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76
■ 175화. 예기치 못한 상황 (2) □ ᓚᘏᗢ
내가 저택으로 돌아온 걸 보고 아버지는 골치 아프다는 반응을 지으셨다. 나나 세실리가 싫어서 저러는 건 아니실테니 분명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에 무슨 일이냐고 의아하게 묻자 아버지는 착잡한 얼굴로 나와 세실리를 번갈아 보시더니 따라오라고 손짓하셨다. 그 손짓에 나와 세실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일단 따라가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의문을 한가득 품에 안은 채 아버지를 따라갔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지난 번 아델리아의 면접(?)을 보았던 그 방이었다. 응대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며 의견을 나누거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곳.
“왔니?”
“네. 어머니.”
그 방에는 아버지에게 미리 연락을 받으셨는지 어머니가 먼저 앉아계셨다. 참고로 아버지가 잠깐 나가셨다가 돌아온 거라 어머니와는 이미 만났다.
어머니는 특유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시고는 배를 쓰다듬으셨다. 릴리는 아무런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일단 앉으렴. 공주님도 아이작의 옆에 앉으십시오.”
“편히 말씀하셔도 돼요. 이제 시아버님이잖아요?”
“… …”
세실리가 환하게 웃으며 시아버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아버지는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이미 확정된 마당에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어서 어깨만 으쓱였다.
아버지는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피식 웃더니 어머니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와 세실리도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다렸다.
부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길 빌었지만, 모라가 전달해준 신탁을 보았을 때 필시 좋은 일은 아닐 터. 더군다나 아버지는 우리와 만나자마자 곤란하다는 반응을 대놓고 보이셨다.
나와 깊게 관련된 일인지, 아니면 가문과 관련된 일인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곤란하다는 건 똑같다.
“후우… 방학 내내 헬리움에서 지낸다고 하지 않았니?”
재차 한숨을 내쉰 아버지가 복잡하다는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생각이신지 몰라도 나와 세실리가 복귀할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다.
아버지의 말마따나 당초 계획은 헬리움에서만 지내는 것이었으나 모라의 신탁을 듣고 마음을 바꾼 참이다. 때마침 얼굴을 본다는 좋은 명분도 있었으니 세실리도 기꺼이 동참했다.
나는 괜히 머쓱해지는 기분에 조용히 대답했다.
“헬리움에만 있기에는 뭐랄까… 좀 그렇잖아요. 적어도 얼굴은 보고 살아야죠.”
“그건 그렇지만… 하필이면 지금…”
“…무슨 일 있으세요?”
머리를 감싸안으며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여태까지 본 적이 거의 없다. 최근 폭등한 업무량 때문에 골치 아파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예외로 두자.
아버지는 내 질문을 듣고 한동안 고민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아하니 속으로 결정을 내리신 모양이다.
“혹시 헬리움으로는 언제 돌아갈 계획이니?”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보는 건 잊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2~3일 정도 머무르다가 갈 생각입니다. 아직 방학이 보름 정도 남았으니까.”
“그럼 내가 당장 돌아가라 한다면?”
“저와 연관된 일이라면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내 대답을 듣고 꺾을 수 없다는 걸 느끼신 걸까. 아버지는 못 말린다는 듯이 피식 웃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는 릴리를 배고 있는 어머니를 따스함과 걱정이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황금빛 눈동자가 맹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미 티를 다 낸 마당에 숨길 것도 없겠구나. 너도 대충 예상했다시피 너와 깊게 연관된 사안이란다. 원고를 전달하는 인맥에게 들은 소식이지.”
“설마 들키기라도 한 건가요?”
내가 아니라 세실리가 꺼낸 질문이었다. 이에 아버지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아니, 그렇단다. 다행히 완전히 들킨 건 아니지. 조력자도 미행을 눈치채고 목적지를 빙빙 돌아서 왔거든. 하지만 조만간 이곳까지 도달할 게다.”
방금 전 세실리가 편히 말해도 된다고 하여 바로 말을 놓는 아버지셨다. 세실리도 딱히 개의치 않다는 반응이다.
