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18
■ 217화. 대족장 (3) □ ᓚᘏᗢ
내가 덜컥 받아들이자 지나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쳤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나이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조금 어이가 없다.
아까는 본인이 대족장이 된다면 괜찮을 거라니 떠들었으면서 정작 내가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자 썩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원래 발칸과 레오나를 도발하려는 속셈이었던 걸까. 눈을 동그랗게 뜬 걸 보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 한 것 같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도리어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 아까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대족장이 되겠다고 했으면서요?”
“그냥 한 말이지. 나도 나 같은 년을 대족장으로 올리면 그 나라 망할 거야.”
“… …”
자기 스스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듯한 발언에 할 말이 없어졌다가 슬쩍 옆을 쳐다봤다.
발칸은 지나이의 엄청난 태세 변화에 썩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레오나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중이고.
나는 무언가 다급해진 듯한 지나이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정말로 대족장이 될 생각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지나이, 그녀와 만나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내가 관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
‘…애초에 수인이라 관상이고 뭐고 없겠구나.’
이건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불과 몇 분 되지 않았는데 대족장이 되라고 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그냥 해본 말에 가까워요. 저랑 지나이 씨는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덜컥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그렇지? 깜짝 놀랐네.”
“그런데 골똘히 지나이 씨가 대족장이 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네요.”
“미쳤니?”
지나이가 안심하려던 찰나 내가 재차 긍정하니 또다시 기겁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라 반쯤은 진심이다.
단, 그녀에 대한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보는 게 좋겠지. 말만 들어본다면 ‘왕’에 있어서 적합한 편이나 세세한 건 모른다.
게다가 레오나는 지나이의 혓바닥을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이것 또한 고도의 심리전일 수도 있을 터.
일단 살금살금 떠보면서 지나이의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지나이 씨. 지나이 씨는 반대 세력을 일으킨 이유가 뭐라고 하셨죠?”
“그놈의 전통이랑 풍습 좀 뜯어고치려고. 이 년놈들 아비를 쓰러뜨리고 올라간 놈 때문에 애니머즈 전체가 굶주렸거든. 자기 배 좀 채우자고 세금을 50%나 뜯어간다는 게 말이 돼? 심지어 1년 뒤에 어떤 놈이 바로 홀름강을 신청했는데 패배했어. 결국 2년이라는 시간동안 고통받았지.”
“크흠.”
지나이가 불평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발칸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헛기침을 토했다. 아무래도 폭군에게 홀름강을 신청한 사람이 사자 수인이었던 모양이다.
홀름강은 한 번 치르게 된다면 1년 동안 신청을 할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여기서 또 한 번 폭군이 승리를 점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2년이라는 세월을 고통받았겠지.
폭군이 폭정을 저지른다면 그 값은 백성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2년은 짧은 세월이나 스케일이 나라 단위로 커진다면 그 고통은 배로 증가하게 된다.
“덕분에 우리 부족도 먹을거리가 없어져서 아사자가 발생했어. 그래서 생각했지. 아, 이 빌어먹을 전통 때문에 자칫하다가 전부 굶어죽겠구나. 전통을 바꿔야 된다. 이 생각으로.”
“혁명이네요.”
“너희 인간들은 혁명이라고 하는 건가? 뭐, 그래도 이 녀석들도 전통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일이 좀 많이 커졌을 거야. 현자가 아주 큰 일을 해줬지.”
듣기만 한다면 정말 좋은 의도로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집중해야 할 건 ‘세력’이다.
애니머즈는 국부이자 건국왕인 히크가 전통을 앞세워 세운 나라. 당연히 그 전통을 따르는 수인들도 많을테고 지나이의 사상에 따르지 않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안 좋은 선입견이 깔려있는 하이에나 수인. 만약 그녀가 직접 세력을 키웠다면 정치력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하이에나 수인이라서 세력을 키우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한 건가요?”
“다른 얼굴을 내세웠지. 아사자가 발생한 건 우리 부족만 있던 게 아니었거든. 호족(호랑이) 한 명을 살살 구슬려서 대표로 내세웠어. 뭐, 시간이 지나서 내가 대표인 게 들통났지만.”
“그전까지는 잘 진행되었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런데 걔가 부담스러웠는지 모든 사실을 밝히더라. 조금 당황스럽긴 해도 이정도 배신은 눈치채서 별 탈 없이 넘어갔어. 당연히 그 놈도 자리에서 내려왔고.”
