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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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오랜만이네요!
“그리고 막무가내로 나간다고 일이 쉽게 풀릴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예?”
“흥, 됐다.”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첼은 더 이상 잭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직접 볼 필요따위는 없다. 그저 패치 내역에 있는 몇줄의 정보만으로도 잭에게는 현재 상황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예상하고 계획할수 있었다.
‘5개의 지역이 새롭게 추가됐다. 최후의 무대라는 곳은 입장 제한이 있다는것을 생각하면 4개의 지역으로 줄어들고 이건 현재 존재하는 4개의 세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 4개의 지역이 최후의 무대로 통하는 관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지.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저 눈 앞에 닥친 일에만 급급해서 움직이고 있을때 잭은 이미 몇발자국은 훨씬 앞선 곳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잭은 생각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적이로군. 잘 보이지는 않지만 동양인들같아 보이는데 그럼 신시라는 도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꽤나 대단한데?”
“카운팅 결과 지금 보이는 숫자만 대략 4만 4천가량입니다.”
“우리가 몇명이나 끌고 나왔지?”
“5만이 약간 넘습니다.”
“흐으음.”
지평선 너머에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병력을 보면서도 무사태평인 잭과 달리 레이첼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곧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을 열었다.
“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아까 평화적으로 가자고 한 사람이 누구였지?”
“…자비로우신 주인님은 평화적으로 갈지 몰라도 저 쪽은 대화로 해결하지 않을수도 있으니 말이죠. 싸울 의향은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 진형을 조금 바꿔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됐어. 그냥 이대로 간다.”
“알겠습니다.”
‘흥미롭군.’
점점 더 가까워져만가는 사람들을 보고 잭이 느낀 감정은 다름아닌 감탄이었다.
일정한 진형을 유지한채 오와 열을 맞춘채 절도있게 움직있는 수만명의 사람들. 물론 둘중에 훨씬 더 규율이 잘 갖춰진쪽은 잭측의 군대였다. 그러나 자세하게 파고들어가보면 꼭 그런것만도 아니었다.
‘이쪽의 병력은 대부분의 권속화로 부리고 있는 노예들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운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저쪽은 권속화같은 스킬이 있는것도 아닐텐데 저 많은 사람들이 마치 한몸처럼 딱딱 움직이고 있어. 싸운다면 득보다는 실이 많아.’
먼저 멈추면 큰일이라도 나는것처럼 누구도 정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백미터도 안되는 거리까지 접혀지자 잭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들었다. 지금 거리면 현재 전사들의 수준으로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좁히고 들어올수 있는 거리였다. 설마 자신이 먼저 한 발자국 물러날 정도로 대담한, 아니 간이 부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날카롭게 전열을 훑어보던 잭은 곧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어떤 놈인지 궁금했는데 마침 아는 놈이었군.”
“주인님, 호위를!”
“그런건 필요없어. 넌 남아서 통솔이나 확실하게 해라.”
수만명의 적군들 사이로 홀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는 믿을수 없을만큼 광오한 말이었지만 잭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일인군단이라는 말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못할만큼 잭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오랜만이군. 뭐라고 불러줄까? 킹콩, 헐크, 골빈 멍청이 중에 하나 골라잡으라고.”
“강무한이라고 불러주면 고맙겠군. 그보다 지난번에 맞은 턱은 좀 괜찮아?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보여주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다가 거 한방맞고 혀가 잘려나갈뻔 했잖아? 좀 늦었지만 포션이라도 줄까? 응?”
“말 한번 예쁘게 하는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알고있냐?”
만약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죽일수있었다면 아마 잭과 강무한은 지금쯤 십수번은 죽어나갔을것이다. 강제미션에서 한번 목숨을 빼앗긴적이 있는 강무한이 가진 원한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고 잭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강무한과 최유재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험한 꼴을 당했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만약 둘만 있었더라면 당장 사생결단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을 저지를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다못해 거리가 좀 더 벌어져있으면 모를까.’
잠시 눈을 감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후 잭은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죽이고 말겠다는 살의로 가득찬 눈동자는 위엄이 서려있는 눈동자로 변해버렸고 방금전 험한 말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것처럼 살짝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속담이군. 기억해두도록하지.”
