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2
■ 11화. 세실리 (2) □ ᓚᘏᗢ
마족(魔族).
악마의 후예이자 상징인 뿔과 붉은 눈, 그리고 검은 마나를 가진 종족.
3000년 전 악마들이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었을 시절, 악마들은 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족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악행을 저질렀다.
살인과 강간은 물론이고, 인체 실험과 더불어 갖가지 끔찍한 행동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그리고 악마의 씨를 받아들여 임신을 하게 되거나, 인체 실험을 통해 받아들인 마나로 통해 돌연변이로 변하거나 등등. 이러한 끔찍한 경위로 ‘마족’이 탄생했으며 독특하게도 오로지 인간만이 마족으로 변했다.
엘프도 아니고, 드워프도 아니고, 수인도 아닌 인간에게만 영향을 끼쳤는지 수많은 의견이 오고 갔으나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바로 ‘인간’의 특이성이다.
인간은 타종족보다 수명이 짧고, 태생적으로 신체 능력이 좋지 않은 대신 어마어마한 ‘습득력’을 갖게 되었는데, 그 습득력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은 여타 종족보다 ‘명(明)’과 ‘암(暗)’이 너무나 뚜렷한 존재였기에 악마의 씨앗을 더욱 짙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언젠가 악마로 변하게 될 존재들.] [인간인 척하지만 악마의 피가 흐른다.]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하지만 인간을 포함한 다른 종족들은 마족을 피해자 즉,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악마’로 단정지었다. 실제로 이성을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격노하거나 욕망을 절제하는데 실패하면 악마가 되어버리니 그들을 배척하는 건 실로 간단했다.
심지어 신성교국 ‘세이비어’는 악마의 씨앗을 모조리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마족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전대미문의 사건까지 일으켰다. 세이비어 입장에서도 악마는 신을 부정하다 못해 끌어내리려고 시도한 자들이니 강경파와 온건파를 나누지 않고 합심하여 나섰다.
이 광기에 찬 대사건 이후로 마족은 두 세력으로 분열됐다.
하나는 진짜로 ‘악마’가 되어 세상에 복수를 원하는 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절제를 추구해 ‘인간’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악마가 된 세력은 머지않아 전부 척결되어 세상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세력, 그러니까 ‘절제’를 추구해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마족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이비어를 포함한 다른 강대국이 서로 간의 이념 차이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절제를 추구하는 마족들은 기회를 틈타 헬리움을 건국했다. 당연히 헬리움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대부분이었으나 절제를 추구하여 힘을 갈고 닦은 그들은 실로 막강했다.
얼마나 강하면 그들을 침공하는 순간 다른 나라에게 타격을 입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차차 기회를 틈타 정리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나오고 무려 1000년이 훌쩍 넘겨버린 게 웃긴 점이었지만.
허나 그 시간 속에서 마족을 향한 차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을 싫어하는 종족은 인간만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마족의 염원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어느 한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 * *
헬리움의 공주이자 마왕의 딸로 태어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우리 마족은 다른 종족들에게 차별을 받는 것일까? 겉보기에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우리가 어째서 이토록 각팍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보다 다른 종족도 아니고 어째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대부분의 마족은 헬리움에서 태어나고, 또 대부분 헬리움에서 생을 마감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밖으로 나간 마족은 대게 좋지 못한 비극을 겪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반대로 소중한 사람에게 배신당해 악마화가 되는 건 기본이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차별을 겪어 다시 헬리움으로 돌아온다.
그중 최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악마로 취급받아 살해당하는 경우다. 헬리움 밖은 단지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빠. 아빠.”
“응? 왜 부르니?”
“우리는 왜 인간처럼 살아야 해요?”
내가 20살이 되던 해.
나는 헬리움의 왕, 그러니까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가 꼭 인간처럼 살 필요가 있냐고.
아빠는 내 물음에 순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쓴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단단하면서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셨다.
“세실리. 우리 마족이 어떤 경위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고 있니?”
“악마가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저질러 지금의 마족이 탄생한 걸로 알아요. 그중 인간만이 마족이 되었구요.”
“그래. 본디 우리의 조상은 인간이었지. 지금도 다른 종족들보다는 인간에 가깝고 말이야. 그러니 인간답게 살아야 우리도 한 명의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을 거란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꼭 인간처럼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마족으로 살면 되지 않아요?”
내 의문에 찬 질문에 아빠는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무릎을 살짝 굽혀 내 눈높이와 맞추었다.
마족이라는 걸 알려주듯, 피처럼 붉은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거울처럼 비춰졌다. 아빠는 한동안 나와 얼굴을 마주하더니 내 어깨를 살포시 붙잡으며 이해하지 못할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셨다.
“그게 우리 마족이란다. 세실리.”
“… …”
“지금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아빠의 말을 이해할 날이 올 거란다. 그 깨달음은 분명 너의 ‘인생’에 큰 도움을 줄테니 절대 잊지 말고 새겨들으렴. 알겠지?”
“…알겠어요.”
아빠의 말은 그로부터 80년이 흘러도 깨달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 생각했다.
