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03
■ 202화. 15권 (4) □ ᓚᘏᗢ
원래 남자 혼자 사는 집에는 홀애비 냄새라 하는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사실 남자뿐만 아니라 성인 혼자 사는 곳은 대개 이렇다.
그래서 탈취제를 사용하거나 환기 또는 하루에 한 번씩 씻어 그 냄새를 없애게 된다. 나 또한 그런 냄새를 싫어해서 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내 몸에서 향긋한 라일락 향기가 진동하는데 환기만 적당히 하면 끝이다.
잠깐 바깥에 나갔다 와도 숙소에 꽃향기가 그윽하니 좋지만 문제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얘. 너 혹시 향수 뿌렸니?”
“아뇨.”
“근데 왜 이런 냄새가 나는 거야?”
바로 주변인의 반응. 특히 연구실에 자주 방문해야 하는 조교로서 연구실이 향기로운 꽃내음으로 가득 찼다.
“좋은 냄새애… 퀴퀴한 책 냄새보다 좋아…”
“좋기는 무슨. 코가 얼얼해서 힘들어.”
“교수님이 몰라서 그래요오… 꽃이 얼마나 향기로운데에…”
신디는 라일락 향기를 좋다고 하는 반면 엘레나는 코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신디와 달리 엘레나는 후각이 예민한 모양이다.
그래도 후각은 신체 기관 중 가장 빨리 피로해지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러한 반응들은 수업이 끝난 후,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킁. 킁킁. 킁. 아이작. 너 향수 뿌렸어?”
“아니?”
“근데 좋은 냄새가 나는데. 킁. 킁.”
오랜만에 마리와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 몸 곳곳에 코를 갖다 박으며 냄새를 맡았다.
미묘한 느낌에 쓴웃음을 지었지만 마리의 행동이 귀여워서 가만히 있었다.
마리는 원래부터 나한테 풍기는 체취 자체가 좋다며 자주 앵겼으니 이런 상황은 익숙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한 눈길로 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문제긴 하지만.
“비누를 바꾼 것도 아닌데… 정말로 향수 뿌린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그냥 루미너스 님에게 신성력을 받은 것뿐이야.”
“신성력? 아, 어쩐지. 그럼 이건 라일락 꽃 향기겠구나?”
마리도 신화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내 몸에서 나는 향기가 라일락 꽃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러면서도 내 몸에 얼굴을 박아 냄새를 맡는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주인의 냄새를 인식하려는 강아지 같은 모습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백발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줬다.
때마침 내 가슴에 얼굴을 박고 있던 마리도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마자 고개를 빼꼼 올려 나와 정확히 마주했다. 청명한 푸른색 눈동자가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너무 강하거나 그러진 않지?”
“응! 난 엄청 좋은데? 이거 언제까지 지속되는 거야?”
“글쎄? 아마 당분간은 이럴 거야. 주말마다 신전에 갈 계획이거든.”
루미너스가 알려준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라일락 향기가 진동할 정도의 신성력을 받은 뒤, 평소보다 운동을 격렬하게 하면 끝이다.
신성력이 신체의 부담을 덜어주기에 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으며 강도가 높아질 때마다 소모되는 신성력의 양도 증가한다.
매우 간단한 원리지만 성기사들이 괜히 성기사겠나. 성실함과 인내심이 중요하기에 간단해 보이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신전은 왜? 피곤한 일이라도 있어?”
“… …”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마리를 빤히 쳐다봤다. 사랑을 받는 여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현재 마리는 날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빛이 반사될 정도로 윤기가 흘렀고, 피부 또한 관리를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탄력이 넘쳤다.
심지어 성장기라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몰라도 몸매 또한 일취월장하는 중이다.
풋풋한 소녀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한 명의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꽈악-
“으잉?”
“그러게. 누구 때문에 내가 이리 피곤한 걸까?”
마리는 내가 볼을 꼬집자 귀여운 소리를 내는 것도 잠시, 다음에 이어진 말에 두 눈을 깜빡거렸다.
뒤이어 본인도 찔리는 게 있는지 민망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두 세시리보다는 낫자나. 최근에는 자중하고 있거.”
볼을 꼬집힌 바람에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변명을 대는 귀여운 여자친구. 나는 그녀의 찹살떡 같은 뺨을 마음껏 문질렀다.
