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0
■ 19화. 증기 기관차 (1) □ ᓚᘏᗢ
엘레나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내 일상은 약간이마나 변화했다. 원래 모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거나 대충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는데 요즘에는 엘레나 교수의 연구실에 방문했다.
그리고 오늘은 모든 수업이 종료되는 금요일. 나는 제논 일대기 8권의 원고를 부모님에게 우편으로 부친 뒤에 곧바로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로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서니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를 반겨줬다. 문을 열자마자 책상에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쓰는 중인 신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신디.”
“안녀엉…”
아무튼 연구실에 들어서면 엘레나 교수는 가끔씩 출장 때문에 자리를 비운 경우가 많지만, 신디는 아니다. 언제나 초췌한 주검 같은 모습을 나를 맞이해줬다. 나 또한 그녀의 외모에 익숙해져서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어떠세요? 아직도 피곤해요?”
“조금은 나아졌을지도오…? 잘 모르겠어…”
저 늘어지는 말투는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몇 달도 아니고 거의 몇 년간 피곤에 찌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고치기는 어렵겠지.
인간이었다면 당장 과로사로 사망했어야 정상인데 엘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모양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 논문을 작성 중인 듯한 신디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옆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논문을 쓰는 방법은 모르지만 엘레나 교수는 그것보다는 작문 자체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므로 얼마나 심각한지 한 번 지켜봤는데…
“…신디?”
“으응…?”
“잠깐 쓰는 거 멈추고 신디가 쓴 거 한 번 읽어볼래요?”
“왜에에?”
그만큼 심각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위의 말을 꾹 억누르며 신디에게 재차 권유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여기 중반부부터.”
“으응… 종족 전쟁 이후 발생한 인간들의 전쟁은 인간들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으며 미네르바 제국이 현재까지 강대국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원인이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나라가 독립을 외치고 있는 이유였으며 미네르바 제국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메커튼 왕국은 주변 왕국과 동맹을 맺어…”
“그만.”
대략 저렇다. 가독성이고 나발이고 개판 5분 전인 수준이다.
‘내 첫 작을 보는 것 같네…’
전생에서 필력 하나는 좋다고 칭찬받은 나지만 처음부터 좋았던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첫 작은 이게 무슨 스토리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가독성이 개판이었다.
현재 신디의 논문도 글을 처음 쓰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가독성을 위해 중간중간 문장을 끊지 않고 하나로 잇거나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실수. 초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다.
나는 본질적인 문제도 잘 알았겠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디와 마주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신디. 신디는 이게 무슨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요?”
“가는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내는 그녀. 나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신디의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내가 이 세상의 소설이 수능 영어 문제 같다고 까내렸지만 논문은 예외다. 논문은 연구자가 본인이 연구한 걸 통해 작성한 일종의 기록이니 전문용어가 나와도 상관없다.
하지만 논문은 연구자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전달해야한다.
내가 논문을 쓰는 방법을 모르지, 논문이 어떤 목적을 갖고 쓰이는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최소한 신디처럼 마구잡이로 쓰면 절대 안 된다.
나는 어디서부터 갈피를 잡아야할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신디. 엘레나 교수님이나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많은데에…”
“그런데 이렇게 쓴다고요?”
엘레나 교수의 도움으로 그녀가 쓴 논문을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중간중간 전문용어가 나와서 곤혹을 치뤘으나 여태까지 책을 많이 읽은 덕에 무리없이 정독할 수 있었다.
신디는 내 황당하다는 질문에 눈을 느릿느릿 깜빡였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게 쓰려고 해도오… 계속 쓰다보면 읽은 논문이랑 비슷해져서어…”
“나중에 평가를 받으면 비슷하다고 거부당한다?”
“응…”
기억력은 좋지만 응용력이 뒤떨어지는 편인건가. 인간인 내 기준으로 보면 멍청이에 불과하지만 엘프의 관점으로 보자면 신디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전부터 말했듯이 인간은 다른 종족보다 태생적으로 힘과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걸 메꿀 수 있는 ‘습득력’과 ‘적응력’이 존재한다. 종족 전체를 두고 비교하자면 엘프가 정상적이고 인간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일례로 마법이 있는데, 전에 말했듯이 마법은 본디 역사적으로 신에게 선택받은 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라며 찬사받았다. 당장 300년 전 종족 전쟁까지만 해도 마법은 오직 엘프나 마족, 그리고 극소수의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3000년 전의 악마 전쟁? 그때 인간이 마법을 썼다는 기록은커녕 극소수의 엘프만이 사용했다는 말밖에 없다. 300년 전 종족 전쟁이야 말로 본격적으로 인간에게 마법이 흘러들어간 시점이다.
