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3
■ 22화. 인간 (1) □ ᓚᘏᗢ
내가 아카데미에 오면서 가장 관심있는 전공이 역사라면, 그 다음으로 관심이 깊은 전공은 ‘인류학’이다. 이 세상의 인류학은 인간 뿐만이 아니라 엘프, 수인, 드워프, 마족 등등 다양한 종족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인류학 수업에서는 각 종족마다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 또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배우는 중이다.
다만 헤일로 아카데미는 인간을 중점으로 두면서 다른 종족과 비교하는 교육방식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인간이 세운 교육기관인데다가 학생들 대부분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학생, 그러니까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종족도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세계는 넓고 다양한 종족이 있으나 언제나 사건의 중심이 되는 건 인간이었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숫자는 대략 16억이며, 나머지 종족들은 전부 합쳐도 8억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방대한 인구수와 끝을 모르는 발전 능력 덕분에 인간은 지금까지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것이죠. 그리고…”
두껍다 못해 두터운 회색 눈썹이 눈에 띄는 한 노신사가 강의실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그가 하는 강의를 모두 경청했다.
노신사의 이름은 로이 매그너스 교수. 보다시피 인류학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다. 인문학 교수인 비루스 교수처럼 열정이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물론 다른 종족도 고유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시시각각 인간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드워프는 무기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엘프는 일반 전사 한 명 한 명이 인간 기사급으로 강력하죠. 그건 수인도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마족은 마법에 한해서는 엘프와 같이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반면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특출난 부분이 없죠. 이러한 장단점이 모두 드러난 사건이 바로 종족 전쟁입니다.”
인류학은 특성상 ‘종족 전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 전쟁에 각 종족마다의 명과 암이 고스란히 드러난데다가 인간이 본격적으로 주도권을 쥐었으니까.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따로 궁금한 점이 있다. 나는 로이 교수가 숨을 고르기 위해 중간에 설명을 끊자 팔을 슬며시 들었다. 내가 팔을 들자 로이 교수는 화색을 띄더니 나를 쳐다봤다.
“아, 그래. 아이작 학생. 오늘은 어떤 질문을 할텐가?”
“… …”
나는 교수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흘렸다. 인류학은 역사 다음으로 내가 관심있던 전공이었는지라 첫 수업부터 이런 저런 질문을 날렸던 적이 있다. 이때문에 로이 교수도 나를 좋게 보는 편이다.
물론 그에 반비례하여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그닥 좋지 않았지만. 질문을 많이 한만큼 가산점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하고 싶은 질문은 해야겠지.
“아까 교수님이 인간의 숫자는 16억이라고 하셨죠? 다른 종족은 전부 다 합쳐도 8억이 되지 않고요.”
“그렇지.”
“일단 엘프만 콕 집어서 말할게요. 엘프의 출산률은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 가장 낮죠. 이때문에 중 인구수가 가장 적고요. 엘프의 인구수는 많게 잡아도 1억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워프가 2억 5000만, 수인이 3억 5000만, 마족이 1억 정도지. 얼추 계산한다면 말이네.”
로이 교수의 설명을 보듯이 엘프의 인구수는 전체 비율로 따졌을 때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21억 중 1억이면 괜찮은 편이 아니냐? 라고 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관점으로 본 경우다.
지구에는 오로지 ‘인간’만 존재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엘프의 종족 특징을 따지자면 심각할 정도로 적은 편이다.
“네. 거기다 엘프는 장수한다고 치면 약 1000년을 살 수 있죠. 인간이 장수해도 겨우겨우 100년을 넘기는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대충 계산해도 무려 10배가 넘어요. 하지만 이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엘프의 인구수가 적은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네의 말은 그 1000년동안 수많은 인간이 사망하는데도 불구하고 엘프의 인구수가 적은 부분이 이상하다. 이 말이지?”
로이 교수가 내가 원하는 질문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 옆에 앉아있는 세실리와 눈을 마주쳤다.
잠깐동안 그녀와 눈을 마주치던 로이 교수는 이내 시선을 떼어 다른 곳을 둘러봤다. 마족인 세실리를 제외하면 강의실에는 인간밖에 없었다.
