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6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93화
프라이팬을 쥔 미리내의 손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몇 번이고 손잡이를 날려 먹고 특별히 주문 제작한 프라이팬이 아니었더라면 이번에도 손바닥 자국이 뚜렷하게 남았으리라.
마치 생사대적을 마주하듯 긴장한 눈으로 프라이팬 안의 내용물을 바라보던 미리내는 시간이 됐다고 느낀 순간 약간의 오차도 없이 손목에 스냅을 줘 프라이팬을 흔들고 젓가락으로 내용물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대로 잠시 기다린 이후에 정확히 그릇에 담아내면……’
요리를 시작한 순간부터 완성될 때까지 쉬지 않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두통이 느껴졌지만 덕분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요리를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 야채 볶음을 정갈 하게 그릇에 담아낸 미리내는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성훈을 향해 외쳤다.
“저녁 먹어!”
“응? 아 잠깐, 이것만 마저 읽고……”
“음식 식으면 맛없어진단 말이야. 빨리 안 오면 나 화낸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성훈은 미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뭐 읽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책 따위야 얼마든지 나중에 읽을 수 있지만 미리내가 해 준 음식을 식게 해서는 안 되지. 암!”
“……나한테 뭐 죄지은 것 있어?”
“그냥 오랜만에 집밥을 먹게 되서 그런 거야. 그동안 매일 바깥에만 나돌아서 이렇게 둘이서 식사할 기회가 거의 없었잖아? 자기 요리가 먹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노골적인 아부였지만 미리내는 살짝 볼을 붉히더니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결혼 4년 차에 접어들고도 아직도 여전히 신혼 초 같은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는 미리내를 바라보며 성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금 제일 검사의 눈을 단단히 가리고 있는 콩깍지는 아직 그 힘을 잃지 않은 듯 보였다. 몰래 저지른 일탈도 일탈이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미리내의 실력에 대해 한층 더 자세하게 알게 됐다.
마음만 먹는다면 직접 들고 휘두르는 것과 전혀 다름없는 움직임이 가능한 무형의 검 수십, 수백 자루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니, 안 그래도 무적의 검사한테 그런 사기 스킬까지 생기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젠장. 이러면 나도 또 수련할 수밖에 없 잖아.’
성훈같이 나태하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 최강의 자리에 오르고도 꾸준히 수련하고 능력을 갈고 닦은 진짜 이유는 네브라를 대비해서가 아니라 미리내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명지책이 었다. 남들이 볼 때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리에 있다고 할지 몰라도 본인만큼은 진짜 최강자가 누구인지 아는 만큼 잠시도 쉬거나 게을러질 수 없었다.
“자, 먹어 봐.”
“음, 오! 맛있는데? 언제 이렇게 요리 실력이 늘어난 거야?”
“놀래 주려고 자기가 없는 동안 몰래 연습했어. 먹을 만해?”
“먹을 만하나고? 최고야 최고!”
사실 미리내의 음식은 그렇게 극찬할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수십 번이나 요리를 날려먹고 정확히 레시피만을 따라 만든 음식은 맛은 있었지만 특출한 구석이 없는, 좋게 말하자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밋밋한 그런 음식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장인의 경지에 다다른 성훈의 솜씨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음식이다. 그러나 과거 미리내가 만들었던 하수구 내음이 물씬 나던 국이나 고기인지 소금 덩어린지 분간할 수 없는 고기 요리, 요리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재 본연의 맛을 극히 충실히 살린 반찬에 비교하자면 지금 이 밥상은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요리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미리내의 노력을 생각하자면 만한전석이 부럽지 않을 정도 였다.
“나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허락해 줄 수 있어?”
미리내의 뜬금없는 질문에 성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리내는 자유연맹의 부맹주이자 무명길드의 부길드장이고 더불어서 개인적인 정보 및 무력 조직까지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되지 왜 자신한테 물어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허락? 내가 허락해 줄 게 뭐가 있어? 설마 이번에 내가 했던 에너미 메이커 계획 같은 걸 하려고? 하하하.”
“…….”
“하, 하하, 하”
“…….”
“설마 진짜 그거 하려고?”
