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04
■ 103화. 하이라이트 (5) □ ᓚᘏᗢ
전생을 포함하여 현생까지 내가 생각한 중세 시대의 ‘연극’은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가극이다. 무대 위에 배우들이 등장하여 본인의 연기력을 보여주다가 중간중간 노래를 섞는 그런 유형.
하지만 방금 전 예고편 형식으로 보여준 무대는 결코 가극이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나조차도 10점 만점의 10점을 줄 수 있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연출력이었다.
평야 중앙에 난입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더니 점점 악마의 형상으로 변하고, 머지않아 날개가 완전히 돋아났을 때 어둠 속에서 거대한 낫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그의 목을 낚아챘다.
마지막으로 특정 인물의 등장을 암시하는 기도문까지.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연출 하나는 전생과 비교했을 때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봐야 옳다.
이건 CG를 사용하는 ‘영화’가 아닌, 어디까지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이었으니까.
덕분에 기대감이 부풀어오르는 건 물론이고, 본격적인 공연이 언제 시작될지 기다리게 되었다.
[아. 아아. 관람석에서 기다리는 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매트릭스 극단의 공연은 20분 후에 시작될 예정이오니 그때까지 휴식을 취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저희…]공연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알림 방송이 크게 울려퍼졌다. 방금 전 배우가 읆조린 기도문도 그렇고 매트릭스 극단에서 수를 쓴 모양이다.
어쩌면 극단에게 마이크 같은 장비가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아카데미 입학식에서도 단상에 마이크가 배치되어 있었으니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무슨 장비를 사용하는 거지? 설마 마법을 사용하는 건가?’
매트릭스 극단의 뛰어난 연출력은 비밀에 부쳐져 있다. 게다가 극단 감독의 정체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며 대리인을 내세우는 편이다.
실제로 우리 저택에 방문했던 사람도 대리인이었지 리루스처럼 책임자는 아니었다. 책임자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감독님은 사람과 만나는 걸 꺼려한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러한 신비주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극단의 감독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중이었다. 당장 나조차도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나간 연출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한 마당에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나는 쉬는 시간도 되었겠다,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양옆에 앉아있던 두 여인이 차례차례 물었다.
“어디 가?”
“어디 가니?”
이럴 때는 누구를 바라보며 대답해야 할까. 잠깐 곤혹스러웠으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척, 무대에 시선을 두며 대답했다.
“잠깐 화장실. 겸사겸사 마실 것도 사려고.”
“앗. 나도 같이 가자.”
“세실리 누나는요?”
“난 여기에 있을게.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그러고 보니 눈꼬리에 눈물이 살짝 맺혀있었다. 리루스 악단의 곡, ‘인생’이 그녀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나는 세실리를 바라보다가 아직까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손수건을 바라봤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손수건이 축축하게 젖어있다.
“알겠어요. 어차피 화장실이랑 노점이 근처에 있으니 금방 올 거예요.”
“천천히 갔다 와. 어디 가지 않을테니까.”
“네. 마리?”
“응.”
내가 손을 건네자 마리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10분도 아닌 20분 후에 공연이 시작하기 때문인지 잠깐 자리를 비운 사람이 많았다. VIP석 뿐만이 아니라 평민들이 앉는 관람석에도 빈 자리가 곳곳에 보였다.
나는 혹여 자리를 뺏길 수도 있으니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마리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 실례한다는 말은 기본이다.
이윽고 관람석에서 빠져나온 뒤에 마리를 보면서 물었다.
“근데 마리 너도 화장실 가려고?”
“그냥 너 따라온 건데?”
어쩜 이리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걸까. 하마터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껴안을 뻔했지만 겨우겨우 참았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내 여자친구가 방실방실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걸 본다면 그 누구라도 참기 힘들겠지만, 난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뒤이어 화장실을 빠르게 갔다 와서 볼일을 해결한 후에는 마리와 함께 공연동안 마실 음료수를 고르기 시작했다. 음료수를 고르는 동안 매트릭스 극단에 대해 묻는 건 잊지 않았다.
“마리 넌 매트릭스 극단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 원래 저런 식으로 연출을 하는 편이야?”
“나도 딱 한 번밖에 못 봤어. 그리고 저런 식의 연출 방식은 그때랑 똑같았거든. 예고편이라고 해야되나? 아무튼 저런 식으로 시작을 알리는 편이지. 이때문에 매트릭스 극단이 어떤 예고편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사람도 많아.”
