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31
■ 130화. 혼혈 (2) □ ᓚᘏᗢ
아르웬이 혼혈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사람도 있겠지만, 동시에 의문을 품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원로원이 버젓이 있는데 어떻게 하여 여왕의 자리에 즉위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원로원은 혼혈이 이처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데도 어째서 혈연을 조사하지 않는 것일까. 이 모든 이유는 바로 혼혈의 특징 때문이다.
혼혈은 설명했다시피 부모 중 한 명이 인간이어도 엘프의 특징을 거의 물려받으며, 눈에 띄는 차이점이 없다. 다른 엘프에 비해 짧은 귀조차 흔한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리고 혼혈은 인간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만큼 뛰어난 적응력과 처세술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알븐하임에 입성한다. 누군가 의심할 일도 없고, 설령 의심을 품어도 여유롭게 넘어간다면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 한다.
물론 가끔 가다가 입을 잘못 놀려 혼혈임을 들키는 경우도 있으나 의외로 비밀로 치부되는 편이다. 알븐하임은 다른 나라보다 집단주의가 심한 편인데 여기서 혼혈과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혼혈만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불똥이 튀길 수 있어 암묵적으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다. 혼혈도 이걸 알기에 조용히 살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아르웬도 엘프와 인간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나 그녀는 약간 특이한 케이스다. 엘프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가 서로 사랑하여 맺어낸 결실인데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비통해하는 것도 잠시, 아내의 유언을 따라 아르웬을 데리고 인간 세상 곳곳을 방랑했다. 아르웬은 겉보기에 온실 속 화초처럼 보이겠으나 실상은 반대다.
인간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경험한, 여느 엘프와 달리 사고 방식 자체가 인간에 가까운 편이다. 이른 나이에 여왕으로 즉위할 수 있던 이유도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잘 이용한 덕분이다.
다만 그때 당시에는 엘프 특유의 오만함을 가지고 있어 외교적으로 큰 패착을 봤지만 놀라운 습득력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일어섰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아르웬은 한 가지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바로 잡아야 된다.
이 사고 방식 하나로 아르웬은 짧은 시간 내에 수많은 성장을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뱀 같은 원로원과 대치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식적으로 인간들에게 항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알븐하임에 있는 잡종을 모두 내쳐야 된다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알븐하임이 어떤 혼란을 겪게 될지 모릅니다.”
“페린 말이 맞습니다. 설령 잡종들이 높은 직급에 있다 해도 과감하게 내쳐야 안정이 될 겁니다.”
제논 일대기 12권이 발매되고 일주일이 지난 현재.
왕좌에 앉아있는 아르웬은 자신의 앞에서 격렬하게 항의 중인 원로원을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국정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치더니 저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안 그래도 예상치 못한 문제, 그러니까 혼혈의 등장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상황이었는데 원로원까지 나서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네 여왕이 혼혈인 건 알고 있니?’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다시 말하지만 아르웬은 혼혈이다.
이에 어떻게 하면 저 더러운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녀는 이미 원로원이 입에 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고 있다.
‘두려운 거겠지.’
수 십년 간 원로원과 숱한 언쟁을 벌이면서 그들의 행동 패턴은 이미 모두 파악해 놓았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따진다면 그냥 신경을 건드리기 위함이고 격양된 목소리는 건수를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언성을 높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때까지 딱 한 번, 알븐하임의 낡아빠진 ‘법률’을 개정할 때를 제외하고는.
법률은 그 당시 알븐하임의 권력 그 자체였으며 원로원이 콱 틀어쥐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법률을 개정한다고 하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종족 전쟁에서의 패배와 체제의 변화로 인해 법률은 개정되었으나 아직까지 낡아빠진 형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원로원은 기득권을 단단히 쥐기 위해 지금까지 왕과 여왕을 견제하여 억지로 끌어내렸다.
허나 그들은 혼혈이 아닌 순혈이었으며 온실 속 화초로 자라난 사람들이다. 반대로 아르웬은 어릴 때부터 태풍을 맞고 무럭무럭 성장한 거목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혼혈이 위험분자야.’
혼혈의 잠재력은 순혈 엘프보다 훨씬 뛰어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놀라운 습득력을 이어받았다는 추측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혼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혼혈이 높은 직급에 오르면 오를수록 원로원과 구세대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다. 신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구세대보다는 혼혈에 호의적인 입장일 확률이 높다.
엘프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고, 더 나아가 다른 종족보다 우월해야 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는 원로원들에게 혼혈은 결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자들이다.
‘근데 혼혈이 이리 많을 줄은 나도 몰랐는데…’
아르웬은 원로원의 항의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알븐하임 내에 거주 중인 혼혈들을 떠올렸다. 제논 일대기 12권으로부터 시작된 일종의 커밍 아웃(?)은 점점 불씨를 키워나가 거대한 불꽃이 되었다.
