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239
■ 238화. 웅장하다 (3) □ ᓚᘏᗢ
엘프는 마족과 달리 다른 종족과 부대끼는 역사가 많은 만큼 참으로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 최초의 문명을 이룩한 종족.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종족.
이처럼 긍정적인 수식어가 많지만 그 반대로 부정적인 수식어 또한 많다.
오만한 종족. 싸가지 없는 종족. 귀쟁이. 자존심만 더럽게 센 종족. 열받는 종족. 종족차별주의자 등등.
대부분 ‘엘프는 오만하다’로 귀결되는 수식어들이다. 긍정적인 수식어를 보듯이 실제로도 능력이 출중하여 열이 뻗칠 수밖에 없다.
엘프가 특정 부분을 폄하해도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오만하다는 건 반대로 자기자신에 대한 능력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엘프는 다른 종족에게 배울 점을 얻었더라도 그뿐이지,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특히 가장 심한 건 마법. 마법은 문명이 세워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발전한 힘이자 능력이며, 실제로 엘프가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마족이 검은 마나를 통해 막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엘프처럼 하늘에 운석 덩어리를 떨어뜨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건 마족도 가능하나 엘프처럼 효율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대신 핍박 받던 세월로 인해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마법은 엘프보다 훨씬 많다. 더군다나 냉장고 같은 마법 물품은 드워프와 쌍벽을 이룰 정도.
그러나 엘프가 보기에는 그게 대단한 일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도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만들다 못해 그보다 더 좋은 물품을 제작할 테니까.
물론 이건 직접 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생각이지, 실제로 마법 물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하다.
냉장고, 마법필, 기숙사의 온도 조절 기능 등등. 이건 마법도 마법이지만 ‘공학’의 비중이 크다.
엘프가 가장 자신 있어 한다는 마법 및 연구는 ‘과학’과 매우 유사하나 공학은 그것과 궤를 달리하는 분야이며 손재주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프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이건 아르웬도 마찬가지다.
혼혈에다가 알븐하임에 들어서기 전 인간 사회에 녹아들었다지만 태생적인 부분은 어떻게 고칠 수 없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아르웬 스스로도 마법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으니 양보하기 싫었을 테고.
그렇다고 그녀가 잘못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와 단 둘이 있었다면 모를까, 헬리움의 공주인 세실리가 듣는 앞에서 저런 말을 했다는 게 문제다.
마족의 마법은 엘프가 보기에 조잡하다니, 엘프가 마족보다 우월한 증거라니 등등. 엘프 고유의 특징인 ‘오만’을 가장 경계하는 아르웬이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도 작은 난쟁이 주제에···”
이로 인해 세실리가 인신 공격을 가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건 그녀대로 큰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아르웬처럼 종족을 폄하한다면 모를까, 엄연히 개인을 욕한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이 이상한 곳으로 번지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바, 방금 뭐라고··· 뭐라고 했느냐?”
나도 들었는데 마주보고 있는 아르웬이 듣지 못할 일은 절대 없다. 작게 말했으나 면전에다 대고 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이에 아르웬은 크게 당황하며 양팔로 본인의 가슴을 슬쩍 가렸다. 은회색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가득 담겨졌다.
말은 저렇게 했으나 그녀도 결코 작은 편이라 할 수 없으며 오히려 평균 이상이다. 세실리가 너무 압도적으로 클 뿐이지.
키는 뭐··· 이건 넘어가도록 하자. 이건 상대적인 부분이 아니라 절대적이다.
그사이 세실리는 가슴을 양팔로 가린 아르웬을 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팔짱을 끼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교복 단추가 터질 정도로 커다란 흉부인데 팔짱까지 끼니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요? 여왕님께서도 제가 보는 앞에서 마족을 깔보셨잖아요. 그렇죠?”
“그, 그건 그렇지만 이건 인신 공격이니라!”
“마족을 그렇게 폄훼하는 것도 저를 향한 인신 공격이라 생각하지 않나요? 마족의 마법이 엘프보다 다소 난잡한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걸 에둘러 설명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실리는 인신 공격을 했을 때와 달리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했으나 그 말에는 뼈가 실려있었다.
마족을 향한 모욕은 나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그러니까 더이상 마족을 모욕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물며 그녀는 헬리움의 공주이자 다음 대 차기 마왕으로 즉위할 인물. 저렇게 말할 이유와 명분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나는 둘의 싸움에 불이 붙을 것 같은 징조를 느끼자마자 곧바로 중재에 나섰다.
