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35
■ 234화. 밸런스 (1) □ ᓚᘏᗢ
후기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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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일로 아카데미 역사학 교수 엘레나의 노예···가 아니라 조교. 어쩌면 신디 다음으로 차기 조수로 낙점될 수도 있는 인력이다.
당연하게도 엘레나를 보조하거나 이번에 박사 학위를 딴 신디에게 글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등. 집필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조교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장단점을 알게 되었는데, 우선 단점부터 말하자면 바쁘다. 엄청 바쁘다.
단순히 바쁜 정도가 아니라 연구할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엘레나의 자료 조사를 위해 다른 교수를 찾아가는 건 물론, 심지어 역사학이 아니라 다른 학과의 교수에게까지 찾아가 자료를 요청해야 된다.
전에 언급했듯이 이곳은 인터넷도 없어서 자료를 찾으려면 책이나 그것도 아니면 두 발로 뛰어다녀야 된다. 내가 그 짓을 하는 중이고.
또한 엘레나는 내 역사 지식과 철학을 높이 사는 건지 논문을 쓸 때마다 내 의견을 물어보고 있다.
문제는 인간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을 쌓은 그녀인지라 여러모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이다음으로 장점은 단점과 유사하지만 물 밀듯이 쏟아지는 역사 관련 지식이다.
안 그래도 엘레나의 연구실은 수많은 역사서적 및 논문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심지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고서까지 있다.
무려 종족 전쟁 시절 어떤 한 인간 군인이 집필하던 일기장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보존까지 잘 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유물인데 엘레나는 그걸 한 번 읽어보라고 대충 던져줬다.
이렇게 귀한 걸 나에게 줘도 되냐고 물으니 자신 기준으로는 별로 안 된 기간이라고. 덕분에 그녀가 1000년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 엘프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엘프에게 300년 전은 인간으로 치자면 약 30년 전 일 테니 시선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내 기준으로는 꽤 중요한 물건이다.
‘어딜 가나 군대는 똑같구나.’
일기의 내용은 정말이지 군대스럽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쓸데없이 현실적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기는 아무 힘도 없는 병사 1이 구르고 구르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엘프 전사 한 명을 어떻게든 처치하기 위해 주변의 동료가 쓰러지든 말든 돌격한다는 내용이나, 아니면 정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물을 마셔서 배탈이 나는 내용이나, 마지막으로 빵을 먹다가 모래가 씹힌다는 내용이나.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PTSD다. 군대에 대한 투정은 하루에 한 번씩 꼭 있지만 독특하게도 PTSD에 대한 증상은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물론 가끔 가다가 동료가 죽는 악몽을 꾸거나 그들의 환청이 들리는 등. 미약한 증세는 있었으나 군대라는 열악한 환경에 비해서 덜한 편이다.
그 이유는 엘프와의 전투 때마다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엘프와 전투를 할 때마다 귀쟁이라니, 아니면 찢어죽여도 시원찮은 년놈들이라니 여러모로 증오와 살의가 가득 들어있다.
‘중간중간 엘프를 향한 멸시가 있구나.’
외상 후 스트레스는 치료하기는 어려우나 그나마 완화하는 법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제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군인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추축국이라는 거대한 악과 싸운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으나 베트남 전쟁은 단순히 국익을 위해 싸우는 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일기의 주인도 마찬가지. 보아하니 종족 전쟁 전까지 엘프는 인간을 대놓고 깔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원숭이 취급을 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이 일기의 주인도 과거, 엘프에게 종족차별을 대놓고 당했다는 전황이 있었으며 이 풍조는 엘프 전체에 만연해 있던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반기로 인간이 연합을 꾸려 알븐하임에 전쟁을 선포한 거고.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을 너무 물로 보던 것이 엘프의 패착이다.
구세대 엘프와 신세대 엘프 간의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이때문인 듯싶다.
‘계급은··· 지금이랑 다른 게 거의 없네.’
일반 병사의 계급도는 십인장, 백인장 같이 전생의 로마와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일기의 주인도 처음에는 평범한 병사였다가 십인장으로 진급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래봤자 기사에 비하면 평범하디 평범한 병사에 지나지 않지만. 기사와 병사 간의 간극은 메꿀 수 없으며, 그 이유는 바로 ‘마나’의 사용 유무다.
