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62
■ 161화. 다시 헬리움 (1) □ ᓚᘏᗢ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헬리움에 방문하는 건 두 번째다. 하지만 지난 번에는 초고 도난 사태를 판결하기 위해 갔다가 곧바로 돌아와서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이번을 기회로 헬리움 곳곳을 돌아다닐 예정이다. 세실리도 왕궁은 저녁에 오면 된다고 했으니 늦지 않게 가면 된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아델리아와 동행하지 못 한다는 걸까. 가르츠에게 부탁을 했지만 계획에 없던 인물이라며 칼같이 거부했다.
아델리아는 어디까지나 외지인에 가까워 수락하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아델리아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그녀는 아쉬워할 뿐,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며 활기차게 답했다.
대신 몸조심하라며,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테니 원없이 놀고 오라고 격려했다. 나 또한 씩씩한 표정으로 배웅해주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가르츠의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입국 심사대를 거친 뒤 헬리움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후로 가르츠의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헬리움의 수도, ‘판데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판데움은 옛날 언어로 ‘요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마족의 기원을 살펴보자면 적절하기 짝이 없는 수도명이다.
판데움은 왕궁과 더불어 초고 도난 사태를 해결했던 세실리의 별장 또한 존재하는 곳이며 수도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몇 달 사이에 엄청 바뀌었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마족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도 엄청 많아졌어요.”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선 거리를 돌아다니는 행인 중 3분의 1이 마족이 아니라 이종족이다.
그중 태반이 인간이며 드워프, 수인, 놀랍게도 극소수지만 엘프까지. 전시회가 끝나고 왔을 때는 마족만 있었는데 지금은 이종족이 골고루 섞여 있다.
제논 일대기 출간 전에는 악마들이 사는 곳이라며, 다른 종족은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않으려 했던 것과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거야 당연합니다. 은인 덕분에 마족의 인식은 나날이 좋아졌고, 전시회 당시에는 예술가로서의 역량도 훌륭하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죠.”
“매트릭스 극단을 말하는 거죠? 요즘 그 극단은 뭘 하고 있나요?”
“늘 똑같습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법을 이용한 연극을 펼치는 중이죠. 참고로 제논 일대기와 관련된 연극은 전시회에서만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인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격하게 동의하는 가르츠. 나도 전시회 당시 매트릭스 극단과 리루스 악단의 콜라보에 감탄했는데 마족인 그는 오죽할까.
전시회가 언제 열릴지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암묵적으로 1년에 한 번씩은 개최하는 걸로 돼 있다. 게다가 내가 이미 출생지를 마이샬 영지로 말해놓았기에 똑같은 장소에서 개최될 가능성도 높다.
나는 전보다 더 밝아진 듯한 판데움의 거리를 둘러보다가 문득 생각난 점이 있어 가르츠에게 물었다.
“그런데 세실리 누나는요? 언제 오는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세실리 공주님께서는 현재 왕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은인께서 헬리움을 충분히 둘러보는 동안 곁에서 호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저녁 식사 전까지 가면 되겠죠? 신전에도 한 번 찾아가야 되거든요.”
“그럼 공주님께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르츠는 텔레파시로 세실리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것인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뜨며 나에게 말을 전달했다.
“공주님께서도 알겠다고 하십니다. 대신 왕궁으로 올 때는 공주님께서 직접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아무 데나 돌아다녀도 상관없는 거죠?”
“네. 만약 먹고 싶은 음식이나 사고 싶은 물품이 있다면 제가 전부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어차피 돈도 안 챙겨왔지 않습니까?”
“… …”
쓸데없이 예리하군. 내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자 가르츠는 역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돈을 빌리기로 정했다.
어쨌거나 저녁까지 시간도 있겠다, 나는 본격적으로 판데움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제논 일대기에도 참조할만한 게 있다면 참조할 생각이다.
가장 먼저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들. 아까 말했지만 행인 중에는 마족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족들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 인간이 제일 많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생활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눈여겨 볼 점은 바로 커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팔짱을 끼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거나 애정 행각을 펼치는 등. 마족과 이종족의 조합은 유달리 애인이 많아 보였다.