“아르웬. 세실리 누나의 말이 맞아. 너는 네 생각대로 말한 거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매우 나빠질 수 있거든. 엘프가 마법에 한해서는 가장 뛰어난 건 맞는 말일 수도 있어. 하지만 대놓고 비교하는 건 삼가해 줘.”
“···알겠다. 내가 실언을 했던 모양이구나.”
혼혈이어도 엘프는 엘프. 자신 있다 생각하는 분야에서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종족이다.
나는 아르웬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세실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내가 편을 들어주자 기세등등한 표정이었는데, 팔짱까지 끼고 있어서 가슴 쪽에 시선이 간다.
탐스럽게 익은 과일마냥 덥썩 잡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간신히 억눌렀다. 우선은 그녀의 잘못부터 따질 때다.
“누나도 마찬가지야. 아르웬이 잘못했다지만 인신 공격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그냥 다르게 말해도 됐잖아. 그렇게 자신 있는데 종족 전쟁에서 인간한테 패배했냐는 것처럼.”
“그렇지만 사실인 걸? 난 그대로 돌려줬을 뿐이야.”
세실리는 내 말에도 한치의 양보도 없이 당당했다. 아무래도 아르웬이 마족을 얕잡아본 걸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대놓고 종족차별을 저질렀는데 사과할 생각이 들지 않겠지. 자기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아르웬 쪽에서 밀어들어왔으니.
그러나 인신 공격은 아니다. 공격하려면 엘프를 공격해야지 아르웬 개인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아르웬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약간 울컥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이라고? 알겠다. 그렇다면 나도 마족을 공격하는 건 관두도록 하지.”
뒤이어 그녀는 표독스러워진 표정으로 세실리가 그러했듯, 인신 공격을 가했다.
“지방 덩어리.”
“뭐, 뭐?”
“아르웬?”
세실리는 물론이요, 나까지 화들짝 놀라며 아르웬을 쳐다봤다. 지방 덩어리는 분명 세실리의 흉부를 멸시하는 단어일 터.
남들보다 훨씬 눈에 띄는 부위이니 공격하기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의문이 든다.
가슴이 크면 좋은 게 아닌가? 라고. 세실리는 아르웬의 약점을 건드린 반면 아르웬은 오히려 칭찬해준 꼴이다.
처음에 당황했던 세실리도 그 점을 뒤늦게 눈치챘는지 떨떠름해하다가 이내 훗,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오히려 팔짱을 낀 탓에 안 그래도 부각되었던 가슴을 더욱 강조하며 당당하게 대꾸했다.
“고마워요. 누구는 이런 지방 덩어리조차 없잖아요. 조금 불편하긴 해도 아이작이 좋아하니까.”
“나는 왜?”
“왜. 맞잖아.”
맞긴 맞다만 왜 굳이 나를 이 싸움에 끼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흠. 아이작, 그대도 남자이니 이해할 수 있다. 남자는 예로부터 가슴이 큰 여성을 선호한다고 들었지. 이건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키게 하여 좋아한다고 들었다.”
넌 또 왜 그런데요. 심지어 아르웬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에 세실리가 콧대를 더욱 높이며 우쭐거리고 있을 쯤, 아르웬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그 행동을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어서 아르웬은 가늘디 가는 자기 허리에 손을 척 얹더니 그 아래로 쓸어내리며 우월한 골반을 과시했다.
안 그래도 옆구리가 터진 드레스라 맨살이 노출되어 있는데, 그 행동까지 보여주니 심장에 매우 해로웠다.
“어, 어떠냐? 지방만 많은 것보단 이런 굴곡이 좋지 않느냐?”
“어······”
“가슴은 모르겠지만 아래는 자신 있느니라. 옛날부터 아름답다고 칭찬받았지.”
아르웬 기준으로 옛날이면 꽤 오래 전인데 그때부터 칭찬받았다는 걸 보면 확실히 자랑거리라 할만하다. 그만큼 그녀의 골반 라인은 세실리의 가슴만큼 압도적이다.
세실리도 마족인만큼 골반이 우수하고 하체 라인 또한 선명하지만 아르웬과 비교가 되진 않는다. 더군다나 작은 신장으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나는 앉아있는 채로 아르웬의 하체를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천천히 위로 옮겼다. 이런 행위는 역시 부끄러운지 새빨갛게 익어있는 아르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이어서 더욱 귀엽게 느껴지나 다시 아래로 눈을 돌리면 전혀 귀엽지 않다.