피부에 탄력이 증가한 만큼 탱글탱글한 감촉이 너무 좋다. 마리의 얼굴이 이리저리 망가지는 것도 볼만했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두 볼을 찐빵처럼 꾸욱 눌렀다가 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확실히 최근 들어 자중하고는 있어서 다행이지. 방학 전만 해도 불 붙은 장작마냥 꺼질 기미가 안 보였는데.”
“그건 옛날이잖아. 그리고 불도 땔감이 없으면 꺼져. 나도 어느 순간부터 확 꺼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그 말은 나를 예전보다 덜 좋아한다는 거야?”
“에이. 내가 비유한 건 성욕이고 아이작을 좋아하는 건 똑같아.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걸?”
마리는 사랑을 듬뿍 담은 어조로 말하면서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면서 강아지처럼 뺨을 비비적거리기까지.
전까지만 해도 요망함이 상승하던 마리였으나 요즘에는 애교를 부리는 빈도가 더욱 많아졌다. 반대로 세실리는 전에 마리가 했던 것처럼 점점 요망해졌고.
각기 색다른 매력을 풍기니 몸은 힘들긴 해도 마음만큼은 안정되었다. 정말이지 전생과 비교했을 때 축복받은 인생이라 할 수 있다.
“킁킁. 킁.”
“…그만 좀 맡으면 안 될까?”
“조금만 더 맡을게.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
“전에도 그런 말 하지 않았어?”
“그랬나? 그럼 그냥 네가 좋은 거겠지. 이게 살에서 나는 냄새일까, 아니면 어디에서 나는 냄새일까? 문득 궁금해지네.”
“… …”
오늘도 결국 여관으로 직행 확정이군. 마리의 눈빛에 성욕은 없었으나 그 반대로 호기심이 가득 채워져 있다.
저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여관에 가지 않을까 싶다. 나는 쓰게 웃었다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때마침 마리에게도 하고픈 질문이 하나 있다.
“그런데 마리. 너 혹시 레오나에 대해 알고 있어?”
“응? 아아. 그 고동색 머리 여자애? 당연히 알고 있지.”
마리가 레오나를 아는 이유는 간단하다. 레오나는 현재 동급생 사이에서 모범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수업에 성실할 뿐더러 거의 모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지식을 탐구하는 열정이 뛰어나 많은 교수들의 총애를 받고 있다.
게다가 사자 갈기마냥 덥수룩한 헤어 스타일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미모 또한 훌륭하여 동급생 사이에서도 유명한 편이다.
“그 애 이번 수업에 안 들어왔던데 무슨 일 있어? 역사 수업 말고 다른 수업은 다 들어왔는지 궁금하거든.”
“음… 아니? 다른 수업도 다 안 들어왔어.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 봐.”
“흠…”
모든 수업에 들어오던 레오나가 모든 수업에 빠졌다라… 이건 분명 애니머즈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 하도록 헤일로 아카데미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겠지. 나 또한 간접적인 책임이 있어서 괜스레 걱정된다.
애당초 지식을 얻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수인이다. 가정사가 복잡한 아델리아처럼 분명 복잡한 사정이 섞여있을 확률이 크다.
“그나저나 레오나는 왜?”
“교수님이 물으셨거든. 뭐, 사람마다 개인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건 그래.”
어떻게 하면 레오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사건인 혼혈 사태 당시에도 아르웬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그건 조건부터가 다르다.
아르웬은 내가 제논이라는 걸 알고 있을 뿐더러 엘프였으니까. 언제 어디서든 원한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반면 레오나는 내가 제논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그녀 쪽에서 함부로 도움을 요청하기에 매우 애매한 상황이다.
“아이작.”
“응?”
“너는 애니머즈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요즘 난리도 아니잖아.”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마리가 저런 질문을 하니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순간 어벙해졌다가 곧바로 침착을 되찾았다.
현재 애니머즈의 상황은 당장 내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서로 싸웠다간 큰 피해가 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조용히 있을 뿐, 화약고나 다름없다. 그러니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것이겠지.
전통에 충실하는 왕과, 반대로 전통을 폐기해야 된다는 신하들. 멀리서 본다면 이 둘의 싸움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인의 정체성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홀름강으로 인해 대족장의 목이 따이고, 그로 인해 수인을 하나로 결집시켰던 전통과 문화에 의문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글쎄… 생각보다 복잡하지. 수인에게 있어서 전통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거니까. 너 히크라는 수인에 대해서 알아?”