은근슬쩍 시선을 피한 미리내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게 의외로 재밌더라고. S급 미션이고 뭐고 더 이상 싸울 맛이 나는 상대가 없어져서 조금 지루해졌는데…… 아! 물론 자기와의 대련은 언제나 새롭고 만족스러워. 단지 자기는 나를 너무 과보호해서 죽일 각오로 덤비거나 진심으로 싸우지 않는 게 살짝 아쉬워서. 조금은 새로운 종류의 상대와 싸워 보고 싶어서…… ”
성훈의 명한 표정을 본 미리내는 혹시 자신이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나 싶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드디어 미리내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는구 나!’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대련이 다가올 때마다 걱정과 부담으로 밤잠을 설치던 게 도대체 몇 번이던가.
새로 열정을 쏟을 곳을 발견하면 그만큼 자신에게 향한 과도한 기대가 줄어들 거라는 생각에 성훈은 즉각적으로 찬성했다.
“오케이! 내가 뭘 하면 될까? 하위 도시는 전부 사라졌으니 토론토를 이용하면 되려나? 부족하면 동전 던지기로 로스엔젤레스랑 모스크바 중에 하나 더 추가하지 뭐.”
자기들이 속해 있는 도시의 운명이 고작해야 동전 던지기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면 난리가 일어났겠지만 다행히 이 자리에는 둘밖에 없었다.
“고맙지만 나는 규모를 키우는 게 아니라 질을 끌어올릴 생각이어서 그렇게 많은 지원은 필요 없을 것같아.”
“그러면 왜 나한테 허락을 구한 건데?”
“일반인들 기준에서는 조금 위험한 물건을 푸는 게 되어 버려서 나 혼자 결정하기는 힘들 것 같았거든.”
미리내는 인벤토리에서 책을 끼내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냐는 눈으로 바라보던 성훈은 그 책들의 겉표지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광각비검, 해검, 잡탕창법, 백팔본세, 청랑도법…… 이거 네가 만든 무공서들 아니야?”
“응, 솔직히 자기나 나한테는 냄비 받침대나 불쏘시개 정도의 가치밖에 없지만 일반인들한테는 사정이 다르잖아. 이 무공서들을 전부 풀고 몰래 깨달음 같은 걸 간접적으로 전달하면 나름 대로 쓸 만한 무인들이 나올 것 같거든.”
단 한 권만 풀려도 그 즉시 피바람이 일어날 절세비급을 냄비 받침대 취급하는 게 기가 찼으나 미리내는 창안자이기도 했고 마음만 먹으면 저런 무공서 따위는 하루에 한 권씩 찍어 낼 능력이 있었다. 창에 대해서는 초짜이던 자신이 잡탕창법을 익힌 것만으로 창의 달인이 된 것을 감안한다면 이 무공서들이 풀릴시 최상위 랭커, 어쩌면 탑 랭커에 비견될 만한 강자들이 대거 탄생 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허락할 수 없지 만……’
“해.”
“해도 돼?”
“그럼, 우리 자기가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마음껏 하라구!”
뛸 듯이 기뻐하는 미리내를 보자 성훈 역시 기분이 좋아져 함박웃음을 지었다.
‘늑대가 아무리 많아 봤자 늑대일 뿐이지. 호랑이, 아니 용을 잡을 수야 있겠어?’
생태계 파괴자인 미리내가 버티고 있는 이상 이깟 무공서 좀 풀린다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갈 일은 없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소재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런 게 필요했으니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 위에 있는 책 중 몇 권을 따로 골라내 인벤토리에 던져 넣은 성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흠, 소화 겸 오랜만에 운동이나 같이 할 까?”
“어떤 운동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치르는 지고지순한 의식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문자 그대로 진짜 운동을 말하는 거야?”
“직접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후후, 어느 쪽이든 각오하는 게 좋을 거 야.”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하면서도 성훈은 조금도 겁먹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다가갔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단란하고 애정이 넘치는 평범한 부부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촤악!
“끄아아아악!”
“조, 존슨! 크옥, 이 악마 같은 새끼들아! 대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건데!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노예로 부려 먹혔다고! 그런 데 대체 왜?”