전형적인 ‘간신’의 표본이다. 1인자의 권위를 존중하되 2인자의 자리에서 야금야금 권력을 탐하는 인물.
그러나 그녀 입장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평판이 좋지 않은 하이에나 수인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무조건 다른 인물을 대표로 내세워야 된다.
평소 지나이를 좋게 못 보는 수인이라면 그녀를 비열하다고, 역시나 치사한 민족이라 폄훼하겠으나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아니다. 그냥 정치 능력이 굉장히 좋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뭐, 그래도 지금은 날 따르는 사람도 많고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지. 그 놈의 전통은 바꿔야 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
“흠… 그렇다는데요? 발칸 씨의 생각은 어때요?”
“음흉한 년은 믿을 수 없다.”
“레오나 너는?”
“똑같아. 하이에나 수인인 건 둘째치고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으니 도통 신뢰를 하지 못 하겠어.”
여전한 불신에도 지나이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 개의치 않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러모로 간신배적인 면모를 보여준 탓에 확실히 신뢰하긴 어려운 타입이긴 하다.
그렇다면 진짜 능력면은 어떨까. 정치력은 대충 입증되었으나 다른 곳을 둘러봐야 된다.
가장 먼저 세력을 어떻게 성장시켰냐는 것. 정치와 관련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성장이다.
제아무리 신념이 깊은 사람이라도 기본적인 자원이 없으면 의지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자원이 빵빵하다면 그만큼 결과도 좋아지는 법.
애니머즈의 반대 세력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 반대 세력에 가담했으나 그곳에서 아무런 지원이 없다?
그러면 숫자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세력 또한 약화되는 법이다. 전통에 정면으로 대항할 정도의 세력이라면 필시 그 규모도 클테니 막대한 예산이 들 터.
“그렇다면 지나이 씨. 지나이 씨는 반대 세력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또 유지하셨나요? 자원이 많이 필요할텐데.”
“아, 그거? 그냥 위에 있는 놈들 살살 구슬려서 지원을 받았지. 참고로 얘네들한테도 좀 뜯어먹었어.”
지나이는 손가락으로 발칸을 가리키며 특유의 히죽거리는 미소를 띄었다. 그 손가락질에 발칸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내가 발칸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그는 콧숨을 길게 내쉬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사실을 알려줬다.
“…우리가 아니라 족장들이겠지. 지나이는 족장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정보를 얻고, 그걸 토대로 이득을 굴린 거다.”
“정보요? 무슨 정보였나요?”
“간단해. 족장들만 알고 있는 땅을 미리 사들였다가 되파는 거지. 그것도 아니면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전부 다 사들였다가 비싼값에 팔거나. 지금은 제논 일대기로 쏠쏠하게 이득을 굴렸지. 수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덕에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거든.”
“… …”
지나이가 언급한 건 매점매석과 사재기다. 특히 제논 일대기 같은 경우는 사재기를 하지 말라고 미네르바 제국에서 법으로 지정해 놓을 정도다.
하지만 시대상 아직 국제법이라는 개념이 희박하여 애니머즈에도 통용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걸 배제하더라도 지나이의 행위는 불법 또는 비리에 가깝다.
저렇게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이유도 아직 제대로 된 법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애니머즈는 건국된지 고작 30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군데군데 취약점이 있을 것이다.
지나이는 그걸 교묘하게 이용한 거고. 여러모로 능력 하나는 탁월하다.
“아. 그렇다고 나는 뒷돈을 내 주머니에 쑤셔넣지는 않았다고? 나도 엄연히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이야.”
“당신 입에서 월급이라는 말이 나오니 뭔가 이상하네요.”
“그런가? 아무튼 이런 식으로 해서 인맥도 챙기고, 자원도 챙겨서 반대 세력을 키운 거지.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답했다.
“그냥 당신이 대족장 하세요.”
“돌았니? 대족장 안 한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아무리 봐도 대족장에 적합한 사람은 지나이 씨인 것 같은데요?”
지나이는 간신의 표본이다. 그것도 능력이 극히 뛰어난 간신.
족장 같이 고위 관료에게 뇌물을 먹여 인맥을 다지고, 더 나아가 자원까지 스스로 굴릴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
본인은 다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깡이 좋으니 저런 비리를 대범하게 저지를 수 있는 거겠지.
무엇보다 정세에 밝을 뿐더러 안목이 뛰어나다. 아무리 훌륭한 정보가 있어도 사용자의 머리가 멍청하다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이는 현 애니머즈의 대족장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발전을 위해서라면 저 잔머리를 지혜로 이용되게 만들어야 된다.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발칸 얘를 포함해서 사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걸? 자기 머리 위에 하이에나가 있는 거잖아.”
