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1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48화
단순히 무력적인 면만 따지자면 랏시는 제임스나 송일학 같은 사람들과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수준이다. 그러나 조직 및 자금 운용, 계책을 짜는 범위에 있어서는 반대로 그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룰 따위는 없는 범죄 도시에서 맨손으로 패권을 다툴 수 있는 거대 길드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행운이 따라 준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해방 전선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내정을 맡은 이후에도 그 능력은 더 빛을 발하면 발했지 부족한 부분이 없을 정도였고 네브라 바로 다음 가는 일인지하 만인 지상의 지위를 거머쥐게 됐지만 지금 랏시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으니 제발좀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처리해야 하는 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자유연맹에서 들어오는 차관으로 레이지 길드에서 빌린 돈은 어떻게든 돌려막을 수 있을 것 같네. 상당히 빠듯했는데 덕분에 여유가 좀 생기겠어. 그리고 다음은 도시 및 길드 간 반발 유도 작전에 대한 보고서 이걸 왜 여기에 가져 와! 대외 무력 파견 업무 담당은 이정, 그 사람한테 가야지!”
“이정 님이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자리를 비우고 있어서 처리할 서류가 계속해서 쌓이고만 있습니다.”
“이정 씨 말고도 그 밑에 있는 다른 사람 있잖아! 제임스라든지 송일학이라든지!
설마 그 사람들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돌아온 거야”
“도, 돌아오기는 했습니다만 쌓여 있는 업무도 워낙 많고 다음 작전을 위해 다시 나가야 해서 일이 쌓이면 쌓이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순간 랏시의 손에 잡혀 있는 만년필에 금이 갔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해야 할 업무를 나한테 가져왔다”
“죄, 죄송합니다!”
“……후우.”
마음 같아서는 죄다 불질러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고생하는건 결과적으로 자신이다.
부서진 만년필을 버리고 새 만년필을 집어 든 랏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사람 앞으로 쌓인 업무 전부 가져와. 그리고 만약 돌아오면 다른 데 보내지 말고 바로 내 앞으로 오라고 해.”
“옛!”
이런 자리씩이나 올라와서 이런 단순 서류 처리 업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의 욕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보안을 극도로 중요시해야 하는 조직의 생리상 어지간한 일들은 밑에 맡기지 못하고 전부 위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랏시가 잠자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가며 미친 듯이 일에 매진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조직에 이상이 생겨도 생겼을 것이다.
‘교란 임무를 맡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양에 비하면 그 사람이 맡은 일은 절반도 안 돼. 아무리 느긋하게 움직여도 지금쯤이면 귀환했어야 하는 시긴데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행했던 임무에서도 묘하게 꾸물댄다거나 자기 멋대로 판단해서 움직이는 일이 많았고 원인불명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거나 행 방불명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나마 맡은 일은 어떻게 하든 무사히 완수하고 네브라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점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업무태만으로 중죄를 받았을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 네브라 님의 말만 아니었더라면 쳐내도 진작에 쳐냈을 거야.’
“……저번에 건설에 착수한 새로운 도박장 여섯 곳이 동시에 완성됐어. 이걸로 개 미들을 무한히 착취할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이 완성된 셈이지. 노예들한테 빚 절반을 탕감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는 대신 몸을 바치든 화살받이가 되든 무 슨 수를 써서라도 마약 중독자들을 도박장으로 끌어 들여. 배율을 높여서 한 번만 따면 갚을 수 있다는 소문을 내고 고리대금을 해 주는 전당포에 경호 인력 추가로 배치하는 거 잊지 말고.”
“예 아니 그러다가 진짜 따서 해방되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요”
“걱정 마. 확률을 마음대로 조작 가능한 사기 도박장이니까. 입장할 때마다 마약을 기본으로 공급해 주면 약에 취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못할걸 물론 한 번도 당첨이 안 나오면 의심을 살 테니 우리 쪽 사람들을 이용해서 가끔 당첨되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해야 할 테지만.”
빚을 진 사람들을 도박장으로 끌어들이고 도박을 이용해 끊임없이 빚을 늘려 간다.
그 결과 그동안 모아 뒀던 돈이나 아이템 몇 개 팔아서 갚을 수 있는 빚이 더 이 상 손도 닿지 않는 어마어마한 거금으로 늘어 가기 시작하고 결국 채무자라는 이름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노예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주 변의 지인들을 끌어당긴다.
다단계, 고리대금, 사기도박, 강제 매춘, 분쟁 유발, 노예제도, 마약 매매 등 해방 전선은 지금껏 유사 이래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장스러운 짓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명실상부한 최악의 집단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막상 해방 전선을 만든 네브라조차도 설마 이 정도까지 막 나가는 집단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요.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외당에 속할 조직의 구성을…….”
“랏시 님! 큰일입니다!”
“큰일?”
“다, 다른 도시에 마련한 비밀 안가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별동대가 사건을 일으켜 관심을 분산시킬 때까지만 숨어 있으라고 했는데 그런 간단한 일도 못 하는 멍청이들이 있을 줄이야. 맡은 일이라도 제대로 처리하는 이정 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네. 그래서 그곳은 대체 어딘데”
랏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의 도시에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길드나 고위직의 사람들을 포 섭한지 오래다.