더 놀라운 건 혼혈들조차 다른 혼혈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예 모르는 건 아니고 얼추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이리 많을 줄은 몰랐던 거겠지.
더구나 고백을 한 혼혈들은 대부분 높은 직급에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사회적 능력자들이다. 교수는 물론이고, 신을 모시는 사제, 더 나아가 군대에 소속된 명망높은 전사까지.
심지어 전사장 중 한 명도 혼혈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 알븐하임에게 큰 충격을 선사하는 중이다.
“그만.”
“… …”
모든 생각을 정리한 아르웬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명령하자 불 같이 항의하던 원로원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불만어린 표정은 여전했다.
뒤이어 아르웬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원로원의 얼굴 하나 하나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나 저래나 마음이 드는 구석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대들의 의견은 잘 알겠다. 알븐하임에 혼란을 초래한 작가를 찾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 엘프에 이상한 얘기라도 나오면 어떻게 될지 여왕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엘프 치고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늙수레한 목소리로 아르웬에게 부탁했다. 원로원 중 대표라 할 수 있는 인물의 설득은 그럴 듯했다.
다른 소설도 아니고 제논 일대기다. 마족의 인식마저 송두리째 뒤바꾼 희대의 명작이자 이미 문화 그 자체가 되어버린 서적.
이건 원로원 뿐만 아니라 아르웬도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특히 아르웬은 제논, 그러니까 아이작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기에 약간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알븐하임이 침공당할 거라는 전조까지 있습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저희 알븐하임이 습격을 받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노인 옆에 있는 젊은 엘프 하나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르웬은 그 이야기를 듣고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인내했다.
소설인데 저리 과몰입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엘프라서 납득이 간다. 하지만 역사를 허투로 배웠는지 몰라도 아르웬으로서는 기가 차는 일이었다.
“웃기는 말이구나. 3000년 전 악마 전쟁 당시에도 우리 알븐하임이 침공당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때는 ‘세계수’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수가 존재하는 이상…”
“작가도 그런 엘프의 오만함을 잘 알고 있기에 알븐하임이 당하는 거겠지.”
“하오나…”
“소설 속의 내용은 그만 언급하거라. 가상의 이야기를 가지고 항의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 현실을 얘기하거라.”
“… …”
아르웬이 딱 잘라 말하자 젊은 의원도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르웬은 그걸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엘프는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며 언제나 완벽한다는, 뿌리깊게 박혀있는 관념 때문에 저딴 말을 지껄이니 어이가 없었다. 아름다운 문화조차 검열하려 들다니 이게 무슨 추태인 걸까.
“그나저나 내 허락도 없이 재미있는 짓을 했더구나. 이야기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알븐하임 내에서 제논 일대기의 판매를 금지할 거라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당한 판단 아래에 신속히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 판단이라는 게 뭐지? 한 번 듣고 싶은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개소리를 지껄일까. 아르웬은 표정 관리를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기다렸다.
원로원이 무슨 말을 하던 간에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원로원은 답이 없다고.
“현재 알븐하임은 혼혈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게다가 알븐하임의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죠.”
늙은 의원의 말처럼 제논 일대기는 본래 엘프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아무래도 인간이 주인공인데다 이전까지 엘프와 큰 연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리가 엘프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카이르와 엘리샤의 비극적인 서사시가 나오자 인기가 폭등했다. 특히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엘프 답지 않게 과격하고 할 말을 다하는 메리의 인기가 많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구세대들 사이에서는 큰 불만을 갖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엘프는 용맹한 전사이자 긍지 높은 종족이지, 메리처럼 왈가닥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원로원과 같은 강경파를 제외하면 제논 일대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종족보다 유달리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한 엘프인데 제논 일대기만큼은 예외로 취급되는 중이다.
“이런데도 만에 하나, 우리 엘프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라도 나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간이 발매되기 전, 한시라도 빨리 저자를 찾아 수정을 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자가 수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발매한다면?”
“책이 수입되기 전 저희가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에 발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검열을 하겠다는 의미다. 엘프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나오는 순간 강력한 제재를 먹일 수 있도록.
높으신 분들이 검열을 한다는 건 큰 부작용을 낳는다. 국민들이 권력자들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며 더 나아가 통치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물며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순간 원로원이 기득권을 꽉 쥐어잡는 셈이니 아르웬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그녀는 미간을 좁히고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말은 즉,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겠다는 것이냐? 그럼 예술이 왜 있고, 문화는 왜 존재하는 것이냐?”
“우리 엘프에 좋지 못 한 표현이 나와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그건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다. 그 문화를 직접 보고 듣는 사람들의 몫이지. 사실과 동떨어진 표현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동감할 것이니라.”
