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04
■ 203화. 전통 (1) □ ᓚᘏᗢ
진짜 맹수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뒤에 접근한 레오나. 나와 마리는 소리없이 뒤에서 등장한 레오나를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건지 모르겠다만 맹수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에는 다급함이 서려있다.
“…레오나? 레오나 맞지?”
미묘한 기류가 가라앉았을 때 마리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확인을 구했다. 아무래도 평소의 레오나와 다른 분위기와 금색으로 변한 눈동자 때문인 듯싶었다.
모범생에 푸른 눈동자를 지녔던 평소와 달리 지금은 다소 거칠고 맹수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갖고 있었으니. 그녀를 잘 모르는 마리가 얼떨떨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레오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을 요구하는 중이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오가는 행인들이 많지 않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그녀도 자신의 입장을 시원하게 밝히기 껄끄러울 테고.
그렇다고 마리와 떨어질 수도 없다. 여태까지 우리는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레오나가 난입한 상황이다.
되도록이면 나중에 보자고 말하고 싶지만 레오나의 표정이 워낙 급해 보여서 그러기에도 애매했다.
“많이 급한 거야? 급하다면 다른 데로 가서 얘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는데. 단, 마리와 동행한다는 조건 하에.”
“… …”
내 제안에 레오나는 말없이 마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마리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반면, 레오나는 살짝 복잡한 표정이다.
자신의 정체는 나 말고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이렇게 된다면 마리에게도 밝혀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았으니 마지못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레오나는 한숨을 쉬더니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네 암컷이니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아, 암컷?”
“아. 미안. 암컷이 아니라 여자친구.”
두 손을 내저으며 정정하는 레오나. 아무래도 본인도 모르게 나온 말인 것 같다.
아무튼 조건도 받아들였겠다, 나는 자리를 옮기기로 정했다. 모처럼의 데이트를 즐기지 못 한다는 건 아쉽긴 해도 레오나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애니머즈에 그런 중대한 사건이 터졌으니 헤일로 아카데미로 넘어온 그녀에게도 필시 영향이 갔을 터.
무엇보다 수업에 들어오지도 않고 제 3자나 다름없는 나에게 부탁까지 하는 걸 보면 꽤 급한 모양이다.
“혹시 식사는 했어?”
“아니. 아직 안 했어.”
“그럼 그 식당으로 가자. 어디인지 알고 있지?”
나와 마리는 식사를 했으나 레오나가 다 먹으면 괜찮다. 그녀 혼자서 3인분 정도는 거뜬하게 해치울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식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쯤,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마리가 나에게 속삭였다.
“아이작.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어? 레오나가 갑자기 왜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음… 가보면 알아. 지금 설명해주기는 곤란해. 나 믿지?”
“당연히 믿지. 조금 이상했을 뿐이야.”
마리는 그리 속닥거리며 앞서 나가는 레오나를 힐긋거렸다. 수인답게 청력이 좋은 레오나일테니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지 않을까.
나는 레오나를 수상히 여기는 마리에 어깨를 으쓱이며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줬다. 아기처럼 보들보들한 감촉이 느껴진다.
마리도 처음에는 움찔거렸다가 감싸안듯이 내 손을 잡아줬다.
“설마 데이트가 이상하게 흘러가서 삐진 건 아니지?”
“절대 아냐. 그리고 아직 밤이 남아있잖아?”
방긋 웃으며 은근슬쩍 나와 팔짱을 끼는 그녀. 성장기여서 부쩍 성장한 가슴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세실리처럼 커지는 게 아닐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눈처럼 새하얀 그녀의 머리를 보듬어줬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마리가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내 팔에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정말 귀엽다.
이후로 식당에 도착한 뒤 방음이 철저한 개인실까지 잡아두고, 그 안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이제 밝혀도 상관없겠지?”
“응.”
“뭘 밝힌다는 거야?”
퐁-
각자 자리에 착석했을 때 쯤, 마리의 질문에 레오나는 숨겼던 귀를 돋아나게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인간의 귀가 아닌, 동물의 것이 분명한 귀.
마리는 레오나의 머리 위에 동물의 귀가 솟아나자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가 크게 뜨며 외쳤다.
