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36
■ 235화. 밸런스 (2) □ ᓚᘏᗢ
밸런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밸런스에 있어서 ‘라이벌’이 빠질 수 없다. 서로 우열을 쉽게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며 상징성에 있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자들.
전생에서는 사자 vs 호랑이라던지, AK-47 vs M16이라던지, 나루토 vs 사스케라던지, 부먹 vs 찍먹이라던지, 조조 vs 유비라던지 등등. 다양한 라이벌이 있다.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들어 있어도 무시하자. 아무튼 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이다.
사람들은 서로 서로 비슷한 계열의 힘을 맞붙이면서 어느 쪽이 우월한지 논평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게 아니었으면 위의 것들이 나오지도 않았겠지.
가끔 인터넷을 보면 허구한 날 vs 놀이로 싸우는 유저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면 하루종일 싸우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대외적으로 알려진 라이벌은 정작 본인들은 관심없는 경우가 많아도 제 3자들은 서로를 물고 뜯기 바쁘다. 이건 내가 환생한 세상도 마찬가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라이벌이 존재했지만, 악마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유서깊은(?) 라이벌들이 있다.
그건 바로 엘프와 마족.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결이다.
엘프는 두말 할 것없이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이자 빛을 상징하는 종족이며, 반대로 마족은 악마에게 물든 종족이자 어둠을 상징하는 종족이다.
두 종족 모두 다른 종족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직접적으로 충돌한 적은 거의 없다.
다만 인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엘프는 종족 전쟁 당시 인간에게 참교육을 당했던 전적이 있고, 마족은 기원 자체가 인간이다.
사실 라이벌이라고 해도 엘프와 마족을 서로 붙여놓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프를 선택했다. 정확히는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해야겠지.
그도 그럴게 제논 일대기 등장 전까지 마족은 핍박받고 감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마족을 택했다간 어떤 시선을 받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제논 일대기가 등장하고 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마족과 연결고리를 맺을 수 있으니 그들의 힘과 능력을 대놓고 비교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한 철학자는 엘프는 고귀하고, 마족은 숭고하다라고 설명했다.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을만큼 딱 들어맞는 명언이다.
이와 더불어 제논 일대기의 신간이 나오면 나올수록 마족의 인식은 수직상승하고 있다. 사크란의 희생은 물론이요 진과 릴리의 순애보가 마족을 더욱 밝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엘프의 인식이 하락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비록 ‘의회’를 통해 엘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지만, 반대로 세계수를 파괴하는 두 영웅의 행적을 통해 그들의 고귀함 또한 묘사했다.
하물며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의 차별없는 행적과 훌륭한 정책을 통해 차차 좋은 시선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다 보니 독자들, 더 나아가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과연 엘프가 더 강할까? 아니면 마족이 더 강할까?
이건 나 또한 궁금하긴 매한가지다. 책 속에 엘프와 마족이 정면으로 충돌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밸런스를 적당히 맞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조절해야 된다.
원래 마족(진)도 등장하는 마당에 어째서 엘프는 없냐는 말이 있었지만, 메리의 정체가 엘프라는 게 드러나자 그 말은 쏙 들어갔다.
그대신이라 해야 할지 누구누구의 활약상이 더 풍부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전보다 배로 늘어났다. 특히 12권을 기점으로 종족을 가리지 않고 제논 일대기에 빠져든 탓에 그 부분이 더 강해진 참이다.
다시 말해 팬덤, 그것도 악성 팬덤이 스멀스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우리 어머니조차 진을 응원하는 마당에 다른 독자들은 오죽할까.
이전부터 내려져 오던 라이벌들인데 제논 일대기 등장 이후 더 심화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가끔 가다가 신문을 보면 이 주제로 분쟁이 발생해 서로 싸웠다는 소식이 있더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제논 일대기의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팬덤의 영향 또한 커지고 있다.
여기서 괄목할 점은 엘프와 마족은 그렇다 쳐도 인간까지 끼어들었다는 점. 제논 일대기의 주인공이 인간인데 그들은 엘프와 마족 중 누가 더 강한지 치고 박고 싸우고 있다.
원래 인간은 본인이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심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그 마음이 점차 커져서 엘프 vs 마족의 싸움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엘프가 고귀한 존재라 해도 그들을 싸가지 없다고 싫어하는 인간이 있고, 마족이 숭고한 존재여도 악마가 기원이라 싫어하는 인간도 있다.
이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밸런스를 조절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제논은 주인공이니 파워 인플레고 뭐고 상관없으나 다른 주조연들은 조심히 다뤄야 할 상황이 와버렸다. 왜 그러냐고?
