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56
■ 155화. 나비효과 (4) □ ᓚᘏᗢ
악마의 소환이 이상한 방향으로 작용한 탓에 내가 이 세상에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출생의 비밀(?)을 들은 기분이라 얼떨떨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감정은 나오지 않았다.
분노나 증오?
애당초 미련이 거의 없던 전생이었다. 부모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나머지 정신적 충격으로 세상과 거의 단절하다시피 살고 있었으니. 연재하던 소설을 미처 완결짓지 못한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의도치 않게 악마들에게 빅엿을 선사한 셈이니 어찌 보면 통쾌하다고 볼 수 있다.
[그… 괜찮니?]‘네? 뭐가요?’
[우리의 실수로 다른 차원에서 잘 살고 있던 네가 여기로 온 거란다. 비록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목숨은 언제나 중요하지.]그러다 루미너스가 실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루미너스라는 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루미너스, 그는 빛과 희망을 관철하는 신으로 자애롭고 관대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대화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지금 느낀 바로는 은근히 소심한 것 같달까. 신이나 되는 존재라면 잘못을 저질러도 뻔뻔하게 갈 수 있을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내가 돌연사한 건 악마의 소행이라 루미너스를 포함한 신들이 잘못했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루미너스는 정말 미안해하는 중이었다.
‘아뇨. 전 괜찮습니다. 별로 미련이 있던 삶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오히려 환생한 지금이 훨씬 나아요. 훌륭한 부모님도 계시고, 우애가 좋은 형제자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애인들까지. 이전이었다면 절대 누리지 못할 호사를 누리는 중이에요.’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전생에서는 잘난 것 하나 없이 평범했던 나인데 환생한 이후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화목한 가정, 제논 일대기를 통한 명예와 권력, 더 나아가 미래를 약속한 여자들까지. 남자로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다 가졌다 해도 무방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우리야 다행이구나. 사실 네가 원망을 할까 봐 약간 걱정했단다.]‘신 정도 되는 분들이 한낱 필멸자의 눈치를 보는 건 좀 이상한데요?’
[너는 우리가 관리하는 행성이 아닌 다른 행성, 그것도 다른 은하계에서 건너 온 영혼이니까. 우리의 실책으로 발생한 일이니 미안할 수밖에 없지.]살짝 이해가 가지 않지만 신이 그렇다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나에게 행성이니 은하계니 하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상황부터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럼 제가 제논 일대기를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죠?’
[그렇단다. 오히려 우리는 네가 더 많은 걸 써줬으면 하는구나. 문화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너도 이 세계를 살면서 느꼈다시피 이 세상의 과학과 문화의 수준은 지구보다 훨씬 낮단다. 제논 일대기는 너에게 평범하디 평범한 소설이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니야. 지구의 언어로는 ‘클리셰’라고 칭해지는 것들이, 이 세상에서는 실존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문화의 차이라…’
[문화와 과학의 발전은 곧 상상력과 창작력의 발전. 하물며 네가 쓴 제논 일대기는 상상에만 치중되어 있지 않고 고증도 철저하잖니? 특히 악마 같은 경우는 모두가 잊고 지냈을 뿐, 언젠가 발생할 일이었단다.]나비효과도 이런 나비효과가 있을까.
모든 작가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웹소설 작가는 대개 만화나 소설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다. ‘클리셰’ 같은 건 진작에 통달한지 오래고 오히려 그 클리셰를 박살내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악마가 실수로 좌표를 잘못 설정하여 불러낸 영혼이 하필이면 이곳보다 문명이 훨씬 발전된 지구였고, 그 영혼조차 대한민국의 평범한 웹소설 작가다.
심지어 태어난 세계조차 수인, 드워프, 엘프, 마족 등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상.
우연도 이런 우연은 없을 것이며 이정도면 거진 필연이라 할 수 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낮을 거라 생각한다.
‘그거 참… 묘하네요. 아무튼 간에 불이익 같은 건 전혀 없다는 이야기죠?’
