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48
■ 147화. 수인 (2) □ ᓚᘏᗢ
우드득! 우득! 꽈득!
흔히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 있다. 황당하거나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으로 말문이 막혔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을 가졌다.
현재 내 상황도 그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는 중인 수인녀, 레오나 때문이다.
레오나가 주문했던 스테이크는 티본 스테이크로, T자 모양 뼈대에 살이 붙어있는 스테이크다. 보통 뼈는 남겨 두고 남은 부위를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 먹는다.
하지만 앞의 수인녀 아니, 짐승녀를 보아라. 새로운 식사법을 자기 혼자 창조하는 중이다.
나이프로 자르지도 않은 채 포크로 집어먹는 건 예사고 이 다음에 이어진 식사 방법은 기가 막히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스테이크 살을 썰기 위해 존재하던 나이프로 뼈대를 잘근잘근 썬 뒤, 포크를 숟가락처럼 이용하여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비유가 아니라 그녀는 뼈를 통째로 씹어먹고 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치아는 물론이고 턱조차 남아나질 않을텐데 과자마냥 맛있게 먹는 중이다.
‘…사자가 아니라 하이에나가 아닐까?’
시체청소부로 유명한 하이에나는 치악력이 굉장하여 뼈는 물론 타조알까지 씹어먹을 수 있다고 들었다.
물론 레오나는 본인을 사족, 즉 사자 수인이라 밝혔으니 하이에나는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사자는 고기를 먹지 뼈를 먹진 않으니까.
오도독! 오독! 오독!
“음. 음. 뼈도 맛있네. 소스가 골수까지 스며들어서 미묘한 맛도 나고.”
“…턱은 안 아파?”
“이정도야 가뿐하지. 으드득.”
겉보기에는 진짜로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압권이다. 골수까지 빨아먹는다는 표현은 레오나 앞에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골수가 아니라 뼈를 통째로 씹어먹으니.
나는 레오나의 식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잠자코 지켜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너무 빤히 바라봐서 그런지 스테이크의 양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러다가 레오나에게 빼앗길 것 같아 곧바로 식사를 재개했다. 앞쪽에서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조금 시끄러웠으나 그래도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후아.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한 적이 얼마만인지… 정말 고마워.”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네. 턱은 정말 안 아픈 거 맞지?”
“안 아프다니까 그러네.”
레오나는 내 물음에 손을 내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동시에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으면서 실실 웃었다.
누가 보아도 행복하다는 표정이지만 떨떠름한 심정은 여전했다. 나는 깔끔하게 썬 스테이크 한 덩이를 입에 넣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오나 너는 사자 수인이라고 했지?”
“응. 그런데?”
“하이에나가 아니고?”
“야이씨… 후우.”
레오나는 내 질문을 듣자마자 발끈하다 말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침착함을 되찾으려는 듯한 모양이다.
잠시 후, 그녀는 약간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더니 어림도 없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해도 되는 질문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질문도 있는 법이야. 나라서 망정이지 만약 다른 사자 수인 앞에서 그런 말을 뱉었다간 곧바로 홀름강 신청이 날아올 걸? 하이에나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좋은 이미지가 아니거든.”
“홀름강?”
이 세상이 아니라 전생에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다. 상남자의 상징이자 ‘야만인’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민족, ‘바이킹’의 중요한 문화 중 하나다.
홀름강은 단순한 결투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의 생사여탈권까지 쥘 수 있다. 만일 신청을 거부하거나 추하게 목숨을 구걸한다면 모든 명예를 잃어버려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
‘위그드라실도 그렇고 가끔 보면 북유럽의 신화가 곳곳에 묻어있단 말이야.’
알븐하임의 수도, 위그드라실 또한 본래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세계수다. 어쩌면 이 세상은 지구와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신만이 아는 정답이니 당장 신경 쓸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이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니까.
지금은 제논 일대기에 적을 내용이 더 중요하다.
“혹시 그거 내가 아는 게 맞아? 상대방의 생사여탈권까지 쥘 수 있는 결투.”
“비슷해. 그리고 승자는 패배자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몸은 물론이고 권력과 재력, 마지막으로 목숨까지. 명예를 비롯해 목숨까지 내거는 결투이니 대단히 신성하게 여겨져. 단, 마구잡이로 신청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명분과 더불어 대족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해.”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
레오나는 내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가장 먼저 홀름강을 신청할 때 필요한 조건이다.
첫번째. 증인이 필요하다.