“음… 꽤 흥미로운 질문이군. 우선 엘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으니 엘프의 생물학적 특징 다음으로 문화적 특징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우선 아이작. 자네는 성(性)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네?”
난데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기습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른 질문이라면 모를까, 갑자기 성지식에 대해 물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질문을 했던 로이 교수도 강의실의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다급히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 모두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게. 이건 단편적인 성지식이 있어야 설명할 수 있거든. 어쨌거나 아이작 학생.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어… 알 건 다 알고 있습니다.”
막상 대답은 했지만 얼굴이 실시간으로 빨개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부디 이런 대답을 할 가치가 있는 설명이길 바란다.
내가 그런 속마음을 가진 동안 로이 교수는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하나 둘 씩 꺼냈다.
“크흠. 그럼 설명하겠네. 이건 생물학 전공에서도 배우겠지만 생물학을 듣지 않는 학생들도 있을테니 집중해서 들어주게나. 우선 인간, 그러니까 인간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 하지만 엘프는 그 주기가 매우 길어. 연구에 따르자면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이라네.”
“와…”
나는 로이 교수의 설명을 듣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출산률이 극악 수준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히려 생리 주기가 저렇게나 긴데도 불구하고 멸종하지 않는 점이 더 신기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엘프의 문화적 특징이 있지. 엘프는 인간과 달리 성관계를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기는 편이야. 하물며 엘프 남성의 성욕도 인간에 비해서는 담백한 편이지. 아, 이럴 때는 인간의 성욕이 여타 종족보다 강하다고 설명하는 편이 어울리겠군.”
“… …”
“엘프의 인구수가 적은 이유는 이러한 부분들이 합쳐진 것이라네. 어때, 이해가 됐나?”
로이 교수의 물음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신비로운 종족답게 출산률이 낮은 이유도 신비로웠다.
무엇보다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 엘프를 설명할 때 출산률이 낮다고만 알려줬지, 그 이상은 없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일종의 ‘상식’ 같은 개념이라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허나 지금은 아니다. 이해가 가면서도 명쾌한 설명 덕에 새삼 내가 판타지 세계에 환생했다는 걸 다시금 실감시켜줬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이런 재미있는 질문을 하는 학생은 여태까지 보면서 잘 없었거든. 다음에도 지금처럼 재미있는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네.”
“그럼 수인은요?”
“음?”
이건 내가 한 질문이 아니다. 내 옆에 앉은 세실리가 한 질문도 아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니 고동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가 손을 들고 있었다. 딱딱한 말투처럼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실려있지 않는 듯한 무표정이 포인트다.
그사이 고동색 머리카락의 여자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다시 한 번 원하는 질문을 꺼냈다.
“수인의 숫자가 적은 이유도 알고 싶습니다.”
“이름이… 레오나. 레오나 학생이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자네는 무엇이 궁금하지?”
“수인도 인간처럼 성욕이 왕성하고, 또 생리 주기도 인간과 비슷합니다. 헌데 수인의 숫자는 고작 2억밖에 되지 않죠. 이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레오나의 질문도 일리가 있다. 수인은 인간과 동물을 반반씩 합친 듯한 외양을 가졌으며 과거에는 원시적인 생활을 고집했으나 약 300년 전 본인들의 국가를 세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과 비교했을 때 이상하리만큼 숫자가 적은 편이다. 국가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그걸 염두해도 상당히 적다.
로이 교수는 레오나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턱을 매만지다가 방금 전과 달리 약간 애매하다는 듯이 대답해줬다.
“그건 상당히 복잡한 문제일세. 수인의 문화적 특징도 있지만 종족 전쟁 당시 수인은 우리 인간에게 학살당하다시피 죽었거든. 적어도 수천만에 달하는 수인이 사라졌을걸세. 그로인해 여전히 우리 인간과 사이가 험악한 편이지.”
로이 교수는 종족 전쟁 당시 인간이 저질렀던 최악의 전쟁 범죄를 말하고 있다. 신성교국 ‘세이비어’가 마족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전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국가에 한해서고, 저 사건은 ‘인간측 연합’이 저질렀던 범죄다.
