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78
0078 / 0473 ———————————————-
10.금상첨화
“그러니까 오해입니다! 제발 그런 말도 안되는 기대는….”
“알겠습니다. 단순히 제가 착각하고 있는거겠죠?”
찡긋.
‘이 사람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잖아!’
다 이해한다는듯이 눈 하나를 살짝 깜빡이는 미리내의 모습에 성훈은 혈압이 올라 쓰러질뻔했다. 이제는 설득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때가 되면 자연히 풀릴거라고 생각할뿐이었다.
“후,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수리나 할겸 찾아왔습니다. 날이 많이 상해서 말이죠.”
“그렇군요. 그럼 전 이만.”
상대방의 목적만 알고 깔끔하게 물러난다. 그러나 성훈은 차마 건물을 나설수 없었다. 미리내가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그, 급한 일이 있어서.”
“급한 일이 있으면 바로 중요한 안건만 나누죠.”
‘아니 보통 급한 일이 있다고 하면 나중에 만나자고 하지 않나?’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정보로 성훈은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대충 짐작할수 있었다. 물론 그걸 안다고 달라질건 없었다. 어중간한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상대는 무려 미리내가 아닌가? 탑랭커정도된다면 처음부터 이유없이 적대적으로 나와도 상대는 설설 길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렇게 긍정적으로 대해주는것만 하더라도 성훈에게 있어서는 다행이다.
“같이 행동했으면합니다.”
“예?”
“흠, 한 마디로 같이 파티를 이뤘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혹시 이미 다른 길드에 속하셨습니까?”
“기, 길드는 없습니다만.”
“그럼 잘 됐군요. 내일부터 같이 행동하죠.”
“잠깐만요, 여기서 이렇게 할만한 얘기는 아닌것같은데 일단 자리를 옮기죠.”
꽤 깊은 저녁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결국 주점에 들어가고 나서야 둘이서만 이야기할수있는 상황이 마련됐다.
“그래서 대체 무슨 소립니까? 같이 행동하자는건?”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파티의 리더는 성훈님이 맡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템의 분배나 그런걸가지고 째째하게 따질 생각도 없고….”
무덤덤한 어투로 열심히 자기 PR을 하고 있는 미리내를 잠시 바라보던 성훈은 차갑게 식은 맥주 한 잔에 냉정하게 식은 머리로 곰곰이 생각하며 불쑥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같은 파티가 된다고 대련같은건 해주지 않을겁니다.”
“읏!”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미리내는 단 한 마디에 볼을 붉게 물들였다.
“제가 언제 대련해달라고 말했습니까! 저는 그런걸 바라고 같이 행동하자고 한게 아닙니다!”
“그럼 어떤 이유에서 같이 행동하자고 하는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그게…요즘들어서 힘들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레 떠올린것같은 변명치고는 의외로 날카로운 이유였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미션은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유저들의 실력이 올라가는것보다 훨씬 높게 말이다. 일반적인 유저들은 E급 미션만 하더라도 파티를 구해서 클리어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병든 오크 사냥이나 들개잡기만 하더라도 혼자서는 위험부담이 늘어나고 클리어를 확신할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C급 미션만 하더라도 지난번에 했던 상단 호위에는 나름 상위권의 유저 수십명이 몰려와서 수행했다.
혼자서 활동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자신의 실력에 진짜 자신이 있거나, 겉멋만 들었거나, 둘 중 하나. 그리고 그 극소수 중에서도 마검이라 불리며 경원시되는 대상이 바로 미리내인 것이다. 무려 C급 미션을 단신으로 클리어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성훈은 D급 미션까지는 혼자서 클리어할수 있고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과감하게 하면 C급 미션도 도전할수는 있지만 클리어할수 있다고 확신할수 없다. 그러나 그 미리내도 최근 들어서 점점 힘에 부친다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파티를 구해야한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아준 사건이 바로 얼마전 있던 강제미션이었다.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혼자서 할수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어. 동료를 구해야해.’
같은 탑랭커들도 하다못해 작은 길드라도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동료를 늘리고자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힐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이 없다.”
성훈보다 더 인맥이 좁은 사람. 그것이 바로 미리내였다. 미리내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여러사람과 같이 미션을 수행한 횟수는 한손으로 꼽을정도로 적었다. 그러다보니 친한 사람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물론 그녀가 원한다면 온갖 길드에서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며 끌어들이려하겠지만 미리내는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등을 맞대고 싸울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내가 인정할수 있을만한 실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조금 겸손했으면 좋겠고, 예의도 바르면 좋겠지, 이왕이면 조금 잘 생겼으면….’
