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6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53화
네브라가 최초의 시련 미션을 끝내고 귀환했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성과는 적은 단순한 임무에 투입하고 직, 간접적인 방법을 써서 조금씩 자신의 권한을 줄이기 시작했다.
물론 과도하게 커진 2인자에 대한 견제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 렇다고 하기에는 손바닥 뒤집듯이 갑작스레 바뀐 태도를 설명할 수 없었고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본 끝에 이정은 자신이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 역정보를 제공하다니. 랏시 이년이 깜찍한 수단을 썼군.”
그렇게까지 특별한 방법은 아니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항상 사용하면서 부하들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성훈, 그러니까 자신과 결전을 벌이기 전에 한 번쯤 한번 내부를 솎아 낼 거라는 것도 당연히 예측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해 버린 건 설마 지금 같은 타이밍에, 그것도 자신에게 이런 방법을 사용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이간계를 벌일 때만 하더라도 해방 전선의 인재난이 심각했고 그나 마 고급 인력들은 현장 업무에 투입되어 한동안 사실상 랏시 혼자 해방 전선이 라는 대조직을 통제하고 이끌고 있었다.
조직 운영과 도시의 개발 및 외교 문제, 거기에 이간계의 진행 등 일이 너무 많아 랏시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없다는 판단하에 일을 벌인 건데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가 영 좋지 않았다.
‘랏시가 나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부길드장을 상대로 이런 함정을 파는 건 독단 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아마 네브라의 허락이 있었을 테지. 네브라가 미션을 하러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딱히 나를 경계하거나 꺼려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 그렇다면 네브라가 미션을 예상보다 일찍 마치고 몰 래 귀환했었고 그때 몰래 내부 조사를 진행한 건가 그러면 그 기간 동안 랏시가 보여 준 깔끔한 일처리나 예상에서 벗어난 세력 확장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만으로 일의 전모를 완벽하게 추측해 내는 이정의 능력은 분명 대단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이미 일이 터지고 난 후에 전말을 알아봐야 늦은 감이 있었다.
물론 그때의 실수 이후로 철저하게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더 이상 의심받을 꼬투 리도 내비치지 않았지만 이미 네브라와 랏시는 자신에 대한 마음을 굳힌 듯 오 히려 더 노골적인 함정을 파고 있었다.
‘들키는 상황도 예측해 놓기는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들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네브라에 대한 평가를 재조정해야…….’
“이정 님”
“아 미안. 잠깐 생각에 빠져 있었군. 그래서 이제 이해할 수 있겠나”
“면목이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좋아! 테스트는 합격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도시에 귀환하는 즉시 전원 정 규 부대로 편성이 바뀌고 새로운 장비를 지급받게 될 거다.”
“예 저희는 불합격 아닙니까”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능력만이 아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임무를 포기하거나 물러서는 유연성도 요구되지. 합격에 집 착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한계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희생이 나오기 전에 도움을 요청한 건 충분한 플러스 요인이야.”
“그, 그래도 규정상…….”
“교관은 나다. 내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가”
“아닙니다!”
해방 전선에 들어온 이후 경쟁에 경쟁만을 반복하느라 지쳐 있었던 사람들은 이정의 따뜻한 말에 감동어린 표정을 지었다.
다른 상관들은 물론이고 해방 전선의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어둡거나, 단호함, 결과, 냉정함만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정의 행동이 훨씬 더 대비되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손발을 잘라 내고 압박해 가기 위해 딴에는 이런 시시한 임무를 맡겼을지 몰라도 이정이 생각하기에 이건 전혀 시시한 임무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햇병아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자신을 거쳐 간 사람들은 나중에 자유연 맹과의 전투에서 활약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정은 교관 역할을 하는 도중 편 의를 봐주거나 평가 결과를 조금씩 상향 조정하는 식의 연기를 하기 시작했고그 결과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든지 물어보라구. 프라이버시에 관련되거나 기밀 정보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말해 줄 테니까.”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일단 대부분은 원하는 정규 부대에 배속받게 되겠지. 능력이 되는 사람이나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의지가 있는 사람은 별도의 훈련 과정을 거쳐 제임스나 송 일학, 길드장 직속의 정예 부대에 배속받을 테고.”
이정의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런 내용을 물어본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 님의 직속 부대로 지원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후우. 아쉽지만 불가능한 일이야.”
이정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지만 금세 낙담어린 표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째서입니까 정원이 초과하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부대에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나는 부대를 지휘하거나 보유할 권한을 받지 못했어.”
“…….”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불쌍하게 바 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해방 전선을 만들고 여기까지 키워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분명 네브라 지만 다른 사람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고 모두들 가진 바 능력과 거둔 성과에 의해 그에 걸맞은 직책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중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정이었다.