마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책에 담겨있는 교훈이야말로 아빠가 언급했던 깨달음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세실리. 그 책은 분명 우리 마족의 비극을 드러내고, 또 우리의 삶은 바꿔준 건 맞아. 하지만 내가 말하는 마족의 정체성은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뭘까. 아빠는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걸까.
나는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도 그 의문을 가슴에 품었다. 부디 처음으로 디딘 인간 사회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빌었다.
그러할지언데…
“아뇨.”
어째서 마족도 아닌 당신이.
“마족은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감히 그런 말을 내뱉는 걸까.
나는 식당으로 향하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 눈 앞의 인간 남자를 쳐다봤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붉은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인간을.
얼굴은 선이 얇아 잘생겼다기보다는 예쁘장하다는 말이 어울리고, 몸매 또한 호리호리해서 중성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남자다. 여학생이 남장을 했다면 곧이곧대로 믿을만큼 예쁜 수준.
‘…왜?’
약을 삼킨 것처럼 입 안이 쓰다. 그러나 가장 먼저 의문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메그너 교수 사건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인간이다. 마족이 위험한 게 아니라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 자체가 위험하다고 반박한 남자.
때마침 처음으로 사귀었던 인간이자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리나도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하지만 둘이서 이야기 할 기회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건데, 그는 상당히 배려가 깊은 인간이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가 말 한 마디 한 마디 꺼낼 때마다 뇌리에 맴돌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이작 씨.”
“네. 세실리 님.”
“아이작 씨의 대답에는 모순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붉은머리의 남자, 그러니까 아이작은 조금 전만 해도 이리 말했다. 내가 인간처럼 보인다고. 전혀 악마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헌데 마족은 인간이 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실로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느라 골몰하고 있을 때, 아이작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가 입을 열었다.
“세실리 님.”
“말씀하세요.”
“세실리 님은 인간이 인간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한 걸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네?”
저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일까.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작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잠자코 새겨 듣는 것이 좋다. 그의 말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 많았으니까.
아이작은 내가 고개를 젓자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마 들어본 적이 없으실 거고, 앞으로 영원히 듣지 못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인간이니까요. 마족은 마족으로 태어났으니 마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 다시 묻겠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마족 답게 산다는 게 대체 뭐죠? 우리는 인간처럼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앞으로 그럴테고요.”
제논 일대기에서 스스로를 희생한 사크란처럼, 대부분의 마족은 인간으로 살아가길 갈망한다. 평범한 인간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고 싶었다.
그것이 절제를 추구하는 마족의 염원이며, 숭고하디 숭고한 운명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리 생각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만 했지, 실천에는 옮기지 못 했으나 제논 일대기 덕분에 기회를 붙잡았다. 그 기회를 절대 걷어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세상 태평한 태도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마족입니다. 헬리움의 공주님.”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요? 당신 말, 하나같이 전부 모순투성이야.”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이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건가 싶었다.
메그너 교수를 물 먹였던 그의 입담이 왜 여기서 발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단지 속이 답답해 터질 지경이다.
나는 한동안 아이작의 입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입은 도통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더 이상 참지 못해 등을 돌리기 직전이었다.
“가장 밝은 빛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추악한 어둠이 될 수도 있는 존재.”
“…네?”
무겁게 닫혀있던 그의 입이 열리며, 쉬이 넘길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 즈음, 아이작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인간이 되길 위해 간절히 소망하는,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종족.”
“… …”
아. 그렇구나.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마족이며, 마족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세실리 님.”
아빠가 하던 말이 이런 거였구나.
마족은 스스로도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이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그러니 악마가 되지 않는 이상 마족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울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본래부터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스스로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을테니까.
마족은 정말로 악마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누구보다 인간적인 종족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아이작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더니 예의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비단 마족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도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모를 겁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건 결국 같은 사람이니까요. 방금 말은 전적으로 제 의견이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 …”
“세실리 님?”
“네? 아, 네네. 잘 들었어요. 고마워요.”
아이작의 부름에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는 내가 정신을 차리자 빙긋 웃어줬다. 나는 그의 미소를 멍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 미소는 정말이지, 푸른 하늘의 태양처럼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또한 그 어떤 보석들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손으로 잡아 채 고이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갈까요?”
그의 물음에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아닌, 진심이 우러러 나오는 미소로 대답했다.
“알았어. 어서 가자.”
“응? 갑자기 말을…”
“신경 꺼. 어차피 나이는 내가 더 많잖아? 리나도 반말하는데 상관없잖아?”
“어…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 날따라 저녁 식사가 더 맛있게 느껴진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 * *
세실리와의 단란한 저녁 식사 이후, 나는 별일없이 곧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세실리가 잠깐 따로 생각해야 할 게 있다며 먼저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세실리에게 했던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최근에 들은 건데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 후로 숙소에 복귀하고 퇴고를 위해 원고를 확인할 때였다.
“이런 씹…”
원고를 확인하자마자 육성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인상이 와락 찌푸려지는 건 덤이다.
왜냐하면…
“이거 내가 한 말이었구나.”
세실리에게 했던 조언이 내 원고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