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17
■ 116화. 처벌 (1) □ ᓚᘏᗢ
모두들 알다시피 나는 세실리와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다. 헬리움을 소개시켜줄 겸 내 초고를 도난한 다크 엘프에 대한 처벌이다.
세실리는 공연이 끝나고 일주일 후에 가르츠를 시켜 나를 데려오겠다고 말했지만, 여기서 약간 곤란한 점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다.
그녀는 나와의 첫 날 밤을 치른 이후로 매일매일 관계를 요구했는데, 첫 날은 몸이 아파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으나 이 후부터는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었다.
내가 글을 쓸 때도 침대에 누워 빤히 바라보거나, 함께 식사를 할 때도 은근슬쩍 몸을 비비적거리거나, 운동을 할 때도 창문에서 빤히 쳐다보거나 등등.
한시라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건 물론, 그쪽에 눈을 뜨기라도 했는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관계를 요구했다. 나 또한 한창 욕정이 끓어오르는 나이인지라 가뿐하게 받아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건 이 세상에 없는 법. 정식적으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마리가 계속해서 우리 저택에 지내는 건 엄연히 실례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요?”
“안 돼. 이제 아카데미 개학도 슬슬 다가오니 준비를 해야지.”
“하루만 더…”
“안 돼.”
“힝.”
마리도 처음에는 그녀의 어머니, 그러니까 앞으로 장모님이 될 분에게 부탁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장모님의 말마따나 우리 저택에서 지낸지 벌써 수 일이 지났으니까.
이에 마리는 크게 아쉬워 할 뿐, 성욕이 개념까지 지배한 건 아니어서 잠자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아쉬웠지만 영원히 헤어지는 건 아니니 아카데미에서 만날 때를 기약했다.
그리하여 마리가 발을 옮기려던 찰나, 그녀는 나를 한 번 힐끔거렸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그럼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얼마나?”
“씻어야 하니까 2시간 정도…?”
“그럴 줄 알고 마차를 나중에 예약했단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장모님도 만만치 않으신 분이구나. 마리는 장모님에게 허락을 받자마자 내 손을 재빠르게 잡아채더니 침실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뭐…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아무튼 마리는 내가 헬리움으로 떠나기 하루 전에 저택으로 돌아갔다.
“아카데미에서 보자. 그때까지 바람 피면 죽는다?”
“내가 바람을 왜 펴?”
“세실리가 있잖아.”
“… …”
“장난이야. 키스나 해줘.”
솔직히 가슴이 뜨끔거렸기에 서둘러 키스로 무마시켰다. 마리는 나와 가볍게 입술을 부딪힌 뒤에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탑승한 마차가 앞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나 또한 뒤로 천천히 물러나며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아카데미 개학까지는 정확히 닷새 정도가 남았으니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거다.
과연 그때까지 마리가 꾹 참을 수 있을까. 아카데미에 가자마자 발정난 짐승처럼 달려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빈말이 아니라 저택에서 지내는 동안 한시라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듯, 체력이 충전될 때마다 나를 덮쳤으니까. 그야말로 한 마리의 암사자나 다름없었다.
“많이 아쉽겠구나. 여자친구가 떠나가서.”
내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같이 마중을 나온 어머니가 상냥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배웅하러 나오지 않으셨는데 지금쯤이면 데이브, 니콜, 아델리아 이 셋 중 한 명과 대련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한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근 며칠동안 어머니는 회춘이라도 하셨는지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20대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뿜내는 중이셨다.
반면 아버지는 강철 체력인데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을 보이셨다. 아무래도 나와 마리가 불타는 밤을 보내는 동안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평소에도 금슬이 좋다 못해 깨가 쏟아질 정도의 애정을 과시했으니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다.
“아쉽긴 해도 곧 있으면 만날 수 있으니 그때까지 참아야죠.”
“그래도 저 아이에게는 하루하루가 1년 같을 거란다. 이 엄마도 너희 아버지가 기사 일로 집을 비울 때마다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니?”
“그래서 어떻게 버티셨어요?”
“면회를 가는 척 하면서… 호호. 여기까지만 말하마. 나름 짜릿했던 경험이라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구나.”
“… …”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충분히 불타고 계시는데 과거에는 거의 화재 수준으로 열정적인 사랑을 하신 모양이다.
단언컨데, 우리 부모님처럼 천생연분은 이 세상에 없을 거라 확신한다. 자식이 셋인 것부터가 그 증거다.