이 세상에 마나가 있다고 한들 개나 소나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엘프와 마족이 규격 외라서 그렇지 먼 과거에는 선택받은 인간만이 발현이 가능했다.
다행히 시대가 흐르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노하우가 축적되어 좀 더 쉽게 접근하게 되었다.
현재 아카데미의 무학생들은 전원 마나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저택에서 기초체력만 받았던 나조차도 마나를 이용한 신체 강화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지, 누구처럼 검에 마나를 담아 바위를 서걱서걱 썰어버릴 순 없다. 내부는 몰라도 외부로 내보내는 건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불세출의 천재라면 본인이 상상하는대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겠지. 흔히 말하는 ‘영웅’들이다.
‘이렇게 보면 종족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한 건 신기하긴 해.’
책에 묘사된 엘프 전사의 힘은 가히 재앙 수준이다. 칼질 한 번으로 5명의 병사가 반으로 갈라졌다는 건 기본이고 더 무서운 건 바로 마법이다.
위기에 몰린 엘프가 최후의 발악으로 쏘아댄 마법이 주변을 풍비박산내다 못해 전멸 위기까지 몰았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다행히 그 엘프는 기사의 지원으로 해치웠지만, 일기장 주인의 부대는 치명상을 입게 되어 재정비를 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그 후로 전쟁이 끝나 전역을 하게 되고, 약혼녀와 결혼까지 하여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낳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정말 잘 썼는데?’
단순히 일기에 지나지 않는데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중간중간 깊게 빠져드는 요소도 있고, 더 나아가 특유의 군대 문화로 발생한 해프닝이 실소를 자아냈다.
물론 심오한 면이 없는 게 아니다. 일기 주인이 전쟁을 치르면서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라며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고, 동료가 쓰러져도 자신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어쨌거나 이 일기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굉장이 높은 유물이라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낡디 낡은 일기장을 덮은 뒤 사색에 잠겼다
‘확실히 일반 병사와 기사는 차이가 심하긴 해.’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라 하면 기사를 떠올리지, 일반 병사는 뒷전이다. 이 일기에 적힌 내용처럼 일반 병사는 까놓고 말해 고기 방패 수준이다.
몬스터나 같은 인간 병사는 상대할 수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엘프와 마족, 그리고 하드웨어 자체가 남다른 수인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게임으로 치자면 마린이 아니라 저글링 한 마리가 질럿한테 덤비는 꼴이지. 인간 기사조차 못 이기는 게 일반 병사의 현실이다.
‘그런데 엘프 일반 전사는 인간 기사 수준이니.’
여태껏 언급했듯이 일반 전사다. 엘프의 문명을 모방한 인간에게 기사가 있는 것처럼 엘프에도 기사와 비슷한 계급이 존재한다.
차이점이라면 전사는 오로지 신체 스펙으로 싸우는 무투파고, 기사는 마법을 병행하는 전투 마법사라 보면 된다.
안 그래도 전사 한 명조차 상대하기 버거운데 기사는 오죽할까. 기록에 따르자면 엘프 기사 하나를 쓰러뜨리기 위해 인간 기사 4~5명이 달라붙었다고.
알븐하임에서 내부적으로 큰 분열이 일어난 것도 승리의 요인이지만, 인간이 무슨 개미떼마냥 물량빨로 밀어붙인 것도 한몫했다.
더군다나 마족의 지원까지 있었으니 공격은 못 할지언정 방어는 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은 어떻게든 승리를 점하기 위해 뒷공작도 마다하지 않는 반면 엘프는 그런 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전사장 아이케르가 승리를 위해 노력했으나 뭐… 알다시피 원로원의 하드 트롤링 덕분에 구금당했다.
이렇게 보면 사실 원로원이 인간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만행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인은 당시 문명은커녕 제대로 된 통합도 없었고. 게다가 수인은 육체 스펙만 뛰어나니까.’
수인도 일반 전사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 단지 하드웨어 자체가 미친듯이 클 뿐이지. 결정적으로 300년 전 홀로코스트마냥 수인 대학살이 가능했던 이유는 문명의 유무 차이다.