오늘이 특이한 게 아니라 늘 특이했던 모양이다. 나는 새삼 매트릭스 극단의 감독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너도 매트릭스 극단의 감독이 누구인지는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어쩌면 너랑 비슷한 사람이지 않을까?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정체를 숨기는 것처럼, 매트릭스 감독도 자기가 원하는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정체를 숨기는거지.”
“음… 일리가 있네.”
매트릭스 극단이 유명세를 탄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그런데 감독은 그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체가 들통나지 않고 여태까지 숨겨왔다.
물론 극소수의 인물들은 감독이 누구인지 알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거장 중의 거장이다보니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왜? 한 번 만나보고 싶어?”
“응. 등 뒤로 악마의 날개가 돋아났을 때 진짜로 악마가 나타난 줄만 알았거든. 너는 안 놀랐어?”
“처음에는 놀랐는데 악단의 반응이 조용한 걸 보고 연극이라는 걸 알아챘지. 아, 그리고 네가 욕하는 거 생생하게 들었어. 어지간히 놀랐나봐?”
“큼. 큼.”
나는 마리가 능글거리는 말투로 묻자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그때는 너무 깜짝 놀라서 자동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연출이라면 그 어느 누가 깜짝 놀라지 않을까.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족이 악마로 변하고 있었으니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빨리 돌아가자. 마리 너는 뭐 먹고 싶어?”
“말 돌리기는. 난 레몬 주스.”
“그럼 나는 포도 주스.”
그렇게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구매하고 무대로 돌아갈 때 쯤이었다. 돌아가면서 포도 주스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문득 한 사람이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로브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작은 키와 더불어 로브 아래로 빠져나온 은회색 머리카락이 특징적이었다. 키도 그렇고 머리카락 색깔도 그렇고 그녀가 아르웬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현재 그녀는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무언가 고민이 되는지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고심하는 중이었다. 멀리서 본다면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작?”
“잠깐만.”
나는 마리의 부름을 뒤로 하고 아르웬 쪽으로 다가갔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인연밖에 더 되지 않겠으나 아르웬은 책을 고르는데 도움을 줬으니 무심하게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호의를 보여준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정도로 매정하지는 않았다.
“아르웬?”
“…응?”
내가 혹시나 하며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은회색 눈동자와 소녀처럼 앳된 얼굴을 보아하니 아르웬이 확실하다.
아르웬은 나를 보자마자 은회색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이내 휘둥그레 뜨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아이작? 그대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이냐?”
“우연히 지나가다가 네가 여기 있길래 왔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고민?”
내 질문에 아르웬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다시 한 번 눈을 끔뻑였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속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착각했던 거구나, 라고.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님 말고. 고개를 내리고 있길래 무슨 고민이 있는 줄 알았지.”
“아… 그건 아니다. 잠깐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그대가 걱정할만큼의 문제도 아니고.”
“그러면 다행이네. 그나저나 공연은 잘 들었어?”
“정말 멋진 공연이었다. 그리고 공연도 공연이지만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을 배려한 관람석의 구조가 제일 마음에 들었지. 임시로 제작한거라고 들었는데 두 눈으로 똑똑히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실제로 아르웬의 키는 많이 작은 편이다. 150cm를 겨우겨우 넘는 수준일까.
그래도 관람석의 구조가 평평하지 않고 위로 점점 올라가는 식이라 아르웬처럼 단신의 사람들도 공연을 무리없이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에는 평평하게 지을 뻔했다가 설계자의 센스 덕분에 참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럼 문제는 없는거지?”
“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애 취급 할 필요는 없느니라. 이래보여도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르웬이 툴툴거리며 대꾸하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내가 걱정했던 것과 별개로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알았어. 그럼 난 가볼게. 공연 잘 즐기다가 가.”
“그대도 충분히 즐겼으면 하는구나. 매트릭스 극단의 공연은 나조차도 쉽게 못 보는 것이니까.”
‘나조차도’라는 말을 들어보면 그녀의 범상치 않은 신분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마리에게 돌아갔다.
이윽고 마리에게로 돌아가자 어딘가 불만으로 가득찬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아르웬과 대화를 나눴던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레몬 주스만 마시던 그녀는 나를 표독스레 쳐다봤다가 못마땅하다는 투로 질문했다.
“저 여자애는 또 누구야?”
“그냥 우연히 서점에서 만났던 엘프.”
“정말 그것 뿐이야?”