“막내가 안 생기는 게 정말 신기하네요.”
“조만간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너에게 준 약이 끝이었거든.”
“… …”
지금 생긴다면 거의 손주이지 않나. 형과 누나가 기사직에 종사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결혼하고 자식도 갖는 나이다.
나는 막내가 생긴다면 이름을 뭘로 짓냐니, 얼마나 귀여울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어머니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피임약을 꾸준히 드셔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자식을 5명 이상 낳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일 헬리움으로 간다고 했니?”
“네. 그쪽에서 인원을 보낸다고 했어요. 텔레포트를 이용한다고 했으니 늦어도 이틀 안엔 돌아올 거예요.”
“헬리움이라… 이 엄마도 듣기만 해서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구나.”
헬리움은 여태까지 반강제적으로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던지라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다행히 곡창지대도 넓고 다양한 자원이 많아 자급자족이 가능했지만 그걸 제외하고 밝혀진 바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하늘이 붉은색을 띄어 불길하다거나 악마가 습격을 하고, 사람의 신체 부위를 사고 판다는 등등. 별의 별 괴상한 소문만 무성할 뿐 제대로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나는 마족이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닥 걱정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세실리나 가르츠가 나를 지켜줄테니 문제도 없을거고.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을텐데 이상한 거라도 있겠어요? 소문은 그닥 믿을 게 못 돼요.”
“그건 그렇지. 아무튼 준비는 하고 있니?”
“준비라고 해봤자 옷만 잘 챙겨입으면 끝이에요.”
어머니는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저택으로 들어섰다. 나도 곧 있으면 저택으로 들어서서 글을 쓸 생각이어서 함께 돌아갔다.
곁에 마리가 없으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었지만 아카데미에서 만날테니 그때까지 참을 수 있다. 그렇게 내 침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왁!”
“흐악!”
모퉁이를 딱 지나치자마자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었기에 놀란 걸 넘어 심장이 마비될 정도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모퉁이에서 나온 사람을 확인했다. 아버지와 대련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아델리아였다.
그녀는 내 반응을 보고 마음에 쏙 들었는지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보이스다.
“우리 귀염둥이. 깜짝 놀랐어? 놀란 모습도 귀엽네.”
“…아델 누나.”
“하하하.”
아델리아는 내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도 뻔뻔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에요? 아버지랑 대련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이미 다 끝나고 씻고 온 참이지. 그리고 슬슬 아카데미로 복귀해야하니 준비도 하고.”
그러고 보니 아델리아의 갈색 머리카락이 물기로 축축하게 젖어있다. 얼굴도 뽀송뽀송한 것이 이제 막 씻고 나온 모양이다.
옷은 셔츠 차림이라 그녀의 몸매가 돋보였는데, 대충 닦고 입었는지 그녀의 몸매가 거의 다 드러나기 직전이다. 덕분에 전시회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녀의 흉부도 마리 못지 않게 크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모진 취급을 받았다 할지라도 잘 먹고 잘 잤을테니 발육이 좋은 건 당연한…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서둘러 머리를 좌우로 털었다. 마리가 저택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한 판 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마리도 마리지만, 나 또한 불타오른 건 마찬가지였던 듯했다.
“아카데미로 언제 복귀하는 거예요?”
“늦어도 사흘 내에는 복귀하겠지. 나랑 니콜은 조교이다보니 개인 정비도 해야되거든. 그런데 네 여자친구는 어디 갔어?”
“방금 전 저택으로 돌아갔어요.”
“그래? 많이 아쉽겠네.”
진담인지 아니면 그냥 해본 말인지 아델리아는 실실 웃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손수건이 떠올라 아델리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델 누나. 제 손수건은 언제 돌려줄 거예요?”
“으, 응? 소, 손수건?”
“네.”
손수건을 언급하자 웃는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크게 당황하는 아델리아. 나는 그걸 보며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아델리아가 손수건을 잃어버렸거나, 그게 아니면 땀을 닦는데 사용했다고. 니콜에게 듣기로 아델리아는 내 물건 남의 물건 신경 쓰지 않고 막 쓰는 타입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아델리아는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하기 망설이다가 내 눈치를 보더니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나중에 주면 안 될까? 아까 실수로 땀 닦는데 써버려서…”
“괜찮아요. 그 손수건은 계속 써도 괜찮으니 잃어버리지나 마세요.”
“정말? 정말 계속 써도 되는거야?”