인간측 연합은 본인들이 노예로 부렸던 수인들이 엘프에게 붙자 눈에 보이는 족족 살해했다. 내 눈에는 제 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유대인 학살 사건, ‘홀로코스트’보다 몇 배는 더 심각했다. 더 가관인 건 수인을 살해할시 포상금까지 지급했다는 것이다.
이 광기에 찬 사건으로 인해 수인의 인구수가 반토막나다 못해 4분의 1수준까지 하락했다. 인간이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역사다.
“거기다 수인은 태어날 때부터 전투라면 열광하는 종족일세. 인간의 관점으로는 야만적이라 할 수 있고, 수인의 관점으로는 스스로를 명예로운 전사라 생각하는 것이지. 그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자연사보다는 전사하는 경우가 많아. 심지어 자연사하는 수인은 명예롭게 죽지 못 했다며 멸시하는 풍조가 있지.”
“… …”
“그래도 3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인구 증가율은 인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은 편이야. 레오나 학생이 원하는 대답은 현재 진행 중이기에 명확한 대답을 해줄 수 없지. 그 부분은 염두해두게.”
“알겠습니다.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나는 특유의 무뚝뚝한 대답 이후로 자리에 착석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인간과 수인의 사이가 어떤지 떠올랐다.
‘상당히 위험한… 편이긴하지.’
인간과 수인의 관계는 딱 하나로 정의할 수 있다.
철전지 원수와 노예.
수인이 일방적으로 인간을 증오하고, 인간은 그런 수인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 특히 암시장에서 수인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수인을 본인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공공의 적이었던 마족이 있었기에 그 현상이 적어보이는 거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인을 향한 차별도 만만치 않다.
“아이작. 인간이랑 수인은 사이가 안 좋은 편이야?”
세실리도 그 부분이 궁금했던건지 나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에 나는 로이 교수의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네. 인간은 수인을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기고, 수인은 인간을 동족을 자비없이 학살한 악마로 취급하고 있어요. 아까 교수님이 말씀했듯이 종족 전쟁 당시 발생한 그 사건 이후부터 이어져 온 악순환이죠.”
“우리 마족이 모든 종족에게 시한 폭탄 취급당했던 것처럼?”
“비슷하긴 해도 마족과 달리 수인은 인간만 노예 취급을 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태어나서부터 모진 차별을 받았던 마족이라 동질감을 느낀 걸까. 세실리는 미묘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깐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혹시나 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제논 일대기에서 인간과 수인의 이야기가 나오면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마족의 인식조차 완전히 바꿀 정도인데 안 될 건 없잖아.”
“글쎄요…”
나는 펜혹을 살살 문지르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제논 일대기를 통해 마족의 인식이 바뀐 건 맞지만, 그건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하물며 인간과 수인 사이는 ‘증오’라는 연쇄고리로 묶여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는 말처럼, 증오로 묶인 연쇄고리를 끊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설령 그것이 제논 일대기라 해도 말이다.
“과연 수인이 제논 일대기를 읽기는 할까요? 인간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신문에서도 드워프나 엘프의 평가는 있지만 수인만큼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어요.”
“혹시 모르지. 말만 안 할 뿐 사실은 재밌게 읽고 있을지도?”
“그러면 뭐…”
나는 피식거리며 대답했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입 밖으로 꺼낸 말과 달리 내 속내는 이러했다.
‘진짜 읽고 있으면 어떡하지?’
세실리는 절대 모르겠지만 제논과 수인의 왕자가 서로 신뢰를 쌓고 친구로 발전하는 전개가 있다.
그 전개를 통해 인간이 수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고, 악마와 대항하기 위해 연합을 꾸린다는 이야기다.
‘현실성이 하나도 없…’
아니지. 현실성을 따지기에는 바로 앞에 산증인이 있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족에게 천대받았던 마족이.
세실리는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뇨. 아무것도.”
“너 또 얼굴 빨개진 거 알지?”
“… …”
“솔직히 말해봐. 나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