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05
■ 104화. 하이라이트 (6) □ ᓚᘏᗢ
매트릭스 극단의 공연은 예고편에서 보여준 것처럼 화려하면서도 뛰어난 연출을 자랑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줬다.
우선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출중했다. 연극은 관람객들이 직접 보는만큼 현장감이 생생하여 연기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배우들의 연기력은 흠잡을 곳 없이 훌륭했다.
두 번째는 바로 준비성. 전에 말했지만 나는 제논 일대기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몇몇 삽화를 추가했다. 삽화라고 해봤자 등장인물의 외양이나 지도, 그리고 증기 기관차밖에 없었으나 매트릭스 극단은 매우 잘 이용했다.
제논을 연기하는 배우도, 메리를 연기하는 배우도, 그리고 진과 릴리도.
어떻게 분장을 했는지 몰라도 내가 삽화로 추가했던 모습과 완벽히 일치했다. 특히 진은 진짜 마족이라도 섭외했는지 눈동자의 색이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렌즈 같은 게 있나 싶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매트릭스 극단의 근본이자 아이덴티티 자체인 연출력. 연기력과 분장은 다른 극단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연출력만큼은 어찌하지 못 했다.
채앵! 챙!
“우와…”
연무장에서 봤던 대련처럼, 보호막 너머로 제논을 연기하는 배우와 사크란을 연기하는 배우가 서로 치열하게 전투를 치루고 있다.
제논의 검이 화려하게 움직여 사크란을 압박하고 있다면, 반대로 사크란의 거대한 낫은 간결하지만 한 방 한 방이 위협적이었다.
실제 전투 상황을 방불케하는 모습이 펼쳐지자 나는 저들이 얼마나 준비를 열심히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저 합을 하나 하나 맞추기 위하여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연습을 했겠지.
만약 진짜로 싸우는 거면 그건 그것대로 변태적인 거고.
“인간인데도 이정도 실력이라니, 대단하구나. 누가 가르쳐준 거지?”
“그런 사람이 있어. 본인 이름도 안 가르쳐주고 떠난 스승놈이.”
짧고도 길게 느껴지는 전투 이후에는 제논 일대기 속에 등장했던 장면이 이어졌다. 제논은 밝고 가볍지만 듣기 좋은 미성인 반면, 사크란은 노환으로 인해 가래가 낀 듯한, 늙수레한 목소리다.
원작에서도 사크란은 어딘가 꺼림칙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있다. 그걸 고스란히 투영시킨 극단의 정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우우웅-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이 무대는 리루스 악단과 매트릭스 극단의 콜라보라는 걸 증명하듯, 주요 장면마다 리루스 악단이 음악을 연주했다.
방금 전의 전투 당시에도 리루스 악단이 긴박한 음악을 연주했는데 엄청 잘 어울려서 생각보다 놀랐다. 게다가 어쩌 보면 밋밋할 뻔했던 장면에 음악을 추가하니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다.
세계적인 거장 둘이서 하나의 작품을 위한 공연을 펼치면 어찌 되는지, 현재 이들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원작자인 내 입장에서는… 정말 행복하기 그지없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가 영화화됐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앞으로 다양한 장면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과연 그것도 재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크란 씨가 어디로 갔다고 하셨습니까?”
“저쪽으로 가셨습니다! 짙은 악마의 기운이 느껴진다면서…!”
“제길! 어서 가자!”
이제 공연은 점점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악마측 세력의 계략으로 마족의 나라, 데빌즈 전체가 어둠에 먹힐 뻔한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그곳에서 사크란은 그간 쌓아놓았던 경험과 혜안을 통해 어둠이 발생하는 지역에 먼저 도달하고, 그곳에서 개떼처럼 쏟아져나오는 악마들과 사투를 벌인다.
제논 일행도 마찬가지로 사크란과 악마 사냥꾼을 돕지만, 어둠은 걷잡을 수없이 커져가고 결국 사크란이 큰 결단을 내리게 되는 식인데…
“…저거 진짜 마법 아니야?”
“그런 거 같은데?”
개떼처럼 몰려오는 악마를 어떻게 묘사할지 기대를 했는데 정말로 그대로 구현했다. 평야 뒤쪽 전체가 구멍 뚫린 것처럼, 거대한 검은색 소용돌이가 발생하더니 그곳에서 문헌에서만 보던 악마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다만 한계 때문인지 소설처럼 ‘하늘을 가득 메웠다’라 묘사만큼 많지는 않았고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 소용돌이 하나만으로도 무대 전체를 집어삼킬만큼 거대했다.
“저거 진짜 마법이잖아?”
나와 마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옆에 앉은 세실리는 다른 의미로 놀란 듯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의문을 드러냈다.
“저게 진짜 마법이라고요?”