“당연히 무섭겠죠. 잘못 하다간 곧바로 목이 물릴 수도 있는데.”
“그렇지?”
“그러니까 대족장이 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목이 물릴 수도 있는데 미쳤다고 폭정을 저지르진 않겠죠. 때마침 홀름강도 바뀌었는데.”
“흠.”
내 말을 듣고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발칸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걸 본 지나이가 불안해졌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야, 야. 설마 진지하게 듣는 건 아니지? 너도 저게 헛소리라는 건 알고 있잖아.”
“글쎄… 솔직히 네 년을 감시하는데 대족장만한 자리가 없긴 하다. 대신 형제들은 물론이고 백성들도 반발하겠지.”
“그, 그렇지? 거 봐. 현자 네 말대로 내가 대족장이 된다면 말이 많아져서 안 돼. 또다시 반란 세력이 일어날 걸?”
발칸이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하자 지나이는 손을 내저으며 안심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능력이 되어도 지나이가 대족장이 되면 애니머즈 내부적으로 말이 많아지긴 할 것이다.
평소 평가가 좋지 않은 하이에나 수인에다가 여러모로 많은 비리를 저지른 인물이었으니. 그러나 여기서 레오나가 지나이에게 한 방 먹였다.
“아까 족장들에게 뇌물을 먹였다며? 그 사람들을 이용하면 되겠네.”
“응?”
“뭐?”
레오나의 말에 발칸은 물론 지나이마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걸 이용하면 되겠구나.
그사이 레오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무던히 받아내다가 지나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본인의 생각을 꺼냈다.
“아까 네가 족장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정보를 샀다며? 그때처럼 똑같이 해. 내가 대족장이 된다면 너희 부족에게 호의를 보여주겠다고 살살 구슬리면 되잖아.”
“그 놈들도 내가 대족장이 되는 걸 막을 텐데? 자존심 하나는 더럽게 강한 놈들이거든.”
“막아서 뭐 하려고? 우리가 밀어주면 다른 족장들도 얄짤없이 따라야 할텐데. 그치?”
레오나가 발칸에게 동의를 구했다. 생각을 정리한 건지 발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레오나의 말이 맞다. 호족은 이미 너에게 포섭이 된 상태고, 웅족은 이런 일에 나서지 않으니까.”
“아니…”
남매의 합동 공격에 지나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내가 하나 더 거들어줬다.
“그리고 지나이 씨가 대족장이 되도 상관없는 것이, 정치력은 이미 세력을 키우면서 입증되었고 더 나아가 인맥까지 충분히 다듬어놓은 상태죠. 지나이 씨가 대족장이 된다면 다른 족장들이 감히 부정부패를 저지를 생각을 할까요? 지나이 씨가 대족장인데?”
“…족장들 수법이 너무 단순하긴 해. 몰래 빼돌려도 전혀 모르더라.”
“거 봐요. 솔직히 지나이 씨도 대족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죠?”
마음이 점점 대족장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아 살살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부추겼다.
그에 지나이는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은 있지.”
“그렇죠?”
“하지만! 난 대족장이 되지 않을 거야. 대족장 옆에 붙어서 야금야금 빼먹을 생각이라서. 인간들은 그걸 간신이라고 부른다지?”
아예 대놓고 간신을 자청하는 지나이다. 이대로 가다간 빼도박도 못 하게 대족장이 될 것 같아 위기감을 느낀 모양.
어찌 보면 신뢰를 다 깎어버릴 수 있는 발언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지나이를 응시하다가 발칸에게 고개를 옮겨 물었다.
“그렇다는데요? 이 사람을 옆에 둘 건가요?”
“차라리 내 위에 둬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만. 대족장이 된다면 빼먹을 것도 없을 테니까. 빼앗긴다면 모를까.”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아예 빼먹을 것도 없게 만드는 게 낫지. 왕국이 자기 재산이 되는 건데 뭘 빼먹겠어?”
“빼먹는다면 백성들의 식량이 있겠군. 하지만 그러지 못 하게 막을 수 있을거다.”
“난 오빠들만 믿을게.”
아무런 효력도 없었다. 지나이는 그 광경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더니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씨발. 이게 아닌데.”
“축하해요. 꿈에 그리던 대족장이 되겠네요.”
“넌 닥쳐.”
보아하니 잘 해결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