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51
■ 150화. 이왜진 (2) □ ᓚᘏᗢ
말이 씨가 된다.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 현실화되었을 때 쓰이기도 하지만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이처럼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는 속담으로 전생에서도 말이 씨가 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목격했다. 대부분 SNS에 올라오는 글들이었는데, 훗날 그런 글들이 성지가 되어 성지순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잘 들여다 본다면 어디까지나 가능한 일이기에 말을 꺼내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다음 날 아침에 사고를 당한다던가 아니면 길 위에 돈다발을 발견한다던가 등등.
이 세상에는 다양한 확률이 있으며 극히 희박한 확률도 존재한다. 말이 씨가 되는 경우도 대부분 그 확률이 우연찮게 적중했을 때의 이야기다.
확률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하나 예시를 들어보자.
심심해서 쓴 소설 속 사건이 실제로 발생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전생에서도 9.11 테러를 반쯤 예견했던 소설이 있었는데 훗날 그 작가를 직접 초빙해 갖가지 시나리오를 쓰게 만들었다는 후문이 존재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대통령 게이트 사건을 예언(?)한 소설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무당이 되어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을 돕는 것인데, 현실에 터졌던 사건과 소설의 스토리가 놀라울만치 똑같아서 작가 본인조차 황당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보다시피 미래를 예견한 작품은 잘 찾다보면 셀 수도 없이 많다. 전생의 문화는 이 세상보다 크게 발달되었으며 양질의 매체가 쏟아져 나와 ‘확률적으로’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도 위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제논 일대기 13권은 주 내용은 세계수의 뿌리가 루시퍼(교만)의 농간으로 인해 오염되었고, 그걸 통해 엘븐하임이 악마들에게 침공당하여 아비규환으로 변하게 된다.
주인공 일행은 소식을 듣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릴리스에게 발목이 잡혀버렸고 뒤늦게나마 도착했을 때는 폐허가 되기 직전인 엘븐하임만이 반겨줄 뿐이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났다면 세계 전체가 뒤집어질 대사건이겠지만, 악마 전쟁 이후로 악마들의 활동은 완전히 사그라들었으며 악마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세계수의 오염 또한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인데…
[충격! 위그드라실의 세계수는 사실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계수의 마나조차 정화할 수 없었던 뿌리의 오염. 만약 이대로 진행되었다면 실제로 악마가 침공했을까?] [세계수 뿌리의 오염이 현실로 발생하자 각국의 수뇌부들은 악마의 침공도 일어나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 사태를 예견한 제논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연인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던 것일까?]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게 대체 뭐야, 진짜.
나는 신문에 기재돼 있는 뉴스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본래 엘븐하임이 침공당한 부분이 이목이 쏠릴 거라 생각했으나 전혀 예기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악마들에게 치명적인 마나를 내뿜는 세계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뿌리부터 오염시킨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 불과하지, 따로 연구를 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애당초 세계수가 위치한 위그드라실은 딱 한 번 방문했다. 심지어 그것조차 아르웬의 연설만 보고 곧바로 귀국했으며 세계수의 근처까지도 도달하지 못 했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라는 소리이며 맹세하건데 알고 적은 건 절대 아니다.
‘하필이면 세계수라…’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세계수의 뿌리가 정말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이다. 보아하니 13권을 읽은 알븐하임의 어느 한 귀족이 찜찜한 나머지 아르웬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며 그녀도 이에 응했다.
본래라면 원로원이 반대해야겠지만 다른 것도 아닌 세계수라 그러기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 꼼꼼히 확인하니 뿌리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고.
당연하지만 알븐하임은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있어서 신이 직접 전달해준 선물이자 3000년 전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준 상징이었으니.
그런데 그 세계수의 뿌리가 소설에 나온 내용처럼 점점 오염되고 있었다?
엘프들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안일 뿐더러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대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설처럼 누군가의 수작질이 아니라 3000년 전 악마 전쟁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일까.
그래도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알븐하임의 성직자들이 힘을 합쳐 정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그 여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악마의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험가와 용병들. 악마로 변한 마족과 그냥 악마의 차이점을 두고 논쟁이 오고 가…] [각 나라의 지도자는 악마에 대한 경계심을 올리기로 정했다. 세계수의 오염이 현실화된 마당에 악마의 침공 또한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3000년은, 모든 종족에게 있어서 평화에 물들기 충분한 시간. 악마들은 제논 일대기처럼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이처럼 소설은 소설로 보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 악마의 흔적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현실화된 마당에 악마의 침공 또한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신문에 적힌 내용이다.
