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45
■ 144화. 다시 집필 (2) □ ᓚᘏᗢ
악역은 매력적이어야 된다. 이건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통용된다.
만약 악역이 평범하고 그저 그렇다면 주인공이 쓰러뜨려도 큰 쾌감을 얻지 못할 뿐더러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흔히 찌질한 악역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에 매력적인 악역은 주인공에게 쓰러져도 수많은 여운을 남기며 다양한 시선으로 평가된다. 어째서 악역이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악역은 어떤 신념을 갖고 있었는지 등등. 특히 주인공과 완벽하게 대립되는 악역이 등장한다면 그 인기도는 대폭 증가한다.
전생에서도 많고 많은 악역들 중에 역사에 기록될만한 악역이 있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라던가, 다크 나이트의 조커라던가, 게임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패륜왕, 아서스라던가.
악역은, 주인공 못지 않게 매력적이고 입체적이어야 된다. 특히 칠죄종처럼 비중이 큰 악역이라면 더욱.
이들의 과거사가 소설 중에 언급되고 독자들이 납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 하나 정리하는 것도 일이구나.’
칠죄종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만큼 설정을 정립하는 것조차 일이었다. 13권은 차근차근 작성하면 되니 우선 칠죄종의 과거사부터 적을 생각이다.
칠죄종에 속해있는 종족을 정리하자면 교만은 엘프, 식탐은 악마, 색욕은 마족, 질투는 인간, 분노는 수인, 탐욕은 드워프, 마지막으로 나태는 일종의 파편이다.
공통점으로는 인공물인 나태를 제외하고 죄다 비참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이걸 풀어가기 위해서는 곳곳에 언급되어야 하지만 외전으로 작성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일단 가장 먼저 처치당할 릴리스는…’
주인공 일행이 엘븐하임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색욕, 릴리스가 나온다. 세실리를 모델로 삼았으며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병행하는 서큐버스.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미모를 지닌데다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색기가 묻어나와 남녀를 불문하고 유혹하지만, 마족답게 불우한 과거사를 안고 있다.
한때 인간 남자를 사랑했으며 그 인간도 릴리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마족의 인식이 바닥이었던 탓에 눈 앞에서 잃고 만다.
이후로 여느 마족이 그렇듯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악마가 된 것이고.
하지만 독특하게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가운 증오로 복수를 하다가 디아볼스의 눈에 띄어 색욕의 자리에 앉게 된다.
이성을 잃지 않은 이유도 진처럼 악마와 인간의 혼혈인 1세대 마족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순정녀이기도 하고.’
이미 칠죄종은 어떤 방식으로 리타이어할지 모두 생각해 놓았다. 릴리스는 죽기 직전까지도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쓰러진다.
심지어 악마가 되고 아득바득 살았던 이유조차 사랑하는 남자를 좀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정말이지 안타까우면서도 마음이 숙연해지는 이유다.
‘이러다가 마족이 해바라기 종족으로 인식되는 건 아니겠지?’
현재 마족의 인식은 떡상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권이 발매됨과 동시에 마족과 애인 관계가 된 사람들의 숫자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들리는 중이다.
마족도 악마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본인들의 활동 지역을 점점 넓히고, 더 나아가 다양한 경험을 쌓는 중이다. 물론 알븐하임의 입국 사건에서도 보다시피 자잘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허나 이것 또한 명백한 종족차별로 취급되고 있다.
“끄으응~!”
나는 칠죄종에 대한 설정을 모두 정립한 후 기지개를 폈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있었는지 리드미컬한 뼈소리가 들린다.
세실리의 전투를 참고하여 릴리스의 전투씬을 작성하지만, 그건 본격적으로 상대할 때의 이야기지 13권은 아니다. 13권은 적당히 마법으로 상대하다가 떠난다.
제논 일행은 릴리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릴리스에게는 날개가 있고 제논 일행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공군마냥 공중에서 마법을 펑펑 쓰면서 싸우는 사람과 땅개마냥 바닥에서 싸우는 사람 간의 메리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전차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헬레콥터 한 대에 처참하게 박살나는 걸 보면 대충 알 거다.
‘엘븐하임 침공 후가 제일 문제인데…’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엘븐하임은 이름에서 보다시피 제논 일대기 속의 알븐하임이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적당히 단어만 바꾼거다.
그리고 엘븐하임은 악마들에게 침공당할 뿐더러 세계수마저 점령당한다. 세실리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계수에서 나오는 마나는 악마들에게 치명적이나 교만, 루시퍼가 그걸 무위로 돌려버린다.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넘어가자. 나도 모른다.
