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6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13화
술 냄새로 찌들어 있는 낡고 더러운 방. 그러나 이 낡은 방에서는 지금 이 세계를 뒤엎을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이었다.
이정과 제임스가 몇 번이나 주변을 확인하고 네브라가 스킬로 이곳과 외부를 완전히 단절해 버렸다. 이 안에서 오가는 모든 이야기는 이 안에 있었던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럼 이제 좀 자세히 듣고 싶군. 자유연맹을 없앤다는 이야기는 솔깃한데 과연 어떻게 해서 그 목표를 이룰 셈이지”
네브라의 제안이 끌리기는 했지만 그게 얼마나 현실성 없는 목표인지는 지나가던 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시도를 한다 하더라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자유연맹은 확실히 거대하다. 하지만 거대하기에 그만큼 볼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지. 초기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자유연맹을 지지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처음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게 바로 그 증거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잭 애프론이 세웠던 유토피아도 노예를 갈아 넣어서 번영을 구가했던 것뿐 이다.
부유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 빈곤한 자들에게 반발받기 마련이고 빈곤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 부유한 자들에게 반발받는다.
어떤 일을 하든 일단 반대하는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노리는 건 바로 그 사람들, 그리고 자유연맹으로부터 배척된 사람들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쉽게 말하자면 범죄자, 과거 대동맹에 속했던 사람들, 자유연맹의 정책을 반발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사람이 있을까 아니 물론 있기는 하겠지만 어느 세월에 찾고 어느 세월에 포섭하게”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지. 바로 여기만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널려 있지 않나”
“……아.”
네브라의 말에 뭔가를 깨달은 제임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약 및 위험 약물 유통, 불법 도박, 고리대금, 매춘 같은 사업들. 자유연맹에 속해 있는 4대 도시에서는 할 수 없어서 이런 하위 도시로 건너온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이곳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전부 거기서 거기인 세력들 뿐인데 하나가 치고 나가는 걸 뻔히 보고만 있을 것 같아 자유연맹에서 제제하기 전에 그놈들한테 먼저 발목이 묶일걸.”
“그 정도도 극복 못 할 것 같으면 애초에 자유연맹 타도라는 목표는 꿈도 꾸지 말아야지. 일단 첫 번째 목표는 이 도시를 휘어잡는 거다. 이정 님.”
탁자 위에 떨어지는 몇 장의 종이를 바라보는 제임스의 눈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임스, 네 가게에서 취급하고 있는 주력 상품이 뭐지”
“뭐 대중적인 약 몇 개하고 노예를 조금 취급하는데.”
둘 모두 자유연맹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규제라는 상당히 애매한 면이 있었다. 마약으로 여겨지는 위험한 약물들은 일반인에게는 위험할지 몰라도 이 세계에서 좀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위험한 것도 아니다.
기본을 아득히 웃도는 신체 능력과 설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해독 포션이나 마법을 이용하면 부작용을 쉽게 없앨 수 있다.
마치 담배나 술처럼 마약이 일종의 기호품처럼 취급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제한을 건건 과거 환락단이 일으킨 참상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노예의 경우는 더 사정이 복잡하다. 유토피아가 몰락하고 나서 실권을 잡은 콜린스는 노예 제도와 계급제를 철폐했지만 노예가 주는 안락함을 한 번 경험했던 사람들이 노예제도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결국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채무관계라는 이름의 새로운 노예 제도가 탄생하게 됐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새로운 물건을 팔아라.”
“이봐 이봐, 뭘 모르는 모양인데 이쪽 사람들이 유통하는 약이래 봐야 전부 거기서 거기라고. 수 년간의 경험 끝에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좋은 녀석으로 선택된게 바로 지금 취급하는 것들인데 새로운 약을 판다고”
“그래. 이거다.”
극락단極樂丹
등급 : 유니크(中)
종류 : 단약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극한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위험한 마약. 함부로 섭취하지 말 것.
-복용 시 6시간 동안 기분이 좋아집니다.
-상당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최상의 재료를 사용해 효과가 1.1배 증가합니다.
자신의 앞에 떨어진 단약을 바라보던 제임스의 안색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취급되는 약의 등급은 매직이나 레어 수준이다. 그 이상 되는 약은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거다. 왜 안 드냐고 바로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 문이다.
“이거 개당 단가가 얼마 정도 하냐? 돈 많은 사람이 깔짝 쓰거나 하는 거면 몰라도 이걸 기본 상품으로 취급하려면 시작부터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갈걸 장사 하루 하고 접을 거냐”
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자 위에 주머니가 놓였다. 십억 길드와 일억 길드짜리 주화가 꽉꽉 눌려 담겨져 있는 루시아가 준 자금.
마음대로 쓰라고 준 돈이기는 하지만 설마 이 돈을 마약을 사는데 쓸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기초 자금으로는 부족함이 없겠지”
“그래도 안 돼.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을 정해야 사람이 꼬일 텐데 그렇게 하면 결국 적자가 날 걸. 이 정도 자금이라면 확실히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소비량이 일정 숫자를 넘기는 순간 파산하고 말 거다.”