각개격파라는 말이 있듯이, 100대 100으로 싸우는 것보다 100대 50을 두 번 치르는 게 훨씬 승산이 높다. 수인 대학살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무튼 간에 300년이 지난 이후 문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교육 기관이 설립되고, 마나의 접근성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상향평준화가 되었다.
마나는 터득하기 위해서는 ‘스승’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며 교육 기관이 그걸 대신하는 중이다. 300년 전 종족 전쟁을 통해 인간이 습득한 경험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건 그렇다 치고 악마는 얼마나 강하지?’
제논 일대기에는 문헌에 나온 악마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칠죄종이 아니라 흔히 잡몹이라 불리는 악마들.
칠죄종은 어차피 주인공 일행이 퇴치할테니 그렇다 쳐도 일반 악마들이 문제다.
악마들은 그 힘도 힘이지만 물량이 괴랄할 정도로 많다. 책 속의 알븐하임, 즉 엘븐하임을 점령할 수 있던 근본적인 이유가 압도적인 물량 때문이다.
과연 주인공 일행이 칠죄종을 처치할 동안 연합군이 버틸 수 있을까. 인간도 한 물량한다지만 기본적으로 스펙 차이가 나는 마당에 속절없이 무너질 게 뻔하다.
물론 어찌어찌 버텼다고 대충 묘사한다면 독자들도 가볍게 넘어갈 것이다. 제논 일대기는 일반 병사가 아닌 영웅의 이야기였으니까.
‘이러한 물량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마법이 제격이지. 정확히는 막강한 ‘화력’이다.
이 세상에도 화약과 대포가 존재하긴 한다. 다만 인간과 드워프만이 사용하고 있는데, 엘프와 마족은 당연하게도 마법 때문이고 수인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몇 배의 화력을 뿜내는 마법이 있는데 굳이 대포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있다.
마법이 과학을 대신하는 세상인만큼 ‘기계’의 발달은 전생과 비교해서 현저히 더딜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력 기관은 발명했으니까.’
에인스가 마력 기관을 발명했다는 소식은 모두 알 것이다. 현재 그는 드워프의 나라, 마키나에서 지원을 받아 마력 기관차를 함께 발명하는 중이다.
기계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력 기관차의 발명이지만, 아직까지 주변은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연 기계가 마법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보다 효율이 뛰어난지 의문을 품고 있으니.
‘이건 18권 말고 19권에 한 번 넣어봐야겠다.’
만약 인간 병사 5명이 인간 기사급의 전력을 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냐고.
참고로 이 떡밥은 제논 일대기에 풀지 않고 앞으로 집필한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풀 것이다. 세계관은 전혀 연결돼 있지 않으나 기계 문명의 절정을 한 번 보여줄 예정이다.
루미너스가 말한대로 드워프가 전차를 끌고 전시회에 찾아올 확률이 높긴 해도 쓸 건 써야지. 나는 곰팡이 핀 낡은 일기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논문을 작성 중인 엘레나, 그리고 그 옆에서 자료를 조사 중인 신디가 눈에 들어왔다.
“다 읽었니?”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엘레나가 잠시 펜촉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는 모습이 이지적이다.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낡은 일기장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건 어디서 구한 거예요?”
“내 제자한테서. 듣자하니 자기 선조가 쓴 일기장이라 하더라고.”
“그럼 그 제자는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죽었지. 후손도 일찍 요절한 탓에 나한테 전달한 거야.”
“··· ···”
엘프의 위엄 스택이 더 쌓이는 순간이다. 내가 떨떠름해 하고 있을 때 엘레나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은 여태까지 많이 보았던지라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대충 논문이나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던져주고 읽으라고 한 뒤 나에게 감상평을 요구하는 얼굴.
“자. 그래서 읽으니까 무슨 생각이 들어?”
예상대로 엘레나가 낡은 읽기장에 대한 감평에 대해 질문했다. 옆에서 자료를 조사하던 신디도 궁금했는지 자료더미를 내려놓고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다크 서클이 진하고 퀭한 눈동자지만, 그 안에 짙은 호기심이 담겨있었다. 왜 하나 같이 나한테 기대를 거는지 모르겠네.
