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7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94화
“……대충 그렇게 된 겁니다. 어차피 다 아시는 이야긴데 들어서 재밌습니까?”
“아주 재밌었네. 객관적으로 아는 것과 당사자의 입으로 이야기를 듣는 건 큰 차이가 있거든. 이거 말고 다른 애기도 해 주면 안 되겠나? 미리내가 뿌린 무공서로 생긴 일백 고수들의 분란이라든지, 자네 정원에서 탈출한 난의 이야기라든지, 여자로 모습을 바꾸고 스스로 분란을 일으켰을 때라든지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은 것 같은데.”
“글쎄요. 더 이상 말해 봤자 앞서 애기한 것의 반복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부디 꼭 듣고 싶네만.”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들려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성훈이 말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더 이상 추궁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성훈의 말대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시간은 많으니 들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미래다. 더 미션의 세계에 있을 때도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이 바로 유성훈이다. 그런데 이제는 로키의 힘과 자리를 이어받아 신 중에서도 수십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신大 神의 자리에 오르고 그 외 유성훈을 따르던 미리내나 사종원, 루시아 같은 사람들 역시 여러 대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그 영향력이 전 차원에 미치게 됐다.
비록 창조주의 자리를 물려받지는 않았어도 이 정도 힘과 영향력이라면 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성훈이 무슨 일을 벌일지가 더 기대됐던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뭘 할 생각인가?”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으십니까? 혹시 뭐 하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닐세. 자네 마음 가는 대로 무슨 일을 벌여도 된다네. 다만 개인적으로 자네의 행보가 궁금 해서 말이야. 부디 꼭 들려줬으면 하네.”
솔직히 그냥 무시하고 싶었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대신의 반열에 오르면서 눈앞의 이 노인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된 성훈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니까 우주나 차원의 규모로 넓혀도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랑 별로 다를 게 없더군요. 그래서 한번 변화를 줘 보려고요.”
“전쟁?”
“예. 조그만 대륙이나 나라, 행성, 은하계 정도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 빛과 어둠, 존재하는 모든 차원과 모든 초월적인 존재, 대신까지 피해갈 수 없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던 그런 대전쟁을 말이죠. 세계가 판에 박힌 듯 굴러가는 게 싫어서 더 미션이라는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셨죠? 저도 비슷합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것을 부술 수밖에 없죠.”
노인은 속으로 실소를 지었다. 원래부터 성훈이 특이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로키의 이름을 이어받은 존재가 신들의 황혼이라 불리는 라그나로크Ragnarok를 일으키려 하다니. 우연도 이런 지독한 우연이 다 있을까 싶었다.
“내가 좀도와줄까?”
“됐습니다. 게임 치트 써서 하면 재밌습니까? 자기 힘으로 해야 재밌는 거죠.”
“치트라니…… 크큭, 그런 대전쟁을 게임에, 나를 치트에 비유하는 존재는 세상 천지에 오직 자네 하나밖에 없을 게야. 그런데 정말로 괜찮겠나? 혼자서 그런 걸 하려면 시간이든 노력이든 엄청나게 들어갈 텐데?”
“그것도 즐거움이죠. 일단 바로 시작하는 건 아니고 한동안은 좀 장난이나 치면서 쉴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하루도 마음 놓고 쉴 날이 없어서.”
성훈을 미리내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일 때도, 신이 되고나서도 여전히 일편단심에 눈에 거한 콩깍지가 씌어 있는 미리내였다. 속임수와 장난에 능한 로키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아직까지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장난이라. 옆에서 구경 좀 해도 되겠나?”
“그 정도라면 상관없습니다. 근데 보셔도 별로 재미도 없을 텐데요?”
“무슨 장난을 치려고?”
“쉽게 말하자면 관찰이랄까? 개미나 곤충 같은 걸 잡아서 케이스에 넣어 놓고 구경하지 않습니까? 그거랑 비슷한 겁니다.”
“악취미로군.”
“수백만 명을 납치해서 새로운 세계에 던져 놓으신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클클, 그도 그렇군. 그래서 정확히 어떤 관찰을 하려고?”
“저희들이 겪은 것과 비슷한 겁니다. 잘 살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시간대,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차원에 떨어진 사람은 과연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궁금해져서요.”
한마디로 노인을 침묵시킨 성훈은 허공에 손을 뻗고 이리저리 손을 휘저어 공간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동안 직접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생 했으니 관객의 입장에서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남이 기고 뛰고 날며 고생하는 모습을 구경하겠다는 정말로 못 되먹은 심보였지만 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성훈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 갔다.
“찾았다.”
작가후기 악살법 외전 끝났습니다! 이야, 그동안 정말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독자님들도, 저도 말이죠. 사실 원래 악살법 외전은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쓸 만한 이야깃거리도 없었구요.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출판사에서 외전을 쓰는 게 어떠냐고 권하더군요. 악살법을 완결작이 아니라 연재작으로 내기 위한 부득이한 권유이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어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이트에 올라가기 위한 편당 최소 글자 제한 수가 5천 자인데 이미 하고 있는 원래 작품+악살법 외전까지 더하면 하루에 1 만 자를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말이 1 만 자지 장르 소설 권당 글자수가 평균 12만 5천자입니다. 단순 계산하면 한 달간 약 2.5권씩 쓰는 페이스를 몇 개월간 감당해야 합니다.
그나마 악살법이 주중 연재라지만 그래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습니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갈 때도 무선키보드를 들고 가고, 친구들과 변변한 약속도 잡지 못하고 설령 잡는다고 하더라도 금세 자리를 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작품을 길게 늘이는 것도 아니고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려니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도 힘들고, 서로 영향을 받다 보니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 묘사가 비슷해지거나 어색하게 전개되는 부분도 생겨났습니다.
악살법 외전을 보시면서 자주 ‘성훈’이 ‘성민’으로, ‘네브라’가 ‘네르갈’로 오타가 났다고 지적해 주 셨는데 이 오타가 바로 다른 작품의 캐릭터와 겹치다 보니 난 오타였습니다.
더 재밌고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었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단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고 완결된 캐릭터들이 다시 한 번 움직이고 대화하며 스토리를 진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독자님 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해 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없던 의욕도 샘솟더군요. 완결된 이야기가 반 년간이나마 다시 생기를 얻고 독자님들의 관심을 받게 되서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물론 힘들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막상 코 앞에 닥치고 이렇게 힘들 거라는 걸 몰라서 어찌 어찌 견딘 거지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똑같은 제안을 다시 한 번 받는다면……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마지막 에필로그가 살짝 잘려 나갔습니다. ‘찾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악살법’이라는 소설을 막 완결 지었던 작가의 모습을 비추며 그 작가를 유성훈이 장난감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게 장르 소설인지 공포 소설인지 분간이 안 될 것 같아 ‘찾았다’에서 적당히 끝을 맺었습니다.
후후후, 덕분에 이걸로 차기작에서의 개연성 문제는 해결된 거나 다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