내 책이 예언서 취급을 받는데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또 말 나온다. 심지어 주변에 마족 공주와 엘프 여왕이 떡하니 지켜보고 있다.
일단 진은 최종보스인만큼 숭고한 희생을 보여줄 것이고 엘프의 고귀함 또한 마찬가지. 모 게임의 종족마냥 엘븐하임 탈환 작전에서 간지가 무엇인지 보여줄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밸런스가 발목을 붙잡는다. 두 종족 모두 인간 기준으로 괴물 같은 능력을 보여주니 묘사조차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된다.
‘전에 세실리는 힘을 작정하고 개방하면 산을 하나 날릴 수 있다고 했나?’
이건 세실리가 차기 마왕으로 예정될 정도로 매우 강한 것도 있으나 마족은 다른 종족과 달리 ‘검은 마나’를 사용한다는 부분이 크다.
검은 마나는 본래 악마들이 사용하던 힘인 만큼 1세대에게는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다행히 모라의 아낌없는 지원과 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정제되어 순수함만이 남게 됐다.
그러한 결과로 마족은 유독 ‘화력’이 눈에 띄는 편이다. 엘프를 위시한 다른 종족이 10의 마나를 사용하여 10의 위력을 낸다면 마족은 15에서 20사이의 위력을 뿜낸다.
그렇다고 정확도 및 세심함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마족은 스스로가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인지했기에 꾸준히 ‘절제’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덕분에 드워프 못지 않은 마법 물품 제작 능력을 보유하고, 척박한 환경을 비옥하게 만드는 등. 여러모로 만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종족이다.
이렇게만 보면 마족이 엘프를 능가하는 개사기 종족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엘프도 이에 못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다. 화력만 뒤질 뿐이지 마법에 있어서는 마족을 능가하고 있으니.
최초의 문명을 세운 종족답게 마법에 대한 깊이는 다른 종족과 비교가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예를 들자면 사칙연산. 여기에 1+1이 아니라 15×27이 있다고 치자.
인간은 이것마저 낑낑거리며 암산해야 하는 반면 마족과 엘프는 바로 답이 나온다. 그들에게 저정도 암산은 1+1 수준이니.
하지만 2415×1172 같이 복잡한 건 마족조차 일일이 계산해야 하나 엘프는 조금 과장해서 눈 한 번 깜빡하면 전부 계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엘프와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높은 경지는 엘프가 더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정확도와 세심함, 그리고 오차 범위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각자의 장단점이 있기에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특히 진은 앞으로 ‘식탐’과 정면충돌을 할 예정이고, 메리는 ‘릴리스’와의 대결이 있을 예정이다.
칠죄종의 최고간부이자 ‘교만’을 담당하는 엘프는 제논이 상대할 거고.
비록 판타지이기에 전투력이 각각 차이가 날 뿐더러 상성 또한 있겠으나 여태껏 언급했듯이 고증은 철저히 맞추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다시 말해 두 종족의 자문이 필요한 상황.
마족은 세실리와 가르츠를 통해 지식을 얻으면 되지만 엘프가 문제다. 시리스는 다크 엘프여서 논외로 치고 엘레나와 신디는 전투원과 거리가 먼 학자다.
‘전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 그나마 아르웬이 있지만 그녀는 현재 국정 문제로 매우 바쁜 상황이다.
‘일단은 편지를 보내긴 했다만···’
제논 일대기 관련 문제로 아르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놓긴 했다. 바쁘다면 거절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아르웬도 전에 시간이 난다면 나를 찾아온다고 말하긴 했다. 문제는 엘프 기준이어서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지.
우선은 마족의 힘부터 자세히 알아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려고?”
“응.”
세실리를 통해 마족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전보다 더 세밀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것. 나도 조사한 건 있으나 역시 본인에게 묻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냥 강한 정도가 아니라 마법으로 산을 박살낼 정도로 강하다. 강함에 있어서 세실리를 논외로 칠 수 없다는 것이다.
애당초 칠죄종 중 한 명인 릴리스의 모델이 바로 그녀다. 자문을 받기에 아주 적절한 사람이자 밸런스에 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8권의 집필도 거의 다 끝나가는 중이고, 19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칠죄종과 상대하게 될 테니 미리미리 숙지를 해놓아야 앞날이 편하다.
그래서 데이트도 할 겸 자문을 받기 위해 세실리와 단 둘이 카페에 들어왔다. 세실리도 매우 만족스러워하니 이야기의 진행은 매우 수월했다.
“음··· 날 참고해서 릴리스와의 전투에 넣으려고?”
“응. 릴리스는 단순한 마족이 아니라 악마가 된 마족이니까. 누나의 무력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아서.”