다만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엘프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루시퍼가 세계수의 ‘뿌리’를 일시적으로 오염시켰다는 언급이 나오긴 한다.
그게 정말 가능한지는 나도 모르고 원로원과 여왕인 아르웬도 모를 것이다. 누누이 당부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 실제로 적용될 일은 거의 없다.
내 소설은 약간 특이한 케이스긴 하지만.
‘진짜로 검열당하려나?’
원로원이 검열할 거라 단단히 벼르고 있으나 솔직히 검열 당할만한 스토리긴 하다.
소설이라지만 엘븐하임이 악마들에게 점령당할 뿐더러 세계수마저 대악마가 부활하기 위한 양분으로 전락해버리니까.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자부심이 있는 엘프로서는 도저히 용납할래야 용납할 수 없는 스토리다. 신들의 축복과 선물을 악마들에게 무참히 빼앗기는 것만큼 불편한 건 또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하면 경각심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평화는 날카롭게 벼려졌던 검조차 무뎌지기에 충분했으니.
‘이건 아르웬에게 차차 물어보고.’
제일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엘프 영웅과 다크 엘프 영웅의 갈등과 협력, 더 나아가 융화하는 스토리를 지나 본격적으로 수인이 등장한다.
현실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도 그렇고 인간과 수인의 관계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여러모로 큰 갈등을 빚게 되지만 악마들을 토벌하면서 차차 해소해나가며 마지막에는 친구가 되는,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수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게 걸린다. 엘레나의 연구실에서 다양한 논문과 역사서를 통해 기원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뿐이다.
수인은 문명, 그러니까 애니머즈를 건국한지 고작 300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곳곳에 부족 생활을 영위하는 수인들이 남아있다. 책과 논문으로는 정보가 한참 부족하다.
‘정말로 레오나한테 부탁해야 되나?’
아카데미에 입학한 걸 보면 레오나도 분명 범상치 않은 신분을 가졌을 것이다. 지난 번에도 본인은 고양이따위가 아니라 사자라니 뭐니 언급한 적이 있는 걸 보면 반쯤 확실하다.
따지고 보면 사자도 고양잇과에 속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인간인 나에게 다 같은 동물이다.
“음…”
나는 입에 펜을 문 채 천장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수인은 13권이 아니라 14권 후반에서야 등장하며 본격적인 갈등은 15권부터다.
그러므로 여유 시간이 몇 개월 정도 남았다는 뜻이지만,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게다가 좀 더 확실한 고증을 위해서라면 레오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자문을 구해야 된다.
‘한 번 물어볼까?’
레오나 입장에서는 당황하겠지만 연구 목적을 위한 거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대신 그녀도 원하는 것이 있을테니 가능하면 들어줄 생각이다.
때마침 다음 강의가 역사이니 그때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시간을 체크했다. 역사 강의까지 약 1시간 정도 남았다.
그 시간동안에는…
쫘악!
시리스나 불러야지. 나는 책상 서랍에서 소환용 주문서를 꺼내 반으로 찢어버렸다.
반으로 찢어진 주문서는 푸른색 입자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으며 나는 시리스가 응답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약 10초 정도 기다렸을까.
“부르셨습니까.”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시리스가 등장하여 무뚝뚝하게 말했다. 저번처럼 속옷 차림이 아니라 갑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
물론 속옷이 아닐 뿐이지, 흔히 칭하는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어 노출이 심한 건 변함이 없다. 다크 엘프는 정면 승부보다는 암습에 특화돼 있다보니 몸이 가벼워야 하며, 좀 더 확실한 은신을 위해서는 노출된 피부 면적이 많아야 된다.
나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다크 엘프의 문화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복면으로 입 부근을 가렸지만 그럼에도 화려한 미모를 감추기에는 무리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별 일 없었죠?”
“네.”
“아르웬은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알아요?”
“별 일 없으십니다. 다만…”
“다만?”
내가 얼굴을 살짝 가까이 대며 궁금해하자 시리스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왕님께서 정말로 아무런 보답이 없어도 되는지 여러번 물어보십니다.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다니까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냥 연설하는 모습으로도 충분했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리스 씨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확인을 위해서에요.”
“확인… 말입니까?”
“네.”
나는 반쯤 집필한 원고지를 시리스에게 전달했다. 시리스는 나와 같은 황금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원고지를 전달받았다.
뒤이어 원고지와 나를 번갈아 보았는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감을 잡지 못 한 모양이다.
“제가 시리스 씨에게 자문을 받아 다크 엘프 전투씬을 적었거든요?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요.”
