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26
■ 125화. 자문 (3) □ ᓚᘏᗢ
시리스에게 받은 자문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다크 엘프의 전반적인 생활상을 모두 알게 되었을 뿐더러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등등.
다크 엘프는 일반 엘프처럼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반면, 큰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꽉 막혀있는 알븐하임의 엘프와 달리 생각이 깨어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다만 세대 간의 갈등은 엘프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알븐하임과 융화되었을시 본인들의 전통과 문화가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모양이다.
이건 독특하게도 구세대가 아닌 신세대의 다크 엘프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분위기였다.
하물며 알븐하임은 머나먼 과거, 다크 엘프를 내친 적이 있어서 갈등의 골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는 아르웬이 규합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레인의 하드 트롤링으로 인해 이것마저 무산되었다.
이로 인해 현재 엘프와 다크 엘프는 가깝고도 먼 사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나 불화로 인해 떨어질 수밖에 없던 관계.
‘게다가 지금도 서로 간의 사이는 좋다 할 수 없고…’
엘프의 기다란 귀는 신의 목소리를 보다 더 신중히 듣기 위해 길어진 거라는 문헌이 있다. 엘프도 그 문헌에 따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귀만큼은 소중히 관리하고 있으며 손상을 입을 시 어떻게든 복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반면 다크 엘프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학살하고, 더 나아가 추방까지 시킨 알븐하임을 경멸한다는 의미로 귀를 반으로 자르는 관습을 가졌다. 이뿐만이 아니라 귀걸이까지 착용하여 나이를 체크한다.
만약 알븐하임의 엘프가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전수받았다면 모를까, 너무나 추악한 진실을 알리기 싫었던 원로원은 과거를 꽁꽁 숨겼고 더 나아가 다크 엘프를 ‘이단자’로 취급하는 중이다.
원로원 뿐만 아니라 알븐하임의 엘프들도 본인들의 귀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옛날부터 교육을 받기에 다크 엘프를 본다면 혐오어린 시선으로 본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구세대, 신세대 가리지 않고 다크 엘프를 향한 시선은 매우 좋지 않다.
내가 어째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냐면, 아르웬을 통해 듣게 된 진실이다. 성지에서조차 꽁꽁 숨겨놓았던 역사서적을 우연히 발견하여 그 덕분에 추악한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다른 엘프와 달리 아르웬이 유독 깨어있는 사고를 가진 이유가 바로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정말 좋은 소재감이지.’
제논 일대기에는 엘프를 이끄는 영웅과 다크 엘프를 이끄는 영웅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다행히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된 엘프측 영웅이 다크 엘프를 무난히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침공당한 알븐하임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과연 이걸로 엘프와 다크 엘프 간의 사이가 풀어질지는 의문이지만 아마 적지 않은 영향이 가지 않을까. 당장 마족조차 인식이 180도 바뀌었는데 엘프라고 다를 건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시리스에게 매우 우수한 자문을 받고 난 후에 그대로 돌려보냈다. 돌려보내기 직전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제논 일대기에 출연시킬거냐고 묻는 바람에 난감해진 건 덤.
사실 시리스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도 스토리에는 차질이 없어서 몇 번 모습을 비출 예정이다. 영웅은 아니지만 그 영웅의 후계자라던가 그런 식으로.
이리하여 나는 제논 일대기를 작성하며 다음 권을 준비했고, 시간이 흘러 시험이 끝나는 금요일이 다가왔다.
“아~ 정말로 짜증나. 교수는 문제를 왜 이리 어렵게 내는거야.”
“시험이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잘 친 거 같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출석은 꼬박꼬박 했으니 평균은 받겠지.”
시험이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내 옆자리에 앉은 마리가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입에 넣는 것이 배고픈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살풋 웃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리는 똑똑하니까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거야. 내가 확신할 수 있어.”
“아이작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마리가 아닌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옮겼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 송이의 검은 장미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고혹적인 미모를 띄는 세실리가 앉아있었다. 그녀만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세실리의 옆에는 의외의 인물도 함께 있었다.
“그러게.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약간 기만하는 것처럼 들려.”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리나였다. 전시회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몇 개월이 지난 현재, 그녀의 미모는 한층 더 물이 오른 상황이었다.