“허어?”
“왜 그러지?”
“감정을 다스리는게 뛰어나다고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미친놈이라고 해야할지 고민되서 말이야.”
“시덥잖은 이야기는 접어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저런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이유를 듣고 싶은데.”
“지금 네가 여기에 있는것과 같은 이유겠지.”
“우리는 그저 우리들의 안전을 확보하기위해 나온거다.”
“우리 역시 대충 그렇다고 치지.”
어린아이가 들어도 코웃음을 칠만큼 가식적인 이유로 시작된 대화는 점점 어떻게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위한 대화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일단은 서로간의 병력을 물리고 간략하게 임시 동맹을 맺는건 어떨까?”
“임시 동맹?”
“그래. 처음 만난 너희들은 이야기가 통해서 다행히지만 이곳에는 아직 두개의 도시가 더 남아있고 그 도시의 사람들은 지금처럼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지도 몰라. 주도권을 차지한답시고 막무가내로 전쟁을 일으킬 미친 세력이 있을수도 있어.”
물론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결코 0은 아니다. 당장 동맹을 맺자는 말을 하고 있는 잭이 그 미친놈이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잭의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았기에 강무한은 진지하게 고심을 거듭했다.
“임시 동맹이라면 나쁘지는 않군. 대략적인 사항은?”
“동맹을 맺는다고는 했지만 이제 처음 만났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믿을수 있을리가 없지. 지금 우리들이 접촉한곳을 기점으로 경계선을 만들고 동맹이 맺어지는 즉시 세력을 뒤로 물리는거다.”
잭은 땅을 툭툭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 이후 서로간에 합의한 병력에 한해 이동이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간의 지원도 할수 있도록 하는거지. 하지만 배신 당할 가능성도 있으니 만약 이 이후에 상대측의 허락을 받지 않은 군대나 개개인들이 접근하거나 경계선을 넘으면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도로 판단, 즉각적인 전면전까지 각오하는걸로 하고.”
“경계선에만 접근을 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양측의 적대행위는 없는걸로?”
“그래. 괜히 서로를 경계하느라 쓸데없이 병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그리고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대화를 통해서 같이 싸울지 적이 될지 결정하자고. 어때?”
“그거….”
-절대로 안됩니다!
-그 제안을 수락한다면 두고두고 멍청이라고 놀려드리죠.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강무한은 머리속과 귀에서 동시에 울려퍼지는말에 제동을 걸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유백우요, 하나는 유령이었다.
-이건 영토를 정하는거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저 조항대로라면 상대측에서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이곳 너머로 단 한명의 사람도 보낼수 없게됩니다. 만약 저쪽의 땅안에 새로운 지역이나 최후의 무대라는곳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지만 이게 서로의 영역을 결정하는건 알고 있겠죠? 저희는 저놈들의 이동을 뒤늦게 파악하고 이동했습니다. 어느정도나 이동했는지 확실하지 않은 이상 여기서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로 저쪽의 엄청난 영토권을 인정해주는 결과로 찾아올수도 있습니다. 제발 생각하시고 말했으면 하는군요.
꿀꺽.
지나가듯이 던진, 겉으로만 보면 합리적이고 공평해보이는 제안에 설마 그런 의도가 숨어있다고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더불어서 자신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미숙한지 다시 확인할수 있었다.
“그렇게는 못하겠군.”
“서로간의 불안감도 해소하고 아군이 될수도 있는 제안인데 어디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라도 있나?”
“상대측의 허락이 있을때만 사람을 보낼수 있다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군.”
“호오?”
잭은 단순히 강무한과 힘으로만 싸운게 아니었다.
마지막 결전을 치르기전까지 당시 가진 세력, 인맥, 지략 등을 이용해서 싸워봤고 그 결과 강무한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해낼수 있었다.
그리고 강무한의 수준으로는 방금전의 제안은 바로 받아들여야 정상이었다. 그렇지 않다는건 그 사이에 꽤나 머리가 잘 굴러가게됐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충고해준거겠지.’
