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95
■ 194화. 악연 (1) □ ᓚᘏᗢ
아마 몇몇 사람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정체를 숨기려는 거 아니었냐고. 고작 그런 증거들로 순순히 인정한 거냐고 말이다.
솔직히 나도 원래는 끝까지 잡아떼려고 했다. 괜히 상황이 복잡해지는 건 질색이었으니.
하지만 체리의 정신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서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은연 중에 밝힐 수밖에 없었다. 빈말이 아니라 내가 그때 모른 척했다면 숙소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평생동안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았을까. 트라우마는 전생에 부모님을 사고로 한순간에 잃는 것만으로 족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차 말해야겠지.’
체리와 상담 아닌 상담이 끝난 후에도 내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지인들과 간단한 식사 이후에 마리 또는 세실리와의 데이트를 한다. 데이트 후에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숙소로 돌아가거나 여관으로 향하거나 둘 중 하나고.
다음 날에 진행된 수업도, 그 다음 날에 진행된 수업도 첫 날처럼 똑같이 진행되었다. 이건 2학년 수업도 비슷하다.
반복되는 수업에 살짝 지루해질 수도 있었으나 너무 바쁜 나머지 그럴 틈도 없었다.
그 대신이라 해야 할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도 있었다.
“아이작? 너 정말 아이작 맞아?”
진한 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날렵한 턱선과 눈매로 하여금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차가운 이미지를 띄는 냉미남.
신입생 행사 당시 인연을 가졌던 시그너 백작가의 장남, 에딘 마비 시그너와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야 잠깐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어차피 오늘 수업도 여기가 끝이라 엘레나도 별 말없이 넘어갔다.
“환영회 때랑 조금 달라지긴 해도 아이작 맞아.”
“이야. 그때랑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잖아. 가끔 가다가 붉은 머리를 본 적이 있지만 너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자 에딘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감탄했다. 하긴 신입생 행사 당시에는 170을 겨우 넘는 키인데 지금은 180을 훌쩍 넘겼다.
골격도 보기 좋게 발달했고 꾸준한 운동 끝에 근육도 단단하게 자리잡았다.
한없이 유약했던 1년 전과 달리, 아버지의 유전자가 뒤늦게 발현된 덕분이다.
에딘도 1년 사이에 키가 커지고 어깨도 살짝 넓어진 듯했지만 나처럼 드라마틱한 변화까지는 아니었다.
“머리는 또 왜 그래? 못 보던 사이에 엄청 길어졌네. 원래 빨리 자라는 편이야?”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너는 별 일 없었어?”
“나야,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건 없었지. 근데 너는 벌써 조교직을 수행하는 거야?”
“교수님이 잘 봐주셔서 그래. 최근에도 책은 읽고 있어?”
“물론이지.”
에딘과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둘 모두 서로가 독서광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대화가 끊길 일은 없었다.
중간중간 에딘의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다가오긴 했으나 책과 관련된 주제라는 걸 알고는 금방 떨어져 나갔다.
“요즘 너희 누님은 뭐하셔? 아직도 조교직 수행 중이야?”
“아니. 네이비 기사단 입단 테스트를 하러 갔지.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니콜은 한 달 정도 걸릴 거라 했으니 곧 있으면 돌아올 것이다. 아마 네이비 기사단에서 지급해주는 제복을 멋들어지게 입고 오겠지.
네이비 기사단 제복이 특히나 멋지다는데 정말 궁금하다. 가장 먼저 저택을 방문하여 부모님을 뵈고 아카데미로 오지 않을까 싶다.
“네이비 기사단이라… 그러고 보니 너희 형님도 네이비 기사단이라 하지 않았어?”
“그렇지. 나는 재능이 없어서 학자가 될 예정이지만.”
“몸만 보면 전혀 재능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간단한 운동만 했는데 이정도 골격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됐어. 한 우물만 파야 대성하는 법이잖아.”