“아니. 잘 몰라. 누구야?”
“수인들의 국부이자 건국왕이라 보면 돼. 300년 전 종족 전쟁이 끝나고 전세계에 흩어진 수인을 한데 모은 영웅 중의 영웅이거든. 그런데 문제는 그 수인이 다른 수인 부족을 결집시킬 때 전통을 잘 이용했다는 거야.”
히크는 종족 전쟁 참전자이자 엘프 전사장 못지 않게 강한 수인이었다. 당연히 그 위명은 같은 수인뿐만 아니라 적이었던 인간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한 무력을 가진 인물이어도 몸은 하나였기에 수인이 인간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수인이었다면 당연히 분개하고도 남을 참상이었으나 히크는 ‘분노’를 억누르고 근본적인 문제점부터 하나하나 짚었다. 그 결과, 수인이 서로 하나로 뭉치지 못 하고 흩어져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히크는 말도 안 되게 강한 무력을 통해 각 부족마다 홀름강을 신청하여 부족을 들여보냈지.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무턱대고 홀름강을 신청한 게 아니라 맨 처음에는 설득을 했다는 거야. 책을 뒤져보면 설득으로 넘어간 비율이 60%, 홀름강으로 넘어간 비율이 30%, 기타가 10%지. 그리고 그 홀름강조차 상대방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어.”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들여보내면 열의 아홉은 반동분자가 되지 않아?”
마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홀름강의 단점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승패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는 것.
이 말은 즉슨, 나에게 무슨 불만이 있던간에 닥치고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홀름강이라는 전통은, 강행하기에는 좋지만 그만큼 무수한 수의 그림자가 뒤따른다.
“맞아. 그래서 끝까지 들어오기 싫다면 그냥 보내줬어. 일종의 선택권을 준 거지. 난 홀름강에서 너를 이겼다. 하지만 너에게 마지막 선택을 주겠다면서.”
“그건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네가 쓴 책에서 홀름강은 승자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된다고 했잖아.”
“그것도 맞는 말. 하지만 히크는 절대 ‘강요’를 한 적이 없어. 오로지 선택권을 준 거지. 홀름강을 신청한 것도 대부분 상대방 쪽이 신청한 거야. 히크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했고, 쓸데없는 피를 흘리지 않았어.”
“오… 건국왕이 될 수 있던 이유가 있었네. 그만한 포용력이 있으니 왕이 될 수밖에 없지.”
“그래. 그렇긴 한데…”
나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히크의 예시처럼 전통과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 현상이 지금의 애니머즈에서 드러난 거고.
수인에게 있어서 전통은 하나로 결집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으나 딱 그뿐이다. 유지를 위해서는 적어도 융통성을 발휘해야 되는데 전통이 그것을 막고 있다.
알븐하임의 원로원과 상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을 통해 종족을 하나로 결집시켰으나 고인물은 썩게 되는 것처럼, 점점 부패해버리는 것이다.
전통을 없애자니 국부이자 건국왕인 히크의 명성에 먹칠하는 셈이 되고, 그렇다고 유지하자니 국가의 존속이 위태로워진다.
애니머즈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 전통이 지금은 국가를 분열시키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할 수 있지.”
“음… 네가 생각하는 해결 방법은 있어? 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잖아.”
지금은 바깥이어서 돌려서 말했을 뿐, 마리는 혼혈 사태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도 나와 아르웬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다.
“그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 이건 연설로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 무려 종족을 결집시켰던 전통을 건드려야 되는 사안이야. 특히 홀름강은 정치나 지략보다는 순수한 무력이 중요해서 삐걱거릴 수밖에 없어.”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구나.”
“맞아. 굳이 해결 방안이 꼽자면… 홀름강이라는 전통을 융통성 있게 바꾸는 수밖에 없겠네. 이제는 부족이 아니라 국가니까. 예를 들어…”
“예를 들면?”
“홀름강을 일종의 대회로… 잠깐만.”
이건 마리의 목소리가 아닌데. 게다가 옆이 아닌 뒤에서 들렸다.
이에 눈을 깜빡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이게 웬일.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고동색 머리의 수인녀, 레오나가 떡 하니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빨리 좀 말해줄 수 있어?”
그녀의 금색 눈동자에 다급함이 서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