‘이종족 커플이 전보다 더 늘어났다고 듣긴 했지만…’
전에 말했듯이 진과 릴리의 로맨스가 재조명되면서 마족의 인기 또한 떡상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아닌, 내면의 악을 억누르고 진심을 다하는 종족으로.
그리고 그 진심이 사랑을 향하게 된다면 순정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다 보니 마족은 순정의 대표격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마족은 엘프처럼 미남미녀가 대부분이며 개인의 무력 또한 막강하다. 지금까지 악마라는 프레임 때문에 그렇지, 객관적으로 본다면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한 종족이다.
‘게다가 몸매도 하나 같이…’
남자는 전부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져 있으며, 여자도 가슴과 골반이 유달리 돋보였다.
이건 내가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고 마족들을 살펴볼 때마다 확인할 수 있는 특징들이다. 당장 말라보이는 가르츠조차 나보다 키가 살짝 클 뿐더러 어깨가 떡 벌어져 있다.
혹시 이것도 악마만이 사용하는 검은 마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걸까. 엘프조차 체형이 가지각색인데 마족은 하나 같이 신체적 조건이 우월했다.
나는 호기심이 깃든 눈빛으로 마족을 한 명 한 명 훑어봤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해 가르츠에게 물었다. 조금 부끄럽긴 해도 궁금한 건 해소해야 직성에 풀릴 것 같다.
“가르츠 씨. 좀 민망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그… 마족은 원래 몸매가 전부 좋은 건가요? 보아하니 일반인들조차 몸매가 뛰어난 것 같은데…”
“아. 그건 저희의 역사와 생활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역사요?”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에 그런 마음이 전부 사라졌다. 오직 탐구심만이 남아있을 뿐.
가르츠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눈을 끔뻑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복면으로 가렸기에 입이 열리는 건 확인할 수 없었다.
“은인께서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첫 시작은 매우 고단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죠. 아무래도 악마에게 직접 영향을 받은 세대니까요.”
“그렇죠.”
“이렇다 보니 아무것도 없는 초창기에는 강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 악마가 될지 모르는 불안함. 다른 종족의 심각한 견제. 척박한 땅. 마지막으로 도망친 땅에 잔존해 있던 몬스터들. 이 모든 것들이 부합되어 남자는 강한 무력을 지닌 자만이 살아남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씨앗을 물려받아 아이를 잘 낳는 자만이 살아남았죠. 죽는 사람도 많았지만 새로 태어나는 2세대 마족이 훨씬 많았습니다.”
굳이 마족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고대 농경 사회 당시 자손을 많이 낳았다. 게다가 그 풍습은 지금도 도시가 아닌 농사가 주를 이룬 시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한 가지 들었다. 세실리는 마족의 임신 확률이 극도로 낮다고 말했으나 가르츠의 설명을 들어보면 또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나는 궁금함을 담아 그에게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마족은 임신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악주기까지 겹쳐서 더 힘들다고 하던데.”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던 거겠죠. 그때는 아무것도 없던 야만인이었을 테니까. 또한 1세대이다 보니 신체도 인간에 가까울 뿐더러 악주기도 매우 짧았을 겁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족이라는 종족이 탄생한 거니까요.”
“음. 일리가 있네요.”
물론 곧바로 납득됐지만. 어쨌거나 뼈대 자체는 적자생존의 원리로 이어져 온 모양이다.
유전자 자체로만 따지자면 훌륭하다 말할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처절함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마족의 월등한 신체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상처라 할 수 있으니.
“그렇게 계속 살아남고 문명이 차즘 건국되니 이제는 내면의 악을 억눌러야 할 때가 온 것이죠. 세실리 공주님께 내면의 악을 누르는 법에 대해서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보통 명상을 통해 자제력을 발휘한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맞지만 명상을 심도 있게 하기 위해서는 몸에 자극이나 고통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해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몸을 혹사시켜야 했죠.”
“어떤 방식으로요?”
“간단합니다. 아마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다리를 1자로 찢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보통 스트레칭이라고 하죠.”
“저도 그건 꾸준히 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높은 단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다리로 몸의 밸런스를 지탱한 뒤, 남아있는 다리를 1자로 하늘 높이 펴는 것도 있고 한 쪽 다리를 머리 뒤로 당기는 것도 있습니다. 이밖에 여러가지 자세가 있죠.”