“시아버님의 무용은 헬리움에서도 익히 들었어요. ‘붉은 사자’로 말이죠. 조력자라 했으니 시아버님과 비등한 인력인가요?”
“한때 국경 지대에서 동고동락하던 전우란다. 평소 첩보와 정찰을 담당하던 녀석이라 이런 일에 능숙한 편이지. 원고를 전달하는 것도 그 녀석이 나에게 목숨을 빚진 적이 있어서 흔쾌히 동참해주는 거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미행을 당했다는 건… 설마?”
“엘프밖에 없지. 그것도 한 실력하는.”
또 엘프냐. 나는 인상이 구겨지는 걸 최대한 억눌렀다.
저번에는 다크 엘프가 우리 저택에 무단으로 침입하더니 이번에는 엘프란다. 어찌된 게 하나같이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르웬이나 케이르처럼 정상적인 엘프가 있기는 해도 사고를 치는 걸 보면 종족 특징인 게 틀림없다.
“여기 출판사 사장이 전달한 편지란다. 제 딴에는 은밀함을 위해 집에서 발송했다지만 결국 일반인이라 덜미를 잡혔지.”
“음…”
나는 아버지에게서 곱게 접힌 편지지를 받은 뒤 서서히 펼쳤다. 세실리도 볼 수 있도록 보여주는 건 잊지 않았다.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아르웬의 연설 이후에 내 편지를 찾으러 온 엘프들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지난번과 달리 아예 나를 찾기 위해 달달 볶았다는 것까지.
출판사에 찾아온 엘프는 들어본 적이 있다. 아르웬에게 들은 바로는 원로원에 소속돼 있는 명문가 중 하나라고. ‘피렌’이라는 수장의 최측근이라 들었다,
원로원은 정치를 하기 위한 단체이니 그곳에 명문가가 들어가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원로원에 들어갔다는 건 선민사상에 찌든 꼰대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어디에 소속된 엘프인지는 모르겠다만 오만한 엘프인 건 확실해. 이건 내가 보장할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죠?”
“그렇지 않은 엘프라면 이런 짓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테니까. 애초에 편지를 내놓아라 마라 하던 녀석들이야.”
국경 지대에서 엘프 정찰대와 맞닥뜨린 적이 있던 아버지가 말하니 그 신빙성이 장난 아니다. 게다가 나 또한 여러 엘프와 친분을 맺었으니 더욱 깊게 다가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건 아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신중하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그들이 이 저택으로 찾아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텐데.”
“앞으로 두 가지 상황이 펼쳐질 거다. 우선 첫번째. 그 엘프들이 이 저택을 ‘정식적으로’ 방문하는 것. 이거라면 그냥 말을 잘해서 돌려보내도 돼. 하지만 추적의 끝이 이곳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수를 쓰겠지.”
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음 상황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저택에 무단 침입하는 것.”
“엘프가 무단 침입을 한다고요?”
다크 엘프도 아니고. 엘프는 종족 전쟁 당시 암살조차 더러운 술수라며 거부하던 종족이다.
그런 종족들이 무단 침입을 한다니 나로서는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대놓고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엘프가 더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건 종족 전쟁에서나 통용되던 말이야. 아마 마법을 이용해 몸을 숨겨서 침입할 가능성이 커. 명령이든 아니면 대의를 위해서든. 자기합리화는 충분하지.”
“저택의 방범 마법으로는 어림도 없는 건가요?”
“그 엘프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방범 마법쯤은 가볍게 무력화시킬 거다.”
“결국 둘 다 똑같은 상황으로 귀결되네요.”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지.”
이래나 저래나 그 엘프들이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도 그걸 직감하셔서 미리 수를 쓸 생각이었던 거고. 그런데 나와 세실리가 예기치 못하게 저택으로 복귀한 바람에 상황이 약간 꼬인 듯했다.
나는 앞으로 많이 복잡해질 상황에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질문을 날렸다.
“이런다고 그 엘프들에게 무슨 소득이 있는 걸까요?”