처음부터 네브라를 보좌한 것은 넘기더라도 흑사파를 포섭하고 블랙 버드 길드 와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해방 전선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이정이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공을 세우고 존재감을 과시했건만 어쩐 일인지 어느 순간부 터 서서히 이정에 대한 처우가 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름대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처리했다고 했지만 직속으로 부릴 수 있는 병 력이 전혀 없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정에 대한 대우가 석연치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분들을 비하하거나 낮잡아 보려는 말은 아니지만 사 실 이정 님이야말로 해방 전선을 만든 주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노골적인 견제라니.”
“쉿.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야. 방금 전 발언은 그냥 넘길 테니 앞으로는 조금 행동에 주의했으면 좋겠어.”
“제 입으로 제 생각을 말하겠다는데 뭐가 문제가 됩니까 심지어 반역이나 부정을 저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정한 대우를 해 달라는 건데 그것도 문제가 됩 니까”
‘문제가 되니까 하지 말라는 거다.’
남자의 발언을 듣고 눈을 빛내는 몇몇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정은 혀를 찼다. 자유연맹에서야 발언의 자유가 허락될지 몰라도 해방 전선에서는 그런 게 허용 되지 않았다. 지배층이나 해방 전선에서 추진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그 사 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사라지거나 막대한 빚을 지고 노예의 신세로 떨 어진다. 아는 사람은 전부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 남자는 해방 전선에 들어온 지 얼 마 안 되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네 마음은 고맙지만 조직이라는 게 그렇게 생각한 대로 휙휙 돌아가는 게 아니 야. 네브라 님도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을 테니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자제 해 줘.”
“……이정 님.”
“앞에서 까면 모를까 이렇게 뒤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면 마치 뒷담 까는 것 같 잖아 남자가 되서 뒷담이나 까면 쓰겠냐 하하하하!”
이정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자 굳어 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이걸로 이들은 이정이 부조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인식의 변화야말로 중요 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이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가기 전에 합격 기념으로 간단하게 바비큐 파티라도 열자고! 도시로 돌아 가면 이렇게 만날 여유도 없을 테니 말이야.”
“바비큐! 술도 있습니까”
“후후후. 나를 뭘로 보는 거냐 미리 인벤토리에 술을 꽉꽉 채워 놨지. 사냥꾼들은 나가서 대충 멧돼지 몇 마리만 잡아 와!”
양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지만 이정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도 모르나 보지 곁에 두는 것도 못하겠 으면 하다못해 과감하게 쳐내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야. 넌 스스로가 단호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호함일 뿐, 마음을 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물렁해. 그게 바로 네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
이득이 된다면, 이유만 충분하다면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단호하게 쳐낼 각 오가 있어야 한다. 그걸 하지 못하는 네브라는 여전히 악당이라고 하기에는 질 이 떨어졌다.
“모두 마시고 취하자고!”
“우와아아아아!”
* * *
자유연맹에서는 주기적으로 각 분야에서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거물이나 대 형 길드의 대표, 각 도시의 의장과 의원들을 모아 회의를 개최한다. 각 계층의 권력자들과 그들을 호위하거나 수행하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이 행진 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는 얼마 안 되는 볼거리에 속하기 때문에 회의가 열리는 날은 참석자들과 구경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커다란 인파를 형성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야, 저기 봐라. 로스엔젤레스에서 온 사람들이다.”
“돈 많이 버나 보네. 갑옷이랑 무기에 전부 금칠한 거 봐라. 눈 부셔서 제대로 쳐 다보지도 못하겠다.”
“금이야 얼마 하지도 않은데 뭐. 그래도 확실히 휘황찬란하기는 하네. 그 다음으로 오는 건 모스크바 쪽인가 왠지 사람이 적어 보이는데”
“모스크바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람이 적어. 예전과 비교해 보자면 거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겠군.”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인걸까”
이번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4대 도시에 속한 사람이라고 봐도 좋았다.
전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4대 도시에 속하지 않은 세력이 딱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무시무시한 기세로 세력을 확장시켜 몸집만큼은 자유연맹과 비교해도 될 만큼 성장한 신흥 강자, 해방 전선은 모든 하위 도시를 대표한다는 입장을 밝힌 채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회의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뭐 씹은 표정이라고 할 수 있 었다. 그동안 하위 도시와의 마찰 때문에 발생한 손해가 점점 부담되는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대화조차 하지 않던 하위 도시에서 회의에 사람을 보낸다는 말을 듣고 전보다 대폭 상향된 보상안을 가지고 왔다. 이 정도라면 분명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대표로 나온 랏시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말이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저희 해방 전선이 자유연맹과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발표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해방 전선은 지난번에 내린 판 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한 합당한 보상을 해 주지 않 는다면 전쟁도 불사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애써 돌려 말했지만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건 즉 선전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