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09
■ 208화. 이런 씨… (3) □ ᓚᘏᗢ
케이트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위험하다. 그녀가 순례길에 오른 이유가 나를 찾기 위함인데 갑자기 어느 한 곳에 정착한다고 생각해보아라.
본인은 모를 수도 있으나 교단의 윗사람들은 분명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순례길에 떠난 사람이 왜 한 지역에만 짱박혀 있지? 설마 찾았나? 라면서.
그러면 분명 위쪽에서 사람을 시켜 케이트를 지켜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러므로 그녀의 존재는 나에게 해가 되면 해가 됐지, 썩 도움은 되지 않는다.
물론 케이트가 원하는대로 내 씨앗을 주면 순순히 물러가겠지만, 그건 내가 싫다. 애당초 초면인 사람과 몸을 섞는 건 나에게 부담스럽고 나를 종마 취급하는데 누가 기꺼이 수락하겠나.
제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바람직하지만 나를 도구로 보는 것 같아 거부감이 인다. 무엇보다 마리와 세실리도 내 아이를 가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혼외 자식을 만들 수 없는 법.
이러한 이유로 이번 주말에 신전에 찾아가 루미너스에게 정중히 부탁할 예정이다. 케이트에게 미안하지만 접근 금지 좀 시켜달라고.
비록 케이트를 총애하는 루미너스라 해도 내가 간절히 부탁한다면 마지못해 들어줄 것이다.
“너희들 그거 들었어?”
“뭐가?”
“사흘 전에 케이트 추기경이 아카데미에 방문했다는 거.”
“… …”
주말이 다가오기 하루 전. 식당으로 향하는 도중 리나가 꺼낸 말을 듣고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케이트가 내가 머무는 기숙사로 찾아온 날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이틀 전. 그 다음 날에도 씨앗을 달라며 찾아왔고 오늘도 찾아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최대한 다른 지인들과 지내면서 최대한 늦게 들어갈 생각이다. 이상한 곳에서 상식이 어긋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밤 늦게 찾아오진 않을테니.
내가 속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동안 리나를 포함한 다른 여자들이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 그 이야기 나도 들었어. 듣자하니 당분간 여기서 머물 거라는데? 수도에 악마 숭배자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엄청 예쁘다고 난리도 아니더라. 한 번 만나보고 싶긴 한데 리나 너는 안 만나?”
“나보다는 우리 오빠나 레킬리스 공작이 만날 거야. 추기경은 그 직급상 공작 이상의 인사가 대해야 되거든.”
추기경은 교황 다음으로 높은 직급이며 케이트는 이단심문관의 최종 계급 대심문관이다.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라면 최소 공작 이상의 인사가 맞이해야 된다.
그만큼 위세가 높으며 추기경에게 한 마디라도 잘못했다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황태자나 공작이 만날 수밖에.
‘그래봤자 나한테는 변태로밖에 안 보여.’
틈만 나면 나에게 씨앗을 갈취하려는 변태 성직자.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씨앗을 달라고 부탁할까.
어서 빨리 내일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케이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 정체가 들통날 여지가 충분히 있었으니.
그런 내 기분을 알아차렸던 걸까. 다른 사람과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우던 마리가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작. 표정이 왜 그래?”
“응? 내 얼굴이 왜?”
“똥 씹은 표정 같아.”
“… …”
저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기는 할까. 나는 마리의 답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들에게 케이트에 관련된 일을 말해줄 생각이긴 하다. 특히 마리와 세실리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되는 문제다.
나는 답답함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옆을 힐끔거렸다. 내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파악했는지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일단 식당에 가서 알려줄게.”
“큰 문제야?”
“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다고 해야 할지… 들어보고 나면 알 거야.”
기껏 좋았던 분위기가 침체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진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이다.
이후로 식당에 도착한 뒤, 늘 그렇듯이 따로 방을 잡아놓고 주문까지 모두 끝냈다. 그리고 내가 무슨 고민을 갖고 있는지 알려줬다.
“이틀 전에 케이트 추기경이 내 기숙사까지 찾아왔어.”
“뭐?”
“내가 제논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
케이트가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내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하자 하나 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안 그래도 크던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전부 깜짝 놀랐다는 표정이었으니. 솔직히 놀랄만도 하다.