강아지처럼 귀여운 이목구비도 여전했으며 다른 사람에 비해서 유독 큰 눈은 사파이어처럼 반짝거렸다. 여기에 더해서 교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가슴까지.
비록 껄끄러운 관계로 시작했으나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는 살갑게 대하고 있다. 특히 마리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손꼽혔다.
전이었다면 리나도 눈치가 보여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 했겠지만, 마리와의 사이가 가까워진 지금은 평범한 친구처럼 대하는 중이다. 내가 직접 총대를 메고 둘의 관계를 회복시켜준 보람이 있다.
“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리 똑똑한 사람은 아니야. 그냥 관점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줘.”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아이작은 우리처럼 고등 교육을 받은 귀족도 아니잖아?”
리나가 방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건 비꼬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나를 제외하면 하나 같이 높은 계급을 지닌 여자들이다.
그러니 가문에서 받은 교육의 질조차 다를 수밖에 없으며 리나가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환생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리나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가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황녀님께서 좋게 봐주신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하지 마. 이제는 어색해 죽을 것 같아.”
내가 장난식으로 말하자 리나는 인상을 지으며 치가 떨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친근하게 대한지 몇 개월이 지나서 그런지 격식을 차리면 진저리를 치는 편이다.
리나도 나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크게 반성하는 중이었고, 나 또한 황녀 치고는 개념이 착실하게 박힌 리나가 마음에 들어 가끔씩 이런 장난을 치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테르스 왕족들이 아델리아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생각하자. 리나는 적어도 그들처럼 매몰차게 대하지는 않는다.
‘사생아가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미네르바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황족은 레오르트와 리나밖에 없다. 그러나 테르스 왕국을 보듯이, 아델리아처럼 숨겨진 자식이 아예 없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중세 시대 답게 남편의 외도는 허용되고 아내의 외도는 법률적으로 엄격히 금지하다 보니 따로 애인을 두는 남자가 많다. 특히 높은 계급을 가졌을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들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스테이크를 먹는 마리와 맞은편에 앉은 세실리를 번갈아봤다. 두 사람 모두 나의 애인이자 인생의 동반자다.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서로 머리채를 잡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작. 12권은 언제쯤 나와?”
그러다 불현듯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마리가 나에게 불쑥 질문했다. 그와 동시에 리나와 세실리의 시선도 내 쪽으로 향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것이, 방을 따로 잡아놓았기에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머릿속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11권이 발매된지 불과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2권도 거의 다 완료되기 직전이다.
아무래도 이미 구성과 전개를 탄탄하게 마련해놓은 데다가 시리스에게 자문까지 받았으니 집필에 막힘이 없었다. 게다가 신경써야 할 일도 거의 없어서 오로지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12권은 쉬어가는 회차고, 본격적인 스토리는 13권부터 시작된다.
“아마 곧 있으면 나올 거야. 약간 쉬어가는 회차라서.”
“정말? 엄청 빨리 나온다. 11권이 언제 나왔더라?”
“정확히 보름 전에 나왔어. 그나저나 신기하다. 글을 그렇게 빨리 쓸 수 있는거야?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글로 쓰는 게 쉽지 않을텐데.”
12권이 빨리 나온다는 소식에 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사실 내 기준으로는 그리 어렵진 않다. 전생에서는 다양한 책을 읽어 눈을 높였으며 필력은 필사를 통해 길렀다.
그러니 적당히 좋은 소재만 있으면 글을 쓰는데 무리가 없다. 굳이 문제를 꼽자면 첫 문단을 쓰는 거겠지.
첫 문단에 따라 그 이후의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나로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칠 수밖에 없다.
“글쎄? 대답하기가 애매하네. 맞춤법이나 단어만 잘 선정하면 글 쓰는 건 힘들지 않아.”
“…왠지 재수없게 들리는 말이네.”
“그러게.”
“천재가 다 그런거지 뭐.”
나를 향해 재수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세 사람. 나는 살짝 어이가 없어졌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환생자라서 가능한 일이라는 걸 밝힐 수도 없으니 그냥 재수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듯했다. 언젠가 이 사실을 말하는 날이 올지가 의문이겠지만.
이후로 남아있는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입에 넣으려던 찰나, 깜빡하고 있던 게 떠올랐다. 이에 입 안에 있던 스테이크를 꿀꺽 삼키며 맞은편의 세실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 맞다. 세실리 누나.”