아무튼 간에 인간은 300년도 채 되지 않아 배경과 재능, 그리고 노력만 뒷받쳐준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모시켰다. 장수종인 엘프의 입장에서는 실로 무시무시한 발전 속도가 아닐 수 없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왜 인간은 배우는 게 빠른걸까?’
인간들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러니까 지구에 있을 때는 당연시 여겼던 부분이다. 창작물에서도 인간은 다른 종족보다 배움이 빠르다는 설정이 대부분 존재했다.
하지만 정작 이 세상에 환생하고나니까 막상 궁금해졌다. 인간은 어째서 다른 종족보다 무언가를 배우는 게 빠른걸까?
내가 머릿속으로 그 의문을 되풀이하고 있는 도중에 신디가 늘어지는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 가르쳐 줄 거야아…?”
“아, 네네. 엘레나 교수님이 가르쳐주라고 했으니 가르쳐드려야죠. 하나만 질문하고요.”
“그게 뭔데에?”
“신디는 작문을 배운 적이 없으세요?”
이미 기본적인 지식부터 알려줘야하지만 혹시나 해서 물었다. 대충 배웠다고 하면 그나마 희망이 보일테니까.
신디는 내 질문에 눈을 느릿느릿 깜빡거리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작문을 가르쳐 준 사람은 몇 명 있었지이…”
“엥?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엘레나 교수님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도와준 사람이고, 돈 받고 가르쳐 준 사람은 몇 명 있었어…”
이어서 그녀는 전보다 착잡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귀까지 아래로 추욱 늘어졌다.
“전부 더이상 못 가르치겠다고 도망갔지마안…”
“… …”
“내가 좀… 인간도 그렇고 엘프 기준으로도 둔한 편인가 봐아…”
왠지 제대로 낚였다는 기분이 든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 * *
제논 일대기는 여태까지 늘 그랬지만 특히나 7권은 발간되자마자 전보다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결정적인 순간에 저자가 이야기를 끊어버려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애태웠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미네르바의 황태자는 당장 저자를 잡아다가 황궁에 가둬버리겠다거나, 황녀는 다음 권을 신속히 발간하라고 압박하는 등.
여러모로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서서히 멎어들어 다음 권을 기다리자는 말이 나왔다. 구독자들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본업에 집중하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제논 일대기 7권이 나오고 약 한 달 뒤,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8권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신문에 기재되었다. 다만 약간 눈길이 끄는 문장이 하나 존재했다.
[귀족에게는 자칫 불쾌할 수도 있는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제일 먼저 원고를 검토한 출판사 쪽에서 위의 문구를 실은 것이다. 그 문구에 귀족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평민도 의문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장면이길래 평민도 아닌 귀족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문구가 있는 걸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제논 일대기 신작이 발간되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백성 위에 귀족이 있고, 귀족 위에 왕이 있으며, 왕은 국가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오. 하지만 그 국가를 지탱하는 건 엄연히 백성이지. 즉, 왕이건 귀족이건 백성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라오. 헌데 크로스트 백작. 그대는 그 국가의 근간을 단지 거슬린다는 이유로 모함하는 중이지. 정말이지 참된 귀족의 행실이구려. 그렇지 않소?]소설 속 인물이, 그것도 같은 귀족층이 말했다지만 너무나 신랄한 비판이었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 해도 그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오로지 작가의 몫이다.
여태까지 귀족의 만행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책 또는 그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제논 일대기는 너무 직설적이었다. 제논 일대기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이례적이지는 않아도 상당히 위험한 발언임은 틀림없었다.
-귀족층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
-현실에서도 귀족이 평민을 겁박하는 사건은 많다. 아무도 모르게 은폐되었을 뿐.
-역사는 되풀이 되는 법. 이대로 가다간 ‘제이로스 혁명’과 같은 사건이 다시 한 번 벌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 세상에 지구의 ‘프랑스 혁명’과 흡사한 사건이 있다. 예로부터 미네르바 제국의 영원한 숙적이라 평가받는 테르스 왕국에서 발발한 ‘제이로스 혁명’이다.
제이로스라는 위인이 주도자였기에 편의상 제이로스 혁명이라 칭해지고 있다.
그 한 번의 혁명으로 인해 테르스 왕국이 휘청거렸으며 수많은 부패 귀족이 끌어내려졌다. 비록 혁명 자체는 성공하지 못 했으나 그 여파는 실로 무시무시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중대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이 평민을 깔보는 풍토는 여전했다. 오히려 더 악랄하게 은폐시켜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못 하도록 철저하게 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귀족과 평민은 태생부터 다른 존재다. 아무리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도 이런 모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역시 소설일 뿐. 제논 같은 평민이라면 귀족과 대립하는 게 아니라 작위를 받았을 것.