[그래. 순리도 네가 태어나면서 본래대로 돌아왔으니 아무런 지장도 없단다. 반대로 우리가 너에게 은총을 내려야겠지. 자의는 아니라지만 네가 쓴 글은 이곳의 문화와 과학을 크게 진보시켰으니까. 더 나아가 악마의 침공까지 사전에 방지하면서 문명이 퇴보될 사태까지 막았지.]‘은총은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면서요.’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않아도 된단다. 길을 걷다가 몬스터와 마주쳐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우연히 실력이 출중한 용병이 등장해 구해줘도 우연이라 치부하며 넘어갈 거니?]‘아.’
역시 신이라 그런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예시를 들어주셨다. 그런 내 감정을 느꼈는지 루미너스는 푸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평범한 성직자는 힘든 일이란다. 적어도 추기경 정도는 되어야 신탁이 아닌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지.]‘그럼 저는 왜?’
[너는 미래에 있을 큰 재앙을 막았을 뿐더러 이 세상의 문화와 과학을 크게 발전시켰으니까. 제논 일대기를 통해 특정 인원이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고, 마족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 또한 분열될 뻔했던 엘프를 하나로 단결시켰으며 마력 기관을…]‘죄송해요.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사람도 아니고 신이나 되는 존재에게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낯부끄러워졌다. 루미너스도 내가 부끄러워하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럼 그 은총이라는 게 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일종의 예언이라 할 수 있단다. 너의 미래를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미래라는 건 알려주는 순간부터 의미가 없는 것. 미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신중하게 묻는 것을 권장하마.]‘예를 들자면은요?’
루미너스는 순간 말을 흐렸다가 난데없이 목소리를 높혔다. 무언가 다급하면서도 당황스러움리 느껴져서 나 또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루미너스의 말이 끊겼는데, 나는 뭔가 싶어 감았던 눈을 떴다. 조각상의 두 눈은 여전히 황금색으로 빛나는 중이었다.
‘뭐지?’
이에 다시 눈을 감아 루미너스가 말을 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후우. 미안하구나. 갑자기 내 동생이 끼어드는 바람에…]‘동생이라면…’
[어둠과 안식의 신, 모라가 맞단다. 내 쌍둥이 여동생이지. 아무래도 너와 얘기하고 싶은… 아, 제발. 저리 좀 가! 나중에 네 신전으로 보내줄게! 이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루미너스의 짜증섞인 목소리. 상황을 예상하건데 모라가 또다시 난입한 모양이다.
덕분에 손가락질 하나로 세상을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초월적인 권능을 지녔을 뿐,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초월체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인간적이어서 더 호감이 간다. 보통 창작물에서 신은 좋지 못한 성격을 띄기 마련이니.
‘…그냥 모라 님도 같이 대화에 끼면 안 될까요? 전 괜찮은데.’
[안 돼. 나와 대화하는 것도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여기서 모라까지 끼어든다면 대화는커녕 네가 기절할 수도 있단다. 엘프나 마족이라면 몰라도 너는 평범한 인간이라…]‘… …’
평범한 인간은 그저 눈물만 흘립니다. 왠지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그런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루미너스는 약간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면서 화제를 전환시켰다.
[큼. 큼. 어쨌거나 네가 쌓은 업적들은 신성력으로 바꿀 수 있단다. 그 신성력을 통해 우리가 네 미래를 예지해줄 수도 있지. 신탁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예를 들자면 내일 네가 마차에 치인다고 가정하자. 보통 같으면 신탁을 내리겠지만 너는 내일 마차에 치일테니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알려줄 수 있단다.]‘궁금한 게 있는데 어째서 신탁을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내리시는 건가요? 듣자하니 좋은 공물이나 막대한 신성력을 바치면 바칠수록 신탁의 질이 달라지잖아요.’
[미래를 안다는 건, ‘시간’을 산다는 의미. 공간은 몰라도 시간은 우리 같은 신들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란다. 사실 우리가 예측하는 미래조차 변수가 발생하면 크게 틀어져. 악마 전쟁과 세계수의 뿌리 같은 경우는 변수가 바로 너였고.]‘그럼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거는요? 회귀자 같은 사람은 없어요?’