“어떤 소득이 있으니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거겠지. 최근 알븐하임 내에서 네 책을 검열한다는 소리도 있었잖느냐? 더구나 네 책으로 인해 혼혈이라는 사회적 문제도 부상했고. 물론 여왕이 잘 수습했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더 벌어질 수도 있지. 지금은 다크 엘프의 존재도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이란다. 합체라는 금지된 마법도 마찬가지. 알븐하임 입장에서는 너를 반드시 찾아야 할 명분은 차고 넘쳐.”
“… …”
“알븐하임에서는 여왕과 원로원이라는 정치 기구가 서로 대립한다는 건 얼핏 들었을 게다. 여왕은 개방 정책을 펼칠 정도로 생각이 열려있지만 원로원은 반대 선상에 서 있지. 엘프는 독자적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으니 아마 둘 중 한 명에게 명령을 받았을 게다. 난 원로원 쪽에 가능성을 두고 싶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요점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로원에서 파견을 보낸 엘프들이 우리 저택으로 들어올 터. 레인의 예를 보았듯이 초고를 확인하기 위해 내 방으로 들어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초고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추적 끝에 발신지가 이 저택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챌 테니.
“저희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셨어요?”
“우선 초고를 비롯한 편지들을 싹 다 옮기고 버틸 생각이었단다. 증거가 없다면 그들도 마지못해 돌아가겠지.”
“하지만 시아버님. 그것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해요.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으니 언젠가 들킬 수밖에 없죠.”
세실리가 아버지의 계획을 듣고 단호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그녀의 말처럼 엘프는 언제 어디서든 마법을 이용해 이 저택을 샅샅이 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그들을 처리해야 된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온 건지도 모르니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구나. 사장이 전달한 편지를 보면 귀족으로 추측되는데 엘프 귀족은 인간 귀족과 그 무게를 달리해. 무엇보다 아이작의 정체가 탄로날 위험성이 커.”
“탄로나도 상관없지 않나요? 저와 마리도 있잖아요. 그리고 아이작은 현재 루미너스 교단에서도 성자로 우대받는 중이에요. 아이작을 건드렸다간 세이비어에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렇긴 하다만… 현재 상황에서 정체를 밝히는 건 아이작에게 힘들 거다. 예언자니 미래인이니 떠드는 데다가 위험한 지식을 갖고 있다며 경계까지 받고 있어. 적어도 그런 현상이 누그러들 때 밝히는 것이 가장 좋단다.”
“음…”
아버지와 세실리가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을 때 나는 홀로 생각에 빠졌다. 정말 잘 하면 그 엘프들은 물론이고 암덩어리나 다름없는 원로원까지 일망타진할 수도 있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밝히는 것도 큰 문제는 없다. 아르웬의 연설에서 보았듯이, 그녀의 연설 능력은 지극히 뛰어나니까. 노선을 살짝 틀어 ‘선동’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현재 아르웬을 향한 여론은 아주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순혈과 혼혈 구분하지 않고 ‘엘프’라는 정체성을 다시금 알려주었으며 국민들의 마음에 자만심이 아니라 자부심까지 새겨주었으니까.
그리고 여기에 ‘제논’이라는 위상까지 합친다면? 엘프에게 있어서 세계수를 오염에서부터 구해준 제논은 영웅 그 자체다. 세계수는 신들이 전달한 선물이었으니.
여기서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합친다면 거짓도 진실로 믿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온통 거짓투성이가 아니라 적당하게 섞어야 할 터.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고민하다가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는 오른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재미있는 계획이 떠올라 슬쩍 미소를 지었다.
사자의 아가리에 스스로 들어가는 하이에나라는 의미를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아버지. 저한테 괜찮은 계획이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계획이 있다고?”
“네. 잘하면 제 정체도 숨길 수 있고, 엘프들, 그리고 연루된 자들까지 한꺼번에 소탕할 수도 있어요. 그전에… 누나.”
“응. 아이작.”
“혹시 암시를 넣거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마법이 있어?”