“그럼 제가 제일 먼저 읽는 사람이 되는 겁니까?”
“중간 부분이긴 해도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죠?”
“오…”
자기가 제일 먼저 읽는다는 소리에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시리스. 이 사람도 가르츠처럼 무뚝뚝하고 감정 변화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히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아마도 감정을 드러낼 일이 거의 없는데다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기에 성격이 딱딱해진 게 아닐까. 나는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아이마냥 눈을 빛내는 시리스에 피식 웃었다.
“음…”
“… …”
나는 시리스가 원고를 체크하는 동안 잠자코 기다렸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솔직히 약간 긴장되었다. 다른 종족, 그것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크 엘프의 전투씬이다. 다크 엘프 내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그녀가 과연 만족할만한 장면이 될 수 있을까.
다크 엘프처럼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대충 적어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확실한 고증이 필요하다.
괜히 이상한 프레임이 씌워지기라도 한다면 그 종족들에게 미안해질 뿐더러 비난까지 받게 된다. 그러니 고증만큼은 철저하게 지키고 싶다.
펄럭-
“… …”
“… …”
“저… 시리스 씨?”
“네.”
“언제 다 읽어요?’
다크 엘프의 전투씬은 그리 많지 않은데 어째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전투씬을 읽는 척 하면서 전부 읽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된다.
그런 내 말에 시리스는 원고지를 덮더니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실망한 듯한 표정이다.
그에 약간 긴장하고 있을 때 쯤, 시리스가 실망했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투 장면 자체는 부족한 점이 없습니다. 특히 악마 거인을 처치할 때 아킬레스건부터 제거하여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에 급소를 하나 하나 찌르는 건 훌륭해요. 실제로 거인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줄곧 사용하는 전법이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방식이지 다크 엘프의 방식은 아니에요. 은신을 했다면 다 집어치우고 목을 비롯한 치명적인 급소부터 공격합니다. 설령 5m가 넘는 거인이어도 우리는 공간 도약을 통해 단숨에 목까지 이동할 수 있죠. 더구나 악마 쪽에 리치가 존재하지 않는 아닌 이상 저희를 감지할 수 있는 수단은 없습니다.”
“오옹…”
“명심하세요. 우리는 화려함보다는 간결함을 더 중요시 여깁니다.”
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며 감탄했다. 역시 자문을 구하기를 잘한 것 같다.
동시에 레오나에게 자문을 구해야 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런 지적들이 모이고 모인다면 보다 더 나은 완성도를 자랑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또 있어요?”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느낌에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며 기다렸다. 이어서 시리스는 실망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저는 왜 없어요?”
“네?”
“분명히 절 넣는다고 하셨는데…”
“… …”
“다음에 등장하는 건가요?”
나는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시리스의 귀를 확인했다. 반쯤 잘렸지만 그럼에도 인간보다는 긴 편에 속해있다.
그리고 그 귀는 아래로 추욱 처져 있었다. 아무리 다크 엘프여도 귀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듯했다.
“…곧 나올 거예요.”
“정말이죠?”
“네.”
“믿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시리스의 귀가 살짝 올라갔으며 표정 또한 약간이나마 밝아졌다. 나는 그걸 보며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다크 엘프 측 영웅의 후계자도 나올 예정이니 거기에 넣으면 되지 않을까. 엘프 영웅 측 후계자는 입국 심사 때 보았던 케이르고.
‘가르츠 씨도 은근히 원하는 것 같던데…’
안타깝지만 마족은 이미 진이 있었기에 넣을 수가 없다. 그냥 사인으로 만족하라고 해야지.
“원하는 건 이게 끝입니까?”
“음… 가능하면 아르웬에게 수인과 관련된 서적을 보내달라고 부탁해주세요. 앞으로 수인도 등장할 예정이라.”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보상은 따로 필요없는 게 확실하십니까? 여왕님께서 여러번 언급하라고 하셨습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연설하는 동안 아르웬의 몸매를 원없이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은 받았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으니 대충 둘러댔다.
“아까도 말했지만 연설하는 모습만으로 충분했어요. 아르웬의 색다른 면모도 볼 수 있었고.”
“색다른 면모라면…”
“원래도 예쁜 건 알고 있었는데 더 예뻐진 것 같달까? 그냥 그렇게 전해주세요.”
“음…”
내 말을 들은 시리스가 묘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방금 전과 달리 속내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눈빛이다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왜요?”
“아닙니다. 그대로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네.”
무뚝뚝한 내 대답에 시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