나는 그들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궁금할 점들에 대해 하나 하나 밝혔다.
“루미너스 님께서 내 정체에 대한 신탁을 내린 것 같더라고. 다행히 케이트 추기경에게만 내린 것 같지만… 이미 들킨 마당에 의미가 없지.”
“신탁? 무슨 신탁?”
“깨끗한 태양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순수한 정열로 행동하는 자를 찾아라.”
복잡하지만 구절 자체는 인상 깊었던지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신탁의 내용에 대해 말하자 여자들이 더욱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나 또한 처음에는 저런 표정을 지었겠지. 이에 천천히 해석해줬다.
“깨끗한 태양으로 바라본다는 뜻은 황금색 눈동자를, 순수한 정열은 내 빨간 머리를 지칭하는 것 같더라고.”
“시아버님이랑 아주버님도 똑같지 않아?”
“그것도 그렇지만 깨끗한과 순수한이라는 수식어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는 의미인가봐. 아버지는 기사고, 데이브 형도 옛날에 사냥을 자주 갔었거든.”
아버지와 형, 그리고 니콜은 나와 달리 어릴 때부터 강했다. 그래서 영지에서 기승을 부리던 몬스터나 짐승들을 사냥하던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에 반면 허약하디 허약한 신체를 갖고 있던 나는 기사 훈련조차 버거워했으니 가족들이 소중히 아꼈다. 형제들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바람에 금이야 옥이야 이쁨까지 받았다.
“그리고 내 몸에 나는 라일락 향기 때문에 부정해도 절대 안 믿을 걸? 듣자하니 교황보다 더 강한 향이 난다고 하던데?”
“그렇구나. 그래서 케이트 추기경이 뭐라고 했어? 그게 끝이야?”
“나도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겠어. 케이트 추기경이 뭐라고 했냐면…”
이걸 정말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약간 망설이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 씨앗을 달래.”
“씨앗? 무슨 씨…”
“… …”
예상대로 각기 다른 반응이 나왔다.
마리는 말을 하다가 도중에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고, 세실리는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리나는 파란 눈을 깜빡거렸다가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다들 알만한 건 다 알만한 나이였으니 내 발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너희들도 이런 종류의 설화에 대해 알고 있을 거야. 신의 선택을 받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관계를 맺어 영웅을 탄생시킨다는 이야기. 케이트가 나에게 씨앗을 달라는 이유도 그거랑 비슷해. 자기는 은총을 받은 몸이고, 나는 제논 일대기를 통해 악마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줬지. 대충 감이 잡히지?”
“혹시 그 여자 정신에 문제 있어?”
마리가 속이 뻥! 하고 뚫리는 의문을 꺼냈다. 하기야 약혼을 맺은 그녀 입장에서 이번 사태는 화가 나다 못해 황당해 할만하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세실리도 마찬가지.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어이없어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하는 모습이다.
반면 리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으나 입은 꾹 다물고 있다. 아무래도 큰 연관이 없었기에 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있는 것 같긴 한데 사고가 전부 루미너스 님에게 쏠려있더라고. 내 아이를 가지려는 이유도 루미너스 님을 위해서라고 하더라.”
“그거 뭔가…”
“광신도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싫다고 해도 말을 안 듣더라고. 일단 내일 신전으로 가서 루미너스 님께 접근 금지 신청을 부탁하려고.”
“…안 될텐데.”
가만히 있던 리나가 의외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그에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의 시선이 리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하면서 이유에 대해 설명해줬다.
“추기경은 교황 다음으로 높은 직위.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루미너스 님에게 직접 선택을 받아야하지. 게다가 케이트 추기경은 루미너스 님에게 직접 은총까지 하사받은 인물. 제아무리 아이작 너여도 접근 금지는 힘들거야.”
“신성력을 소비해도?”
“그렇게 되면 케이트 추기경이 또 신성력을 소비하여 무력화시키겠지. 물론 루미너스 님이 엄하게 다그치긴 할 거야.”
“아. 그정도라면 괜찮아.”
루미너스라면 몸까지 바치겠다는 성직자이니 경고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다른 건 몰라도 신앙심 하나만큼은 진실된 사람이니까.
하지만 틈틈이 기회를 노리긴 할 것이다. 생각보다 집요한 성격이니 신전에 갔다 와도 빈틈이 생긴다면 또다시 요청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괘씸해. 약혼자가 있다는 건 알려줬어?”
