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09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36화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최대한 공적을 많이 세운 사람에게 반지를 하사하겠다고”
필리아 공주가 공표한 사실은 이 세계의 원래 주민, 그러니까 NPC에게는 별다 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반지를 목표로 삼고 있던 사람들은 사정 이 달랐다. 저 반지만 얻으면 그 즉시 2000포인트와 그 외 이벤트 자체 보상으로 걸린 아이 템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젠장, 그럼 그냥 미션을 수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헌도 1 위까지 달성해야 되는 거야 그럴 바에야 그냥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게 낫지 않아”
“다른 방법 뭐 기사단과 마법사의 보호를 받고 있는 데다가 본인마저도 3차 각 성직인 공주를 힘으로 제압하기라도 하게 아니면 뭐 훔치려고 무슨 수로”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 밖의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에 공주의 제안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대다수는 환영하는 기색이었다.
반지 하나를 두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던 것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이렇게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네브라는 열의에 불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의미모를 웃음을 지었다.
* * *
수성전은 보통 성벽에 의지해 싸우는 만큼 훨씬 더 유리하기 마련이다. 성벽이 높고 튼튼하며 준비까지 철저하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다.
만약 그렇게 널널하다면 이 미션에 ‘절망의 수성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리가 없었다.
쿵! 쿵! 쿵!
척! 척! 척!
수만, 아니 수십만의 병력이 이동하는데 마치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북 치는 소 리와 발자국 소리와 착착 들어맞는다.
머릿수만 보더라도 질릴 지경인데 그들 모두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철저한 훈 련을 받은 병사라는 사실을 알자 금방이라도 전의가 꺾여 버릴 것만 같았다.
절망의 수성전을 미리 해본 적이 있던 사람들은 한결 나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장면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야만족이라며 몸에 대충 가죽 한 장 두르고 몽둥이나 고물 칼 같은 거 든 그런 놈! 그런데 저놈들이 대체 무슨 야만족이야!”
“저 뒤에는 공성병기까지 있는데”
전원이 질 좋은 방어구와 무기를 들고 있었고 공성병기의 숫자 또한 한눈에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어디를 어떻게 보더라도 야만족이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평불만을 터트린다한들 이미 미션은 시작된 마당이었다.
뿌우우우우우우!
웅장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야만족들은 질서정연하게 성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 떼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달려오는 야만족들을 향해 셀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화살과 마법이 날아가기 시작했지만 뻥 뚫린 구멍은 순식간에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들로 메워졌다. 알고도 당하는 게 바로 인해전술이다.
“모두 무기를 치켜들고 준비해라! 활이 부러질 때까지 시위를 당겨라!”
“마법사들은 흥분하지 마라! 전투는 길다! 최대한 마력을 아끼고 위험해 보이는 곳에만 마법을 쏘아 보내라!”
지휘관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며 독려하고 있었지만 몰려오는 야만족들의 기세는 전혀 식지 않았다. 그야말로 당랑거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 사마귀가 아무리 용 써 봐야 수레바퀴가 지나가면 깔려 죽을 뿐이다.
그러나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뒤집는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헬 필드, 맥시멈.”
“올라프, 죄다 얼려 버려.”
대지가 불타며 사람들을 산 채로 불태우기 시작하고 성벽을 올라타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얼음으로 만든 동상으로 변해 버렸다.
일반적인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3차 각성자의 비장의 스킬. 그 뒤를 이어 각양 각색의 무기를 꼬나 쥔 근접 계열 직업들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야, 이거 성 아래로 내려와도 되는 거야 수성전이잖아”
“일반적인 수성전으로 생각하고 싸우면 이거 하루도 못 버티고 무너져. 지키면서 동시에 전면으로 나와서 기세를 꺾고 공성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돼.”
“……이걸 수성전이라 할 수 있는 건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수성전 아니겠어 그러면 슬슬 움직여 보자고.”
오십 명이 남짓한 숫자로 수십만에게 싸움을 건다. 원래대로라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지만 이 계란들은 특별했다. 바위를 부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도 부서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매드 독 댄스!”
“암각비검!”
“천상의 빛이여! 이 몸에 내리소서!”
거대한 양손 검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사람들의 몸을 찢어발기고 수십 개로 분 열된 어둠의 검이 일순간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꼬치로 만들어 버렸다.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인 기사는 온갖 검과 마법을 맞고서도 끄떡하지 않고 달려가 공성병기를 부수어 놓기도 했다. 발차기 한 방으로 땅을 가르는 격투가부터 시작해서 반인반수의 괴물이 날뛰고 지휘관의 목을 따고 다니는 그림자 괴물도 있었다.
몇십 명이 몇십만 명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이 성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을 사용하여 야만족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신위를 뽐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필리아 공주는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필적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정도의 실력을 가진 실력자가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튀어나왔단 말인가
‘아니, 고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공격을 막아 내는 거다.’
“모두 검을 뽑아라!”
필리아의 목소리에 담긴 힘은 멍하니 있던 병사들의 정신을 순식간에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성벽에 걸쳐지는 갈고리와 사다리를 열심히 걷어 내고 위로 올라온 야만족을 쉴 틈 없이 베어 낸다.