사실 최근 들어 체력 단련의 강도를 높히긴 했다. 마리뿐만이 아니라 세실리까지 달래줘야 하니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더군다나 모라에게 신성력을 받지 못 하니 체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루미너스에게 신성력을 받자니 너무 의존하는 것 같아 기본 체력을 늘릴 예정이다.
그때까지만 버텨야지. 이번 주말에도 신성력을 듬뿍 받아올 예정이다
“네 말도 일리가 있네. 그나저나 너 마리 공녀님이랑 교제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사실이긴 한데 그 소문이 무학과까지 퍼진 거야?”
“아무래도 미네르바 제국에 하나밖에 없는 공작가니까.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구나.”
에딘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납득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네 얼굴이면 안 될 것도 없겠다.”
“남말하지 마. 그러는 너는? 여자친구는 없어?”
“그럴 여유도 없네요. 넌 어떻게 사귄 거야? 조금 궁금한데?”
“음…”
나는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주위를 힐긋거렸다.
미네르바 제국의 유일한 공작가 영애, 마리와 일개 남작가 영식인 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닌 척하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아무래도 나와 마리 사이의 계급 차이가 심하다보니 듣고 싶지 않아도 흥미가 끌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냥 서로 마음이 맞아서 사귄 거야. 그것밖에 설명은 못 하겠네.”
“오. 그러면…”
“난 여기까지. 괜히 복잡해지는 싫으니까 네 이야기나 좀 해줄래? 아니면 무학과에 재미있는 소문은 없어?”
내가 단칼에 자르자 에딘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로서는 흠칫하게 만드는 주제를 꺼냈다.
“아참. 너 그거 들었어? 테르스 왕국의 아카데미에서 전학생이 왔다는 거. 그런데 그 전학생이 왕족이래.”
“뭐? 그게 무슨 소리… 아.”
그러고 보니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전시회 이후로 내가 마이샬 영지를 제논의 출생지로 밝혔을 때다.
테르스 왕국이 그걸 듣고 똥줄이 탄 나머지 왕족 중 한 명을 헤일로 아카데미로 보낼 예정이라는 소문.
헤일로 아카데미에는 황태자, 레오르트와 황녀, 리나가 재학 중이니 목적이 뻔히 보이는 수였다. 그래도 테르스 왕국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다.
“무학과로 온 거야?”
“응. 대신 2학년이 아니라 이미 졸업해서 조교직으로 온다고 들었어. 소문으로는 2왕녀라는데?”
“2왕녀라…”
전시회 당시 테르스 왕족들을 만난 적이 있다. 듣자하니 1왕녀는 이미 결혼하여 다른 나라로 시집을 갔다고 했으니 남은 건 한 명밖에 없다.
하늘색 머리카락에 아델리아처럼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냉미녀, 히리야 듀커드 폰 커쳐스.
전시회 당시 드레스가 아니라 제복을 입고 온 걸 보면 기사 지망생인 건 확실하다. 나이도 아델리아보다 적을테니 아카데미를 재학 중일테고.
‘썩 좋진 않은데…’
당시 아델리아에게 보였던 시선과 태도는 왕태자보다 덜해도 결코 호의적이진 않았다. 그녀가 아델리아에게 보여줬던 표정은 적대적이라 표현할만 했으니.
더구나 그녀의 동생, 라라가 아델리아에게 다가가려는 것까지 막아세웠다. 그 상황을 곁에서 직관한 나로서는 절대 좋게 볼 수 없다.
“…그래? 그건 좀 놀라운 소문이네. 조교라 했으니까 지금쯤이면 실습에 나갔겠지?”
“아마도? 실습은 3학년 때부터 나가서 잘 몰라. 왜, 한 번 보고 싶어?”
“아니.”
내가 그 사람을 보러 갈 이유도 없고, 보러 갈 생각도 없다. 그냥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말에는 연무장에 방문하여 운동도 할 겸 겸사겸사 대련도 지켜볼 계획이었는데 당분간 철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조교라면 주말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연무장을 방문하니까.