“누가 상대할 거야? 역시 제논?”
“아니. 메리가 상대할 건데?”
“흐음···”
제논이 아닌 메리가 상대한다는 대답에 세실리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나는 그녀의 미모를 여유롭게 감상했다.
지금처럼 세실리와 단 둘이 있었을 때가 언제였더라. 최근에 아델리아도 그렇고 마리와의 합동 공격도 그렇고 둘이 있던 적은 잘 없었다.
마리가 언제나 첫번째였으니 세실리가 양보한 적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왠지 미안함이 들어 오늘은 최대한 배려해줄 생각이다.
“내가 작정하고 힘을 개방하면 글쎄··· 메리도 강한 편이지?”
“여주인공에다가 엘프니까 강한 편이라 할 수 있어. 전투 경험도 많고.”
“흐음··· 그래도 애매하네. 나만큼 강한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존재할지부터 생각하는 게 어떨까?”
“아하.”
단번에 이해가 쏙 드는 대답이다. 약간 오만하게 들리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세실리다.
내가 이렇게 믿는 이유 또한 헬리움에서 그녀의 힘의 일부분을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레이저마냥 검지 손가락에서 빔이 나가더니 집채만한 바위가 터지더라.
그러니 릴리스의 무력은 살짝 하향시키되 식탐, 즉 ‘벨제부브’에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알았어. 그럼 릴리스는 누나의 전투 방식만 참고해야겠다. 무력은 벨제부브한테 넣고.”
“응? 벨제부브? 그건 또 누구야?”
“아.”
실수로 식탐의 본명을 꺼내버렸다. 내가 아차하자 세실리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지더니 설마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설마 칠죄종 중 한 명의 이름인 건 아니겠지? 칠죄종은 등장 때마다 그 이름이 나오는데.”
“···미안.”
“1년 전에는 리나한테 당했는데 지금은 작가님에게 당해버렸네.”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해버렸다.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세실리와 같은 마족은 제논 일대기를 거의 성서로 대우하고 있다.
당연히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이름조차 중요하며, 칠죄종 같은 주요 인물은 몇몇을 제외하면 아직 제대로 된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식탐, 벨제부브는 진의 친아버지이자 교만과 맞먹는 무력을 지닌 존재다.
18권 막바지에 그와 관련된 초대형 떡밥을 던질 예정인데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또한 벨제부브는 모두가 ‘식탐’과 연관 지을 테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름 하나로 줄줄이 소세지마냥 이어질텐데 실수로 그 사실을 밝혀버렸다.
세실리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이번만 용서한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뭐, 그닥 중요하지 않으면 용서해줄게. 이름 정도야 넘어갈 수 있어.”
“···중요한데?”
“··· ···”
작가인 내가 중요하다고 못을 박아버리자 세실리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붉디 붉은 눈동자에 황당함과 황망함이 두루 섞여있다.
함부로 입을 나불거린 내가 죄인이고 나쁜 놈이지. 나는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차마 들어올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아··· 아이작.”
“응···”
“일단 네 숙소로 가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하자. 알겠지?”
“···알았어.”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그렇고 그런 짓은 안 할 것이다.
세실리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나와 몸을 섞는 것이지, 악주기를 제외하면 마리처럼 성욕을 주체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다시 말해 진짜로 쓴소리를 듣기 위해 내 숙소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에는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겠지.
그 미안하다는 표시를 어떻게 할지는··· 모두가 알 거라고 믿는다. 아무래도 오늘 집필은 그른 것 같다.
이에 그녀와 팔짱을 끼며 기숙사 문 앞까지 도착했을 쯤, 세실리가 멈칫하며 의문을 자아냈다.
“응?”
“왜 그래?”
“지금 안에 누가 있는데?”
“뭐?”
개인 기숙사 안에 누군가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는 엄연히 개인의 공간이며 열쇠가 없는 이상 절대 들어갈 수 없다.
헌데 누군가 들어와 있다는 건··· 결코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기숙사 안에는 제논 일대기 원고가 있다.
만약 침입자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나는 다급히 열쇠로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풍긴 것도 잠시, 나는 책상 앞에 서서 18권 원고를 읽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마침 그 사람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화들짝 놀라며 이쪽을 바라봤다.
“누구···!”
“어, 어···”
“···야. 어?”
그리고 눈을 마주치자마자 동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르웬?”
“그, 그대?”
국정 문제로 바쁘다던 아르웬이 있었으니. 그것도 두 손에 미처 끝맺지 못 한 원고를 든 채로.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쯤, 아르웬은 재빨리 원고를 책상 위에 두며 다급히 외쳤다.
“아, 아무것도 못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