깔끔하고 쉽게 처리해버린 유령을 향해서 공포심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우우웅!
왕단과 주걱턱의 검에서 푸른색과 녹색의 강기가 일렁이며 치솟기 시작했다. 둘로부터 치밀어오르는 막대한 기운탓에 성훈은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오는군.’
증폭된것은 신체능력뿐만이 아닌것같았다. 피부에 직접적으로 느껴질정도로 확실한 질감을 가지고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기운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훈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싸워야한다고 생각한 성훈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서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한발 앞서서 왕단이 외쳤다.
“잠깐 이야기를.”
“개진(開陣)!”
까가가강!
“…할 생각은 없는것같군요.”
앞뒤로 순식간에 쏘아져온 탄강을 쳐내고 몸을 틀어서 피해낸 성훈은 씁쓸한듯이 입맛을 다시고 제대로 검을 잡은채 혼검(魂劍)을 일으켰다. 천검술사의 직업스킬인 혼검은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소모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보증할수있었다.
왕단과 주걱턱의 합공이 펼쳐진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성훈은 새삼 등골이 오싹해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마치 두개의 몸을 한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것마냥 두 사람의 움직임은 완벽하게 서로를 보완하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흡!”
까앙!
룬 블레이드를 간단하게 쳐낸 왕단은 그대로 보법을 펼쳐서 그대로 성훈의 옆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당연히 순순히 보내줄수만도 없었기 때문에 몸을 틀려고 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후방에서 주걱턱이 검을 휘둘러서 신경을 자극했다.
등 뒤에 눈이라도 달린듯이 검을 받아넘겼지만 그 틈을 타서 왕단의 검이 수십개로 분열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 사형!”
“헛?!”
긴급 상황에서 성훈이 선택한 행동은 간단했다. 일말의 고민없이 신속하게 검을 놓아버린채 몸을 아래로 숙이며 왕단의 다리를 향해서 다리를 걸었다. 비보잉의 동작 중 하나인 윈드밀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춤사위와 차이점이 있다면 성훈의 육체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지 오래였다는것이고 다리에 강기를 덧씌우자 순간적으로 범위안에 있는 모든것은 그대로 갈가리 찢어버리는 살인기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두 눈 뜨고 뻔히 죽음을 맞이할 상황이었지만 왕단과 주걱턱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듯이 서로의 무기를 부딪히고 반발력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몸을 빼냈다. 가볍게 덤블링을 해서 떨어지는 검을 낚아챈 성훈은 악동같은 미소를 짓고 주걱턱을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명만 하더라도 검술을 이용해서 당당하게 붙는다면 내가 확실히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정도로 강한 놈들이야. 그런 놈이 둘, 게다가 합공 또한 매우 뛰어나. 이 녀석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왔더라면 이미 승패가 확연히 기울었을거야.’
성훈은 결단코 자기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자들은 닳고 닳은 초고수들이었고 그들의 앞에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것보다는 과소평가하는것이 나았다.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얼마전 미리내와의 대련으로 급격하게 진전된 기량. 좋게 말하자면 자기류, 나쁘게 말하자면 근본없는 잡탕검술의 맥을 잡아준 레전드 급의 검술 디스퍼시브 누보라. 수많은 춤들의 응용. 이 모든게 하나로 어우러져 성훈이 버틸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녀석들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일부러 공세를 멈추고 약간 여유를 줬음에도 왕단이 역공을 가하려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그저 경계만 하는 모습에 한층 더 확신할수 있었다. 한편 왕단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최대한 검진을 단단하게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사부님에게서 볼수 있었던 진중한 일검이나 몇수후의 미래를 읽어내는것만 같은 공격은 없다. 잘 쳐줘봐야 막내와 비슷할정도야. 하지만….’
유령은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싸움에 임하고 있다는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방금전만 보더라도 설마 망설임없이 검을 놓아버리고 괴상한 발놀림을 통해서 역공을 가해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번이 아니다. 동작은 전부 다 무술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정석적인 전투에 익숙해져있는 왕단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갑작스레 안으로 파고들어오고, 리듬을 타듯 몸을 들썩이고, 흐느적 거리면서 공격을 피하는 그 모든게 낯설기만 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야하지?’
-왕단 사형! 어떻게 할까요? 조금만 더 과감하게 나간다면 승기를 잡을수 있을것 같습니다만.
-일단은 자중해라! 유령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어쩌면 지금 이 모든것이 우리를 유인하기위한 기만책일수도 있다.
사제가 눈깜짝할사이에 죽어나간것을 봤기 때문에 주걱턱도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고 왕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이 유령이라는 녀석은 단순히 높은 경지에 올라가 있는 무인이 아니다. 오히려 싸움이라는것 자체에 대해서 깊이 통달해있는게 분명하다.