한 쪽은 가슴. 한 쪽은 골반.
정말이지 두 곳 모두 웅장하기 그지 없는 대결이다.
‘···난 왜 그걸 또 비교하고 있는 거지?’
왜 비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자로서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지, 두 여인 모두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강 건너 불 구경이라고, 나는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땔감을 얹어주는 역할인 것 같다.
“그, 그정도는 저도 가지고 있어요! 보세요!”
그러던 중 무언가 위기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세실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뒤이어 아르웬이 그러했듯 아래로 쓸어내리는데, 분명 평균 이상을 상회하고 있으나 아르웬과 비교하면 살짝 부족하다.
아르웬은 골반도 골반이지만 허리가 매우 가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없다. 키가 작다는 게 단점이나 엘프 특징상 비율이 좋아 전혀 작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걸 확인한 아르웬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당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겨우 그정도로 비교하다니 가소롭구나. 그래서 아이작. 그대는 어디가 더 좋느냐?”
“뭐? 갑자기?”
“그래. 아이작. 넌 역시 가슴이 좋지? 매일 밤마다 내 가슴 만지잖아.”
아니. 갑자기 나한테 왜 그런데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가슴이 좋긴 했다만, 아르웬을 보면 또 골반에 무게가 쏠린다.
전생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골반을 본다는 말이 있었으니. 이건 유전자 깊숙히 박혀있는 일종의 본능이다.
이같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쯤, 아르웬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눈을 깜빡이며 세실리에게 물었다.
“···밤마다? 밤마다 만진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게냐?”
“응?”
“아.”
그러고 보니 아르웬은 나와 세실리가 밤일을 치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
어쩌다 보니 부끄러운 진실을 밝혀버렸지만, 세실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걸 기회라 여겼는지 진하디 진한 미소를 지었다. 특유의 잔망스러움이 담긴 표정이다.
“어머. 그러고 보니 여왕님께서는 모르셨군요. 저와 아이작이 연인 관계라는 건 알고 계신가요?”
“그, 그건 알고 있다만··· 그런데 밤은··· 아니, 그전에 그대는 헬리움의 공주이지 않느냐. 마리라는 여인은 인간이니 그렇다 쳐도 그대는···”
아르웬이 혼란에 찬 은회색 눈동자와 나와 세실리를 번갈아본다. 이에 나는 고개를 긁적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웅장한 대결의 끝은 보아하니 다른 방향으로 결과가 나올 듯싶었다.
“여왕님도 알 건 다 아시잖아요. 연인 관계라면 당연히 화산처럼 뜨겁게 변하기 마련. 저와 아이작도 마찬가지랍니다? 적어도 사흘에 한 번씩은 하고 있죠.”
“··· ···”
“제가 헬리움의 공주인 것?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왜냐? 아이작은 제논 일대기의 작가니까. 마족을 구원한 은인에게 제 몸을 바친 건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여기서 고도의 심리가 깔려있다. 만약 세실리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다라 말했다면 아르웬도 반격을 했겠지.
그러나 위의 말처럼 사랑에 빠질만한, 근거 넘치는 ‘명분’을 언급했기에 아르웬도 별다른 말을 못할 것이다.
‘물론 나라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거겠지만…’
사실상 게임은 끝났다. 엘프와 마족 간의 싸움은 뜬금없이 골반과 가슴의 대결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아르웬의 패배로 직결되었다.
세실리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하등 의미가 없다는 것.
골반이고 나발이고 몸을 섞지 않는 이상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왕님. 여왕님의 골반이 아무리 우수해도 아이작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시겠죠?”
“··· ···”
연이은 공격에 아르웬은 그렇게도 지기 싫었던 걸까.
그녀는 약간 망설였다가 나를 한 번 힐긋거리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새하얀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흡사 토마토를 연상시켰다.
이어서 아르웬은 입을 오물오물거리더니 힘차게 외쳤다.
“불공평하니라!”
“네?”
“아르웬?”
그 다음에 나온 아르웬의 발언은···
“그러면 나도 아이작과 밤일을 치르게 해다오!”
무언가 심각하게 어긋난.
“그래야 공평하게 비교할 수 있지 않느냐!”
엘프식 공산주의였다.