아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말단 조직원들이 멋대로 마약을 팔다가 안가 한 곳이 발각됐을 것이리라.
그러나 남자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비밀 물류 창고입니다.”
콰직!
두 번째 만년필이 부러졌다. 안에 있던 새까만 잉크가 새어 나와 손을 적시고 있 었지만 랏시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모스크바와 인근 마을에 들어가는 모든 마약과 수거한 아이템들을 보관하고 있는 그 창고를 말하는 건가”
“예, 예.”
“거짓 보고, 아니야.”
이런 중요한 안건을 가지고 장난칠 정도로 해방 전선의 분위기는 개판이 아니다. 화를 내는 건 공연히 에너지만 소비하는 행위다.
“피해는”
“모스크바에 파견되었던 인원 전원 사망에 창고 안에 있던 물건은 전부 압류……로 추측됩니다.”
“분명히 모스크바에서는 아인소프와 실버 나이트 길드, 그 외에도 여러 상인 길 드가 뒤를 봐주고 있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그쪽에서는 어떻게든 말리거나 위험을 알려 주려고 했지만 진압에 나섰던 사람 이 실버 나이트 길드의 영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인소프보다 더 높은 사람 대체 누구 의장 탑 랭커 세르게이”
“유성훈. 맹주 유성훈이 직접 나섰다고 합니다.”
“…….”
유성훈이 직접 나섰다면 막는 게 이상한 거다.
맹주씩이나 되서 대체 왜 직접 그런 자잘한 사건에 나선 건지, 그 정보는 어떻게 알아낸 건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랏시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런 충동을 참아 낼 수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일단 사태 수습에 전념해야 할 상황이었다.
“……일단 도시 내에서 소모되는 마약을 절반으로 줄이고 남는 양을 모스크바로 보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
“예 그랬다가는 사람들 반발이 엄청날 텐데요”
“관리자 한 명이 무단으로 물건을 빼돌려서 당분간 물량이 줄어들었다고 해. 자유연맹에서 보내 온 첩자로 몰아가면 원망을 돌릴 수 있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려던 사람들은 터지기 일보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는 랏시를 보고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되삼켰다.
건들면 죽인다는 분위기가 사방을 짓누르고 있었다.
“할 일이 늘어났으니 잠깐 휴식을 가지도록 하지. 모두 꺼져…… 아니 나가고 30 분 후에 다시 들어와.”
랏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바깥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전부 나가자 랏시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방 안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이 많네.”
“정말 그래요. 말하신 대로 이 망할 조직은 1년, 아니 앞으로 반 년 내에 사라져 야만 해요.”
“조직에 애착이 없는 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런 조직을 만든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요 안 그래요 네브라 님”
랏시의 말을 받아 주는 것은 바로 네브라였다. 최초의 시련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고 알려진 네브라가 사실 도시 안에 남아 있다는 걸 아는 사 람은 오직 단 한 명, 랏시가 유일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속일 생각은 아니었다. 네브라는 분명히 미션을 수 행하기 위해 떠났다. 다만 생각한 것보다 미션이 훨씬 더 일찍 끝났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훈 같은 경우는 능력치 제한 조건을 간신히 턱 걸이로 충족했고 천재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재능을 가진 탓에 온갖 꼼수와 속임수를 이용해서 힘들게 미션을 클리어했다.
그러나 네브라는 다르다. 능력치도 여유가 있고 무엇보다 대회에서 우승해 얻은 아이템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즉 템빨로 빨리 미션을 클리어하고 귀환했다.
원래는 귀환한 즉시 업무로 복귀할 생각이었지만 네브라는 이 기회를 이용해 한 번 내부 감사를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단기간에 과도하게 몸집만 불린 탓에 해방 전선은 여러모로 부실한 부분이 많았고 이런 저런 곳에서 보낸 첩자도 많았다. 자신과 그 외 중요 간부들이 자리를 비 운다면 어떤 식으로든 불온한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상황을 지 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한 대로군. 역시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어. 물류 창고 하나가 당한 건 타격이 너무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꼬리를 잡아서 다행이야.”
“예측이 맞아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자유연맹에서 들어오는 자금으로 어떻게든 구멍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임시변 통에 불과해요. 사람들에게서 돈을 짜내는 건 시간이 걸리고 어디서 급하게 돈을 끌어올 수 없나요”
“일단 루시아한테 가 봐야겠군. 이번에 휴양지 개발을 한다고 자유연맹에서 예 산을 받았으니 그걸 끌어올 수 있을 거야.”
“빌려줄까요 엄청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은데.”
“루시아라면 절대로 빌려줄 거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직접 토론토로 가서 끌어 올 테니 너는 그 사이에 물류창고의 정보에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추려 놔.”
네브라는 그대로 어둠 속에 녹아들어 사라져 버렸다. 웃는 얼굴로 네브라를 배 웅한 랏시는 세 번째 만년필을 들고 빈 종이 위에 잉크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일단 죽은 사람들은 전부 빼고 나랑 네브라 님도 빼면…….”
사각사각.
차곡차곡 적혀 나가기 시작하는 이름. 그 명단 가장 위에는 이정이라는 이름이 뚜렷이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