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80
■ 179화. 함정 (3) □ ᓚᘏᗢ
다시 말하지만 현재 나에게 이 엘프들에 대한 즉결 처분 권한이 있다. 법률에서 그렇게 지정돼 있을 뿐더러 도둑놈을 죽인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송사리를 미끼로 써야하듯이, 이 엘프들을 잘 이용해야만 원로원을 일망타진시킬 수 있다. 그래도 원로원이 아주 바보도 아니고 철저하게 판을 짜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가장 먼저 ‘맹약’. 맹약은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에 사용되기 어렵지만, 지금처럼 목숨이 담보로 잡혀있는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물론 주인이 죽거나 맹약의 헛점을 이용하여 도망칠 수도 있지만 세실리가 직접 하는 것이니 상관없다. 문제는 바로 엘프들.
다시 말하지만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맹약을 걸 수 있다. 아르웬은 죗값을 치르는 의미로 순순히 받아들였으나 과연 이 엘프들이 받을지 의문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엘프, 그것도 구세대 엘프들은 자존심이 더럽게 강하다. 괜히 쓸데없는 곳에서 오기를 부리다가 죽거나 능욕을 당해 정신이 붕괴되는 괴담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 종족인데 하물며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는 맹약이라면 어떨까?
“거절한다! 우리 보고 마족의 노예가 되라는 소리냐!”
“치욕도 이런 치욕이…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군.”
당연하게도 그들은 내가 맹약을 언급하자마자 바락바락 목소리를 높이며 거절했다. 맹약이 어떤 마법인지 잘 알고 있어서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맹약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세실리. 마족이라면 혐오부터 시작하는 구세대 엘프이니 자존심이 허락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나 또한 이걸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니다. 나는 기를 쓰며 거부하는 엘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아버지. 날이 잘 드는 칼 없어요?”
“귀를 자를 셈이냐?”
“별 수 있나요. 말을 안 듣는데. 잘라야죠.”
“하, 하겠습니다! 그러니 귀만큼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걸 역이용한 귀 자르기 협박을 가하자 엘프들이 납작 엎드렸다. 그러게 왜 매를 벌고 있어.
그 결과, 엘프들은 세실리가 주도한 맹약을 맺게 되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지만 혹시 모르니 한 명씩 포박을 풀어 맺는 것으로 일을 진행했다.
계약을 맺을 때마다 치욕스럽다는 엘프들의 표정이 사뭇 볼만했다. 물론 세실리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으니 그럴 때마다 귀를 손가락으로 툭- 툭- 가리켰다.
여차하면 귀를 자르겠다고 협박을 하니 그들도 사색이 되며 표정을 풀었다. 사실 귀를 자를 생각은 없었으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들은 진실로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하여 맹약까지 맺었겠다, 나는 실험을 위해 칼라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칼라스는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는지 싸늘한 표정이었다.
“자. 그럼 이제 실험을 위해 몇 개만 질문해볼까? 제논이 어디 사는지 말해봐.”
“그건…”
칼라스도 맹약의 효력을 알고 있는지 대답을 마저 잇지 못 하고 입을 달싹거렸다. 아르웬은 악감정이 없어서 실험을 하지 못 했지만 칼라스는 아니다.
나는 입술만 오물거리는 칼라스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콧숨을 푹-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말 안 하면 알지?”
“마… 커억!”
내 협박에 칼라스가 대답을 하려던 찰나, 눈을 부릅뜨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더니 고꾸라졌다. 마이샬 영지에서 ‘마’ 한 글자만 언급했을 뿐인데 그 효과는 굉장했다.
잠시 후, 칼라스는 고통이 사그라 들었는지 숨을 가삐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그 짧은 사이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달라붙을까.
이건 연기로 절대 불가능하다. 굳이 따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맹약은 확실히 맺어진 것 같고… 남은 건…”
“귀에 폭발 마법이라도 심어줄까?”
“히끅!”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세실리가 제안했다. 그러자 앞쪽에서 누군가 딸꾹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귀에 폭탄을 심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이미 맹약을 걸었기에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도청이나 녹음 마법이 가장 잘 어울리겠지.
