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3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90화
그 근원지는 바로 왼손에 끼고 있는 맹약의 페어링. 이것은 반대쪽 반지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과 스탯 일부를 같이 공유한다.
물론 그 효과는 고작해야 5%로 미비한 수준이지만 유성훈의 5% 스탯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힘이 끓어 넘치거나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라도 감지덕지였다.
“스승님의 원수! 지금 여기서 갚겠다!”
송일학을 선두로 남은 무인들이 전부 동귀어진의 각오로 펼치는 스킬들을 마주하며 미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을 들어올렸다. 정말로 만족스러운 싸움이었다.
단순히 스탯과 스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기량을 완벽에 가깝게 끌어올린 천 명의 무인,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전부 내 버리고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광적인 마음가짐, 이대로 끝내는 게 아쉬울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고 지금이 바로 끝내야 할 때였다. 눈을 감아도 적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미리내는 누구와 싸우더라도 움직임과 버릇, 특징들을 전부 기억하고 분석하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했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수준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분석. 그리고 이 분석이 끝날 때가 싸움이 끝날 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 검 心食!!
원래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해서도 안 되는 미리내가 만들어 낸 사기적인 스킬. 체력이나 마력은 일절 들어가지 않는, 그저 정신력만으로 구현해 낸 무형의 검 수십여 개가 허공에 나타나며 무인들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여 개가 넘는 검들은 현란하게 움직이며 접근하는 초식들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단순히 일직선상이나 단조로운 이동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밀한 컨트롤에 사람들의 표정에 절망이 깃들었다. 검 하나 하나가 최고 수준의 초식을 펼치며 상대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변화하며 급소를 노려 온다.
미리내는 이 모든 검을 미리 움직임을 지정해 두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제어 하고 수족처럼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여천이 죽은 이후 지금까지 와신상담해 오며 미리내를 꺾기 위한 검을 만드는데 모든 시간을 바쳤다.
여천으로부터 받은 가르침, 뼈를 깎는 노력, 조금이라도 강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더러운 신발을 할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행해 왔다. 그렇게 만들어 낸 원념과 살기로 점철된 자신의 검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며 송일학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왜?”
처음부터 이걸 꺼내 들었더라면 싸움은 진작에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걸 봉 해놓고 불리한 싸움을 펼쳤단 말인가? 그에 대한 미리내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면 너무 시시하잖아?”
양쪽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질 것 같으면 핸디캡을 부여해 더 재밌는 경기가 펼쳐지게 만든다. 상대팀에 미리 점수를 몇 점주고 시작하든가, 우승마에 무거운 짐을 지우든가, 일부 기술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미리내가 자신에게 건 핸디캡의 내용은 심검을 오직 방어 용도로만 사용한다는 것. 그러나 분석이 다 끝나고 지금의 자신이 질 가능성은 0%라는 사실을 깨닫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핸디캡을 풀기로 했다. 심검의 진정한 무서움은 원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니라 검 하나하나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열 개의 검을 만들면 열 명의 자신이 생겨나고 백 개의 검을 만들면 백 개의 자신이 생겨난다. 원래부터 치트키적인 존재였지만 심검을 얻은 이후 미리내는 완전히 범접 불가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
송일학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머리도 거의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천무인의 시체와 피로 시체로 물든 시산 혈해를 둘러보던 미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김이현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쉽지만 저건 자신이 아닌 볼프의 몫이다.
‘그럼 어디…..’
허공에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가볍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며 주변의 전장을 훑어보기 시작 했다.
수십만 명이 어울려 싸우고 있는 전장이었지만 미리내가 찾는 건 오직 한 사람, 성훈뿐이었다. 그리고 곧 유성훈을 발견한 미리내는 희미 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네.”
***
일격필살. 만약 윈드캐논에 정면으로 직격 당했더라면 분명히 머리가 통째로 뜯겨 나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훈의 능력치는 네브라가 상상하고 있는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근력으로도, 민첩으로도, 체력으로도, 지혜로도, 그리고 무엇보다 행운으로도 말이다.
코앞에서 터져 나온 격풍의 물결이 볼에 닿는 순간 인지의 한계를 초월한 반사 신경과 속도로 몸을 회전시켜 공격을 흘려낸다. 팔 하나를 희생해 날린 비장의 한 수는 고작해야 뺨에 얕은 자상 하나를 입혀 놓는 것으로 그쳤고 곧 이어서 바로 그 상처 하나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
“웃, 으아아아아아!”