세실리는 다음 대 차기 마왕으로 예정돼 있으니 마법적 소양도 극히 뛰어날 것이다. 마법에 한해서는 그녀를 신뢰해도 모자람이 없다.
내 질문에 세실리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답변을 꺼냈다.
“있긴 있어. 대신 엘프는 기본적으로 마법 저항이 뛰어나서 통할지는 몰라. 성직자라도 있으면 의미가 없는 수준이고.”
“그래? 그러면 귀 안에 폭발 마법을 심어넣는 건?”
“…대체 무슨 계획이길래 귓속에 폭발 마법을 심어넣는다는 거야?”
세실리가 황당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하긴 조금 뜬금없긴 했지.
이에 나는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로 폭발 마법을 넣는 건 아니고 협박용으로 하는 거야. 아무튼 간에 가능해?”
“가능하긴 해.”
“그럼 됐어. 아, 혹시 위치 추적 마법은?”
“범위만 벗어나지 않으면 그것도 가능해.”
역시 마법. 전생의 과학 기술로만 가능하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듣고 대충 눈치채신 건지 우려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작.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구나. 하지만 엘프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란다. 앞서 말한 마법들도 조사만 하면 충분히…”
“과연 그 사람들이 세실리 누나가 여기 있다는 걸 알까요? 설령 그 사람들이 아버지의 위용에 대해 익히 들어봤다고 해도 마법을 쓰지 못 한다는 것 정도는 알 거예요.”
“흐음… 그렇긴 해도 알븐하임에서…”
“아.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조력자가 있으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니?”
아버지는 조력자가 있다는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셨다. 곁에 있는 어머니도 다소 놀란 표정이셨다.
하기야 알븐하임 내에, 그것도 정치적으로 조력자가 있다는 건 다소 어리둥절할만한 일이다. 알븐하임으로 간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이걸 다 말해도 될지 고민하다가 슬쩍 세실리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그녀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듯이 빙긋 웃어줬다.
그에 자신감을 얻어 알븐하임 내에 있을 ‘조력자’에 대해 천천히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초고 도난 사건부터다.
부모님은 초고 도난 사태까지는 담담했으나 전시회 당시 레인의 저택 무단 침입 사건에 대해 듣자마자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뒤이어 그걸 빌미로 아르웬이 나에게 사죄까지 했다는 부분에서는 경악 수준으로 변했다.
“…해서 연설문도 사실 제가 작성하고 여왕에게 보내준 거예요. 그걸 인연으로 지금까지 연락하는 중이고.”
“…허허.”
“대, 대단하구나.”
마지막으로 연설문에 대한 것까지 설명을 끝마치자 아버지는 당황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을, 어머니는 떨떠름하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솔직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자연스럽다.
내가 언급한 조력자가 다름아닌 알븐하임의 여왕이고, 그 여왕이 무릎까지 꿇으며 나에게 사죄했다. 또한 그걸 빌미로 지금까지 인연을 지속하는 중이다.
전후사정 없이 듣는다면 헛소리로 취급하겠지만 레인의 초고 도난 사태까지 있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여왕에게 들으니 출판사로 찾아온 엘프들은 원로원 수장의 최측근이라고 들었어요. 원로원은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여왕과 달리 순혈주의에 다른 종족을 배척하죠. 종족 전쟁 당시에도 최악의 실수를 범했고요.”
“그들이 없어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구나. 하지만 아이작. 만약 원로원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알븐하임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할 거다. 그리고 원로원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을테니 금방 와해되지도 않을테고. 어쩌면 이판사판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어.”
“글쎄요. 아버지. 제 생각은 달라요.”
나는 아버지의 우려를 듣고 씨익 웃었다.
그에 아버지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을 쯤, 나는 내 오른손을 보여주며 당당하게 말했다.
“만약 제 오른손이 박살났다는 소식이 퍼진다면 알븐하임만 시끄러울까요?”
* * *
“그런데 아이작. 머리카락은 갑자기 왜 그렇게 길어진거니?”
“아, 이건… 사정이 좀 있어요.”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앞으로 계속 그러고 다니렴. 알았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