“흐흐흐. 이유야 간단하지. 딱 봐도 니들은 약하게 생겼거든.”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내놨으면 이런 일은 되지 않았을 거 아니야. 안 그래? 꼭 지들이 화를 자초해 놓고 일이 잘못 되고 나서야 질질 짜기나 하고 있으니.”
험상궂게 생긴 강도들의 협박에 남자는 바스러질 듯이 강하게 이빨을 악물었다. 전쟁이 끝났 을 때는 죽지 않고 살아난 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가진 듯만 했다.
해방 전선의 사람들만을 한 성에 몰아넣고 감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비록 외부의 지원은 없다지만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자유가 보장된 성 안에서 사는 게 천배, 만 배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처참하게 타락하거 나 약물에 찌들어 버린,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는 남이 가진 것을 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3만 명의 짐승들을 한곳에 가둔다. 짐승을 통제할 조련사도, 독보적인 강함으로 모두를 찍어 누를 강력한 지도자도 존재하지 않는 이 성은 인세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방 한 조 각을 위해 다투고 이유를 만들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모습은 마치 아귀도나 수라도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크흐흐흐흐, 여기서는 약한 게 죄야. 약한 놈은 강한 놈한테 죽어도 할 말이 없어.”
“그 말대로라면 너도 죽어도 된다는 소리로 군.”
콰직!
강도는 심장을 꿰뚫은 칼을 내려 보더니 곧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해 버리고 말았다. 동료가 당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복수는 커녕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남자에게서 풍겨 오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 자기들도 얼마 전까지 노예였던 주제에 같은 노예에게 칼을 겨눠? 너희들은 살아갈 자격도 없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당신들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도와주십쇼. 그게 은혜를 갚는 겁니다.”
이 도시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내 뱉은 사람의 정체는 바로 시저였다. 토론토의 포로들을 구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노예들을 위해 자유연맹에서는 사면령과 함께 새로운 신분을 마련해줬지만 시저는 그 모든 보상을 거부하고 일부러 이 지옥도에 들어왔다.
그 이유는 바로 단 하나, 자신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한 사람의 명령 때문이었다.
‘저보고 이 도시에 들어가란 말씀입니까?’
‘……너에게는 정말로 면목이 없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건지 이 유를 듣고 싶습니다.’
‘일체의 규율도, 통제도 없는 무법지대에 3만 명이나 되는 짐승들을 풀어놓는다면 정말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지옥이 펼쳐질 거야. 물론 지금 까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전부 다 짐승들만 있는 건 아니야. 노예들처럼 어쩔 수 없이 따랐던 사람들도 있고 최소한도의 양심을 갖춘 사람들도 있을 거야. 네가 그들을 구하고 하나로 모아 지켜 줬으면 한다.’
“…….”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사람 들을 빼내기 위해서는 안에서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해. 바깥에서도 활약하면서 여론을 바꾸고 수뇌부들을 설득할 협력자가 필요하지. 그러니……’
시저는 붉게 물든 이정의 눈과 떨리는 목소리를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굳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정의 눈물만으로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죽으라는 명령을 한다 하더라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곳은 지옥이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임무를 맡긴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고 버터서 살아 남아서 이정을 다시 만나고 말 것이다. 다만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지와 동시에 현실을 바 꿀 수 있는 힘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다행히 이 정은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을 건네줬다.
시저는 어느새 글 썽이는 눈물을 훔쳐 낸 후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꼭 기대에 부응하고 말겠다!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다시 그분의 곁으로 가겠다!’
이 날 시저가 품었던 다짐은 정확히 절반만 이루어지게 됐다.
시저는 확실히 몰라보게 강해지고 강력한 동료들을 얻었지만 언제, 어디서, 대체 어떤 경로로 흘러들어온 건지는 몰라도 시저가 가지고 있던 무공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십 권의 무공서의 존재로 도시는 더 심한 혼돈에 휩쓸려 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을 맞이한 후, 세상은 성훈에 의해 다스려졌다.
성훈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세상을 통치했으나 어째서인지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사고들이 터지며 많은 희생과 고통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수록 성훈의 지배력과 권한은 오히려 더 공고해졌으며 최후의 무대에 도전할 때까지도 성훈은 유일무이한 절대영웅이자 지도자로 존경받으며 만인의 우러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