가진바 기예를 망설임없이 사용하고 검과 검으로 부딪힌다면 틀림없이 자신들이 수세에 몰릴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밖의 기술과 낯선 스킬들만으로 싸움에 임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 저급해보이는 태도와 말투 또한 일부러 우리를 자극시키기위해 하는 행동일수 있겠군. 무섭다, 진정 무서운 자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유령을 움직일수 없게 만드는것이다. 함부로 공세에 나서지 말도록, 아니다. 아예 죽인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견제와 방어에만 집중해라. 공격은 적당히 손발을 묶어놓는 수준으로만 유지한다.
-예에? 그,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있다. 오히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할수 있지. 허점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파고들어가지 마라. 그것조차 함정일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불만이 있는듯했지만 그래도 왕단이 거듭해서 다짐을 주자 사제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싸움에서 자신의 의견을 앞세워 일을 망칠정도로 생각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다.
“차아아앗!”
“팔비우뢰참!”
겉으로는 여전히 우렁차게, 그리고 격렬하게 덤비되 절대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덤비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정도 공방이 이어지기 시작하자 성훈은 눈을 게슴츠레 뜬채 입맛을 다셨다.
“좀 더 격렬하게 덤빌 생각은 없습니까? 너무 미적지근하다고 생각 안하나요?”
“…….”
“…….”
까앙!
‘이 녀석들. 싸울마음이 없구만.’
미리내를 상대로 징하게 싸워온덕에 상대방이 자신을 진심으로 상대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아차릴수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지금 자신을 이 자리에서 쓰러트리려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시간을 끌려는게 목적이었다.
자신이 여천이라고 생각하고 생각하자 해답은 금새 나왔다.
‘아마 나는 최대한 발을 묶어두고 미리내와 어떻게든 결판을 낸 뒤에 이들과 합공해서 차근차근 나를 끝내려하는게 계획이겠지. 미리내가 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들의 생각대로 끌려갈수도 없어. 어떻게 방법이 없으려나?’
디스퍼시브 누보라의 기괴한 검로를 이용해 왕단의 찌르기를 전부 쳐낸 성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것과 쓸수 있는것을 전부 검토하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방어와 견제밖에 하지 않지만 덕분에 오히려 뚫고 나가기가 더 힘들어졌어. 나를 만만하게 보고 공격한다면 그걸 기회로 어떻게든 발판을 마련해보기라도 하겠는데.’
함정은 사용할수 없다.
킷은 작고 고작해야 밟는것만으로도 작동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장님이 아닌 이상에야 바로 앞에서 바닥에 뭔가를 던지는것을 놓칠리가 없었다. 오히려 패 하나를 허무하게 날리는것이나 다름없다.
주술도 마땅치 않았다.
기본적으로 마법이나 주술같은건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사용해야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수 있다.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터트리는건 너죽고 나죽자는식의 동반자살행위밖에 되지 않았고 룬 블레이드에 여러개의 주술을 동시에 강제로 융합시켜 사용하는 기술은 한시도 쉬지않고 검이 움직이는 가운데 시도할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스킬들은 충분하다못해 넘쳐날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단번에 전황을 뒤집을수 있을정도로 강력한, 필살기라 불릴수 있는 기술이 없잖아? 젠장, 헬파이어를 써야하나?’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을수있는 기술은 헬파이어가 유일했다. 그것을 사용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성훈은 뭔가를 깨닫고 나지막한 감탄성을 토해냈다.
“아, 그게 있었지!”
생사가 오가는 전투도중 갑자기 이상한 말을 지껄였지만 왕단과 주걱턱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약속한대로 철저하게 방어에만 집중했다. 방금전 죽을위기를 넘겼다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훈은 왼손을 쥐고 검지와 중지만 편채 정신을 집중했다.
‘좋은 기술을 알려줘서 고마워 형.’
흑백전투에서 최철형에게 보답과 부탁의 의미로 전수받은 혼원기(混原氣)의 노하우.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기운을 융합해 경천동지할만한 위력을 얻어내는 최철형만의 비전절학을 성훈은 알고 있었다. 무에 대한 재능이라고는 한없이 떨어지는 최철형이 탑랭커중 일인으로 우뚝 서게 할만큼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지만 정작 성훈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두 기운을 융합하고 그것을 유지한채로 전투에 활용한다는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철형은 2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것에만 집중하고 직업자체가 그쪽에 특화되어서 쉬운것처럼 보였지 생판 초짜인 성훈에게는 고작해야 비전투 상황에서만 소량 만들어낼수있을정도밖에 숙련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미리내 덕분에 몸을 제어하는것이나 주변의 전황을 파악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여유롭게 싸울수있게 됐다. 그리고 성훈에게는 카피 스킬이 있었다. 무언가를 따라하고 베끼는데 최적화된 스킬. 그렇게 건성건성 검을 휘둘러가던 성훈은 곧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미리 말할게.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