“귀, 귀? 아, 아니. 잠깐만. 레오나 너 설마…”
“맞아. 수인이야. 용맹한 사자의 일원이지.”
“정말 수인이었구나…”
놀람도 잠시, 레오나가 당당히 정체를 밝히자 마리는 놀람 반 신기함 반의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평소 모범생이였던 레오나가 수인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을 테니.
왜냐하면 대외적으로 수인은 호전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었으니. 그 누구도 헤일로 아카데미과 같은 교육 기관에 입학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는 한동안 레오나의 얼굴과 머리 위로 솟아난 귀를 번갈아 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작 너는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지.”
“언제부터?”
“몇 달 전부터. 그런데 그때는 정말 우연이었어. 주변에 알려봤자 좋을 것도 없고 상황만 복잡해지니 그냥 가만히 있었지.”
수인에 대한 정보와 전통, 그리고 다양한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많은 이득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정보를 토대로 제논 일대기 15권을 발매한 탓에 애니머즈의 심각한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지만.
레오나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나와 마리를 둘러보다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더니 착잡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덕분에 평범한 생활이 가능했어.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힘들 것 같아. 곧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될 수도 있거든.”
“애니머즈로?”
“응.”
“아까 사자의 일원이라고 했지? 신문에서는 대족장과 그 일원이 사자였다는데 혹시…”
마지막에 말을 흐렸지만 레오나도 마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신문에서 나온 소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래의 대족장은 사자 수인 즉, 레오나와 같은 사족이다.
더구나 현재 전통을 지키자는 것 또한 사자 수인이었으니 레오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레오나는 마리의 질문을 듣고 한동안 고심하는 기색을 보였다가 이내 조용히 대답을 꺼냈다.
“…일단 맞다고 해줄게. 수인은 굳이 대족장이 아니더라도 일부다처제가 용인되고 있어. 강한 수컷이 여러 명의 암컷을 거느리는 식이지. 내 어머니는 셋째 부인이야.”
“아… 이해했어. 역시 대족장의 딸이었구나.”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 예상대로였다. 평소에도 자신이 사자 수인이라는 것에 높은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으니 모를 리가 없지.
하지만 생각보다 사안이 좀 복잡해 보인다. 셋째 부인의 딸이라면 사실상 왕권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데 레오나는 애니머즈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녀의 가족에 큰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그녀 말고 전원이 죽었을 수도 있지.
똑- 똑- 똑-
잠깐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려던 찰나에 밖에서 누군가 노크했다. 아무래도 음식이 도착한 모양이다.
나와 마리는 이미 식사는 하여 딱히 먹을 필요가 없었지만, 레오나가 있어서 그냥 3개 다 시켰다. 전부 레오나에게 넘겨주면 상관없을 것이다.
물론, 심심한 입을 달래주기 위하여 스프 정도는 떠먹었다.
“그래서 고향은 왜 돌아가야 하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 질문에 우울한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우물거리던 레오나가 흠칫거렸다.
뒤이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더니 입 안에 든 스테이크를 꿀꺽 삼키며 말했다.
“…문제는 신문에 나온 것밖에 없어. 내 형제자매가 모두 죽은 것도 아니고 단지 사족의 일원으로서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하지만 일원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게 문제야. 보다시피 나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똑똑한 편이니까. 하아…”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스테이크를 먹는 행위는 멈추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모습에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그래도 나름 심각한 상황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니컬한 성격의 레오나가 저런 표정을 짓지 않을테니.
나는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는 건지 아니면 맛없게 먹는 건지 모를 그녀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꺼냈다.
“아까 나보고 대답하라고 했었지? 앞뒤를 잘라먹은 것 같아서 그런데 자세한 설명을 좀 해줄 수 있어?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 그리고 어째서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지도 알려줘.”
“그걸 굳이 말해야 돼?”
“안 그러면 네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을테니까. 전통을 중시했다면 홀름강을 그대로 유지하는 식으로 갔겠지. 아니야?”
“… …”
예리한 내 지적에 할 말이 없었는지 레오나가 스테이크만 우물거렸다. 맹수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스며든다.