강무한에게서 시선을 땐 잭은 지금까지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뒤에 있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파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한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만들어낸 표정이 사라지고 잭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잭의 얼굴에는 티없는, 너무나도 순수해서 보고 있는것만으로도 주변이 밝아지는 느낌마저 들정도로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 순수한 미소를 바라본 강무한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수밖에 없었다. 왜 물러났는지는 이해할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했을뿐이다.
‘방금전 그건 뭐였지? 일종의 스킬?’
“제안을 다시 하도록 하지. 양측의 영토는 이곳이 아니라 서로의 성이 맞닿는 정확한 중간지점으로 하고 나머지 조항은 아까 그대로.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집단전에 능숙한 전사, 마법사, 궁수로 이루어진 2차 각성의 병사를 3만 가량과 유지비까지 무상 원조해주지. 그 병력들로는 뭔짓을 해도 좋아. 다른 세력을 치든 화살받이로 쓰든.”
“잠깐, 우리는 너희들에게 지원할 병력이….”
“뭔가 착각한듯한데 병력지원은 그냥 내가 그쪽에게 주는 선물이야.”
“뭐?”
“흡?!”
이번에는 강무한뿐만 아니라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있던 유백우까지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아까와 달리 이건 오히려 잭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아니 그냥 퍼주는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그 짧은순간 혹시 잭이 신시의 첩자는 아닌지 생각할정도로 말이다.
“제,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왜 그런 득도 없는 제안을 하는거지?”
“아, 물론 나도 그냥 퍼주겠다는건 아니야. 그쪽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준다면 지금 말한걸 해주도록하지.”
“그 부탁이 뭐지?”
“간단해. 저기 여자뒤꽁무니에 숨어있는 가면 쓴 새끼. 유령이었던가? 저 놈 하나만 나한테 넘겨주면 끝이야. 쉽지?”
그 순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로 일치했다.
‘대체 뭔 짓을 저지른거야?!’
영토까지 내주고 3만이라는 병력까지 얹어주면서 고작해야 원하는게 단 한명의 사람이라는걸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사람이 고금동서의 미녀라면야 그럭저럭 이해하지 못할것도 아니었지만 잭과 유령은 둘다 남자였다.
잭의 성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움직이는건 처음봤기 때문에 놀랐고 유령의 성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또 뭔가 저질렀다는것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최대한 미리내의 등뒤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성훈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로 쏠리는것을 깨닫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야이야! 누구인가 했더니만 이거 잭 애프론님 아니십니까? 이거 정말 오랜만이네요!”
“흐흐흐흐, 그래, 참 오랜만이지. 네 놈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줄 알았다.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걸보면 그 때 나에게 사기쳐간 돈으로 어지간히 잘지낸 모양이지?”
“누가 들으면 진짜 사기친건줄 알겠습니다? 잭님은 원하시는 물건을 얻었고 저도 원했던 물건을 얻었으니 정당한 거래가 아닙니까?”
“…그래.”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잭은 성훈에게서 시선을 떼고 바로 강무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제안에 대해 생각해봤나? 영토에 3만의 병력을 주는 대신 저 놈만 잠시 나한테 맡기면되는거야. 걱정하진 말라고. 절대로 죽이거나 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야.”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 이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턱이 없었다. 성훈으로써는 참 드물게도 긴장이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여유를 가장한채 입을 열었다.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것 같습니까? 그렇죠 강무한님?”
“…….”
“…강무한님?”
“…쳇. 굉장히, 굉장히 아깝기는 하지만 그쪽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동료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할수 없다. 정말로 아깝지만 말이야.”
잠시동안 이어진 침묵과 그 뒤 이어진 진심으로 아쉽다는 감정이 가득 담긴 강무한의 말에 성훈의 등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더 후한 조건을 쳐줄수도 있는데.”
“그래도 거절하지.”
“쯧.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말해달라고. 항상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경계문제에 대해서….”
“그 이야기는 우리들끼리만 모여서 결정할게 아니지.”
머리속에서 울려퍼지는 메시지를 확인한 강무한은 어깨를 들썩이며 유백우가 하는 말을 그대로 읆었다.
“4개의 세력이 전부 모여서 결정해야할 사항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