그러나 도청 마법은 너무 티가 난다. 맹약은 몸 수색을 해도 걸릴 일이 없으나 도청 마법은 십중팔구 간파될 것이다.
더군다나 피렌 같이 수백 년 간 정치에 몸을 담은 노괴는 안전과 확신을 최우선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여 이들의 몸을 수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괜찮아. 맹약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대신 이 사람들이 딴짓을 못 하게 막아야 하는데…”
“그,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 그래요! 맹약까지 건 마당에 뭐가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쩜 저리 애원하는데도 썩 믿음직스럽지가 않지. 나는 마엘과 레나가 애달프게 요청하는 걸 보다가 칼라스를 쳐다봤다.
칼라스는 아직까지 고통이 남아있는지 호흡을 갈무리하는 중이다. 식은땀 또한 턱 끝에 송글송글 맺혀있다.
사실 앞으로의 일은 이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하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괜스레 원로원 쪽에서 의심을 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될테니.
나는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하다가 좀 더 상세한 계획 수립을 위해 다른 질문을 꺼내기로 정했다. 우선 이들을 돌려보내고 난 이후의 상황이다.
“너희들은 돌아가면 곧바로 피렌이라는 엘프에게 보고하러 가는 건가?”
“…그렇다.”
“그때 추적의 결과에 대한 일들을 말할 테고.”
칼라스는 말로 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맹약을 잘 이용해야 된다.
맹약은 제논과 관련된 ‘진실’을 발설할시 효력으로 극심한 고통이 뒤따르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아무런 효과도 발생하지 않도록 설정했다. 그러니 보고를 할 때 이 사람들이 거짓말을 섞는다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갈 것이다.
거짓 속에 약간의 진실을 섞어도 맹약은 발동된다. 짱돌을 굴려 교모하게 빠져나갈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아예 작정하고 맹약에 걸렸다는 걸 밝히면 문제가 되겠지.’
사람은 본래 위기에 몰리면 이판사판으로 나온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이것마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런 생각조차 못 하게 할 것인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흐음…”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생각에 빠진 내 표정을 보았는지 세실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나는 골치 아프다는 목소리로 대답을 꺼냈다.
“사실 이 엘프들이 목숨을 걸고 맹약에 걸렸다는 표시를 하면 상황이 복잡해지잖아. 그것마저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궁금해서. 진짜로 귓속에 폭탄이라도 심어야 하나?”
“심어도 문제일걸?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될테니까.”
“그것 참 골치 아프네…”
“… …”
우리 둘의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엘프들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나는 그걸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시리스를 붙이면 상황이 쉽게 변하겠지.’
사실 위의 모든 대화는 사전에 예약된 블러핑이다. 간단한 해결책이 떡하니 있는데 굳이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엘프들을 떠나보내면 시리스를 붙여서 뒤를 따라가게 만들자. 그녀도 마법에 조예가 깊으니 도청 및 녹음을 시키면 될 것이다.
다크 엘프의 잠입술은 어지간한 실력자조차 쉽게 감지하지 못 할 뿐더러 시리스는 숙련된 전사. 피렌이 조심해도 그녀의 존재를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다크 엘프가 지켜보고 있다는 상황 자체를 예측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르웬과 상의해야겠지만 아마 그녀도 흔쾌히 받아줄 터.
이렇게까지 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단순하다. 저 엘프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서 적당한 방법이 하나 나왔다는 상황을 보여준다면 그것을 철썩같이 믿게 될 것이다. 솔직히 상황이 상황인지라 믿을 수밖에 없다.
목숨과 귀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그 누가 믿지 못할까.
잠시 후, 나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러면 되겠다. 누나.”
“응?”
“잠깐 귀 좀 빌려줘.”
나는 굽혔던 무릎을 펴고는 세실리에게 귀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대놓고 과정을 보여준다면 의심을 품을 수도 있으니 이런 세세한 디테일이 필요하다.
엘프는 기다란 귀만큼 청력이 뛰어나지만 방음 마법을 설치하면 문제없다. 뒤이어 세실리가 방음 마법까지 설치하자 나는 그녀의 귀에다 입을 가까이 대며 소근거렸다.