막무가내로 홀름강을 신청하여 상대방의 것을 취할 수 없도록 한 것이며, 그 증인조차 한치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단, 증인이 없다면 대족장에게 직접 승인을 받아야 된다. 대족장이 일종의 판사가 되는 셈인데, 이 경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된다.
두번째. 확실한 명분과 동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상대가 싫다는 이유로 홀름강이 성사되지 않는다. 명예를 더럽혔다거나 아니면 평소 불만 혹은 원한이 쌓여있다던가 등등. 누가 들어도 납득할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건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수탈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규칙이며 반대로 약자가 홀름강을 받아들이면 결투는 성사된다.
세번째. 최소 족장급 이상의 권력자가 지켜봐야 된다.
홀름강은 단순한 결투가 아니라 자연의 신, 하르트의 비호 아래에 이루어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신청자와 상대방의 명예가 사후에도 지켜질 수 있도록 족장이 무조건적으로 관람해야 된다.
네번째. 홀름강 도중에 포기할 시, 그 사람의 이마에 낙인이 찍힌다.
단순한 패배자가 아니라 신의 비호조차 저버린 겁쟁이이자 부족의 수치로 취급받는다. 이 탓에 중도 포기자는 부족 밖으로 쫒겨날 뿐더러 치욕감에 대부분 생을 마감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장례조차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다. 죽어서도 멸시를 받는다는 의미이며 전사들의 고향, ‘발할라’로 못 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홀름강을 치른 전사들은 1년 간 신청하지도, 받지도 못 해. 그 증거로 승자는 뼈목걸이를, 패자는 뼈반지를 받아.”
“승자는 몰라도 패자는 심적으로 힘들겠는데?”
“그 분노와 슬픔을 장작삼아 힘으로 승화시키는 거지. 게다가 패자를 놀리거나 모욕하지는 않아. 패자와 친했던 사람이 홀름강을 신청할 수도 있거든.”
“흠.”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나는 레오나의 설명을 듣고 천천히 정리했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알겠지만,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이 은근히 까다롭다.
“대족장은… 우리 인간으로 치면 왕인거지?”
“응.”
“그럼 대족장에게도 홀름강을 신청할 수 있어?”
“일단은- 가능해. 대의를 위해서든, 아니면 사사로운 원한이 있든 홀름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니까. 권력이 탐나도 상관없어. 권력도 따지고 보면 힘이니 힘을 갈망한다는 명분으로 신청하면 되거든. 대신 반발이 심하겠지. 1년 후에 홀름강이 곧바로 날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때까지 그런 적은 없어?”
“역사적으로 보자면 아주 많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힘을 숭상하고 힘만이 전부였던 사상이 널리 퍼져있었으니까. 우리 스스로 문명을 세우기 전까지 족장의 자리를 두고 홀름강을 신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 대신 족장의 힘이 원체 강해서 바뀌는 일이 거의 없었지.”
“역사라…”
나는 레오나가 알려주는대로 노트에 필기를 하다가 수인의 역사를 곰곰이 되새겼다. 수인은 여태까지 따로 문명을 세우지 않고 각 부족마다 떨어져 생활했지만, 300년 전 종족 전쟁 이후로 애니머즈를 건국했다.
만약 인간들에게 학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인간보다는 아니지만 인구도 많았지 않을까. 하물며 세계 여기저기에는 아직까지 애니머즈에 합류하지 않은 수인들도 있다.
그렇다면 애니머즈는 현재까지 잘 규합되고 있을까. 초대 대족장이자 국부인 ‘히크’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수인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쳤지만,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을리가 없다.
‘방금 전에 인간과 교류해야 한다는 분파와 그러면 안 된다는 분파로 나뉘었다고 했지?’
노트를 재차 확인하니 제대로 적어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애니머즈의 구조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인간들에게 왕족, 귀족, 평민 이렇게 나뉘는 것처럼 수인은 어떻게 나뉘는 건지 궁금해서. 아, 만약 수인끼리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도 알려줘.”
“일단 대족장은 왕을, 족장은 귀족을, 그 밑에는 관료를 포함한 전사들이 있어. 옛날에는 족장을 ‘야를’이라 칭했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그리고 전사의 등급은… 족장과 그 밑의 정예 부대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 업적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든지 용감하게 싸우니까.”
“수인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거야? 명예를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게?”
“당연하지. 그게 우리 수인이니까. 인간이 보기에는 무식하고, 야만적이라 할지언정 우리는 명예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뭉칠 수 있거든.”