“모두가 동감한다고 한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우리를 향한 시선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당장 12권을 보십시오. 엘프와 하등 종족 간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웬 잡종들이 기승을 부리지 않습니까?”
말투는 우아한데 사람을 빡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실려있는 노인의 대꾸다. 아르웬은 머리가 점점 지끈거리는 게 느껴져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렌 대의원.”
“예. 여왕님.”
“현재 그대의 나이가 몇이지?”
뜬금없이 노의원, 피렌의 나이를 묻는 아르웬. 그에 피렌은 의문을 가졌으나 순순히 대답했다.
“이번 해를 포함하면 845번의 봄을 지켜보았습니다.”
“845번이라…”
구세대 다운 대답이었다. 신세대는 저런 식으로 답하지 않고 평범하게 대답한다.
뒤이어 아르웬은 이마에서 손을 떼어 선선히 고개를 들었다. 왕좌에 앉아있어 자연스레 원로원을 내려보는 구도였으며 그녀의 은회색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피렌 대의원. 그대는 수 백년 동안 알븐하임을 지켜봤겠지. 그대의 눈에는 200번의 봄도 겪지 못한 내가 애송이로 보일 거야.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왕님은 우리 알븐하임의…”
“입에 발린 말은 되었다. 그대의 속도 모르는 멍청이는 아니니.”
“… …”
직설적인 대꾸에 피렌은 살짝 당황한 얼굴로 아르웬을 올려다 보았다. 고고하면서도 오연한 눈빛, 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회 당시 아이작과 담소를 나누던 소녀가 아닌, 그야말로 ‘여왕’에 걸맞는 품위이자 카리스마. 원로원을 통치하는 피렌조차 움찔거릴 정도로 강력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다른 질문을 하마. 피렌 대의원. 그대는 원로원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알븐하임을 통치했지?”
“…원로원에 있으면서 531번의 봄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알븐하임을 입맛대로 다스릴 수 있었는가? 물론 종족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그랬겠지. 인간은 너무나 나약했고, 수인은 야만스러웠으며 드워프는 관심도 없었으니. 마지막으로 마족은 우리와 대등한 능력을 가진 탓에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고 말이야.”
“… …”
“허나 그대는 알븐하임을 다스렸을지 몰라도, 세상을 다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느니라.”
묵직한 팩트 한 방이 명치에 꽂히자 피렌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의 양 옆에 서 있는 의원들은 사뭇 반응이 달랐다.
한 명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반면, 한 명은 분개하여 당장이라도 소리치기 위해 한 발짝 앞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아르웬이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자마자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시도조차 못 했다.
아르웬은 원로원들의 기세가 점점 누그러지는 것이 감지되자 나긋나긋하면서도 힘이 실린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백성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원하는 입맛대로 관리한다면, 백성이 왜 존재하고 국가가 왜 존재하는 건가? 세상은 체스처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백성들은 그대가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세상은 그대가 원하는대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리 엘프는 신의 선택을 받은 종족이나, 결국 세상에 비해서는 다른 종족보다 오래 살고 강력한 힘을 지닌 필멸자일 뿐이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되는 세상에 우리의 몸을 맡겨야 되는 것이니라. 만약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면, 그건 전세계와 전쟁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터.”
“… …”
“알븐하임은 나와 그대들이 함께 다스리고 있지만, 원하는대로 변화시키면 안 된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한 판단들이 백성들에게 안 좋은 쪽으로 작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백성들의 얼굴에 웃음이 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무런 감정조차 없는 노예를 양성시키는 게 아니라.”
하나 하나 맞는 말들이라 원로원은 반박조차 하지 못 했다. 저것마저 부정한다면 알븐하임의 백성들을 노예로 취급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니.
아르웬은 원로원들이 눈을 부라리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못 하자 같잖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어서 그녀는 결심을 내린 듯한 표정으로 원로원에게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후,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하겠다. 그대들이 부탁한대로 현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조치하겠노라.”
“…어디서 연설할 계획이신지?”
피렌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기세가 한 풀 꺾여있었다.
“대광장에서 연설하겠다. 마법은 내가 준비하겠다. 혹, 불만이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어서 물러나거라.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으니.”
아르웬이 축객령을 내리자 원로원도 마지 못해 물러났다. 그리고 알현실 밖으로 나가기 직전, 피렌은 등을 돌려 아르웬과 눈빛을 마주했다.
아르웬도 피렌의 눈과 마주하며 미묘한 대치를 이루었다. 이윽고 피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알현실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알현실에는 아르웬 혼자만이 남게 되었고, 그녀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뒤이어 그녀는 여왕으로서의 품위를 모두 집어던지고 투덜거렸다.
“단 거 땡긴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나 연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도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