“응?”
내가 부르자 붉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세실리. 포크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번에 누나 도움이 필요한 게 있는데 도와줄 수 있어?”
“무슨 도움?”
“누나도 알고 있겠지만 릴리스가 누나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거든. 외모 뿐만 아니라 전투 방식이나 그런 것도 참고하고 싶어서 그래.”
“전투 방식? 아니, 잠깐만. 그럼 지난 번에 말한 게 진짜였어? 나를 보면서 릴리스를 창조했다는 게?”
아무래도 칠죄종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당시를 말하는 것 같다. 그때는 어디까지나 떠보기 식으로 물은 거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듯하다.
나는 기대감에 한껏 부푼 세실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스는 어디까지나 세실리를 모티브로 삼은 거라 부정할 생각도 없다.
“응.”
“와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세실리의 표정이 태양처럼 밝아졌다. 붉은빛을 띄는 눈동자도 한없이 초롱초롱해지며 감동받았다는 표정이다.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격한 반응이라 의문을 가졌지만, 그 옆을 힐끔거리니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리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사이 세실리는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나야 영광이지! 제논 일대기의 등장인물의 원조가 나라니… 우리 마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원일 거야.”
“악역인데 괜찮아?”
“네가 만든 악역이라면 그것조차 매력적이지 않을까? 내가 무조건 도와줄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거야?”
자기가 책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기뻤던 것일까. 세실리는 드물게 열정을 보이면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그에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던 나였지만, 본래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누나의 전투 방식을 참고하고 싶어. 릴리스는 악마가 된 마족이거든. 그러니 마법도 사용해서 누나를 참고하면 안성맞춤일 거야.”
“전투 방식이라… 혹시 릴리스가 검술도 사용하니?”
“응. 근데 현란하진 않고 마법이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매개체밖에 안 될 거야.”
“내가 배운 검술도 그래. 인간은 부족한 힘을 채우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지만, 우리 마족은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거든. 음…”
잠깐 고민하던 세실리는 손가락으로 볼을 툭 툭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방학 때 헬리움을 찾아오면 되겠다. 그때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줄게.”
“고마워. 근데 대련이라도 할 거야?”
“응. 아마 발락 경을 부르면 될 거야.”
역시 만만한 게 가르츠다. 다만 가르츠도 나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그만큼 적당한 인원도 없을 것이리라.
“부럽다. 정작 여자친구는 등장도 안 시켜주고. 이게 맞는 거야?”
세실리가 제논 일대기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영 불만이었던 것일까. 마리가 볼멘소리를 내며 투덜거렸다.
뚱해진 얼굴과 더불어 복어처럼 한 쪽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모습이 정말 깜찍했다. 이에 나는 우리 여자친구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뒤이어 그녀의 귓가에다 작게 속삭였다.
‘질투할 필요는 없어. 너도 알잖아?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 적을 거라고. 그게 낮이든 아니면… 밤이든.’
‘… …’
‘기대해도 돼.’
그러자 순식간에 붉어지는 마리의 얼굴. 나는 미소를 띄며 천천히 얼굴을 뒤로 물렸다.
옛날이었다면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겠지만…
더듬- 더듬-
그녀는 사냥감을 찾는 맹수처럼, 내 허벅지를 더듬거리더니 점점 중앙 쪽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앞에 사람이 있던지라 응큼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흥분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마리의 부드러운 손이 그 위에 안착하는 순간, 나는 그녀의 손목을 조심히 붙잡았다. 아직은 참아달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아이작.”
“응.”
“식사가 다 끝나면… 알지?”
마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나는 표정을 최대한 관리하며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 잠깐 숙소 좀 갔다 와도 될까?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응? 갑자기? 무슨 일이야?”
확실히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을 드러냈다. 반면 이미 나와 마리의 관계를 알고 있는 세실리는 얼핏 눈치챈 표정이다.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리나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잠깐 필요한 약이 있어서. 금방 갔다 올 거야.”
“약?”
리나는 감을 잡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아까보다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어디 아픈데 있어? 만약 아픈 거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예방약이라고 보면 돼.”
“…예방약?”
“응.”
아무래도 리나는 이런 부분에 눈치가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