그녀의 활약은 눈부셨지만 점점 성벽 위로 올라오는 야만족의 숫자는 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성문 아래로 뛰어내리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역시 조금 상황을 지켜보다 나가길 잘 했군요. 이정 씨, 말한 대로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마시고 성벽 아래에서 최대한 시선을 끌어 주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십시오.”
“나야 까라면 까야지. 그럼 어디 오랜만에 양학이나 하면서 몸 좀 풀어 볼까”
이정의 손에 들린 방천화극의 길이는 2m가 넘어가는 장병기다.
그것을 짧게 잡고 마치 배트처럼 휘두르자 궤적에 걸려 있던 사람들이 마치 깃 털처럼 떠올라 저 멀리로 날아갔다.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무언가와 부딪힌다면 무기는 그만큼 힘과 속도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지 탱크가 질주 하는데 인간이 뛰어들어 봐야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지금 휘두르는 창이 딱 그 짝이었다.
인간이 걸리든 무기가 걸리든 조금도 힘과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처음 속도 그대로 노렸던 곳으로 뻗어 나간다. 어느 정도 진탕을 피웠다고 생각한 이정은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창을 고쳐 잡았다.
‘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창이 의외로 재밌는 구석이 많은 무기란 말이야’
이제까지는 그저 완력을 이용해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압도적인 기술로 적들을 쓰러트려 나가고 있다.
복잡한 전장에서 수많은 방해를 피해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꿰뚫어 일격에 즉 사시킨다.
그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재빠르고 자연스러웠는지 이정이 지나갈 때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멋대로 풀썩풀썩 쓰러지는 것만 같았다. 활약하고 있는 건 이정만이 아니었다.
네브라 역시 롱소드를 휘둘러 야만족들을 무수히 쓰러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죽어 가는 야만족들의 모습이 조금 특이했다.
“부, 불이, 누가 불을 꺼 줘! 물! 무우우우울!”
“왜애애 느으려어지이인거어야아”
“꺼, 꺼흑!”
검이 스칠 때마다 야만족들은 불에 휩싸이거나 느려지고 독에 중독된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다 그대로 픽 쓰러져 버렸다.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평범하게 사용하는 마법은 아니었다.
‘외부로 방출하는 일반적인 형식의 마법은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느리 다.’
마법을 사용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마법을 펼치고 최대한 중간 과정을 단축해 발현 속도를 끌어올려서 1초 미만의 시간으로 마법을 시전하는 데 성공 해 약점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에 불과했다.
마법으로써는 파격적으로 빠른 걸지는 몰라도 검과 비교해 본다면 굼뜨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 뻔한 약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사기적인 재능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다. 탑 랭커들과 비교해도 몇 수 정도는 위에 있는 압도적인 검술이 그 빈틈을 교묘하게 감싸고 있었을 뿐, 자기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미 리내와 부딪힌 순간 그 자그마한 빈틈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검과 마법을 진정으로 하나로 녹여 낸다.’
미자막의 마지막 순간, 미리내가 지나가듯이 던진 말과 성훈과의 싸움으로 얻어 낸 깨달음을 경험을 통해 최대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수정해 나간다.
그리고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한 네브라의 검은 어느 누군 가의 검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인챈트Enchant.”
마법을 검에 주입시켜 검격의 위력을 끌어 올리고 다양한 속성공격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고질적 약점이었던 시간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이렇게 한다면 마법의 특징인 넓은 범위와 순간적인 파괴력이 사라져 버리 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도 있다.
“리버레이션Liberation.”
속삭이듯 읊조린 한마디에 검에 깃들어 있던 마법이 해방되어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적들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잠깐 동안 생겨난 경직을 놓치지 않은 네브라는 새로운 빙계 계열 마법을 인챈 트시키고 근처에 있는 적들을 베어 내고 적당한 순간 해방시키기를 반복했다.
그렇다. 바로 성훈의 전투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다.
물론 세세하게 본다면 성훈은 댄스 계열 스킬을 베이스로 싸우기 때문에 움직임 이 전체적으로 변화무쌍하고 경쾌한 것에 반해 네브라는 정통 검술을 베이스로 싸우기 때문에 움직임이 진중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만 보는 아주 사소한 차이. 검에 스킬을 부여하고 해방시킨다는 핵심은 그대로 베껴 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이정은 자신이 전장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만큼 충격을 받았다.
‘야! 그건 좀 아니지! 원작자한테 허락도 안 받고 네 마음대로 퍼 가냐’ “죽어어어……컥”
머리는 복잡했지만 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근처의 적들을 육편으로 만 드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빼앗겼지만 항의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푹푹 한숨을 쉬어 대던 이정은 방천화극을 꼬나잡고 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정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를 느낀 것일까. 마치 언데드처럼 기계적으로 달려 들던 야만족들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내는 격이기는 한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화가 안 풀릴 것 같거든 잠깐 내 화풀이에 협력해 주렴.”
잡탕창법雜湯槍法. 낙엽쓸기.
초식의 이름처럼 어떤 전투에서도 물러날 줄 모르던 용맹한 야만족들은 낙엽처 럼 무차별적으로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