무엇보다 이 사실은 아델리아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테니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때처럼 패닉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나 먼저 가볼게. 오랜만에 만나서 재미있었다.”
“그래. 고생해라.”
현재 시간은 오후 3시. 때마침 시간도 널널하니 중간에 아델리아를 만나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리라.
나는 에딘과 인사를 한 후에 강의실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언제나 눈에 띄는 이 빨간머리 덕분이다.
문학과는 그렇다 쳐도 무학과 건물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것이다.
‘무학과는 확실히 사람이 더 많구나.’
이론 수업을 듣는 곳은 문학과 건물과 별 다를 게 없다. 무학과의 진면목은 이론 수업이 아니라 실습에서 나오는 것이니 평범하게 짓는 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람의 숫자가 차이가 나다 보니 북적북적거렸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하나 같이 체격이 만만치 않다.
아버지처럼 근육이 빵빵한 남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학생조차 170cm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체격도 작은 편이 아닌데 보기만 해도 위축될 정도.
괜스레 시비라도 걸리면 뭣 될 것 같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곳에서 학교 생활을 한다면 숨 막혀 죽을 것 같다. 문학생인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지.
‘데이브랑 니콜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조교직을 수행한 거지?’
새삼 형과 누나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델리아도 마찬가지고.
무슨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학생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좀 사납게 느껴졌다. 혈기왕성한 나이에다가 어릴 때부터 신체 단련을 했을테니 사건사고도 많이 터졌을 듯했다.
나는 약간 급해진 마음에 발걸음을 좀 더 빨리 움직였다. 이윽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이봐.”
왠지 모르지만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원숙하지만 딱딱하디 딱딱한 독특한 목소리.
이에 설마하며 뒤를 돌아보니 무심함이 담긴 하늘색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쳤다. 그와 덤으로 포니 테일로 질끈 묶은 하늘색 머리카락까지.
방금 전까지 에딘과 말했던 사람, 히리야가 특유의 묵묵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세웠다.
“…저요?”
이 사람은 또 왜 날 부른 걸까. 내가 얼떨떨하게 묻자 히리야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뒤이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턱에 주먹을 갖다 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분명 빨간머리는 맞는데… 혹시 형제인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닮았고…”
“… …”
“혹시 쌍둥이 형제가 있는가? 너보다 키가 작고 머리도 짧다.”
“아뇨. 제가 그 아이작입니다.”
아무래도 홀로 우뚝 솟아나 있는 빨간머리 때문에 히리야의 눈에 띈 것 같다. 이 썩을 놈의 빨간머리 같으니라고.
그런데 조교라고 했으면서 왜 이론 수업을 듣는 건물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런 의문을 지닌 동안 히리야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정말인가? 전시회 때랑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는데…”
“성장기라 그렇습니다.”
“흠… 그래? 알겠다. 계집애 같지만 긴 머리카락도 나름 잘 어울리는군.”
그 말만 남긴 채 히리야는 나를 쌩- 하고 지나쳤다. 나는 살짝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히리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테르스 왕국의 왕녀이니 그렇다 쳐도 성격이 뭐랄까… 싸가지가 없다고 해야 할까.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 걸 보면 꽤 성격이 살짝 독선적으로 보였다. 어울리면 어울리는 거지, 굳이 계집애 같다는 수식어를 꼭 붙어야 하는지.
‘테르스 왕족 중에 정상은 아델 누나랑 라라 그 애밖에 없는 건가?’
테르스 왕국의 국왕, 프리드리히도 희대의 로맨티스트라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델리아를 보자면 그건 또 아니다.
여러모로 구리구리한 구석이 많다. 이것만 본다면 신사답게 압박한 레오르트와 리나가 개념인으로 보일 정도.
실제로 두 남매는 약간 성급했을 뿐이지 꽤 괜찮은 인물들이라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언젠가 책에 꼭 써야지.’
버려진 왕족의 사생아가 복수심에 왕국을 전복시킨다는 스토리. 아주 훌륭하다.