[일단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아야 되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에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하던가. 참고로 너도 할 수 있단다.]그에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을 쯤이었다.
[당장 지금은 일주일 전? 그정도는 되겠구나.]‘…생각보다 적네요?’
[네가 생각하는 몇십 년 전으로의 회귀는 불세출의 영웅이 아닌 이상 매우 힘들단다. 더군다나 네가 이룩한 문화의 발전은 현재진행형. 미래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룬 업적을 계산하는 거란다. 만약 이 상황이 쭈욱 진행된다면 10년 전으로 회귀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너는 현재 숨만 쉬어도 신성력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단다. 물론, 네가 쓴 글이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고 있지만 긍정적인 영향이 압도적이라 없는 수준이라 봐야겠지.]‘음… 그럼 세계 2차 대전과 관련된 글을 적어도 상관없나요?’
전에 언급했지만 제논 일대기를 완결짓고 나면 세계 2차 대전에 관한 소설을 쓸 생각이다. 단, 사건들 하나하나 상세히 적는 게 아니라 각 나라마다 주인공을 분류하여 작성할 예정이다.
소련측 주인공과 연합국측 주인공 이렇게 둘이서 나눈 후, 최후반부에는 엘베 강에서 서로 만나는 식이다. 베를린에서 국기를 꽂는 건 당연히 소련측 주인공이고.
전차나 전투기 같은 건 작품 내에서 설명하기 어려우니 삽화와 설정집을 따로 넣을 생각이다. 겸사겸사 나라에 대해서도 적고.
[2차 세계 대전이라… 지구에서 발생했던 최악의 전쟁을 말하는 거구나. 참혹하기 그지 없는 전쟁이었지.]‘루미너스 님도 알고 계시나요?’
[네가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지구의 신들에게 지식을 전수받았단다. 마나가 없는 세상이 어떻게 발전되는지, 또 어떤 참극을 낳을지 명확히 알게 되었지. 네가 그 전쟁과 관련된 글을 써도 상관없단다.]‘그럼 제가 그 글을 쓰게 될시 발생할 일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마력 기관도 나온 마당에 2차 세계 대전에 나온 전차가 비행기가 현실에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비록 산업 혁명과 전차의 발명까지는 최소 200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나 혹시 모른다.
애당초 이 시대에 마력 기관차가 등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될 뿐더러 드워프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자세히 알려주길 원하니, 아니면 신탁처럼?]‘둘의 차이점이 뭔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미래는 알려주는 순간 미래가 아니라 가정에 불과하단다. 네가 생각을 바꿀 수도 있잖니.]‘그냥 자세히 알려주세요. 어차피 쓸 예정이니까.’
[그러니? 알겠다. 훗날 전시회를 개최할 때, 드워프 세 명이 전차를 끌고 올 거란다. 포탄 대신 마나를 응축한 마력포를 발사하겠지. 위력이 절륜하여 공성 병기로 줄곧 사용될 거란다.]씨발. 그냥 적지 말까.
[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다른 건 없니?]‘다른 거라면… 저 같은 환생자가 이 세상에, 아니 범위를 우주 전역으로 넓히면 극히 드무나요?’
나는 악마가 잘못 소환하여 영혼이 이 세상으로 오게 된 케이스지만, 다른 경우도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에는 변수가 넘쳐나니까.
그리고 루미너스는 내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듣기 좋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알려줬다.
[매우 드문 편이라 할 수 있지. 특히 같은 은하계가 아니라 다른 은하계에 소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단다. 순리를 거스르게 되는 순간 균형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니까.]‘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소리네요.’
[물론. 10억 분의 1이라 해도, 결국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니까. 우리에게는 그것조차 큰 확률이지.]‘그렇군요. 그러면… 앞으로 제가 조심해야 할 것만 대략적으로 알려주세요.’
이제 물어볼 건 다 물어봤다. 남은 건 앞으로 내가 조심해야 될 부분이다.
신이라면 나의 미래도 알테니 닥쳐올 위기 또한 알고 있을 터. 게다가 신탁 수준이 아니라 대놓고 알려줄 수 있는 수준이다.