이탓에 몇몇 귀족들이 8권의 초반부에 대해서 강도높은 비판을 꺼냈다. 다만 소수의 귀족만 비난에 가까운 질타를 쏟아붓는 중이고, 대부분의 귀족들은 씁쓸하다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반응들에 한 평론가는 이리 평했다.
-이번 이야기를 정독하고 화를 내는 귀족들은 대부분 평민을 노예 취급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수인은 대놓고 노예 취급하고 있지 않을까? 정말로 귀족다운 마인드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묵직한 팩트 한 방에 비난과 질타를 쏟던 귀족들의 입이 꾹 닫히게 되었다. 진풍경도 이런 진풍경이 없었다.
어쨌거나 8권의 초반부로 인해 귀족 계층이 존재하는 국가는 잠시 시끌해졌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주인공인 제논을 위기에 빠뜨렸던 귀족은 결국 모든 직위를 박탈당한 채 투옥당했고, 제논은 잠깐의 휴식을 위해 드워프들의 나라로 향했다.
제논 일대기로서는 인간의 나라가 아닌, 최초로 다른 종족의 나라로 향하는 것이었기에 많은 구독자들이 기대했다. 당연하지만 그중 드워프들이 제일 큰 기대와 걱정을 품고 있었다.
“으음…”
“어때요? 한 번 만들어 볼만하지 않아요? 여기 대략적인 설명이랑 그림도 있잖아요.”
풍성한 회색 수염과 괴팍해 보이는 얼굴, 마지막으로 짜리몽땅한 키를 가진 드워프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딱 얼굴만 뒤덮을 정도로 수염을 기른 젊은 드워프가 흥분한 표정으로 재촉하는 중이었다. 회색 수염의 드워프는 옆에서 재잘거리는 드워프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에만 집중했다.
현재 그가 보고 있는 건 이번 달에 발간된 제논 일대기 8권의 중후반부에서 등장한 그림이다. 중간에 읽다가 떨어지지 않게 접착제 비슷한 걸로 붙여져 있다가 뒤늦게 발견했다.
뒤이어 회색 수염의 드워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책에서 언급된 그림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 철덩어리의 이름이 증기 기관차라고?”
“네!”
“그런데 이 거대한 철덩어리가 특수한 기관을 통해 움직인다? ‘철로’라는 특수한 길 위에서만? 심지어 앞부분만 아니라 뒤에 마차처럼 여러 물자를 실어서?”
“네!”
“바퀴를 움직이는 원리가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일 때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현상을 극대화시킨거고?”
“네!”
회색 수염의 드워프가 질문할 때마다 해맑게 답하는 젊은 드워프. 이에 회색 수염의 드워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아들아? 말 같지도 않는 소리는 하지 마렴. 소설은 소설로 봐야지 현실에 대입하면 머리가 아프단다. 우리는 그냥 더 좋은 무기나 제작하면 돼.”
“하지만 아버지. 현실성은 있잖아요.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아들의 물음에 회색 수염의 드워프는 손을 휘적거리며 가당치도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실성이고 나발이고 이 아비는 늙어서 이런 걸 만들 여력이 없다. 차라리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아서 다 함께 만들던가. 그리고 여기서는 석탄이라고 하던가? 그 돌덩이는 차고 넘치니 알아서 해 봐. 우리는 까만 돌덩이보다는 ‘마석’이 더 필요하니까.”
“그럼 안 도와주실 거예요?”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지만 돈이라면 지원해줄 수 있다. 인력은 너 같이 무모한 바보들이 널려있을텐데 찾는 건 쉽겠지.”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모으겠습니다!”
젊은 드워프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대장간 밖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회색 수염의 드워프는 아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너털웃음을 흘렸다가 다시 한 번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림의 퀄리티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외관은 명확했다. 거기다 책에는 설명까지 붙여져 있어서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 수 있다.
‘상상력 하나는 대단하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지?’
장인의 종족이자 창작의 대가라고 불리는 드워프, 더구나 그 드워프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회색 수염의 드워프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는 발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법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라고 단정짓는 현 상황에서 이런 ‘기계’가 등장한다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인간’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태생적인 능력이 부족해도 습득력과 적응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니까.
어쩌면 증기 기관차가 발명되는 순간 마법 대신 기계로 노선을 틀 수도 있다.
‘정말로 이 놈은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오기라도 한 건가?’
회색 수염의 드워프는 진심으로 그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