요가를 말하고 있는 건가. 실제로 요가는 정신수련에 매우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보통 몸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고 명상을 한다면 그 고통 때문에 집중력이 깨지기 쉽다. 하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며 명상을 지속한다면 자연스레 정신력 또한 강해지게 된다.
정신력이 강해진다면 인내력 또한 상승하게 되니 마족에게 있어서 발전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이러니까 몸매가 좋아질 수밖에 없지.’.
빈말이 아니라 마족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요가를 꾸준히 발전시킨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고대에서부터 적자생존으로 이어져 온 유전자까지 합쳐졌다.
몸매가 유달리 좋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새롭게 알게 된 마족의 기원에 감탄하며 가르츠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네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이 됐다니 제가 더 기쁩니다.”
“그럼 마족은 유연성이 뛰어나겠네요? 고난이도의 스트레칭을 하면서 명상을 하는 셈이니까.”
“네. 원하신다면 은인에게 지도해드릴 수 있습니다. 마나 순환에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나중에 세실리 누나한테 한 번 부탁해볼게요.”
이것도 제논 일대기에 넣어야겠다. 이제 슬슬 제논뿐만 아니라 진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가야 하니.
마족의 뛰어난 정신수양의 이유가 요가인 것이 밝혀지게 되면 전세계로 전파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이미 알음알음 퍼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후로 나는 가르츠의 호위를 받으면서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 놈의 빨간머리 때문에 주변에서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깔끔히 무시했다.
“그런데 가르츠 씨. 헬리움은 저녁이 되면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악주기를 버티지 못해 밖으로 나오는 마족이 있다면서요.”
“근래 약이 발명되서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설령 악주기 때문에 밖으로 기어나와도 모라의 신도가 신전으로 재빨리 데려가는 편이죠. 그래도 밤의 특정상 위험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돌아다니는 일은 없습니다.”
“흠… 모라 님의 신전은 6시쯤부터 열리지 않나요?”
미네르바 제국에 있는 루미너스의 신전은 오전 6시에 열리고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응급환자를 대비하여 24시간동안 활동하지만 기도를 하지 못 하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모라의 신전은 오후 6시부터 운영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라는 루미너스와 달리 어둠의 신이었으니.
“아닙니다. 모라 님의 신전은 적어도 헬리움에서는 항상 열려있습니다. 아무래도 마족은 언제 어디서든 내면의 악에게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엘프처럼 며칠동안 잠을 자지 않아도 거뜬합니다.”
“그렇군요.”
“아. 그러고 보니 모라 님께서 은인을 찾으시는 것 같던데 아닙니까?”
“…네.”
그 말괄량이 여신님께서 나를 찾아달라고 땡깡(?)을 부렸던 게 기억난다. 점잖고 다정한 성격의 루미너스와 다르게 모라는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고 약간 산만하다고.
분명 어둠의 신인데 빛의 신보다 훨씬 밝은 성격을 띄고 있는 모라 님이시다.
“그때 헬리움은 어땠어요?”
“조금 혼란스럽긴 했지만 모라 님이셔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평소에도 모라님은 자기 신도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셨거든요. 그래도 언론에다 알리긴 했습니다.”
“대체 모라 님이 평소에 어떠셨길래…”
“그냥 뭐… 네. 아무튼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가르츠마저 떨떠름해 하는 걸 보면 성격이 참 유별나신 모양이다. 순간 신전에 방문하는 건 나중으로 미룰까 싶었지만 모라가 삐질 수도 있으니 집어넣었다.
명색이 어둠과 안식의 신이라며 존경을 받고 있으니 나에게 해를 가하진 않을 것이다. 이상한 장난은 칠 가능성은 높지만.
‘그런데 다크 엘프도 모라 님을 모시지 않나?’
그러면 다크 엘프 쪽도 나를 찾고 있는 건가 생각하고 있을 쯤, 어떤 냄새가 내 코를 비집고 들어왔다. 구수하면서 절로 군침이 도는 것 같은 음식 냄새.
이에 고개를 돌리니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헬리움에 웬 노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길거리 음식은 세계 어디를 가나 있는 법이다.
나는 그 냄새에 이끌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다리는 줄이 있는 걸 보면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 이게 뭐야?”