“그럼 뭐가 더 있어?”
“음…”
마리는 내 물음에 여전히 벤치에 앉아있는 아르웬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매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로브를 뒤집어 쓴 걸 보면 분명 평범한 신분은 아닐텐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호위 기사 없이 혼자 나오는 것도 이상하고…”
“호위 기사는 반드시 대동해야하는 거야?”
“물론이지. 당장 세실리를 봐. 혼자서 산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무력을 갖고 있는데 가르츠 씨를 대동하고 방문했잖아?”
하가야 세실리도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고 가르츠와 함께 우리 영지를 방문했다. 아르웬도 그녀와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르지.
나는 마리의 설명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 전에 세실리가 아르웬을 만나자마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분들은 누구냐고 했었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세실리는 명확히 본 거겠지. 나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기억했다가 쉬이 넘겼다.
아르웬이 불순한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왔을리는 없을테고,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 저택은 기사단이 엄중하게 지키는 중이다.
자그마치 황궁에서 파견나온 기사단인만큼 믿고 맡길 수 있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 그래도 각자 사정이 있는 거잖아? 어차피 내가 제논인 건 절대 모를테고.”
“그렇긴 해. 그래도 쟤한테는 절대 시선 주지 마. 알겠어?”
마리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꾹- 꾹- 누르면서 엄중히 경고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잡아채며 능글맞게 이야기했다.
“설마 질투하는 거야?”
“그런 거라면 어쩔래?”
“키스해줄까?”
“…우리 잠깐 저기로 가자.”
솔직하기는. 나는 피식 웃었다가 마리의 손길에 이끌려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뭘 할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눈꼴 시려운 애정 행각을 펼쳤을 뿐.
이후로 VIP석으로 돌아오고,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리루스 악단은 여전히 무대에 올라가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위치가 살짝 아래로 내려와 관람석과 가까이 붙었다는 걸까. 그와 더불어 잠깐 휴식을 하는 동안 무대를 정비했는지 반투명한 막 같은 것이 무대와 관람석을 갈라놓았다.
나는 저 막을 무슨 의도로 설치했는가 싶어 의문이 든 것도 잠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연무장에 있던 거랑 같은 건가?’
저 막의 정체는 충격완화를 위해 특수 처리를 한 보호막.
그리고 매트릭스 극단의 연출력은 극한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부서졌다.
콰앙!
“… …”
왜냐하면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배우들의 화려한 전투가 눈 앞에 펼쳐졌으니까.
심지어 마력을 사용하는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땅바닥이 파이는 건 물론이고, 무기와 무기가 서로 부딪히자 큰 폭음과 함께 커다란 푸른빛 폭발이 일어났다.
다행히 보호막 덕분에 관람석까지 영향이 끼치지는 않았지만, 정말이지 극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다.
‘쩌… 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팝콘이라도 들고 올 걸.
* * *
한편 그 시간 VIP석이 아닌, 평범한 관람석.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은 조금 전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착석하여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평소 그녀가 좋아해 마지 않던 제논 일대기를 토대로 한 공연이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 날을 위해 여왕으로서의 모든 업무를 내팽겨치고 이 머나먼 영지에 발을 디디지 않았던가. 아르웬은 양손 가득히 먹을거리를 쥐면서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물론 한 손은 본인을 따라온 다크 엘프, 레인을 위한 것이다. 단 걸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그녀여도 이정도로 많이 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왕님. 저 잠깐 확인할 게 있는데 어디 갔다 와도 될까요?]머릿속으로 울려퍼지는 레인의 목소리. 마법에 통달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텔레파시였다.
레인은 종족 특정상 몸을 숨겨야 하기에 텔레파시로만 이야기하는 편이다. 두 사람 다 엘프여서 큰 무리도 따르지 않는다.
[확인할 게 있다니?]아르웬은 레인의 부탁에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전시회를 제외하면 볼 것도 없는 이 영지에 확인할 게 있다니, 도대체 무엇을 발견한 걸까.
그녀가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레인은 어딘가 들떠있는 듯한 억양으로 아르웬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어쩌면 여왕님이 좋아하실 수도 있는 거예요. 정말 확인만 하고 올게요.] […알겠다. 대신 위험한 짓은 하지 말거라.] [여왕님도 참. 저 못 믿으시는 거예요?]못 믿으니까 그러지. 아르웬은 속으로 미심쩍어하면서도 레인의 부탁을 들어줬다.
‘보험은 들어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