레오나는 특유의 시니컬하고 사나운 듯한 목소리가 아니라 진중하게 말했다. 본래도 저음의 목소리였는데 더 낮아지면서 묘하게 힘이 느껴진다.
나는 어느새인가 황금색으로 변한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아까 전까지는 분명 짙은 갈색이었는데 황금색으로 변한 걸 보면 심정의 변화를 나타낸 것일 터.
어떤 이유 때문에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사정을 묻는 건 가급적 지양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때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수인은 숫자가 적을지언정 명예를 아는 전사 집단이다. 이 말이지?”
“아주 정확해. 뭐, 가끔 가다가 욕심에 잡아먹힌 폭군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 선에서 해결되기 마련이지.”
“흠…”
아주 재미있는 스토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칠죄종 중 하나이자 수인, 사탄과 관련된 스토리가.
릴리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악마가 되었다면, 사탄은 조국에게 배신당하여 악마로 전향했다는 사정이 있다. 홀름강이라는 신성한 결투도 있겠다, 마지막에 제논이 신청을…
‘아니지. 홀름강은 동생이 신청해야지.’
제논의 친구가 될 사람이자 인간과 수인간의 갈등을 덜어줄 존재가 있다. 유약한 신체를 가졌을지언정 강직한 마음을 지닌 대족장의 자식.
더 나아가 사탄과 형제 관계라는, 훗날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인 등장인물이다. 그 애가 사탄에게 홀름강을 신청하고, 사탄도 마지못해 받아들여 서로 싸우는 식이다.
사탄은 그 당시 제논과의 격전으로 인해 힘이 모두 빠져있었지만, 그 동생은 태생적으로 약했기에 그대로 패배한다. 그러나 홀름강은 어느 한 쪽이 항복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결투.
동생은 약한 몸으로 죽을 둥 살 둥 덤벼들고, 사탄은 동생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남은 힘을 쥐어짜낸다.
‘그리고 화가 풀렸다고 하는 거야. 이거 좋은데?’
어쩌면 힘만을 숭상하는 수인의 사고방식을 깨부술지도 모른다. 레오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인은 여러모로 신체적인 힘을 중요시 여기는 듯했으니까.
그러나 무력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힘으로도 대족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꽤 재미있게 흘러가지 않을까. 더 나아가 사탄의 속사정으로 하여금 수인 내부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짚어내는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네. 역시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구나.”
“별 말씀을. 나야 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지. 그런데…”
“응?”
레오나는 말을 흐리더니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왔다 갔다하는 게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모양이다.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가진 동안, 레오나는 바짝 솟아오른 귀를 까닥거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거.”
“이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다름아닌 내 접시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 마찬가지로 T본 스테이크를 주문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뒤이어 레오나는 창피함을 억누르는 것인지 눈을 질끈 감으며 원하는 바를 말했다.
“뼈, 뼈 안 먹으면… 나 줄 수 있냐?”
“… …”
“나, 남기면 아깝잖아. 안 그래?”
이거 원래 남기는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하나 더 주문해. 그정도는 괜찮으니까.”
“누, 누굴 돼지로 알아?!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렇지 그정도는…!”
“입가에 흐르는 침이나 닦고 말해.”
“핫!”
거짓말인데. 레오나가 다급히 냅킨으로 입을 닦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꼬르륵-
“… …”
보너스로 밥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배꼽시계까지. 수인이라 인간보다 먹는 양이 훨씬 많을테니 스테이크 한 덩이로 배가 안 채워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토마토처럼 붉어진 레오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종업원을 부르는 종이었다.
딸랑-
“하나 더 주문할게. 이번에도 미디움으로?”
“…응.”
레오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면서도 대답했다. 그녀의 귀는 부끄러움에 추욱 쳐진 상태였다.
그렇게 내가 종업원을 불렀을 때, 레오나가 얼굴을 덮은 손 사이로 나를 바라보더니 작게 불렀다.
“…야.”
“응?”
“혹시 나중에 또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그럼 나야 좋지. 아직 묻고 싶은 게 산더미거든.”
“그 대신…”
“대신?”
이어서 그녀는 입을 달싹거렸다가 부끄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맛있는 거 사주면…”
“… …”
“…되냐?”
부끄러워하면서도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게 정말 귀여우면서도 하찮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는 피식 웃었다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
“…고맙다.”
레오나는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저… 손님? 죄송하지만 뼈는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 …”
나는 종업원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관에 처했다. 그에 말없이 레오나를 쳐다보니…
오독-
그녀는 눈치를 보며 뼈를 오독- 오독- 씹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