나로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제논은 평범한 현자 정도가 아니다. 알븐하임의 세계수에 접근할 수 있을만큼 저명한 학자일 것이며 알븐하임의 고위 귀족과 친분이 있을 것.] [제논 일대기는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하고 쓴 책이 아닐까? 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등장인물은 허구겠지만 소설에서 발생하는 상황 자체는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 [교만, 루시퍼가 말했다. 오랜 평화는, 냉철한 판단도 무르게 만드는 법이지. 그동안의 평화는 즐거우셨는지? 라고. 이건 제논이 우리들에게 하는 경고일 것이다.]예기치 않게 경고(?)를 하는 바람에 나를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며 현자를 넘어 ‘예언자’로 취급하는 중이다.
자기들 멋대로 착각하는 건 나에게 좋은 현상이지만 점점 일이 커지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러다 훗날 정체를 밝혔을 때, 과연 그들이 순순히 믿어줄까? 지금 상황을 고려하자면 아니라고 본다.
‘…일단 출판사에 편지부터 보내야겠어.’
이대로 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입장문부터 밝히는 게 나을 것 같다. 신문에서는 예언자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이걸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감당조차 되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된다.
‘출판사 쪽에서 필사까지 해야 되니 시간이 좀 걸리겠네.’
나는 신문을 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쓴 소설로 인해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었다.
만약 작품에 대한 찬사가 주를 이룬다면 기쁜 마음으로 넘어가겠지만 별의별 괴악한 변수들이 튀어나온다. 그 첫 시작이 마족의 인식 변화고.
이러다가 제논 일대기 완결 후, 2차 세계대전의 내용을 쓸 때 온갖 기계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물론 그들에게 전생의 역사는 판타지일테니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세계수의 오염이 진행되었다는 건 무시하자. 지금은 심란한 마음부터 없애는 것이 중요했다.
“…킥.”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밖에 안 나오네. 이게 왜 진짜인 거지?
신문에는 다크 엘프의 등장에 대한 내용도 나왔으나 주를 이루는 건 오직 세계수 뿌리의 오염이다. 작가로서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시간이 흐르고 사태가 진정된다면 다크 엘프에 이목이 쏠릴 가능성도 있다. 다크 엘프의 등장은 결코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일테니.
‘우선 편지부터 쓰자. 이 모든 게 우연일 뿐이고, 나는 현자나 예언자가 아니라 평범한 학자라고.’
정확히는 학자 지망생이지만. 원래 거짓 속에 진실을 섞어놓아야 의심을 사지 않는 법이다.
‘아르웬은 지금쯤 바쁠테니까 나중에 불러야겠다.’
세계수 뿌리의 오염은 전대미문의 대사건이므로 알븐하임은 난리도 아닐 것이다. 당연히 아르웬을 비롯한 알븐하임의 수뇌부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터.
제논 일대기가 정말로 예언서 취급받게 된다면 아르웬에게도 큰 영향이 갈 게 불 보듯 뻔하다. 나를 찾기 위해 안달인 원로원을 아르웬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으니.
나는 복잡한 머릿속에 다시 한 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래. 편지만 보내면 잠잠해질 거야. 잠잠해지겠지.’
그로부터 며칠 후.
[속보! 키르스 산맥의 어느 한 동굴에서 악마 소환 의식 흔적을 발견하다! 평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한 모험가가 우연히 발견하여…] [이밖에도 곳곳에 악마가 남긴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제논의 경고대로 흘러갈 것인가?] [300년 전 종족 전쟁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강경파 마족의 흔적 또한 존재해… 소식을 들은 헬리움에서 직접 조사단을 파견했다.]“… …”
돌아버리겠네.
[제논은 사실 예언자 정도가 아니라 미래에서 온 신의 ‘화신’이 아닐까? 평화에 안주한 이 세상에게 경고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을 거슬러…] [각 교단측의 입장. 시간을 거스르는 건 신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신이 직접 시간을 거스르는 게 아닌, 필멸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다.]진짜로 돌아버리겠다.
[제논은 스스로 예언자도, 현자도 아닌 평범한 학자라 밝혔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고 있다.] [분명 사정이 있기에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것일 터. 미래에 벌어질 일을 직접 발설하면 안 된다는 제약이라도 존재하는 것인가?] [미래에서 온 평범한 학자이기에 이런 문장력과 가독성을 지닌 소설을 발간할 수 있었을 것. 왜냐하면 미래의 문화는 현재보다 압도적으로 진보되어 있을…]야이, 새끼들아. 자기 멋대로 북치고 장구치고 있네.
‘나 진짜 환생자 맞는데… 다른 세상이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더 좆된 것 같다.
* * *
악마의 흔적이 현실에서 발견되기 전 알븐하임.
알븐하임은 세계수의 오염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사건으로 인해 한바탕 큰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혼혈 사태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세계수는 그것과 차원을 달리했다.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있어서 성유물을 넘어선, 신의 선물이었기에 오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13권이 발매되었을 때도 다들 처음에는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에 대입하면 안 된다는 마인드로 생활했다. 그러나 정작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니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제논 일대기는, 재미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말이다.
“여왕님. 부디 재고를…”
“불허하노라. 내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느냐.”