[조심해야할 것들이라… 이건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거란다. 네 정체가 밝혀질 때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들을. 그것만 조심하면 되겠구나.]‘그럼… 언제쯤 정체를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함부로 알려주기가 힘들단다. 알려주는 순간부터 미래가 완전히 어그러질 테니.]루미너스는 정말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내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다.
약간 아쉽긴 해도 어찌 보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미래를 알려줘서 상황이 꼬이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나서는 편이 좀 더 나을테니.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미안하구나. 대신 이거 하나는 알려주마. 훗날 세실리라는 아이를 따라 헬리움으로 갈 예정이잖니?]‘네. 그렇죠.’
헬리움으로 따라가 세실리의 대련 모습을 지켜보고, 더 나아가 첫날밤까지 치르지 않을까. 세실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고.
[약을 반드시 챙기고 가거라.]‘네?’
[마리라는 아이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먹는 피임약 있잖니? 잊지 말고 반드시 들고 가거라.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란다.]‘… …’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유독 강조하는 걸 보면 내가 깜빡하고 약을 안 들고 간 모양이다.
그리고 세실리와 관계를 맺고 이다음에는…
‘감사합니다. 큰일 날 뻔했네요.’
[하하. 화목한 가정은 언제나 중요하지. 기왕이면 모라의 신전을 방문하여 축복도 받으렴. 악주기의 마족은 체력보다 욕망이 앞서서 많이 힘들 수도 있거든. 그리고…]말을 하다 말고 흐리는 루미너스. 왠지 모르지만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이에 의아해졌을 때쯤, 그가 약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얘야.]‘네. 루미너스 님.’
[문화의 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거란다. 네가 무심코 한 짓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아니면 친절과 배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단다.]‘… …’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어도 뿌리깊게 박힌 성격은 바꿀 수 없는 법. 특히 너는 배려심이 깊은데다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잖니?]언행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살면서 가끔가다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건 없을 터.
나는 루미너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채 걱정 말라는 듯이 단언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언행에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애가 벌써 몇 명을…]‘네?’
[아니란다. 못 들은 척 하렴. 아무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우리가 잘 정리하도록 하마. 너는 늘 그랬듯이 해왔던 생활을 영위하면 된단다.]왠지 말을 돌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왜일까. 하지만 신에게 추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마음 속에 꾹 담아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받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나는 빛의 신으로서, 너에게 이로운 축복을 내려줄 수 있으니. 원할 때마다 신전에 방문하렴. 피로도 풀어줄 수 있으니 간단한 부탁이어도 기꺼이 받아주마.]‘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재앙을 미리 막아주고, 이 세상의 발전을 앞당긴 점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럼-]그 말을 끝으로 루미너스의 말은 머릿속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자 눈을 천천히 떴다.
눈을 뜨니 황금색으로 빛나던 조각상의 눈이 밋밋해져 있는 상태였다. 루미너스가 떠났다는 의미.
출생의 비밀을 깨닫고, 더 나아가 신에게 예언까지 받으니 기묘했다.
‘그래도 좋은 신이라 다행이야.’
이후로 정확히 이틀이 지나고.
[루미너스께서 대답하셨다! 제논 일대기는 전부 우연이다!] [허나 그의 업적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성자로 우대해도 모자르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한들, 제논 일대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미래에 악마와 전쟁을 치렀을 것.] [책의 고증은 매우 철저하다.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던 일을 적은 것이며 몇몇 부분은 진행 중에 있었다.]“… …”
상황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신탁의 내용은 이러하다. 현재는 우연일지는 몰라도, 미래에는 필연인 것들.]루미너스 님?
[제논 일대기는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막았을 뿐더러 문화의 크나큰 발전과 과학의 비전을 제시해…]루미너스 님?
[세이비어 교단. 루미너스의 말씀에 따라 제논을 성자로 우대할 것. 업적으로만 따지면 화신이라 불려도 모자름이 없다.]루미너스 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세이비어 교단의 추기경, 케이트. 제논을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나… 분명 막강한 신성력을 가졌을 것.]루미너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