“응. 일종의 환영 마법이야. 대상자가 원하는 환영을 만들어내 실체처럼 움직이는거지. 하지만 환영이다보니 일정량의 충격을 받으면 소멸돼. 지금처럼.”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대 위의 배우가 메뚜기떼처럼 몰려오는 악마들에게 무기를 꽂아넣을 때마다 새까만 연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아무래도 환영 마법을 일종의 CG처럼 구현한 듯싶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연극에 마법사를, 그것도 저렇게 고퀄리티로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지만 저 마법을 발현한 마법사는 분명 여러모로 독특한 사람인게 분명하다.
“그런데 환영이 소멸되자 검은색 연기로 변한다라…”
옆에서 세실리가 작게 중얼거리며 심상치 않음을 표했다. 슬쩍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니 무언가 감이 잡힌다는 듯, 손가락으로 볼을 툭- 툭- 두르리고 있다.
이에 무언가 감이 잡히는 게 있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끄으으윽… 흐아아아악!”
거칠디 거친 노인의 괴로운 비명 소리가 내 귀에 박혀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공간이 뚫린 것처럼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 사크란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저 장면은 분명… 그래. 소용돌이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지자 사크란이 그걸 흡수하는 장면이다. 원작에서는 마법을 통해 하늘로 날아가 모든 어둠을 빨아들였다.
둥! 둥! 둥!
사크란이 소용돌이를 흡수하기 시작하자 긴장함을 추가하듯, 커다한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원작자인 나조차도 긴장되는 순간인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평생 마족을 위해 헌신한 사크란이지만, 결국 어둠을 이기지 못 하며 악마로 변하는 것이다.
털썩-
“사크란 씨!”
“사크란! 자네 괜찮은겐가!”
소용돌이의 모든 기운을 흡수한 사크란이 무릎을 꿇었다. 악마들과 혈투를 펼치던 다른 일행들은 사크란이 쓰러지자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지만…
“오지 말거라!”
세상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사크란이 그들에게 크게 외쳤다. 평소 늙수레하고 가래가 낀 듯한 목소리가 아닌, 변조가 된 것처럼 노이즈가 끼어있었다.
아무래도 매트릭스 극단의 단원들은 목소리조차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대단함과 변태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래도 몰입감 하나는 굉장하니 내색하지 않았다. 솔직히 재미있다.
“사냥꾼들이여… 내가 너희들에게 항상 말했었지. 어둠을 받아들이되, 결코 지배당하지 말라고. 만일 지배당한다면 항상 그 어둠을 향해 칼을 겨누라고.”
무릎을 꿇었던 사크란이 천천히 일어서며 뒤의 사람들에게 읆조리듯이 말을 건낸다. 변조가 된 듯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한 어두운 기운.
무엇보다… 그의 등에서부터 서서히 형상을 띄기 시작한 악마의 날개.
결국 어둠을 이기지 못 하여 사크란이 악마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마 사냥꾼 초대 수장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사크란이.
모두가 숨을 죽이며 사크란이 서서히 악마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던 사크란이 서서히 등을 돌렸다.
머리 위에 솟아난 뿔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할 정도로 커지고 붉디 붉은 눈은 피처럼 형형하게 빛나 위압감을 선사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악마의 모습.
“무엇을 망설이는가? 사냥꾼들이여. 너희 앞에 어둠이 있다.”
“… …”
“어서 빨리 무기를 겨누어라! 이게 내 마지막 명령이다!”
마지막 명령이라는 말에 마음을 굳게 다잡았는지 무기를 꽉- 말아쥐는 제논과 사냥꾼들.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과 결의, 그리고 안타까움과 비통함이 골고루 섞여있다.
한때 스승이었던 자를, 동료였던 자를, 그리고 마족을 위한 일생을 바쳤던 자를.
그들은 제 손으로 죽여야한다.
“모르페시여…”
마지막으로 사크란의 기도문과 함께.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또다른 비극이 탄생했다.
사크란은 기도문 다음으로 일행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조금이라도 싸움을 늦추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아직까지 내면의 어둠과 투쟁을 벌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비장함이 감돌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오직 분노와 증오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이대로 망설이다간은 구원은커녕 사람들이 모두 몰살될 것이라고 말이다.
“으아아아아!”
“안 돼! 크로트!”
사크란이 악마가 되었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을까. 머뭇거리던 사냥꾼 한 명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사크란에게 무작정 돌격한다.
뒤에서 동료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이미 사냥꾼은 사크란의 심장을 향해 정확히 검을 찔러넣었다.
아니. 찔러넣으려 했다.
푸악!
눈 깜짝할 사이에 사크란의 팔 하나가 사냥꾼의 몸통을 관통하기 전까지는.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흩날리고, 꼬챙이에 꿰어진 것처럼 사냥꾼은 몸을 바둥거렸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따로 확인할 것도 없이 즉사였다.