단 세 번의 칼질로 오른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단기간에 극심한 출혈을 한 것 때문인지 의식이 흐려지는데 절단면으로부터 타고 올라오는 지독한 통증은 정신을 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죽고 싶지만 초인의 육체는 그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보기 흉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네브라의 가슴팍에 발을 올려놓은 성훈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진짜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핸디캡 주고 수준 맞춰 싸워주니까 내 가만만하게 보였나 봐? 크큭”
“나, 난, 난 강하다. 난 강하다고…… 이럴 수…..”
“그래, 넌 강해. 다만 내가 더 강할 뿐이지.’
개미가 수천, 수만 가지 잔재주를 익혀 봤자 개미일 뿐, 인간의 손가락 하나조차 당해 내지 못하는 존재다.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절대로 둘 사이의 격차는 좁힐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예전 잭 애프론이 그랬던 것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정도의 불운이 있다면 모를까 성훈의 행운은 네브라의 행운의 두 배를 가볍게 넘어갔다.
“어쨌든 정말로 만족스러웠어. 오랜만에 치열한 머리 싸움도 해 보고 피 터지는 싸움도 해보고 죽을 뻔한 위기도 넘겨 보고, 정말로 네게는 백 번 천 번을 감사해도 모자랄 것 같아. 이 정도면 완벽하게 내 기대를 충족, 아니 기대 이상의 성과라니까!”
“처, 처음부터 네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던 거냐? 이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네가 계획하고 있었던 거나?! 유성훈! 아니, 이정!”
“그렇기는 하지만 또 내 탓하면서 징징거리지는 말라고?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너한테 있으니까.”
성훈은 아수라의 형상을 하고 있는 네브라의 살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내며 말했다.
“말을 물가까지 데려다 놔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다는 말이 있지. 물을 먹을지 말지 결정 하는 것은 오로지 말의 의지. 내가 여러 가지 준비를 해 두기는 했어도 네가 내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 을 거야.”
“그런, 개소리를……”
“복수를 포기했더라면 루시아와 알콩 달콩 행복하게 살아가고 아무도 피해 보지 않는 행복한 세상이 펼쳐졌겠지. 하지만 네가 자꾸 나대서 결국 이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거잖아? 안 그래?”
“…..”
네브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훈의 말은 전부 개소리였지만 전부 최소한의 근거나 사실을 갖추고 있지 아예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말대로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 을 것이다.
“네 역할은 여기까지야. 이제 슬슬 퇴장을….”
“자, 잠깐!”
성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브라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저주의 말을 퍼붓거나 정신을 놔 버리고 현실도피성 발언이나 내뱉을 줄 알았는 데 의외로 목소리가 팔팔했기 때문이었다.
“뭔데?”
“나, 날 살려 줘라, 그냥 보내 줘! 그러면 이번 보다 더 재밌고 긴박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마! 네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다시 부활해서 싸워 주겠다고! 네가 원하는 건 그거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살려 줘, 아니, 사, 살려 주세요!”
“와우, 우리 순둥이 네브라가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단 말이야? 그것도 자존심까지 다 버려 가면서? 이야, 이거 정말 기대 이상인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내팽개치고 싹싹 비는 모습이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흐뭇하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성훈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노릇이었다.
처음 강제 미션 도중 마주쳤을 때는 네브라는 자신의 위치에 있었고 자신은 네브라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단 네브라는 진짜 타락해 버렸고 성훈은 정의의 영웅을 연기하는 악당이라는 뒷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네브라는 비굴함의 극치를 선보이며 목숨을 구걸했다. 살아남는다면 희망이 있지만 죽어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굴욕이라도 감내한다는 의지를 느낀 성훈은 한결 풀어진 미소를 지었다.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긴 하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 없어.”
“어째서?”
“이미 새로운 소재를 찾았거든.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두 번 먹으면 질리는 법이잖아? 넌 이미 질렸어.”
“아, 안 돼! 멈춰! 루시아! 랏시! 송일학! 제임스! 누가 날 구해줴”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좋은 말 하나 해줄게.”
그야말로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네브라를 향해 성훈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고의 복수는 바로 용서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하고 싶다고 했지? 잘 됐네. 마지막에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어서. 그럼 이만 네브라, 아니 아르벤. 재밌었어.”
“멈……”
서걱!
아르벤은 그렇게 죽었다. 사지가 잘려 나간 처참한 몰골로, 한때 자신이 지켜 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꼴로 말이다.
분노, 원한, 비굴, 애원 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엉켜 있는 아르벤의 얼굴을 바라보던 성훈은 곧 그 머리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유연맹의 사람들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해방 전선의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해방 전선의 병력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의 승패가 갈린 순간부터 이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뒤로 물러 나는 해방 전선을 바라보며 성훈은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메인 디시는 충분히 먹었으니 이제 디저트를 즐길 차례다.
“모두 쓸어버립시다!”
“우와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