구수함을 풍기는 음식의 정체를 알자마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구수함의 정체가 고기로 예상했으나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곤충. 그래. 곤충이다. 심지어 단순한 곤충이 아니다.
크기가 쥐를 넘어 토끼보다 크다고 하면 믿을 것인가? 가끔 가다가 대형견만한 곤충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지금 내 눈 앞에 그런 곤충이, 심지어 무슨 랍스터를 조리한 것마냥 떡하니 조리돼 있었으며 그 살점을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
무슨 종류인지 모르겠지만 딱딱한 외갑피가 있는 걸 보면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와 같은 종류이지 않을까.
구수한 냄새는 먹음직스러웠지만, 비쥬얼이 매우 참혹하여 식욕이 도리어 급감했다.
“아. 이건 랍케르크입니다. 헬리움의 길거리 음식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들 중 하나죠.”
“…이걸 먹는다고요? 토끼만한 곤충을?”
“왜 못 먹습니까? 따지고 보면 바다에 있는 새우나 랍스터도 벌레잖습니까.”
묘하게 납득이 가는 것이 어이가 없다.
“…이것도 역사와 연관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척박한 땅에 먹을 게 없으니 아무거나 먹어야 했죠. 비단 곤충뿐만 아니라 헬리움은 다양한 요리가 존재합니다. 까놓고 말해 다리가 달린 건 다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되겠죠.”
무슨 중국도 아니고. 이러다 박쥐까지 먹다가 끔찍한 바이러스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도 6.25이후 먹을 게 너무 없어서 미군들이 버리고 간 잔반통을 이용해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었지 않은가.
헬리움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위생을 다른 나라보다 중요시 여기는 만큼 중국처럼 별의별 괴악한 음식을 먹진 않을테고.
지금 보이는 곤충 요리 또한 징그러울 뿐이지 더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살점 자체는 연한 분홍빛을 띄고 있어 맛있어 보였다.
“모양은 저래도 맛은 있으니 한 번 드셔보십시오. 돈은 제가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맛있나요?”
“맛없으면 애초에 유명해지진 않았을 겁니다.”
미심쩍지만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는 머뭇거렸다가 길게 이어진 줄에 서며 차례를 기다렸다.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라며, 마족이 어떤 종족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는 건 덤.
이윽고 길게 이어졌던 줄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점주는 마족이었으며 그는 내 빨간머리를 보더니 쾌활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빨간 머리 신사 분! 어느 부위를 드릴까요?”
“부위마다 종류가 따로 있어요?”
“물론이죠. 바다에 사는 게에도 다리를 원하시는 분이 있고 내장을 원하시는 분이 따로 있는 것처럼, 랍케르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 몸통, 다리가 있죠.”
“…몸통 부분 주세요.”
식욕이 점점 떨어지는 기분이다. 정녕 이걸 먹어야 하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점주는 유려한 손놀림으로 몸통 부분에 있던 살점과 갑피를 함께 떼어 나에게 전달했다. 뜨거울 수도 있으니 종이에 싸서 주는 건 덤.
솔직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연한 분홍빛을 띄고 있어 맛있어 보이긴 했다. 그게 곤충의 몸통에서 나왔다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지. 나는 가르츠가 가격을 대신 지불하는 동안 랍케르크를 쳐다봤다.
‘…그냥 번데기라고 생각하자.’
번데기도 겉보기에는 흉측하게 생겼지만 고소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랍케르트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에 눈을 질끈 감고 한 입 베어물었다.
“…오?”
맛있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맛있다. 향처럼 구수한 향기가 입 내부를 감돌고, 무슨 향신료를 사용했는지 몰라도 감칠맛마저 느껴진다.
평소에도 음식을 잘 가리지 않지만, 그걸 배제하더라도 내 취향에 딱 맞는 스타일인 건 확실하다.
“맛있네요?”
“제가 맛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외양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하하하. 맛있다고 하니 저야 뿌듯하군요. 한 번 머리 부분도 드셔보시겠습니까?”
“아. 그건 좀.”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나는 랍케르크를 우물거리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가르츠에게 질문했다.
“혹시 이거 말고 다른 것도 있는 건가요?”
“튀김이 있습니다.”
“… …”
“곤충 말고도 몬스터를 이용한…”
“됐어요.”
문화의 차이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