당연하게도 그 영향은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에게도 향했다. 원로원뿐만 아니라 명문가들조차 제논, 그러니까 아이작을 찾아야 된다고 호소하니 그녀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사실 아르웬 또한 세계수의 뿌리가 오염되었다는 진실을 알자마자 까무러칠 뻔했다. 아이작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그녀였기에 제논 일대기는 오직 취미로만 집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그러나 막상 세계수 뿌리의 오염이 확인되자 내심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의 오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아이작이 정말로 예측한 건 아닌가 싶어서.
세간에서 떠들어다니는, 흔히 예언자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살짝이지만 들었다.
“여왕님. 이건 중대 사항입니다. 제논이 정말로 예언자든 아니든 간에 그는 세계수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건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원로원의 의원, 피렌이 특유의 늙수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평소처럼 2명의 의원을 대동한 채 아르웬을 알현했다.
겉으로는 정중하고 공손한 말투였지만, 아르웬은 피렌의 말 속에 숨어있는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작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선전용으로 써먹겠다는 거겠지.
실제로 현재 알븐하임의 엘프들은 세계수를 구해준 아이작에게 무한한 은혜를 느끼고 있다. 책 속의 알븐하임의 악마들에게 침공당했다는 내용?
그딴 거 다 필요없고 원래 현실이 중요한 법이다. 다크 엘프의 등장에도 이목이 쏠렸으나 아직은 미비한 수준이며 호기심만 드러내는 중이고.
더구나 아르웬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원로원이 인력을 동원해 출판사로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건 아이작에게 들은 정보로, 그제서야 연설문을 소각시키지 않고 방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연설문은 원래 있던 장소에 그대로 있었지만, 미묘하게 위치가 바뀐 걸 보면 누군가 건드렸다는 의미일 터. 덕분에 아르웬은 원로원이 심어놓은 첩자가 많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대의 말대로 제논이 우리 세계수를 구했다는 건 사실이지. 그리고 책 속의 내용이 현실로 이루어질까봐 조사도 하는 중이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논에게 가해질 부담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제논이 어째서 정체를 숨긴 채 글을 쓰는지 한 번만 고려해 보아라. 그에게도 분명 사정이 있기에 책을 집필하는 것일테니.”
그래서 더욱 완고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원로원이 아이작을 찾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자신이 보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니까.
피렌도 아르웬의 뚝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는 이런 표현조차 삼가해야 되지만 피렌에게는 아직 남은 질문이 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가하노라.”
“여왕님과 제논은, 대체 무슨 사이인지 궁금합니다.”
“…뭐?”
이건 아르웬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도 풀기 전에 피렌이 이어서 물었다.
“여왕님께서는 저희가 제논을 찾겠다고 할 때마다 매번 불허하셨지요. 심지어 세계수의 뿌리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지금처럼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니 저희로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요.”
“무, 무슨…”
피렌은 연설문을 훔쳐봤다는 사실을 쏙- 빼놓고 얘기했지만, 당황한 아르웬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작과 친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더 나아가 잘못까지 저지른 마당에 온 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이었으니. 설마 원로원이 그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싶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에 피렌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웬에게 한 가지 가정을 꺼냈다.
“정말로 여왕님은, 제논과 연인 사이셨습니까?”
“…?”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아르웬은 은회색 눈동자를 깜빡거렸다가 당황과 황당이 뒤죽박죽 섞인 표정으로 피렌을 쳐다봤다.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아이작과 자신이 연인이라는 가정이 저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일까. 아르웬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왕님께서는 혼혈입니다. 그리고 신체적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인간 사회에서 생활하셨죠. 그때 분명 다양한 인간과 만났을테고, 그중에서는 제논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
그때 아이작은 태어나지도 않았어. 아르웬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피렌은 그 반응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는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수명 차이로 인해 이어지는 건 힘들었을테지요. 그러니 제논도 책 속에 본인이 겪었던 아픔을 넣은 것일테고.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여왕님. 미련이라는 건 본래 해소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특히 사랑과 관련되면 더욱 그런 편이지요. 부디 그 미련을 떨쳐내고 알븐하임을 위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 …”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한 번 더 재고해주시길.”
그리 말하면서 정중하게 인사한 뒤 알현실에서 떠나는 원로원. 아르웬은 그들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게 뭔… 개소리지?”
처음에는 아르웬도 개소리로 치부했으나…
[제논은 정말 시간을 거슬러 온 사람인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우연?] [신의 화신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악마의 흔적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아이작이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가설이 등장하자 약간이나마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아니지만, 먼 미래에 제논 일대기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심지어 아이작은 연설에 대한 보상도 필요없다며, 그저 자신의 예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레인에 대한 처우를 너그럽게 봐주는 등. 여러모로 알게 모르게 편의를 봐주고 있다.
“…한 번 더 읽어볼까?”
아르웬은 카이르 외전과 더불어 10권부터 차근차근 정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