나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머리에 있던 생각을 그대로 꺼냈다.
“과거에 엘프가 인간을 어떤 식으로 차별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일기 중간중간 엘프를 향한 멸시가 묻어나오고 있어요. 그와 동시에 엘프의 힘을 경외하는 중이고.”
“제대로 읽었네. 네 말이 맞아. 종족 전쟁 당시 엘프는 그야말로 교만 덩어리 그 자체였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까지 모두 자기 발 아래로 두고 있었어.”
엘레나는 그리 말하더니 나로 하여금 흠칫 떨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이전까지는 어째서 이 오만한 엘프가 다른 나라를 점령하지 않은 걸까? 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어. 아무리 엘프여도 지배 욕구가 아예 없는 게 아니거든. 그런데 제논 일대기 덕분에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더라고.”
“···제논 일대기요?”
“응. 제논 일대기에 설명돼 있었잖아. 다크 엘프 추방 사건. 자기들끼리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난리를 쳤다가 사달이 나버렸잖아. 그 사건을 빌미로 자중하자는 분위기가 흘렀겠지. 물론 원흉이었던 오만함은 고쳐지지 않아서 종족 전쟁 때 피를 봤지만.”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확실히 그녀의 말마따나 종족 전쟁 이전 엘프는 다소 파시즘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제국주의가 팽배하여 타국을 점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다크 엘프 추방 사건이 터졌으니 매사에 조심스러워했을 수도 있다.
하물며 ‘법률’이라는 족쇄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으니 고지식한 엘프의 특징상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제논 일대기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믿는 거예요?”
“그거 하나로 원로원이 고집하던 법률이 왜 생겨났는지, 더 나아가 알븐하임이 어째서 가만히 있었는지 전부 설명되거든. 조만간 위그드라실에서 발표할 거야.”
위그드라실은 특정 기간마다 저명한 학자들이 모여 본인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정확한 명칭은 없으나 일종의 세미나라고 보면 된다.
본래는 엘프만 참석이 가능헀는데 아르웬의 개방 정책 이후 다른 종족도 참석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그 규모도 방대해졌다.
비록 수명 차이로 인해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발생하긴 하지만. 가끔 가다 몇몇 인간이 없어지면 엘프들은 그제서야 수명의 차이를 깨닫는단다.
나는 엘레나의 이야기를 듣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녀에게 질문했다. 이 일기장을 보면서 생각난 의문이다.
“교수님.”
“말해.”
“교수님은 만약 세상에 마나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내 질문에 엘레나는 물론, 신디까지 눈을 깜빡거리며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당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들이다.
내가 질문을 어렵게 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도리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자아내고 있을 때, 신디가 특유의 흐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아···?”
“네?”
“마나가 없다니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신디 다음으로 엘레나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야. 마나가 없는 세상? 그게 가능하긴 한 거니? 마나가 없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하고도 남았을 걸?”
“어··· 그정도에요?”
“당연하지. 맨몸으로 오우거는커녕 오크도 토벌하기 힘들텐데. 우리 엘프도 마나가 없으면 외모가 쓸데없이 예쁜 인형에 지나지 않아. 수명도 마나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인간이랑 비슷해지겠지. 아마 인류는 사이좋게 멸종했을 거야.”
다소 비관적인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옆의 신디도 비슷한 심정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얼떨떨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나는 전생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차이가 날 수밖에.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가 마지못해 동조한다는 듯이 말했다.
“음··· 여러분의 생각은 알겠어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네요.”
“불가능하지. 물론 마법에 비견되는 무기가 나온다면 모를까, 논문으로 쓴다면 그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일 걸?”
저 말을 듣고 흠칫했다. 나는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에인스가 발명한 마력 기관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건 제논이 미래인이니 가능한 거겠지. 그게 아니었으면 생각조차 못 했을 거야.”
전차를 끌고 온다는 말이 저거였구나.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쓴웃음을 흘렸다.
‘···떡밥만 투척해야지.’
논문으로 쓸까 고민했는데 잠시 접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