내가 개의치 않다는 듯이 얘기하자 아델리아가 드물게 흥분까지 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다. 잘생긴 것 같으면서도 예쁜 얼굴이 코 앞까지 다가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기대감으로 부풀려진 하늘빛 눈동자를 떨떠름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손수건은 널려있으니 아델리아에게 하나 선물하는 셈 치고 줘도 큰 상관이 없다.
“네. 손수건은 많으니까요.”
“고마워! 평생 간직하고 있을게!”
“평생 간직하고 있을 것 까지는…”
“요 깜찍하고 귀여운 것! 여자친구만 없었어도 내가 먼저 사귀는건데!”
그렇게도 기쁜가. 아델리아는 기습적으로 나를 꽉 껴안더니 몸을 흔들며 기쁨을 표출했다. 방금 전까지 몸을 씻고 나와서 그런지 비누향이 내 후각을 자극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셔츠 너머로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내 욕정을 자극시켰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델리아를 천천히 밀어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델리아이다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다. 그녀의 비참한 과거를 알게 된 순간 모질게 대하기도 미안하다.
아델리아는 겉보기에는 화끈하고 괄괄해보이는 여인이어도 마음의 상처가 심한 편이다. 그러니 언행 하나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니콜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에게 공을 던진 사건도, 가끔씩 장난을 치거나 스킨십을 하는 것도 일종의 애정결핍이라 생각하니 딱하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아델 누나? 좀 떨어져 줄 수 있어요? 여자친구도 있는 남자한테 이러시면 안 되죠.”
“첩으로 들어갈테니까 계속 안으면 안 될까? 첩이 안 되면 호위 기사로 들어갈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시네.”
천만다행히도 마리가 없어서 망정이지, 그녀가 봤다면 불륜 현장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아델리아는 내가 가당치도 않다는 것처럼 말하자 나를 껴안은 팔에 힘을 풀었다.
이윽고 뒤로 물러난 그녀의 표정은 해맑기 그지 없었다. 역시 아델리아는 이런 밝은 미소가 어울린다.
“아무튼 손수건은 나중에 돌려주셔도 돼요. 전 이만 가볼게요.”
“알았어. 아참. 그리고…”
“네?”
내가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아델리아는 나를 잠깐 멈춰세웠다. 이에 무슨 할 말이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아까 전처럼 망설이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하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꺼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줬다.
“…아냐. 내 주제에 무슨…”
“네?”
“미안. 할 말을 까먹었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아델리아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의문을 가졌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길래 망설였던 것일까. 억지로 웃는 걸 보면 슬픈 이야기인 것 같아 괜히 신경 쓰였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앞으로도 주말마다 대련장에 찾아올 거지?”
“네.”
“아카데미에서 힘을 쓸 일이 있으면 나한테 부탁해. 니콜은 힘들 수도 있지만 나는 들어줄테니까. 알았지?”
“아카데미에서 힘을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요.”
“그래. 그… 안녕! 난 이만 가볼게!”
아델리아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그대로 도망치듯이 뛰어가버렸다. 갈색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면서 바람이 쌩- 하고 불어왔다.
나는 약간 당황하여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나 손을 뻗기도 전에 아델리아가 사라지는 일이 먼저였다.
“…뭐지?”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내 일과가 변하는 건 없었다. 아델리아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차차 해결하면 그만이고.
그리하여 별 일 없었던 하루가 흘러가고.
“또 다시 뵙습니다. 세실리 공주님의 호위 기사, 가르츠입니다.”
“안녕하세요. 가르츠 씨. 또 뵙네요.”
가르츠가 우리 저택을 정식적으로 방문함으로서, 헬리움으로 갈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이것만 해도 문제는 없지만…
“그런데 이건…”
“제가 직접 제작한 마법 금고입니다. 이걸로 은인의 귀중품을 소중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제논 일대기의 초고 같은 물건을 말이죠.”
“…가르츠 씨도 알고 계셨어요?”
“사정이 있었습니다.”
가르츠는 선물이랍시고 비싸보이는 은색 금고를 들고 왔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저리 말하니 약간 어이가 없었다.
“여기에 은인의 손바닥을 대시면 마법이 자동적으로 스캔할 겁니다. 은인의 손이 비밀번호이자 열쇠나 다름없는 거죠.”
“…이걸 헬리움에서 만들었다고요? 드워프가 아니라?”
“금고는 대장장이가 제작했고 마법은 제가 넣은 겁니다.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 …”
역시 십사기 종족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