마리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반대로 세실리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우선 케이트부터 떼어놓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있는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다.
“당연히 말했지. 그런데 내가 괜찮다면 언제든지 준비하겠다는데? 관심 없다고 하니까 유혹하면 되냐고 묻기도 했어.”
“…말이 안 나오네.”
어처구니가 없었으니 마리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긍정적인 의견이 나왔으니, 바로 세실리였다.
“나는 의외로 괜찮은 것 같은데?”
“뭐?”
“제정신이야?”
나는 물론 마리가 화들짝 놀라며 세실리에게 반문했다. 오죽하면 마리가 제정신이냐고 물을 정도.
세실리는 설명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나도 다짜고짜 아이를 만들자는 그 추기경이 못마땅하긴 해. 그렇지만 손해볼 건 하나도 없다는 거지. 오히려 세이비어 교국과 이어지게 되는 셈이니 여러모로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야.”
“나도 그 생각은 안 한 건 아니야. 그런데 누나.”
“응?”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누나랑 이어진 게 아니잖아.”
만약 케이트가 세실리처럼 천천히 스며드는 식으로 다가왔다면 잠깐 고민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마리와 독대하여 허락을 받고 그녀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미 세실리까지 받아들이고 아델리아마저 고민하는 실정인데 여기서 더 늘어나도 괜찮다. 애인들 몰래 다른 여자와 외도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속이 꽉 찬 돌직구가 명치로 정확히 날아오는데 당연히 피해야지 멀쩡히 받을 수 없는 법이다.
세실리는 내 대답을 듣고 붉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은근슬쩍 테이블 밑의 내 손을 붙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난 그저 아이작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용서해줄 수 있어?”
“용서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 아무튼 내가 겪은 일은 여기까지야. 다른 해결책 같은 건 없어?”
“해결책보다는 그냥 나와 마리가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지, 마리?”
“당연하지! 솔직하게 말해서 받으면 좋지만 그 막무가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그리 말한 마리는 테이블 밑으로 곁눈질을 하더니 비어있던 내 손을 살포시 붙잡…지 않고 내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이건 일종의 신호. 아무래도 케이트 일로 스트레스가 쌓인 모양이다.
나는 허벅지를 쓰다듬는 야릇한 마리의 손길을 잠깐 멈춘 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난 내일 신전에 갔다 올게. 그때까지 잘 얘기해줄 수 있지?”
“물론이지.”
“우리가 잘 얘기해 놓을게.”
이제는 세실리까지 붙잡았던 손을 풀고 내 허벅지를 매만진다.
겉보기에는 양옆에 아름다운 두 미녀가 나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겠다만 정작 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두렵다.
씨앗 얘기를 해서 그런지 이들도 나에게서 씨앗을 갈취하려는 모양이다. 이건 어쩔 수 없겠지.
“음… 그럼 이 사안은 일단락된 것 같네. 그나저나…”
똑똑똑-
리나가 말을 하려던 찰나 음식이 도착했는지 누군가 노크했다. 이에 마리와 세실리도 행위를 곧장 멈추었다.
똑똑똑-
“뭐지?”
“다른 사람인가?’
종업원이라면 노크를 하고 텀을 두었다가 바로 들어온다. 그러나 노크를 두 번 이상 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는 뜻.
나는 의문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즉각 열어줬다. 그리고 문을 연 곳에는…
“안녕하세요. 제… 아니, 아이작 님.”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안 것인지 케이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찾아온다더니 딱 그 짝이다.
너무 당황하여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케이트가 특유의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듣기도 전에 문을 닫으려던 찰나였다.
콰악!
내가 문을 닫으려는 걸 눈치챘는지 케이트가 서둘러 문 사이에 발을 끼워넣었다. 어떻게든 밀어넣으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된 근력인지 안간힘을 써도 도통 밀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쪽에서 나를 밀어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이트는 전의 자비로운 미소를 유지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이번엔 씨앗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어차피 그 끝에는 씨앗 이야기 나올 거잖아요!”
“… …”
“거 봐!”
말이 없는 걸 보니 확실하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밀어넣으려고 할 때.
“마침 잘 됐네. 들어오시라고 해.”
뒤에서 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