단, 제논 일대기에는 넣지 않고 차기작에 적을 예정이다. 정확히 2차 세계 대전이 아니라 제논 일대기의 후속작.
문제는 최근 너무 바빠져서 집필 시간조차 잘게 쪼개야 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신간은 빨라도 일주일 후에 출판사로 전송할 예정이다.
‘이렇게 바빠질 줄은 몰랐지.’
그 누가 문학 신입생이 150명이 될 줄 알았겠나. 이번 방학은 헬리움에서 세실리와 즐겁게 노느라 제논 일대기를 작성할 시간도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엘레나가 연구를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이건 분명 나를 제논이라 의심하기 때문이겠지.
‘레오나도 만나야 하고… 바쁘다, 바빠.’
수인에 관한 정보는 방학 도중에 아버지한테 많이 들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수인의 전투 방식을 참고했다.
수인의 생활상은 레오나가 훨씬 잘 알고 있으니 그녀가 유일한 자문 역할을 하는 중이다. 다음에 또 음식을 조건으로 부탁할 계획이다.
‘그나저나 수인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하네.’
나는 제논 일대기가 14권까지 나왔음에도 반응하지 않던 수인의 나라, 애니머즈를 떠올렸다. 그 알븐하임조차 반응을 드러냈는데 애니머즈는 밋밋하다 못해 침묵하고 있다.
제논 일대기가 수인 입장에서 재미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몰라도 다음 권에는 분명 반응이 나올 거다. 이건 확신하고 있다.
특히 수인의 장단점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더러 마지막에는 ‘사탄’이 대족장에게 홀름강을 신청한다. 그리고 대족장의 모가지가 시원하게 날아가고.
따끔-
“음?”
전개를 하나 하나 생각하며 아델리아가 머무는 숙소로 향할 때 문득 뒷통수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
이에 뒤를 돌아보니 의심이 가는 구석은 없었다. 그냥 길거리에는 행인들밖에 없었다.
뒷통수가 짜릿할 정도면 누군가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인데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나는 그리 단정지으며 아델리아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에도 가끔 가다가 뒷통수가 따끔거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의심되는 건 하나도 없었으니.
이윽고 호위기사 전용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똑- 똑- 똑-
아델리아가 있는 숙소문을 가볍게 두드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호출용 마석을 눌러도 되겠지만 이래야 예의다.
덜컥-
“누구세… 어? 귀염둥이? 웬일이야?”
머지않아 문이 열리고 아델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반갑게 맞이하려다 말고 그녀의 차림새를 보고 몸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평소 아델리아는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어도 살결을 노출시키는 옷은 거의 입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상의는 운동용 탱크탑만 입어서 탄탄한 복근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11자 복근 수준이 아니라 극한의 단련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복근.
여기에 더해서 살짝 튀어나온 아랫배, 잘록한 허리 라인과 그 밑으로 이어지는 골반으로 하여금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시원하게 발산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체. 가죽 바지를 입고 있을 때도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짧은 바지라 튼튼한 허벅지가 돋보였다.
심지어 땀을 흘린 탓에 그녀의 체취가 풀풀 풍기고 있어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렸다.
“귀염둥이?”
“… …”
내가 멍하니 그녀의 몸을 살펴보고 있을 때 아델리아가 다시 한 번 나를 부른다. 그에 다급히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마리나 세실리였다면 살짝 놀라기만 할 뿐 웃었겠지만 아델리아는 상황이 다르다.
“그… 누나? 운동하고 있었어?”
“응. 그런데?”
“크흠… 옷이 좀…”
“…응?”
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하자 아델리아는 하늘색 눈동자를 깜빡거렸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뒤이어 본인의 옷차림새를 인지했는지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진다.
“미, 미안!”
콰앙!
바람이 휘날릴 정도로 문을 강하게 닫은 아델리아.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기다렸다.
[미쳤지! 미쳤어! 내 정신 좀 봐!!]문 너머로 들리는 아델리아의 비명섞인 외침은 모른 척 해야겠다.
‘그래도…’
색다른 아델리아의 면모를 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