그리고 그런 조건에 아슬아슬하게 부합되는 인간은 오로지 단 한명밖에 없었다.
“그런고로 부탁드립니다. 저를 파티에 받아주십시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러는데 잠시 생각 좀 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안주로 나온 땅콩을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까먹은 성훈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뭐지? 뭐지? 뭐지? 이거 지금 날 떠보는거 아니야?’
랭커 중에서도 손꼽히는 탑랭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개인 실력만으로는 최강자로 추측되는 미리내가 파티에 받아달라니! 만약 이게 단순한 RPG게임 같았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수락했을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현실이다. 실력이 좋다고 무턱대고 받아들일수는 없는것이다. 일단 실력도 검증해봐야하고 인성이나 신용도, 그리고 책임감 같은것도 따져봐야….
‘잠깐. 그러고보니까 거의 이상적인 동료라고 할수 있지 않나?’
막무가내로 이뤄진 대련 신청때문에 꺼려했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미리내는 훌륭한 동료라고 할수 있었다. 실력?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인성? 자신한테 이상하게 집착하는걸 제외하면 정상적이다. 신용도? 안 좋은 소문이 단 한번도 돈 적이 없다.
게다가 미리내가 내뱉은 문제점은 자신도 오래전부터 느껴왔던것이었다. 급한김에 엘리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고작해야 2명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거절하기에는 마검이라는 이름값이 너무나 컸다.
“…만약 파티에 들어오신다면 파티의 리더는 저입니다. 그 점은 명확하게 인지하시고 계시겠죠?”
“물론입니다. 예를 갖춰서 행동하겠습니다.”
“예를 갖출것까지야, 그리고 미션에 진입한다면 일단 내려진 제 의견에는 절대적으로 따라주셔야합니다. 또한 수익의 분배는 제가 합니다. 맹세하실수 있겠습니까?”
“맹세합니다. 대신 제 조건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뭡니까?”
“정기적으로 대련을 부탁드립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역시 그럴줄 알았다.’
만약 전이었다면 절대적으로 대련을 피했을것이다. 그러나 춤을 전투에 활용할수있게 된 지금은 무작정 도망갈 생각부터 하지 않았다. 지금 성훈은 어느정도 전투에 자신감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곰곰이 생각하니 오히려 미리내와의 대련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키울수있는 발판을 마련할수 있을것도 같았다. 한편 성훈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미리내는 조금씩 기간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여, 열흘.”
“…….”
“보름은?”
“한달로 하죠.”
“한달은 너무 깁니다!”
“싫다면 어쩔수 없습니다. 한달에 한번, 그리고 대련 시간은 제가 원하는대로 싸우는게 제 조건입니다.”
미리내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성훈같이 크고 맛있는 먹잇감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반항을 하고 있다. 마음같아서는 하루에 한번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거절할것이라는건 알고있었다.
약자는 강자와의 대련 한번만으로도 여러가지를 얻을수 있다. 성훈과의 첫 싸움, 그리고 십만포인트를 써서 얻어낸 권신 이한의 개인지도는 미리내에게 있어서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런 경험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얻어낼수있다면 미리내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아예 기회가 없다면 모를까 바로 옆에 두고서 한달에 한번이라니, 이건 고문이야, 지독한 고문!’
그러나 결과는 정해져있었다. 한달에 한번뿐이라고 할지라도 성훈같은 강자와 싸울수 있는 기회를 얻어낸다는것은 돈 주고도 할수 없는 귀중한 보상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성훈님.”
“같은 파티원이 되서 하는 소린데 말투가 너무 딱딱하지 않나요? 무슨 직장 상사랑 후배도 아니고 말을 놓는건 어떨까요?”
“전 이 말투가 편합니다.”
‘퍽이나.’
속으로 가볍게 비웃음을 날려준 성훈은 웃으면서 미리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던 미리내는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손을 붙잡은채 굳게 쥐었다.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쓸만한 전력을 손에 넣었군. 철저하게 이용해주지.’
‘역시 남자답게 호쾌하시군. 한달에 한번. 최선을 다해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겉으로만 보자면 성훈이 압도적으로 이득을 거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성훈은 알수없는 오한에 몸을 떨었고 미리내는 맛있는 먹이를 눈 앞에 둔 맹수처럼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