‘당분간 우리 저택에 지내야 할 것 같다고 부모님에게 미리 말씀드려. 이 상황도 대강이나마 알려드리고. 알겠지? 아, 그리고 사랑해.’
내가 귀에서 입을 떼자 세실리는 눈을 깜빡거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국의 공주답게 표정 연기 또한 일품이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에 얼굴이 조금 붉어지긴 했으나 어두웠기에 알아차리진 못할 것이다.
“그거면 돼?”
“힘들어?”
“힘들진 않지.”
“그럼 바로 시작해줘.”
세실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엘프들에게 걸어가더니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다름아닌 엘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귀.
그녀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칼라스의 귀를 툭- 건드렸다가 곧바로 떼었다. 약간의 마나가 흘러들어갔기에 미묘함만 느끼지, 그 이상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에 칼라스가 무슨 짓을 한 거냐는 표정을 짓는 동안 세실리는 마엘과 레나에게도 순차적으로 귀를 건드렸다. 귀를 건드리자 칼라스와 달리 두 남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세실리가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내 곁으로 돌아오자 엘프들의 얼굴을 살펴봤다. 의문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두루두루 섞인 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세실리 누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해할 거야. 사실 간단해. 검은 마나라고 너희들도 알고 있지? 마족의 상징이자 악마들이 사용했다던 마나.”
“… …”
“그 마나를 귀에 주입시킨 거야. 마족은 몰라도 검은 마나는 다른 생물에게 치명적이지. 특히 엘프라면 더욱 그럴테고. 당장 며칠동안은 괜찮겠지만 백색의 종이에 잉크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것처럼, 귀가 점점 까맣게 물들기 시작할 거야. 저주가 아니라 순수한 마나여서 신성력도 통하지 않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같은 마족이 그 마나를 흡수해야 돼. 검은 마나를 다른 사람이 흡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마지막으로 능청스레 의견을 구하자 엘프들은 안색이 창백해지다 못해 새하앟게 질려버렸다. 다크 엘프처럼 구릿빛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역병에 걸린 것처럼 귀가 시꺼멓게 변색된다.
차라리 자르는 게 나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현상인데 그렇다고 진짜로 자를 수도 없다. 한 마디로 마족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으로 먹고 사는 이들로서는, 그 자부심을 깡그리 짓뭉개버리는 형벌이다.
허나 여기서 그들이 전혀 모르는 것이 있으니…
‘전부 거짓말이지.’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모두 거짓말이다. 실제로 검은 마나가 마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에게 해를 끼치는 건 맞지만 피부를 변색시키지도 않는다. 문헌 상으로는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처럼 신체 내부에서 방어 작용을 일으켜 열이 좀 날 뿐이다.
더군다나 이것 또한 1세대 마족만 통용되는 소리지, 오랜 시간이 흐르고 꾸준히 기도를 한 덕분에 마족의 검은 마나는 순수한 마나에 가깝다. 물과 기름처럼 성질이 다르다는 게 차이점이지.
이 거짓말이 통할 수 있던 이유는 마족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논 일대기 등장 전까지 마족은 악마 취급을 받았으니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하물며 구세대 엘프는 오죽할까. 그들은 마족에 대해 안 좋은 인식만 박혀있으니 이런 어줍잖은 거짓말도 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귀를 스스로 자르기 싫으면 말을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순수한 마나여서 수색을 해도 감지되지 않을테니까. 알았어?”
“알겠… 다…”
“그, 그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귀만큼은…”
“정말로, 정말로 치유해주실 거죠? 네? 그렇다고 해주세요…!”
칼라스는 절망했고, 마엘과 레나는 아예 울고 불며 간청하기 시작했다. 수려한 외모를 지닌 엘프가 저런 반응을 지으니 양심이 조금 찔리긴 했으나 양심을 먼저 갖다 판 건 저들이다.
나는 그저 대항을 하는 것이며 정당방위다. 이 세상은 정당방위에 한없이 관대하니 나 또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당신들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조치를 할지, 아니면 방치할지 결정할 테니까. 그럼 우선…”
남은 건 단 하나.
“너희들이 피렌에게 올릴 보고를 내가 대신 알려줄게.”
대어를 낚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