스테이크라는 맛있는 뇌물(?)도 받았겠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포크로 스테이크 덩이를 하나 집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남은 부분을 전부 먹어치우더니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네 말이 맞아. 난 그 막돼먹은 전통이 싫어.”
“… …”
“전통도 말이 좋아 전통이지, 고인물은 썩게 되기 마련이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이 사는 방식도 달라지는데 전통만 고집하게 된다면 결국 그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허나 히크가 그러했듯, 우리 수인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것도 그 전통이야. 싫긴 해도 버릴 수는 없어.”
레오나가 착잡하면서도 답답함을 담아 속에 담아놓았던 진심을 꺼냈었다. 사실 레오나뿐만 아니라 다른 수인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홀름강은 야만적인 전통이다. 상대방의 목숨까지 취할 수 있을 뿐더러 권한마저 박탈시킬 수 있는 수인 고유의 전통.
그러나 나라가 건국되고 그 전통은 나라를 차근차근 좀먹기 시작했다. 이번에 발생한 대족장 살해 사건이 단적인 예다.
이것만 본다면 홀름강은 전통이 아닌 곧바로 철페해야 할 악습이지만 이건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 레오나처럼 싫기는 해도 절대 버릴 수 없는 전통이다.
좋게 말하자면 아이러니, 나쁘게 말하자면 계륵이나 다름없는 전통.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전통은 딱딱해지고 날카롭게 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할 것이다.
“내 어머니가 말씀하셨어. 앞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력보다는 지력이 중요하다고. 언제까지 힘으로만 군림할 수 없다고 말이야.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야.”
“누가 막지는 않았어?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의 나라로 오는 건데.”
“막기는커녕 조롱만 실컷 해댔지. 지식을 쌓을 시간에 수련이나 하겠다며 놀렸어.”
당시 꽤 심한 모욕을 받았는지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애니머즈는 건국된 지 고작 300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가’ 자체가 건국된 걸 의미한다. 인간의 나라는 종족 전쟁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최초로 국가가 세워진 건 기록상 3000년 전, 악마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애니머즈는 이제 막 그들만의 국가가 건설되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점들이 많다. 그중 가장 큰 예가 바로 전통이고.
국가를 건립하는데 일조한 전통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달라질테니 그 전통 또한 부드럽게 바뀔 확률이 농후하다. 당장 레오나를 비롯한 수인이 그러한 면모를 띄고 있으니.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옆에 앉은 마리를 스윽 바라봤다. 그녀도 나름 심각한 주제에 깊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마리. 네 생각은 어때?”
“응? 나?”
“응. 너라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글쎄…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문제야. 솔직히 내가 수인이어도 홀름강은 못 버릴 것 같거든. 사실상 정체성이 사라지는 거잖아.”
“정체성이라…”
맞는 말이다. 수인에게 있어서 홀름강이란 정체성 그 자체. 버리고 자시고 할 수 없는 전통이다.
레오나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건지 골치 아프다는 기색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바짝 솟아났던 귀마저 추욱 내려앉은 걸 보면 지금 이 상황이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나이프와 포크를 열심히 움직이며 스테이크를 먹는 건 조금 웃기지만.
“…그래서 너한테 부탁한 거야. 당장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거든.”
“음…”
“아까 했던 말 계속 해줄 수 있어?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말은 쉬운 거라서.”
나는 스프를 한 입 먹고는 레오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에는 일말의 기대와 불안, 그리고 초조함이 서려있다.
그만큼 나에게 거는 게 크다는 뜻.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아 보이는 레오나의 어깨에 많은 짐들이 얹어져 있다.
그닥 친하다고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는데 무시할 수 없는 노릇.
보답이야, 나중에 받으면 그만이다.
“너는 딱딱한 전통이 싫다고 했지? 간단하네. 그 전통을 잘 다듬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봐.”
“부드럽게?”
“응. 만약 네 심장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치자.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심장 자체를 떼어낼 수는 없잖아. 비슷한 원리야. 전통에 들어있는 문제점을 해결해야 되지, 전통 자체를 철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예를 들어…”
나는 잠깐 말을 흐렸다가 아주 간단한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홀름강을 1년에 한 번 여는 대회로 바꾼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