휘익- 쿠당!
사크란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팔을 휘둘러 사냥꾼을 내팽겨쳤다. 사크란의 팔에 꿰뚫렸던 사냥꾼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단원 하나가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리자 사냥꾼들이 뒤로 주춤거렸다. 망설임도 망설임이었으나 그들을 압도하던 건 단연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크란의 무력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들로서는, 절대로 사크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도 사크란이며, 사명감을 심어준 것도 사크란이었으니.
이 복합적인 감정이 얽히고 섥혀 사크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설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제논은 아니다. 그는 딱딱해진 표정으로 사크란을 바라보다가 발을 떼었다.
“제논…”
“… …”
보라색 머리의 여인, 메리가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지만 제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벅- 저벅- 걸어갔다.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던 사크란에게 안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눈 앞의 강력한 악마를 막기 위해서.
우리의 주인공이 나서는 것이다.
“모르페시여…”
이윽고 검을 빼어든 제논이 작게 읊조리는 것을 시작으로.
“이 자에게 안식을 내려주소서.”
5권의 하이라이트이자 제논 일대기 최고의 명장면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졌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연주되는 리루스 악단의 음악. 놀랍게도 리루스 악단이 선보였던 ‘인생’의 도입부이자 마지막 부분이다.
현악기의 구슬픈 음이, 사크란과 더불어 마족이라는 종족 전체에 대입되어 엄숙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족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시키며 짜릿한 전율을 일으켰다.
최고의 극단과 최고의 악단이 하모니를 이루어 차마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보통 전투는 급박하거나 정신없기 마련인데 사크란과 제논 간의 전투는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사실 전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제논은 사크란에게 안식을 주고 싶을 뿐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으니까.
사크란의 무기가 다른 것도 아닌 거대한 ‘낫’인 이유도 제논의 마음과 비슷했다. 사크란은 악마로 변한 마족을 악마가 아니라 인간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을 죽이는 건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며, 일종의 장례식을 치뤄주는 것이다.
‘…하 씨. 우는 건 좀 부끄러운데.’
영화를 방불케하는 장면들이 속속 이어지다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걸까. 리루스 악단의 인생, 그리고 사크란과 제논의 전투가 눈 앞에 펼쳐지자 울컥했다.
실제로 연주에 묻혔지만 곳곳에 흐느낌이 들리는 중이다. 나는 콧잔등을 꾹- 눌렀다가 세실리의 반응을 확인했다. 음악만 들었는데도 눈물을 흘리던 그녀다.
그러니…
“끄흑흑흑… 흐엉…”
“… …”
“너무… 너무 슬프잖아… 끄흑…”
아예 통곡 수준으로 울고 있구나.
심지어 아까 전에 내가 줬던 손수건을 입으로 꽉 깨물고 있다.
‘…그냥 놔두자.’
나는 다시 공연에 집중했다.
* * *
모두가 사크란의 비애에 흐느끼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무대의 관람석이 아닌 무대 위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가르츠, 세실리의 호위기사이자 리퍼의 단원 중 한 명이다.
마음 같아서는 세실리의 옆자리에 앉아 구경하고 싶었으나 리퍼는 언제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켜야하는 법. 그래서 관람석이 아닌 마법을 통해 하늘에 둥둥 떠다니면서 공연을 관람하는 중이었다.
“…슬프군.”
감정이 메말라 보이는 사람이어도 결국 그도 마족. 가르츠는 사크란과 제논의 전투, 그리고 구슬픈 연주가 이어지자 눈꼬리에 맺혀있던 눈물을 훔쳤다.
악마 사냥꾼의 모티브라 할 수 있는 리퍼의 단원이었던 그로서는 남들보다 훨씬 더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망정이지, 평소 그의 무뚝뚝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을 것이리라.
하지만 마족뿐만 아니라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흐느끼거나 슬퍼하고 있다. 그만큼 공연의 연출력과 전달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대로 공연이 끝난다면 좋겠지만…
“…음?”
가르츠는 저택에 설치했던 방범 마법에 누군가 포착되자 표정을 싹- 굳혔다. 감지된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누군가 침입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만약 아이작의 가족이라면 그냥 쉬이 넘길만했지만, 현재 그의 가족들은 전부 공연을 관람하는 중이다. 그러니 낯선 사람이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뜻일 터.
황궁에서 파견나온 기사단조차 개인 침실에 들어가는 건 엄격히 금지했으니 침입자가 아니고서야 방범 마법에 감지될리가 없다.
“…개 같은 새끼.”
가르츠는 진심어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저택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곧 있으면 하이라이트인데 이 순간을 방해한 놈이 누군지 정말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