“그 점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물건이나 팔아라. 할 수 있겠나”
“그거야 내 특기기는 하지만 나중에 이럴 줄은 몰랐네 하면서 울고불고 난리 피우지 말라고.”
‘……걱정 마라.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장악하는 것처럼 초기에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내세워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이미 골수까지 약에 중독된 폐인이 나타날 것 이다. 그때를 기해서 가격을 일부분 올려 받으면 파산까지의 기간을 어느 정도 연기할 수 있을 것이다.
파산을 피한다가 아니라 연기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네브라는 굳이 이 조직을 오랫동안 끌고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가 나가자 이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재정 쪽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방금 전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좀 위험한 거 아니야? 게다가 복수의 기간도 너무 짧게 잡은 것 같은데. 아무리 생 각해도 1년 만에 세력을 꾸리고 유성훈을 친다는 건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위험한 것 맞습니다. 무리한 것도 맞고요.”
“……뭐”
그걸 알면 다른 작전을 짜야지 뭘 그렇게 한가하게 있느냐라는 이정의 시선을 받은 네브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애초에 이 조직을 길게 유지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이 조직은 유성훈과 그가 세운 자유연맹을 없앨 때까지만 존재하면 그만입니다.”
“아 젠장! 대체 왜 똑똑한 놈들은 왜 이렇게 말을 돌려서 해 그냥 딱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말하면 끝나는 걸 가지고 귀찮게 하냐고 내가 무식하단 걸 돌려서 까는 거냐!”
쿵!
주먹을 내려치자 탁자의 귀퉁이가 그대로 쪼개져 버렸다. 과장된 이정의 리액션에 네브라는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정말로 인정하기 싫지만 유성훈과 자유연맹은 지금 정의고 저와 제가 만들 세력은 악입니다. 제 복수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세계가 혼란 속에 빠지는 걸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자유연맹을 처리하면 그 즉시 자연스레 세력이 무너지도록 교묘하게 조직을 구성할 겁니다.”
“……그 말은.”
“복수가 끝나면 통제를 잃은 혼란해진 이 세계를 진정한 이상향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세력을 모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겁니다. 제 진짜 목표는 바로 그거죠.”
“…….”
“복수를 1년가량으로 잡은 이유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내실을 다지지 않고 그저 무작정 세력만 키운 조직이 유지될 수 있는 기간이 대충 그 정도거든요. 그러니 무조건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그거 말고 또 다른 이유도 있다는 듯한 말처럼 들리는데”
“유성훈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세력을 더 크게 키울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필연적으로 유성훈의 경계를 사고 말 겁니다. 애초에 유성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그에게 정면으로 대결할 만한 조직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위험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나서기 전에 세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죠.”
그 말을 내뱉는 네브라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정말 오랫동안 생각했다.
자신이 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은 양지에 드러나 있었고 유성훈은 음지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패인을 이번에는 자신이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럼 이정 씨에게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흑사파의 상대를 맡기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나가고 싶지만…….”
“네 몸이야 내가 가장 잘 알지. 걱정 말고 맡겨 두라고. 무인이라는 놈들은 하나 같이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놈들이니까 대표놈들 콧대만 꺾어 두면 한동 안은 조용할 거야.”
“부탁드립니다.”
끼이이익!
이정이 나가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네브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전을 위해서 원래는 한동안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멍하니 시간 낭비를 할 바에야 미션을 하면서 재활 훈련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드러난 적은 무섭지 않다. 진정으로 무서운 적은 바로 드러나지 않은 적. 기다려라 유성훈.”
* * *
“거기 지나가는 오빠! 잠깐 놀고 가지 않을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잊지 못할 추억이 이 세상의 마지막 추억이 될 수도 있거든? 아직 한창 파릇파 릇한 나이에 마누라한테 맞아 죽고 싶진 않아.”
“뭐야. 남자가 되서 여자한테 잡혀 사는 거야”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잡혀 살 수밖에 없을 걸”
정확히 말하면 자진해서 잡혀 사는 거긴 했지만 말이다. 호객행위를 하기 위해 달라붙는 사람들을 애써 뿌리치며 도시에서 나온 이정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한 번에 하나를 노려도 불안한 판국에 일석삼조, 아니 일석사조를 노리겠다고? 멍청한 놈.”
순수하게 복수만을 노리고 덤벼들어도 아슬아슬한 판국에 아르벤은 너무 많은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신에게 복수하고 자유연맹을 타도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세력을 없애고 그 다음 세계에서의 영웅이 되겠다고 영웅도 악당도 아닌 어중간한 목표와 어중간한 계획.
‘아니, 어중간하다는 말은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평화로운 세상을 갈아엎고 자기가 최고가 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엄청난 악당이라고 할 만한 거 아니야 흠, 좋아. 뭐 일단 네 그 허술한 계획. 최대한 지원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이건 알아 둬야 하는 게 진짜 무서운 적은 드러나지 않은 적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네브라 넌 처음부터 실패야.”
도시를 힐긋 바라본 이정은 그대로 속도를 올려 반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